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은 최근 60억원을 기부받았다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쳤다. 기부자의 형제자매가 “내 몫(유류분)을 달라”며 내용증명을 보내며 학교를 상대로 한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내비치면서다. 이 대학 졸업생인 사업가 김영숙(64·가명)씨가 아파트와 상가 등을 팔아 마련한 60억원을 기부한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딱 두 달 뒤에 벌어진 일이다. 미혼인 김씨가 수년 전 부모가 돌아가시자 유산을 모교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A대학 측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을 돕고 싶다’는 고인의 뜻을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고 씁쓸해했다.
김씨가 ‘유증’(유언에 의한 증여)에서 간과한 건 형제들의 유류분이다. 현행 민법상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손자녀)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요구할 수 있다. 사례 속 김씨의 오빠 2명과 여동생은 각각 법정상속분(20억원) 중 6억6600만원 상당의 유류분을 달라고 주장했다.
유산을 물려줄 마땅한 상속인이 없는 1인 가구(싱글족)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을 때 기부 의지를 지킬 방법은 없을까. 법무법인 가온의 배정식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요즘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40~50대의 유산 상속 관련 상담이 많아진 건 사실”이라며 “특히 왕래가 거의 없는 형제나 조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기부 등으로 의미 있게 쓰고 싶다는 사람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형제 간의 유류분 다툼을 막을 방법은 있다. 우선 기부 시기가 상속 개시 1년 전이었다면 유류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피상속인의 기부 의지가 확고하다면 기부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 배정식 본부장은 “민법상 유류분의 범위는 피상속인의 생전에 증여한 재산이나 상속이 이뤄지는 시점에 고인이 갖고 있던 재산 또는 사망하기 1년 이내에 제삼자에게 증여한 재산이 해당한다”며 “제삼자 증여 재산엔 기부도 포함되므로 (상속 개시) 1년 전에 기부했다면 유류분 다툼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기부 계획을 세울 때 유류분 다툼에 대비해 ‘법정상속인’도 정확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권남규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변호사는 “민법상 피상속인의 재산은 배우자와 자녀가 없다면 법정상속 순위에 따라 형제자매 또는 대습상속인인 조카에게 자동으로 상속된다”며 “형제가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상속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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