버스정류장 바로 뒤편, 보는 방향에 따라선 옆쪽에 동물병원이 있었다. 사람들 시선이 머문 건 병원 유리창이었다. 거기엔 바깥을 향해 이리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폭염! 너무 더워요! 들어와서 잠시 쉬다 가세요!'
쉬다 가라니, 초록색 간판을 다시 보니 동물병원. 여기가 무더위 쉼터도 아니고 엄연히 영업하는 곳인데, 아무나 들어와서 쉬라니. 다들 같은 마음인지 반신반의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출입문에도 같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두 번 붙인 마음이 느껴졌다. 출입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딸랑딸랑딸랑'. 들어감을 알리던 청량한 종소리. 직원(수의테크니션)이 안쪽에서 나와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유리에 붙은 종이 보고 들어왔는데…"라고 말했다. 끝을 얼버무린 건 정말 여기서 쉬어도 괜찮냐는 의구심. 호의를 호의로 바라보기 힘든 불안, 그게 자연스러운 세상. 그걸 깨는 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럼요. 괜찮습니다. 여기 앉으셔서 버스 오는거 보시고 편히 계세요."
그 말에 맘 놓고 의자에 앉았다. 직원은 안쪽으로 들어가 자릴 피해주었다. 불편할까 싶어 배려하는 게 느껴졌다.
솔솔 닿는 찬 바람에 노곤했던 몸이 풀려왔다. 묵직한 땀방울이 가벼워졌다. 잠깐 쉬는 게 별건가 싶었으나, 막상 누려보니 좋았다. 동물병원 유리창으로 버스가 언제 올지도 훤히 보였다. 쉬다가 마주친, 동물병원 수의사님도 웃으며 말했다.
"바깥에 날 덥지요? 쉬다가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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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얼굴로 들어온 '할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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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시원하게 충전했다. 그제야 기자라고 밝혔다. 그 말에 뒷걸음질과 손사래를 한꺼번에 치던 수의사, 신재우(부끄럽다며 가명으로 해달라고 했다) 한스동물병원 원장을 보며 이야길 듣기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들으려는 이와 별 게 아니라는 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형도 : 더우니까 누구나 들어와 잠시 쉬어도 좋다는 가게는 없었거든요. 적어도 제가 살면서 본 것 중에서는요.
재우 : 아, 전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요! 여기 저희 선생님께서 훌륭하신 거라서….
신재우 원장은 옆에 있는 직원에게 자꾸 공을 넘겼다. 그에게 대신 몇 가지를 들었다. 매년 했었다는 것, 원장님 아이디어로 시작했단 것도. 그 처음이 궁금했다.
형도 :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지 궁금해요.
재우 : 아마 폭염이 심해졌던 게 2015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땐 종이를 안 붙였을 것 같은데요. 그 무렵에 할머님께서 몇 번 동물병원에 들어오셨어요.
형도 : 아이고, 밖이 너무 더우셔서 들어오신 걸까요.
재우 : 맞아요. 되게 힘드신 얼굴로 들어오시더라고요. 그래서 물을 드리고 천천히 쉬시라고 했지요. 그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생수를 밖에 놓아둘까.
형도 : 기다리시는 시간이 어르신들께는 더 길게 느껴졌을 수도요. 그게 계기가 됐겠네요.
재우 : 지나가다가 우연히 경로당에 쓰여 있는 걸 봤어요. 들어와서 쉬다 가라고요. 그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아, 저거 너무 좋다. 근데 왜 우린 안 하고 있지?' 그때부터 들어오셔서 앉아서 쉬다 가시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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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들어오면 물 꼭 권하고, 다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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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우린 안 하고 있지?'란 물음이라니, 어쩜 이렇게도 단순한 시작일까. 그리 시작해, 코로나19 때 2년을 제외하고는 그때부터 약 5년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시원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담을 높이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어낸 동물병원이라니.
형도 :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들어오실지요.
재우 :어르신들이랑 여성분들이 많으시고, 아이도 들어오고요. 밖에서 멀뚱멀뚱 (안내 문구를) 보고 계시면, 들어오시라고 하면 또 들어오시고요. 좀 미안해하시기도 하고 그래요.
형도 : 아무래도, 정말 그냥 들어와도 되나 그런 생각은 할 것 같아요.
재우 : 그러니까요. 그래서 마음 같아선, 여기에 뭘 뚫어서 천막 같은 걸 세워서 들어오시기 좋게 해볼까 생각도 있고요(웃음).
형도 : 그러게요. 들어오시면 참 고마워하시겠어요.
재우 : 제가 무얼 한 게 없는데, 너무 민망해요. 주로 안에 들어가 있어요. 제가 나오면 부담스러워하실 수 있으니까요. 도망간다니깐요(웃음).
형도 : 밖에서 5분, 10분만 기다려도 더워서 얼마나 힘든데요. 별 게 맞지요.
재우 : 중요한 건 오셔서 물을 꼭 드셔야 하는데요. 제가 어르신들은 되도록 물을 꼭 드려요. 이게 물 한 모금에 쓰러질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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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동화책이 아닌 세상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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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리다 설령 동물병원 안까진 못 들어오더라도, 그 종이에 적힌 문구의 힘은 꽤 강해 보였다. 그날 오후, 밖에서 유심히 동물병원 창문에 붙은 글을 읽던 할머니. 그에게 다가가 권했었다. 시원한데 들어가셔서 기다리시라고. 할머니는 웃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이리 말했다. "그냥 이렇게 마음 써주는 걸로도, 저 종이 보기만 해도 참 좋네요."
형도 : 흉흉하고 각박해졌다고 느끼고 마음이 쪼그라든 세상이긴 하지요. 그래서 더 따뜻합니다.
재우 :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에선 그냥 문 열고 들어가서 물 한 잔 달라고 청했고, 주고 그랬잖아요. 저 어릴 때도 그랬고요. 원래 그런 삶이었었지요.
형도 : 어렸을 땐 그런 느낌이었는데, 커서는 그런 정(精)을 느끼기가 쉽진 않아요.
재우 : 사람들이 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표현이 어려운 걸 거예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못 하는 거지요. 얘기해보면 다들 마음은 많아요.
형도 : 그것도 맞아요. 선의를 선의로만 바라보기엔 어려운 탓도 있겠지요. 여러 일들 때문에요.
재우 : 물도 나눠주려고 했었는데, 고민할 무렵에 강남에서 마약 음료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분이 우유를 주시는데 쉬이 못 먹겠더라고요. 악행이 하나 생기면 쫙쫙 뻗어 올라서 가지를 치는 거예요. 좋은 일 여러 개가 사라지는 거지요.
형도 : 아무래도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러니 이리 실행하는 마음은 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재우 : 아니오, 쉽습니다. 아주 쉬워요! 이게 어려운 게 이상해요.
아무래도 쉬운 것 같진 않아 재차 반문했다.
형도 : 정말 쉬운 게 맞을까요?
재우 :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십시오! 그리 말씀해주시면, 그걸 보고 더 많이 하실 것 같으니까요.
소나기가 퍼붓고 간 동물병원 밖 버스정류장 의자가 젖어 있었다. 잠시 뒤, 동물병원 수의테크니션 선생님이 나와 물기가 축축한 의자를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제야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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