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15,890 73
2023.06.25 21:03
15,890 73

스타벅스 가서, "제일 안 팔리는 걸로 주세요"[남기자의 체헐리즘]

입력2023.06.24. 오전 8:00

 

 수정2023.06.24. 오전 8:01

 

유명하고 인기 많은 것과, 남의 선택지와, 알고리즘의 추천 벗어나 보기…서점 베스트셀러 피하고, 지도앱 끄고 내 멋대로 경로 만들고, 아무 밥집이나 들어가고…묘한 해방감, 처음 가본 길이 만들어준 새로운 '경험 지도'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서 가장 인기가 없다던, 시나몬향이 나던 커피. 통상 주문하던 건 사람들이 주로 많이 먹는 것. 그와 반대로 주문해봤다.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수정과 맛이 났다./사진=냄새부터 맡아보았던 의심 많은 남형도 기자

회사 근처 단골 스타벅스 매장에 갔다. 메뉴판을 잠시 바라보았다. 익숙한 커피들이 보였다. 평소 늘 마시던 것들.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단정한 차림을 한 직원 앞에 섰다. 그가 내게 물었다.

"주문하시겠어요?"(직원)
"네, 혹시…여기서 제일 인기 없는 메뉴가 뭘까요?"(나)

직원은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했다. 이내 능숙한 추천이 이어졌다.

"음, 저희 매장에서는 이 음료가 가장 안 팔리고 있어요."(직원)
"아, 그걸로 주문할게요!"(나)

메뉴 이름은 비밀(음료 개발한 분이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설명하자면, 에스프레소와 흑당 시럽과 시나몬의 다소 낯선 조합이었다. "시나몬 괜찮으시겠어요?" 주문할 때 들린 직원 말이 조금은 불안했지만. 별수 없다. 이미 결제는 끝났다.

그 스타벅스 커피가 어땠냐면, 솔직히 첫 모금은 살짝 의아한 맛이었다. 똘이에게 낯선 단어를 들려주면 갸우뚱하듯, 내 고개도 기울어졌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사진=똘이가 가장 좋아하는 형아, 남형도 기자기다린 음료가 나왔다. 흑설탕과 우유와 커피가 적절히 섞인 오묘한 색깔. 한 입 먹어봤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기울어졌다. 반려견 똘이에게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모르는 단어를 말하면, 갸우뚱하는데 그와 비슷했다. 먹는 방법이 잘못됐나 싶어 컵을 들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섞었다. 덜그럭덜그럭, 사각 얼음이 유리컵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어우러지고 나니 맛이 썩 괜찮아졌다. 뭐랄까, 수정과에 커피 섞은 낯선 맛인데 중독성 있었다. 음료는 금세 사라지고 바닥엔 얼음만 남았다.

 

 

 

 

 

 

 

 

 

...........

 

 

 

 

 

 

 

 

 


한국인들만 다 모여 있던, 파리 어느 맛집에서

모처럼 여행이니 실패하기 싫은 마음을 잘 안다. 존중한다. 그래도 지도를 넓혀봤으면 싶다. 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드므로./사진=남형도 기자파리에 처음 갔을 때였다. 그곳을 잘 모르니까 검색했다. 비싼 돈 들인 여행 아닌가. 두려웠다.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가 혹시나, 맛 없을까봐. 검색했다. 맛집이라며 가게들이 나왔다. 그곳에 갔다. 잠시 뒤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한국인이었다. 커플도 왔다. 한국인이었다. 테이블 몇 개가 한국인들로 꽉 찼다. 장소가 몽마르뜨 근처였나, 하여튼 기억도 안 난다. 맛도 가물가물하다.

거기는 대체 누구의 '선택지'였을까.

앞에서 했던 작은 모험. 실은 그리 대단한 교훈이 담긴 메시지는 없다. 엄청 즐겁기만 하거나 오롯이 재밌는 것도 아녔다. 외려 약간의 불안이 늘 동반됐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았다.

그건 오롯이 '내 선택'이었으므로.

처음 알게 됐다. 선택지가 남들이 다 쫓는 것에만 있지 않단 것을. 나만의 방법도 괜찮단 걸. 차로 100번 넘게 건너다녔던 양화대교에서, 콘크리트 사이로 가만히 삐죽 솟은 들풀을 처음 발견하며 '그래도 좋은 거였네'하며 실실 웃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다 꺼봤다. 깨끗한 하얀 화면. 어쩐지 맘이 평온해졌다./사진=남형도를 먼저 검색해본 남형도 기자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번엔 유튜브 채널의 '알고리즘'을 다 꺼버렸다. 검색창 하나만 덜렁 띄워진 화면. 난 뭘 찾아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해졌다.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알아서 주어졌던, 왜 보는지 모를 영상들에.

평소 찾고 싶었던 게 뭘지 생각한다. 고민한다. 답이 금방 나오질 않는다. '강아지'를 입력했다. 조회수가 높은 것 위주로 나온다. 올라온 날짜 순으로 나열했다. 30명이 본 것도 나오고, 55명이 본 것도 떴다. 빠짐없이 나왔으면 싶다.

조회수가 얼마 안 돼, 알고리즘엔 절대 걸릴리 없었던 '강아지 그리기' 영상. 너무 귀여워서 추천 눌렀다. 알고리즘을 벗어나면 취향에 맞는 무언가 더 많이 보일 거라고./사진=이에 따라 똘이를 그릴 예정인 남형도 기자그리고 내가, 선택해서 골라 보고 싶다고.

"내게 필요한 것은 남의 은하수가 아니었다.
나만의 견고한 별 하나였다."

- 김민철 작가, 모든 요일의 여행 中

양화대교 콘크리트 틈으로 쏙 자라 있던 들풀. 평온했던 여름 풍경. 누군가의 시선이 다 닿는 것만이 좋은 건 아닐 거라고./사진=남형도 기자에필로그(epilogue).

실은 괜찮을까 싶어 여전히 좀 두렵다. 그래서 어느 여행의 기억을 하나 더 꺼내본다.

어느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맛있다며 찾아간 유명 카페는 휴일이라 닫혀 있었다. 검색하려는데 인터넷이 잘 안 터졌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아내와 난 순간 정지됐다. 우린 이미 길을 찾느라, 또 무더위에 지쳐 있었다.

별 수 없이 그 옆의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안경을 쓴 바리스타가 주문을 받았다. 라떼를 주문해서 마셨다.

검색해도 결과값이 하나도 나오지 않던, 기대 하나 안 했던 그 가게.

그런데 거기가 스페인에서 먹은 커피 중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

원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903407?sid=102

 

너무너무 좋은 기사.... 전문 다 보길 추천..

목록 스크랩 (0)
댓글 7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 아시아 최고 판타스틱 장르 영화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예매권 이벤트 87 00:10 4,114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4,395,986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5,172,336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1,643,042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2,856,964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7 21.08.23 3,884,099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23 20.09.29 2,776,91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81 20.05.17 3,456,25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64 20.04.30 4,038,93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스퀘어 저격판 사용 무통보 차단 주의) 1236 18.08.31 8,460,418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38579 이슈 어제 생일이었던 배우 06:44 85
2438578 이슈 일본 불효자 레전드 등장.jpg 8 06:36 1,069
2438577 이슈 대구에서 110억 들여 만들겠다는 것.jpg 18 06:01 2,752
2438576 이슈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 가해자의 일관적인 여성혐오 표현이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였음의 근거로 인정됨 32 05:59 1,750
2438575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도 운영하는 고등어 식당 입니다~ 2 05:45 360
2438574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만 운영하는 치즈냥 식당입니다~ 2 05:19 533
2438573 이슈 28년 전 오늘 발매♬ UA '情熱' 05:10 462
2438572 기사/뉴스 영화배우 도널드 서덜랜드 별세 17 05:07 3,759
2438571 유머 구독자 50명 미만 브이로거들 댓글 존나 웃김.jpg 8 05:06 4,807
2438570 이슈 [MLB]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 시즌 21호 홈런 5 04:53 814
2438569 유머 새벽에 보면 엄청 시원해지는 괴담 및 소름돋는 썰 모음 51편 2 04:44 744
2438568 유머 팬들이 백호(강동호)의 다리 찢기를 처음 본 이유 2 04:41 1,300
2438567 이슈 네이버페이 휴롬 인스타팔로우 120원 20 04:35 1,530
2438566 이슈 케이윌 신곡 월드게이2 뮤비 조회수 100만 돌파 34 04:16 2,788
2438565 유머 김치공격보다는 이런 게 진정한 한국인에 대한 모욕이 아닌지 25 03:57 4,526
2438564 이슈 한국인에게 음식 조금씩 가져오는 파티란 불가능하다 25 03:47 4,488
2438563 이슈 나연의 제의로 성사된 트와 나연 X 키오프 쥴리 콜라보🔥 4 03:42 2,099
2438562 유머 새로생긴 동생이 이뻐 죽겠는 형아 3 03:34 3,478
2438561 이슈 세일러문 마스 실제 모델.jpgif 32 03:31 5,858
2438560 유머 형수의 왼쪽가슴 7 03:30 3,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