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내가 가진 불안은 전적으로 법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법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진실을 담아낼 수 있는 법이었다면 내 안에 형성된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을테니 말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법은 실체 진실을 포기하길 택하고 말았다. 범죄집단이라는 허구의 혐의 하나 걸러내지 못할 만큼, 무능한 3심제도였다. 눈 먼 법은,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아무상관 없으며 무엇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휘둘릴 뿐이었고, 이는 비단 이 사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목을 끌었던 거의 모든 사건을 관통해온 우리 법의 고질적인 악습이 발현된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피해자를 막론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제껏 쓰레기같은 판결 앞에 이를 부득부득 갈며 평생을 원통해했는가.
얼마나 많은 오판이, 무려 기소-1심-2심-3심의 허울 좋은 제도 하에서 빚어졌던가. 직간접적으로 '우리 법'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견이 있건 없건 교육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제 정신이라면 정말로 누구하나 법을 신뢰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대세와 인기에 휘둘리는 법은, 형평성과 기준이 모조리 무너진 이따위 법은, 도무지 사건을 해결지을 수 없으며 교정된 인간을 배출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시월 십사일, 선고날인 오늘은 나의 생일날이다. 내 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판결은, 이 비참한 선물은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죄를 지었다. 분명히 나는 죄를 지었다. 다만 우리 법이 부과한 혐의로서는 아니다. 그 누구와도 범죄조직을 일구지 않았다. 누구도 강간한 바 없다. 이것이 가감없는 진실이다.
— 2021. 10. 14 조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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