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한 기업에 다니다가 작년 초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실업급여(구직급여) 수급자가 됐는데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실업급여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실업급여를 계속 받기 위해서는 지역 고용센터에서 지정한 날에 구직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실업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체류 중이면 구직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실업 인정 신청을 할 수 없다. A씨는 고민 끝에 국내에 있던 가족에게 부탁해 대리 신청한 뒤 실업 인정을 받았다. 이를 통해 A씨가 부당하게 챙긴 실업급여는 9개월간 1700만원에 달했다.
B씨는 실업급여 수급 기간 중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고용센터에 이를 알려야 했지만, 숨긴 채 실업 인정을 받아 1300만원을 부정 수급했다. A씨와 B씨는 올초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특별점검에서 적발됐다.
10일 고용부의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급여 신청자는 8만7000명으로 작년 동월 대비 2000명(2.9%) 증가했다. 구직급여 지급액은 1조2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8억원(7.2%) 늘었다. 증가율은 대상자 확대 등 제도 변경 이후 시계열 통계 비교를 시작한 2021년 7월 이후 최고치다. 같은 기간 수급자는 2만7000명(4.4%) 늘어 지난달 64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 직전 40만 명대이던 지급 인원은 2020년 중반께 70만 명대로 치솟았다. 이후 감소했지만 올 들어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전 월 7000억원대였던 지급액도 올 들어 1조원대로 늘었다.
실업급여는 실업에 따른 생계 불안을 줄이고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나랏돈이 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업 위로금이나 고용보험료 납부 대가로 받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진 영향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일해서 받는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은 사례도 많아 ‘나이롱 구직자’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표적 사회 안전망인 실업급여의 부정 수급을 막고 구직자의 재취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직원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다면서 권고사직으로 처리해달라네요. 실업급여를 타내려고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최근 들어 퇴사 직원들과 사직서 처리 방식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그는 “자발적으로 이직하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직원의 권고사직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며 “일하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구직자를 위한 정부 지원금이 나가는 현실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고용시장에선 실업급여 문제로 중소·중견기업 사장과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자발적인 이직에 권고사직 처리를 요구하는 사례가 주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근로 계약 기간을 1년이 아니라 7~8개월로 하겠다는 구직자도 적지 않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최소 근무일수(180일)만 채우겠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 기간 중 재취업 비율은 매년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구직자가 재취업 대신 실업급여에 쏠리는 이유는 일하지 않고도 받는 돈의 액수가 크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웬만한 중소기업 월급과 비교해도 만만찮은 수준인 데다 최소한 최저임금의 80%를 받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실업급여는 나이와 일한 기간에 따라 4~9개월 동안 실업 직전 평균임금의 60% 수준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수급 기간은 3~8개월에서 4~9개월로, 기준액은 하루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확대했다.
고용보험기금도 고갈 직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실업급여 하한액은 근로자 평균 임금 대비 44%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프랑스(26%), 일본(22%), 미국(12%)을 훨씬 웃돈다. OECD는 지난해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한국은 실업급여 수급액이 순최저임금보다 많은 유일한 회원국”이라며 “근로자가 일해야 할 동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일해서 버는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높아지자 이를 노린 부정수급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부정수급액은 268억7000만원으로, 2018년(196억2000만원)보다 37% 증가했다. 해외 체류 중이거나 군 복무 중에도 실업급여를 타 간 사례가 고용부 특별점검 때마다 수백 명씩 적발되고 있다.
실업급여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받는 수급자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반복 수급자는 10만2000명이다. 2018년 8만2000명에 이어 2019년 8만6000명, 2020년 9만3000명, 2021년 10만 명 등 최근 5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한 근로자는 2000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같은 직장을 계속 그만뒀다 재취업하는 방식으로 24번에 걸쳐 실업급여 9126만원을 받았다.
매달 실업급여가 1조원 넘게 나가면서 재원인 고용보험기금도 고갈 위기에 직면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함께 내는 고용보험료로 충당되는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10조2544억원에서 지난해 6조4130억원으로 감소했다. 그나마 이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려온 10조3000억원가량을 적립금에 포함한 것이다. 공자기금 차입금(2030년 만기)을 빼면 고용보험기금 수지는 이미 적자 상태다.
강경민/곽용희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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