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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스압) 이상한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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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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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미지 한 장을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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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진이 아니다.

AI가 생성한 그림이다.

당신은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인상을 가질까?

사실 며칠 전 이 그림이 SNS에서 작게 화제가 되었다. 이것을 보고서 "무섭다"고 느끼는 사람이 속출한 것이다.

언뜻 보기엔 달리 특별할 것이 없는 이 사진에서, 대체 왜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간 끝에는 무시무시한 사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운 사진

4월 모 일, 지인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 지인은 쿠레타 카이도라는 펜네임으로 실화 계열 호러 만화를 그리는 웹툰 작가다.

나도 웹 작가로서 호러 기사를 전문으로 하기에 정보 공유를 위해 매달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월례 행사가 되어 있다.

얼추 이야기가 끝난 뒤 그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스마트폰을 꺼내어 나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비친 것은 공터의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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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레타 : 우케츠 씨, 이걸 보고 느껴지는 게 없나요?

———그는 신묘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흔히 말하는 "알고 보면 심오한 사진"인가 했는데, 유령이나 요괴가 찍힌 모습은 없다.

우케츠 : 아뇨, 딱히 아무 것도 안 느껴지네요.

쿠레타 : ……그렇군요. 사실 말이죠, 이거 사진이 아니라 AI가 만든 이미지예요.

우케츠 : 아, 요즘에 화제죠.

쿠레타 : 저도 이 사진에서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이걸 보고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모양이에요….

우케츠 : 무슨 뜻이죠?

———그는 경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생성 AI

쿠레타 씨는 요즘 AI를 가지고 노는 것에 빠져 있다고 한다.

요 몇 년 사이 인공지능의 발달은 경이로울 정도이며, 아무래도 도라에몽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꽤나 근접한 수준으로 기계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AI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개중에도 화제인 것이 챗 AI이미지 생성 A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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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AI는 화면에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것으로,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듯 자연스럽고 스무스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인 "ChatGPT"는 연일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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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지 생성 AI는 원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AI가 그 그림을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것이다.

요즘에는 사진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리얼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같은 단어를 입력해도 매번 다른 이미지를 생성하므로 "세상에 단 한 장뿐인 그림"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대표적인 AI로는 "DALL-E 2""Midjourney" 등이 있다.

이들은 인터넷 환경만 구축되어 있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기에, 현재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AI에 빠져 있다.

그런데 아까 그 공터 이미지는, 쿠레타 씨가 어떤 이미지 생성 AI를 사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스마트폰에 그것을 띄웠다.

AI "kakashi"라는 이름의 지극히 소박한 사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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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AI "kakashi"…… 처음 보네요.

쿠레타 : 상당히 마이너한 사이트니까요. 요즘 이렇게 개인이 만든 소규모 AI가 늘고 있어요.

"DALL-E 2"나 "Midjourney" 같은 대기업에 비하면 사용감은 안 좋지만, 그만큼 개성이 있어서 재미있답니다.

우케츠 : 개인 상점 같은 AI라는 말이네요.

쿠레타 : 네, 개중에서 이 "kakashi"는 마음에 드는데, 퀄리티가 꽤 높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시험삼아 해볼까요?

———쿠레타 씨는 "집"을 입력하고 생성 버튼을 누른다.

수십 초 뒤, 이미지 한 장이 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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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일본 민가 같네요.

쿠레타 : "kakashi"는 어떤 단어를 넣어도 일본적인 이미지가 떠요.

우케츠 : 국내에 특화된 AI라 이거구나.

쿠레타 : 그렇죠. 그래서 한동안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무서운 게 좀 보고 싶어서 "무서운 사진"이라고 입력해봤는데요.

그랬더니 그게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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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무서운 사진"……, 분명 풀이 무성하게 자라 조금 꺼림직하게 보일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저게 무섭냐고 하면……

쿠레타 : 그렇겐 안 보이죠.

뭐, AI가 지시와 다른 응답을 보이는 경우도 자주 있으니 가끔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도 비슷한 이미지가 뜨는 거예요.

———쿠레타 씨는 "무서운 사진"이라고 입력하고 생성 버튼을 누른다. 수십 초 뒤, 거의 비슷한 공터 사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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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레타 : 어쩌면 제게만 안 보일 뿐, 무언가가 찍힌 게 아닐지 불안해져서……. 트위터에서 팔로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어요.

———쿠레타 씨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꿔 트위터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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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그래서 반응은 어땠나요?

쿠레타 : 보세요.

———건네어진 스마트폰을 받아서 답글 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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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네요.

쿠레타 : 답글을 단 사람은 전부 17명인데, 그중 8명이 "무섭다"고 대답했어요.

우케츠 : 거의 반이네요…….

쿠레타 : 무덤이나 어두운 터널 사진이면 모를까, 이런 평범한 사진을 보고 사람들의 반이 공포를 느낀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우케츠 : 음……

쿠레타 : 하지만 누구도 구체적인 내용을 쓰지 않으니,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네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안다면, 만화 소재로 써먹을 수도 있을 텐데…….

———그로부터 화제가 옮겨가서, AI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 났다.

실험

쿠레타 씨와 헤어진 뒤에도 그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귀가한 뒤에 집에 있는 컴퓨터로 "kakashi"를 켜봤다.

"무서운 사진"이라고 입력하고 생성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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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까와 비슷하게 황폐해진 공터 이미지가 떴다.

다른 단어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신경쓰였던 나는 다양한 단어를 입력하고 어떤 이미지가 나오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아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과 ① 부정적인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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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사진"만이 아니라 "두려운 사진" "슬픈 사진" 등 부정적인 단어를 입력하자, 어떻게 하든 비슷한 공터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참고로 "무섭다" "두렵다" "슬프다"로 실행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결과 ② 긍정적인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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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즐겁다" "기쁘다" "재미있다"처럼 긍정적인 단어를 입력하자 "유원지" "선물상자" "책더미"처럼, 어느 정도 단어에 부합하는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결과 ③ 일반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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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 "자동차" "전화" 같은 일반명사로 시험했을 때에도 단어에 근접한 이미지가 생성되었지만,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입력했을 때만은 어째선지 의미가 없는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정리하자면,

"kakashi"는 어떤 말을 입력해도 대체로 말 그대로 이미지를 생성하지만, "무섭다" "두렵다" "슬프다"처럼 부정적인 단어를 입력했을 때만 어째선지 공터의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게 된다.

이 AI의 기묘함이 부각되었을 뿐, 수수께끼를 해결할 만한 발견은 없었다.

다만 실험 도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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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하단에 스위치 같은 것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미지 생성""채팅"을 변경할 수 있는 모양이다.

"kakashi"는 이미지 생성 AI만이 아닌 챗 AI(대화할 수 있는 AI)도 탑재한 것일까?

시험삼아 스위치를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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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화면이 변했다.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입력하고 송신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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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AI에게선 대답이 없다.

다음으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당신에게 '무서운 사진'은 무엇입니까?" 처럼 질문을 여러 개 던져봤지만, 역시 어떤 반응도 없었다.

고장났거나, 아니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점은 있었지만, 업무 마감 기일이 다가오기도 했기에 그날은 그 정도에서 "kakashi"를 껐다.

지인

며칠 뒤, 한 지인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쿠리하라 씨이다.

쿠리하라 씨는 이전에 일하다가 만나서, 그때 이후로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할 때 내게 여러 번 협력해주고 있다.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하며 예리한 분석을 하기 때문에, "kakashi"에 대해서도 뭔가 조언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고서 일련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무엇이든 흥미를 가지는 성격이므로 이 주제에도 덥썩 달려들 것이라 믿었는데, 시종일관 지루하다는 듯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쿠리하라 : 또 AI 얘기예요?

우케츠 : "또"라고요?

쿠리하라 : 솔직히 질린다고요. 귀찮다고요. 유행에 편승해서 "AI" "AI" 거리는 놈들 말이에요.

우케츠 : ……미안합니다…….

쿠리하라 : 아뇨, 딱히 우케츠 씨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리 고도의 기술이 태어나도, 그걸 쓰는 인간이 진화하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케츠 : 뭐…… 말씀대로죠.

쿠리하라 : 그, 카카시였나? 아무튼 그 AI 이야기도 결국 "사람이 멍청했다"는 한마디로 끝나겠네요.

우케츠 : ……무슨 뜻인가요?

쿠리하라 : 말 그대로예요. 이번 건은 요약하자면……

· AI가 "무서운 사진"이라는 단어를 통해 무관한 공터 이미지를 생성했다.

· 그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렸더니, 일정 수의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라는 거네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어째서 공터 이미지를 "무섭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속출했을까요? 지금 이야기를 듣는 한, 그 원인은 혼령도 요괴도 아닌 인간의 심리입니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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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씨는 스마트폰 화면을 이쪽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그 트윗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을 검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리하라 : 반응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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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꽤나 논쟁이 치열해졌네요.

우케츠 : 17명이 답글을 달았다고 하네요.

쿠리하라 : 그 중 약 절반이 "무섭다"고 했다…고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그러면 그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 한 번 트위터의 시스템을 확인하고 갑시다.

우케츠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트위터 답글은 시간 순서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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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좋아요" 수나 조회수 등에 따라서 자동으로 정렬되죠.

우케츠 : 저도 최근에 그걸 알았어요. 가장 처음 답글이 제일 위에 오는 게 아니군요.

쿠리하라 : 네, 선착순만으로는 깊은 토론을 할 수 없다는 트위터 측의 배려입니다. 뭐, 그것 자체는 상관없는데, 이번에 한해서 말하자면 이 시스템이 방해가 되는군요.

시간 순서가 아닌 것이 진상을 흐리고 있어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지금부터 외부 앱을 사용해서 답글을 달린 순서대로 정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몇 분 뒤, 작업을 마친 쿠리하라 씨는 다시금 나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쿠리하라 : 지금 답글은 시간 순서에 따라 표시됩니다. 이걸 잘 보면 어떤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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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음……… 아, 초반에는 "무섭다"는 답글이 전혀 없어요.

쿠리하라 :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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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트윗이 처음 올라왔을 당시엔 공포를 느끼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무섭다"고 하는 사람이 대량으로 출현해서 여론이 휙 바뀌죠.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아시겠나요?

우케츠 :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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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마나하나……라는 사람이 답글을 보낸 뒤부터?

쿠리하라 : 정답. 그 사람의 답글이 기폭제가 되어 "무섭다"는 의견이 급증한 거예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마나하나 씨의 계정을 보면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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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와, 대박.

쿠리하라 : 저는 몰랐지만 SNS에선 꽤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모양이네요. 일러스트라는 연결고리로 웹툰 작가인 쿠레타 카이도 씨와도 이어져 있네요.

우케츠 : 팔로워 48만 명…… 인기가 대단하네요.

쿠리하라 : 인기인의 발언은 그게 답글일지언정 주목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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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업로드 시간을 확인해보니, 초반에는 5분에 1번 꼴로 답글이 달렸어요.

그런데 마나하나 씨가 반응을 한 뒤부터 1분에 1번 꼴로 가속되었단 말이죠.

요점은 인기인이 언급을 함으로써 그 팬이 덩달아 답글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아까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의 계정을 봤는데, 그 대다수가 마나하나 씨의 팔로워였습니다.

즉 그들은 이미지를 보고 "무섭다"고 느낀 게 아니라, 마나하나 씨의 의견에 동조한…… 휩쓸렸을 뿐입니다.

우케츠 : 휩쓸렸다고요…?

쿠리하라 : 영향력이란 무시무시한 거예요.

설령 나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만담이나 콩트도, 연륜과 카리스마가 있는 연예인이 "재밌다"고 평가하면 왠지 재밌는 기분이 들곤 하죠…… 인간이란 그런 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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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이 이미지, 분명 무섭진 않죠. 하지만 손질되지 않는 나무나 무성하게 자란 풀처럼 정말 몇 퍼센트지만 불쾌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에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무섭다"고 발언함으로서, 그 불쾌함 몇 퍼센트가 머릿속에서 증폭되어서 무서운 이미지로 보이게 됩니다.

선입견에 의한 착각이죠.

우케츠 : 음……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고작 선입견 하나 때문에 "무섭다"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늘어날까요……?

쿠리하라 : 물론 원인은 그것만이 아니겠죠. 이번에는 팬 심리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나하나 씨처럼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창작자에게는 열광적인 팬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젊은 팬일수록 "존경하는 사람과 같은 감성을 갖고 싶다"고 바라는 나머지, 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죠.

우케츠 : 그럼 "나는 마나하나 씨와 같은 감성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은 젊은이들이, 무섭다 느끼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답글을 달았다는 말인가요?

쿠리하라 : "동조하면 마나하라 씨가 마음에 들어할지도 모른다"는 속셈도 있겠죠. 그런 다양한 심리가 겹쳐서 이런 이상한 답글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케츠 : 그런 건가요……. 하지만, 애초에 마나하나 씨 자신은 어째서 이 이미지를 보고 "무섭다"고 느낀 걸까요?

쿠리하라 : 창작자니까 감성이 독특하다든가…… 아니면 "감성이 독특하다"고 믿게끔 자기 어필을 했든가.

어느 쪽이든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정말로 그런 걸까? 감성이 독특해서 이 이미지를 보고 "무섭다"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느낄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재능 있는 자만이 느끼는 위화감…… 영력, 육감……. 그런 게 과연 있는 걸까?

쿠리하라 : 그렇다곤 해도 요즘 AI는 대단하네요. 마이너한 사이트에서도 이런 고품질 이미지를 뽑아내다니.

우케츠 : 그러니까요. 따라갈 수가 없어요.

쿠리하라 : 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요즘엔 이런 일본산 AI도 늘고 있군요.

우케츠 : 네. 국산으로는 "AI 피카소"나 "mimic" 같은 게 작년에 화제가 됐었죠.

쿠리하라 : 음…… 그렇게 들으니 "kakashi"는 꽤나 밋밋한 네이밍이네요.

우케츠 : "kakashi"…… "허수아비(카카시)"…… 뭐, 그렇긴 하네요.

쿠리하라 : 왜 그런 이름을 지은 걸까요?

우케츠 : 잘 모르겠지만 "samurai"나 "kimono" 같은 느낌 아닐까요?

일본어를 굳이 알파벳으로 표기한 상품명이나 작품명은 종종 있잖아요.

쿠리하라 : 그래서 카카시인가요………… 잠시 시험해볼까요?

우케츠 : 시험이라니, 뭘요?

쿠리하라 : "kakashi"라는 단어로 이미지를 만들어 보려고요.

우케츠 : …………왜요?

쿠리하라 : 뭔가 발견할지도 모르잖아요.

———쿠리하라 씨는 "kakashi"에 "kakashi"라고 입력하고 생성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논밭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인형 사진이 나올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들어진 이미지를 보고서 나는 아연실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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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어…! ? 여자아이…?

쿠리하라 : 이상하네요………… 다시 한 번 해볼까요?

———쿠리하라 씨는 다시 한 번 "kakashi"라고 입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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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것은 역시 여자아이의 이미지였다. 어쩐지 아까의 아이와 닮은 느낌도 든다.

우케츠 : 뭘까요……? 정교하게 만든 허수아비(카카시)……는 아닐 테고요.

쿠리하라 : 이렇게 사랑스러운 허수아비를 두면 까마귀도 안 쫄겠죠.

그건 그렇고 이 부분이 신경쓰이네요.

우케츠 : 이 부분이요?

———쿠리하라 씨가 가리킨 곳을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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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아…… 두 사진 모두 하얀 노이즈가 끼여 있어요.

쿠리하라 : 어째서일까요, 이거.

———하얀 노이즈를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을 얼마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사진 한 장에 이르렀다.

우케츠 : 쿠리하라 씨. 사실 이전에 "kakashi"에게 다양한 단어를 입력하고 어떤 이미지가 나오는지 실험해봤단 말이죠.

그때 이것과 비슷한 하얀 노이즈가 낀 사진이 한 장 있었어요.

쿠리하라 : 그거 보여주실 수 있나요?

우케츠 : 잠시만요.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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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강아지 사진……? 어떤 단어로 만들었나요?

우케츠 : 평범하게 "개"로요.

———쿠리하라 씨는 "kakashi"에 "개"라고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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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이미지에는 역시나 하얀 노이즈가 끼여 있었다.

쿠리하라 : ……이상하네요…

우케츠 : 정말, 어째서 하얀 노이즈가……

쿠리하라 : 아뇨, 그렇긴 한데, 어째서 이번에도 시바견일까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불독이라든가 토이푸들이라든가.

"개"라고 입력했으니까 다른 견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어째서 다 비슷한 시바견의 이미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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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아, 듣고 보니…….

쿠리하라 : ……우케츠 씨. 아까 말씀하신 "실험"의 결과, 전부 보여주시겠어요?

우케츠 : 아, 네.

———나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실험 결과"를 쿠리하라 씨에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의 사진을 본 순간, 기분 탓인지 그의 표정이 굳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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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

우케츠 : 왜 그러세요?

쿠리하라 : 우케츠 씨. 저, 솔직히 이걸 보기 전까지 "kakashi"는 단지 정밀도가 낮은 AI라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몰라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지금 이 사진 몇 장을 보고, 무시무시한 가설이 떠올랐습니다.

우케츠 : 가설…… 어떤 가설인가요……?

쿠리하라 : 그것은…………

우케츠 : ……그것은……?

쿠리하라 : 솔직히 말하면……

우케츠 : 솔직히 말하면……?

쿠리하라 : 우케츠 씨의 머리로는 이해 못 할지도 몰라요.

우케츠 : 실례잖아

구조

우케츠 : 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요.

쿠리하라 : 그러면, AI가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지 아십니까?

우케츠 : ……………몰라요.

쿠리하라 : 이 가설을 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AI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케츠 : 아…… 그럼 이해 못 할지도…….

쿠리하라 :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크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것부터 설명할게요. 기술적인 부분은 다 생략하고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할 테니 열심히 따라오세요.

우케츠 : ……부탁합니다.

쿠리하라 : "AI를 만드는 방법은 육아와 비슷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므로 AI를 이해하려면 아기를 이해하는 게 빠르겠네요.

상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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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뇌는 텅 빈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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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그런 아기에게 부모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세상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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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설령 "이건 고양이야"라고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보여준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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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그러면 아기의 뇌에는 "고양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기억이 저장됩니다.

즉 "다양한 고양이를 보고 기억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본 것은 바로 기억합니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기억한 건 좋은데, 아기는 아직 "고양이"가 뭔지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고양이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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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하얀 고양이도 있고, 줄무늬 고양이도 있습니다. 털이 짧기도 하고, 덥수룩하기도 하고, 아무튼 다양하죠.

아기 입장에서 보면 "어? 전부 '고양이'라고 배웠는데, 전부 다른 동물처럼 생겼어" "고양이는 대체 뭐야~?" 라는 식으로 혼란스러울 겁니다.

그때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 아기의 뇌는 어떠한 처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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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우선 모든 "고양이"의 기억에서 공통된 특징을 찾아냅니다.

이를테면 "세모난 귀""치켜올라간 눈매" 같은 거요.

우케츠 : 개중에는 눈이 동그란 고양이도 있잖아요.

쿠리하라 : 이건 일단 예시니까요.

우케츠 : 아…… 죄송합니다.

쿠리하라 :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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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고양이란 "귀가 세모낳고 눈매가 치켜올라간 동물"이다.

이게 기본형이고, 다른 부분은… 이를테면 색, 털 모양, 체형, 꼬리 길이 등에는 각각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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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머릿속에 기본형을 만듦으로써 지금껏 다른 동물로 보이던 "고양이"들을 "아, 확실히 다 같은 동물이구나"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기억들이 하나로 정리됩니다.

이때 아기는 처음으로 고양이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케츠 : "이해한다" = "머릿속에 기본형을 만든다"는 거군요…….

쿠리하라 : 네. 이야기가 좀 딱딱해졌으니,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할까요?

우케츠 씨. 종이와 펜을 준비했으니 고양이를 세 종류 그려보세요. 다만 견본을 보지 않고서요.

우케츠 : 네?

———나는 시키는 대로 준비된 메모지에 고양이를 세 마리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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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헤에, 개성은 있는데 서투르네요.

우케츠 : 서투르지만 개성이 있다고 해주세요.

쿠리하라 : 뭐, 퀄리티는 넘어가고, 우케츠 씨는 아무것도 안 보고 고양이 세 종류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왜 그게 가능했냐…… 그건, 우케츠 씨가 이미 고양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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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기본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기본형"이라는 골격이 있기에 거기에 살이 붙을 수 있는 겁니다.

우케츠 : "이해하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 말이군요.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않았지만, 분명 말씀대로네요.

쿠리하라 : 자, 이제 AI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아까도 말했지만 AI를 만드는 방법은 아이를 키우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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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AI도 처음엔 텅 비어 있죠. 아무것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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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그때 부모 대신에 설계자가 세상을 가르칩니다.

다만 AI는 기계이므로 "세상을 가르친다"기보다는 "데이터를 투입한다"고 하는 게 옳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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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설계자는 "고양이"라는 제목을 붙인 다양한 고양이 사진 데이터를 투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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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아기와 같이 AI는 다양한 "고양이"를 점차 기억해 나갑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고양이"가 뭔지 모르죠. 이것도 아기와 똑같습니다.

각자 차이가 너무 심해서 같은 동물이라고는 인식할 수 없는 겁니다.

"기억"은 해도 "이해"는 못 한다…… 아기와는 달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게 옛 AI의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AI는 경이로운 진화를 이루어냈습니다.

우케츠 : 설마……

쿠리하라 : 네. 아기와 같이 "이해"하는 능력을 습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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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현재의 AI는 "고양이"의 데이터에서 공통된 특징을 찾아 "고양이의 기본형"을 내부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즉 "고양이"가 뭔지 이해한 겁니다.

우케츠 : 인간과 똑같잖아요.

쿠리하라 : 뭐, 물론 인간과 AI는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지만, 넓은 의미로는 AI도 인간과 같이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했다는 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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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AI도 자신이 가진 기본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펜을 쥐지도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라고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2시간은 걸리니까 이번에는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우케츠 씨가 아셔야 하는 건 AI도 인간도 같은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린다는 겁니다.

우케츠 :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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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 많은 것을 기억한다.

· 기억에서 공통된 특징을 찾아낸다.

· 머릿속에 기본형을 만든다.

· 기본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 순서네요.

쿠리하라 :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전제를 바탕으로 퀴즈를 하나 내보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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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AI에 투입한 고양이 사진이 전부 검은 고양이였다고 합시다. 그 AI가 생성할 고양이 이미지는 무슨 색일까요?

우케츠 : 그건…… 전부 검은색 아닐까요? 그 AI는 "고양이 = 세모난 귀, 치켜올라간 눈, 그리고 검은색 동물"이라고 이해할 테니까요.

쿠리하라 :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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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투입에 편향이 생기면 잘못된 기본형을 만들고 맙니다. 때문에 그리는 그림에도 편향이 발생하죠.

이를테면 다양한 견종 중에서 시바견 사진만을 투입한 AI는 "개 = 시바견"이라고 이해할 겁니다.

그 AI에 "개"라고 입력하면 시바견의 이미지밖에 만들지 않겠죠.

우케츠 : 네? ……그 말은……

쿠리하라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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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어쩌면 "kakashi"에 투입된 "개"의 데이터는 전부 시바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비슷한 종류의 시바견이요.

우케츠 : 그래서 두 번씩이나 시바견 이미지가……

쿠리하라 : 그러면 여기서 또 다시 퀴즈입니다.

어떤 AI가 생성한 개 이미지에 전부 하얀 노이즈가 끼여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우케츠 : …………투입된 개 사진에 전부 하얀 노이즈가 끼여 있어서……

쿠리하라 :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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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아마도 "kakashi"의 설계자는 "개"라는 단어와 함께 "하얀 노이즈가 낀 시바견의 사진"을 대량으로 투입한 겁니다.

그 때문에 "kakashi"는 "개 = 하얀 노이즈가 포함된 시바견"이라고 잘못 이해해버렸습니다.

우케츠 : 그런 거구나…… 하지만, 설계자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아니, 애초에 투입한 사진에 낀 하얀 노이즈는 뭘까요? ……영혼?

쿠리하라 : 시바견의 조상님이라면 재밌긴 하겠지만, 더 현실적인 답이 있습니다.

우케츠 씨, 이런 경험 없습니까?

반들반들한 광택이 있는 물건을 카메라로 찍었을 때, 반사된 빛이 비쳐서 제대로 안 찍히는 일이요.

우케츠 : 네, 있어요. 하얀 빛이 비쳐서………… 아,

쿠리하라 :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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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설계자는 시바견이 아니라, 시바견 사진을 카메라로 찍은 겁니다.

그때 광택지에 빛이 반사되어 모든 사진에 하얀 노이즈가 낀 겁니다.

우케츠 : 하지만, 어째서 시바견의 사진만 투입한 걸까요……?

쿠리하라 : ……신기하네요. 이상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바로 그 이상함에 "kakashi"의 본질이 있는 겁니다.

우케츠 : ……무슨 말이죠?

———쿠리하라 씨는 잠시의 침묵 끝에 나의 눈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쿠리하라 : ……쿠리하라 씨. 지금부터는 저의 근거 없고 하찮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들으세요.

우케츠 : 네? ……네.

쿠리하라 :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데, 우케츠 씨는 "DALL-E 2"나 "Midjourney"를 아십니까?

우케츠 : 네. 유명한 이미지 생성 AI죠.

쿠리하라 : "kakashi"가 영세 사업자라면, 이 두 개는 세계 최대 기업이라는 느낌이죠.

최대 기업이라고는 해도 "DALL-E 2"도 "Midjourney"도 기본적으로는 제가 아까 설명한 것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케츠 : 즉… 많은 사진 데이터를 투입하고, 기본형을 만든 뒤, 그걸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네요.

쿠리하라 : 네. 다만 이 두 개는 투입량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그들은 "딥 러닝"이라는 기술을 사용해서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온갖 사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계 탑 클래스의 유식한 그림쟁이"입니다. 어떤 매니악한 그림도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게 등장해버렸으니, 인간 화가는 도무지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은 AI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죠.

우케츠: 요즘 종종 듣죠.

쿠리하라 : 다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대규모 이미지 생성 AI는 세상의 온갖 정보를 두루두루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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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일본인의 지식은 일본에 편중되어 있고, 스위스인은 스위스 이외의 문화는 잘 모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바다에서 자란 사람, 산에서 자란 사람, 시대, 성격, 인간관계 등에 따라 사람의 지식은 어떻게든 편향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편향이야말로 "개성"입니다.

AI는 뭐든지 알기 때문에, 그런 식의 개성이 없습니다. 개성이 없다는 것은 화가, 나아가서는 표현자로서는 크나큰 결점입니다.

뭐든지 그려버리는 AI의 가장 큰 약점은 "뭐든지 그린다"는 점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케츠 : 그, 그렇군요…….

쿠리하라 : 다만, 저는 AI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개성을 가진 AI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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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예를 들어 새로운 AI에 일본 문화의 사진만을 투입하면 일본인의 뇌에 가까운 AI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케츠 : 뭐,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죠.

쿠리하라 : 더 나아가서, 이를테면 우케츠 씨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 자란 동네, 사귄 친구, 키우던 동물의 사진만 AI에 투입하면, 우케츠 씨의 뇌에 가까운 AI가 되겠죠…….

우케츠 : 우와…… 좀 꺼림직하네요.

쿠리하라 : 그래요? 나의 분신이 생긴 것 같고 재미있지 않나요?

"집"이라고 입력하면 우케츠 씨의 집 사진이 뜨는 거죠. "반려동물"이라고 입력하면 우케츠 씨가 기르던 반려동물 사진이 뜨고요. 친근감이 샘솟지 않나요?

우케츠 : 반려동물……………

———그때, 쿠리하라 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서 나도 모르게 몸이 파르르 떨렸다.

우케츠 : ……혹시 "kakashi"의 설계자는 그걸 하려고 했다…… 이건가요?

쿠리하라 : 네. 제 가설은 이렇습니다.

"kakashi"는 어떤 특정 인물의 뇌를 재현한 AI가 아닐까?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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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이 세 사진엔 전부 집이 그려져 있는데,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우케츠 : 듣고 보니, 벽의 색깔이라든가 모양이…… 쏙 닮았네요.

쿠리하라 : 어쩌면 한 집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대량으로 투입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개도 그렇습니다. 이 AI에 대량 투입된 시바견은 모두 같은 개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추리했습니다.

한때 누군가가 이 집에서 시바견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인물의 인생을 자신도 체험하기 위해서 태어나서 보아온 것들, 근처에 있었던 풍경을 투입한 AI, 그게 "kakashi"가 아닐까요?

우케츠 : 말하자면 뇌의 클론이네요…… 하지만, 그 인물은 누구일까요……?

쿠리하라 : 아마 저희는 이미 그 사람의 모습을 봤을 겁니다.

우케츠 : 네? ……아,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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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그 여자아이…….

쿠리하라 : 네. 혹여 특정 인물의 뇌를 AI로 재현하려고 했다면, 그 인물과 같은 이름 내지는 그 사람을 의미하는 말을 이름으로 지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케츠 :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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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kakashi" = 그 사람을 의미하는 말……

쿠리하라 : 그렇다면 "kakashi"라고 입력했을 때 나오는 여자아이…… 즉 "kakashi"라는 단어와 함께 대량 투입된 여자아이야말로 그 인물이라는 게 됩니다.

우케츠 : kakashi 양…… 본명은 아니겠죠…… 아마 별명이겠지…….

쿠리하라 : 그건 모르겠지만, kakashi 양이 어린 소녀라면 여러 점에서 앞뒤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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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AI는 "즐겁다"는 단어에 유원지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이거, 조금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분명 유원지가 즐겁긴 한데, 세상에는 더 즐겁다고 여길 만한 게 있습니다. 술, 도박, 연애, 쇼핑. 이런 사진이 왜 안 나오는 걸까?

kakashi 양이 어린이라서입니다.

"kakashi"는 그녀의 뇌를 재현한 AI죠. 모든 이미지는 그녀의 주관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즐겁다"는 유원지. "기쁘다"는 선물상자. 아주 어린이다운 감각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책. 독서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인가 보네요.

우케츠 : 그렇구나…….

쿠리하라 :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건 "전화"라는 단어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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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젊은 사람은 모를 수도 있지만, 이건 15년 전쯤에 발매된 어린이용 휴대전화와 똑같은 모양이에요.

위쪽에 고리가 그려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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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어린이용 휴대전화엔 방범 부저 기능이 달려 있어서, 고리에 손가락을 넣고 당기면 부저가 울리게 되어 있어요.

kakashi 양의 소유물이 아닐까요?

우케츠 : 그럼 kakashi 양은 약 15년 전에 어린이였다는 거네요.

쿠리하라 : 그녀의 나이대에는 또 한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분명 "스마트폰"이라고 입력했을 때 의미 없는 이미지만 만들어졌잖아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아마 "kakashi"에 스마트폰의 사진은 애시당초 투입되지 않았던 것이겠죠. 왜일까요? 고려되는 이유는 하나.

kakashi 양이 "스마트폰"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했던 말이지만 "kakashi"는 그녀의 뇌를 재현한 AI죠. 그녀가 모르는 건 투입되지 않았을 겁니다.

우케츠 : 그렇구나……

쿠리하라 : 그런데 말이죠. 그럴 수가 있나요?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모르는 일본인이 어디 있어요.

우케츠 : 동굴에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죠.

쿠리하라 : 그렇죠. 참고로 그녀의 집을 보아하니 동굴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kakashi 양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 죽은 겁니다.

우케츠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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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어째서 설계자는 kakashi 양과 강아지 사진을 투입할 때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야만 했을까요?

그건 AI를 설계한 시점에 이미 그 둘은 사진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계자

우케츠 : 죽은 아이의 뇌를 AI로 재현한다니……. 혹시 "kakashi"의 설계자는……

쿠리하라 : 그녀의 부모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그때 이전에 취재했던 한 부부를 떠올렸다.

그 부부는 흉악한 사건으로 어린 딸을 잃고, 슬픔에 빠진 채 매일을 보냈다. 언제인가 그들은 딸의 인형을 만들었다.

그것을 딸 대신에 아낌으로서 슬픔을 달래려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딸의 분신을 만든 것이다.

현대에는 같은 행동이 인형이 아닌 AI로 이루어진다는 말일까.

우케츠 : 하지만 쿠리하라 씨. 그렇다면, 그 공터 이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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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이 자체로 "무서운 사진"이라는 게 아니라, kakashi 양이 "공포를 느끼는 사진"이라는 게 되네요.

———황폐한 공터…… kakashi 양은 이 장소에 트라우마를 품고 있다.

"무섭다"뿐만이 아닌 "두렵다" "슬프다"는 단어로도 비슷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여기는 그녀에게 있어 무섭고, 두렵고, 슬픈 장소다.

상상하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우케츠 : 설마 kakashi 양은…… 이 장소에서 살해당했을까요……?

쿠리하라 : 모르겠네요.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설계자는 무자비한 사람이네요.

즐거운 기억만이 아닌 쓰라린 기억까지 투입하다니요.

우케츠 : 그렇네요…….

———나는 스마트폰으로 구글을 켜서 "kakashi 공터 사건"이라고 검색했다.

쿠리하라 : 뭔가 나오나요?

우케츠 : …………아뇨, 이렇다 할 정보는 전혀 없네요. 본명을 모르니 어렵네요.

쿠리하라 : 그녀의 정보를 모은다면, 구글보다는 "kakashi"를 쓰는 게 낫습니다.

여기에는 그녀에 관한 데이터가 대량으로 투입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kakashi"를 켜서 시험삼아 "부모님"이라고 입력했다. AI를 설계한 사람이 그녀의 부모라면 당연히 자신의 사진도 투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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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된 것은 "스마트폰" 때처럼 의미 없는 사진뿐이었다,

우케츠 : 이상하네요….

쿠리하라 : 어쩌면 부모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입양되었거나, 조부모가 길렀다든가요.

우케츠 : 그러면 AI를 설계한 건 친부모가 아니다……?

쿠리하라 : 그렇게 되겠죠. ……맞다. 좋은 게 떠올랐습니다.

한자를 딱 한 글자 입력하기만 해도 설계자의 사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우케츠 : 네? 한자로 한 글자요? ………"부모(親)"가 아니라면…… 음……

쿠리하라 : 모르시겠나요?

설계자는 집, 전화처럼 kakashi 양의 주변에 있는 온갖 것들의 사진을 찍어 AI에 투입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의 사진도 들어 있을 겁니다.

———쿠리하라 씨는 나의 스마트폰을 들고 "거울(鏡)"이라고 입력했다.

그 의도를 알았을 때는 이미 이미지가 생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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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사진을 찍을 때 함께 비친 듯한 남성. 이게 설계자다.

대체 이 인물은 kakashi 양과 어떤 관계였을까?

의미

쿠리하라 씨의 집을 나와 귀갓길에 나서며, 머릿속에서 정보를 정리했다.

이미 휴대전화는 보급되었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이전. 2000년~2009년 즈음에 kakashi 양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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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장소에서.

그것은 그녀에게 무섭고 슬픈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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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shi 양의 사후에 그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본 다양한 풍경을 누군가가 AI에 투입했다.

kakashi 양의 뇌를 재현한 인공지능…… 그것이 AI "kakashi"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어째서 설계자는 "kakashi"를 공개한 것일까?

"kakashi"는 인터넷 환경만 갖춰져 있다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온 세상에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취재했던 부부는 딸의 분신인 인형을 자신들만이 소중히 보관했고, 결코 남에게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마음은 이해가 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kakashi"의 설계자는 그 부부와는 정반대의 짓을 하고 있다.

kakashi 양의 인생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시키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괴롭고 슬픈 기억마저도 투입시키는 철저함만 보아도, 설계자가 그녀에게 품은 감정은 사랑과는 다른 무언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때 두려운 생각이 스쳤다.

설마 설계자는 kakashi 양을 살해한 범인이 아닐까?

사랑과 살의를 혼동한 이상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전시하는 행위도 설명이 된다.

아니,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말이 안 된다.

살인범이 kakashi 양의 자택 내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리가 없다. ……스토커? 아니면 친족 중에 범인이……? 다양한 생각이 서로 뒤섞인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근거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근거를 얻자니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적어도 kakashi 양의 본명을 알 수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하자 불연듯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kakashi"를 켠다. 두려움과 함께 그 단어를 입력한다. 잘 풀린다면 kakashi 양의 이름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수십 초가 지나서 이미지는 천천히 표시되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무심코 "아"라고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kakashi 양의 본명.

그리고 AI "kakashi"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이름

귀가한 뒤 서둘러 쿠리하라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쿠리하라 : 뭔데요?

우케츠 : 쿠리하라 씨, 알아냈어요. kakashi 양의 이름요.

쿠리하라 : 정말이에요? 어떻게요?

우케츠 : 간단한 방법이었어요.

설계자는 kakashi 양의 집 바깥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서 AI에 투입했잖아요. 그 말인즉슨 현관 사진도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쿠리하라 : 현관………… 아, 명패!

우케츠 : 네. 어쩌면 명패에는 성씨가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관"으로 이미지를 생성했어요. 지금 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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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KASHI"……?

우케츠 :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도 성씨는 "카시"일 거예요.

쿠리하라 : 카시…… 카카시………… AI카카시………… 아! 설마!

우케츠 : 저도 방금 막 깨닫고 놀랐습니다. AI "kakashi"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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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로고를 보면 각각의 알파벳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어요.

하지만 한 군데 끊긴 부분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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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케츠 : "a"와 "k" 사이. 즉, 올바르게 읽으려면 여기서 끊어야 해요.

쿠리하라 : Aika kashi………… 카시 아이카.

우케츠 : 돌아가는 길에 "카시 아이카"로 다양한 한자를 맞춰서 검색해봤어요.

그랬더니 발견했어요. 지금 URL을 보낼게요.

———그건 "어른의 사회과"라는 오래된 웹 매거진에 게재된 기사였다.

웹 매거진 자체는 12년 전에 종료되었지만, 다행히도 과거의 기사는 여전히 읽을 수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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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인공지능 연구…… 그러면, 이 아버지가 "kakashi"를 설계한 걸까요?

우케츠 : 그렇다고 봅니다. "카시"라는 성씨는 꽤나 드문 모양이라, 분명 틀림없을 겁니다.

쿠리하라 : ………그런데 아이카 양, 꽤나 수재네요.

우케츠 : 그녀는 초등학생 때 자유 연구 발표 대회나 작문 대회에서 몇 번씩이나 입상한 모양이고, 열 군데나 넘는 수상 사이트에 이름이 올라와 있었어요.

쿠리하라 : 엘리트구만….

우케츠 : 그런데…… 2008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과학 관찰 대회에서 우수상을 탄 걸 마지막으로, 그 이후로는 어디에도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리고 관련이 있을런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인 카시 켄타로 씨의 위키피디아를 읽어보니 2009년 3월에 대학을 그만뒀다고 하고…… 그 이후로 뭘 하는지는 불명이라고 합니다.

쿠리하라 : 억지로 추리하자면, 그때 즈음에 아이카 양이 죽고, 켄타로 씨는 실의에 빠져 퇴직하고.

이후에는 AI로 딸의 뇌를 재현하는데 인생을 바치게 되었다는 게…….

우케츠 : 일단 앞뒤는 맞네요. 하지만…… 설계자가 이 아버지라고 한다면…… 역시 납득이 안 가네요……

쿠리하라 : 뭐가요?

———나는 아까 느낀 위화감…… 어째서 슬픈 죽음을 맞이한 딸의 분신을 세간에 자랑하듯 공개한 것인가, 이 의문을 전했다.

쿠리하라 씨의 답은 다소 의외였다.

쿠리하라 : 저는 딱히 이상한 것 같지 않은데요.

우케츠 : 그래요?

쿠리하라 : 켄타로 씨에게 아이카 양은 자랑스러운 딸이었겠죠.

자랑한다기보단 "딸의 인생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우케츠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대화

전화를 끊은 뒤, 여전히 석연찮은 기분으로 켄타로 씨의 기사를 다시 읽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한 가지 말이 눈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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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로 씨와 아이카 양의 대화는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다.

그때 번뜩했다.

서둘러 "kakashi"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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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생성 / 채팅"의 스위치를 "채팅"으로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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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여기에 무엇을 입력해도 반응하지 않았던 건, AI의 고장이 아닌 일본어였기 때문이 아닐까?

켄타로 씨가 죽은 아이카 양과 대화하기 위해서 이 채팅 기능을 만들었다면……

나는 시험삼아 "hello"라고 입력했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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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뒤, 답변이 표시되었다. 역시 그랬다.

이 챗 AI는 영어로만 대응하도록 만들어졌던 것이다.

날뛰는 마음을 억누르며 질문을 입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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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는 Kakashi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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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생전에 군마현에 살았습니다)

"생전에"…… 마치 유령과 대화하는 듯해서 꺼림직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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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죽었습니까?)

(저는 2009년 2월에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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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서 죽었습니까?)

(저는 마에바시 시에 있는 공터에서 죽었습니다)

"공터"…… 역시.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에 땀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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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화상을 입어 죽었습니다)

화상…… 예상밖의 답변이다.

나는 다시금 지금까지 만들어진 공터의 이미지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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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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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들의 바로 앞쪽만 풀이 자라지 않았다. 게다가 흙이 이상하게 까맣지 않은가.

불탄 흔적……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음 질문을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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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소에서 화재가 있었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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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는 왜 발생했나요?)

(방화입니다)

방화……라는 말은, 역시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일까?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질문을 입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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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불을 질렀습니까?)

잠시 틈을 둔 뒤에 답변이 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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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상상조차 하지 못한 진상이었다.

아이카 양은 자살했다.

공터에 스스로 불을 질러 화상을 입고 죽었다. 분신 자살이라는 말인가?

구글에 "마에바시 공터 화재 2009년 2월"로 검색한다. 당시 지방 신문의 기사가 나왔다.

마에바시 시에서 화재 아동 1명 중태

2009년 2월 6일 오후, 마에바시 시에 위치한 공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30분 뒤에 소방대에 의해 진화되었지만, 이 화재로 아동 1명이 중상을 입어

현재까지도 의식 불명인 상태이다. 인근 주택 등에 피해는 없었다.

그 뒤로 화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조사해봤지만, 아무래도 10년도 넘은 일이라 그런지 눈에 띄는 정보는 없었다.

중요한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불쾌함은 있었지만, 애초에 누가 내게 부탁한 것도 아니니 조사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의 발단인 쿠레타 카이도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전했다.

쿠레타 : 음~. 어째서 아이카 양은 자살한 걸까요?

우케츠 : 그것만은 알아내지 못했어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쿠레타 : 맞다! AI에게 물어보면 알려줄지도 몰라요.

우케츠 : 아뇨, 실패했어요. 저도 "kakashi" 채팅에서 그걸 질문해봤어요. 하지만 구체적인 건 알려주지 않더라구요.

쿠레타 : 어째서일까요…….

우케츠 : 모르는 게 아닐까요? "kakashi"의 챗 AI는 아이카 양의 아버지가 딸의 대화 패턴을 프로그램해서 만든 것 같아요. 아마 아버지도 자살한 이유를 몰랐던 거겠죠.

쿠레타 : 진실은 본인만이 안다……는 건가요. 네.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이번 이야기, 만화로 그려도 될까요?

우케츠 : 네?

쿠레타 : 제가 지금 하는 "실록! 뒷맛 나쁜 불쾌한 이야기"라는 웹툰에, 이걸 올리고 싶어요.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으로 할 거고, 각색해서 특정되지 못하게 할게요. 물론 원고료의 반은 우케츠 씨에게 드릴 테니까요.

우케츠 : 아뇨…… 딱히 돈은 상관없는데……

———결국 압박에 못 이겨 승낙해버렸다.

웹툰이 공개된 건 2주 뒤였다. 아이카 양은 "A양"이라는 가명으로 표기되었고, 여러 부분이 각색되었지만 큰 틀의 줄거리는 대체로 사실과 같았다.

이걸로 모두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메일 한 통

얼마간이 지나서 그 웹툰이 비공개 처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화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kakashi"의 회차만이 확연히 빠져 있었다.

쿠레타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물었다.

쿠레타 : 아니, 진짜 말도 안 된다니까요.

우케츠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쿠레타 : 편집부에게 항의 메일이 왔어요.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그리지 말아 달라"나 뭐라나.

우케츠 : 사실과 다르다고요…? 그 메일, 누가 보냈나요?

쿠레타 : 왠지 "A양의 친구"라고 적혀 있었다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안 쓰여 있으니 아마 장난 메일이겠죠.

근데 요즘 편집부는 논란 생기는 걸 무서워하니 비공개 처분이랍니다. 빡세네요.

우케츠 : ……그 메일, 저한테 보여주실 수 있나요?

쿠레타 : 네? 아, 편집부한테 온 전달 메일이 남아 있을 테니 나중에 보내드릴게요.

몇 분 뒤 쿠레타 씨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from: 이소무라 아키

뒷맛이 나쁜 불쾌한 이야기라는 만화가

사실을 그리지 않았으니 지워달라

A양은 내가 아는 친구 같으므로, 거짓이라는 걸 안다

분명 구체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장난일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어째선지 나는 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아마도 나 스스로도 내심 이 사건의 결말에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런 예감이 메일을 본 순간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친구

항의 메일을 보낸 이인 이소무라 아키 씨와 몇 번인가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뒤, 우리는 일정을 정해서 전화를 하기로 했다.

이소무라 씨는 현재 27세의 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한다고 한다.

SNS에서 우연히 쿠레타 카이도의 만화를 발견하여 읽어보니 그게 옛 친구의 일화와 유사하다는 점에 놀랐고, 동시에 결말을 거짓으로 그렸다는 것에 분개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불쾌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던졌다.

이소무라 : 그쪽이 우케츠 씨였나? 그 만화 소재 제공한 게 당신이야?

우케츠 : 네. 조사한 내용을 만화가인 쿠레타 씨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소무라 : 그거, 마지막 결말 구라거든.

우케츠 : ……거짓을 전할 뜻은 없었지만, 제 추측을 무책임하게 말하고 다닌 것은 옳지 않았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소무라 : 의도한 게 아니어도 사실이 아닌 걸 그리면 누구나 싫어하잖아? 조심하라고.

우케츠 :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잠시 여쭙고 싶은데, 이소무라 씨는 "A양"과 어떤 관계에 계셨는지요?

이소무라 : 친구.

우케츠 : 실례지만, A양의 본명은 아십니까?

이소무라 : 뭐? 나 의심하는 거야?

우케츠 : 아뇨, 일단 확인을 해두려고…….

이소무라 : ………아이카. 성씨는…… 어, 카…… 카키…… 카이? 어라? 기억 안 나. 맨날 이름만 불러서.

———메일을 통한 대화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아이카"라는 이름은 한 번도 꺼낸 적 없다. 이소무라 씨가 아이카 양과 친구였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의심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우케츠 : 그런데, 좀 더 여쭙고 싶은데 "사실과 다르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요?

이소무라 : 아, 그거 아직 몰라?

우케츠 : 네.

이소무라 : 아이카가 죽었다던 그 부분 말이야. 걔, 아직 살아 있어.

우케츠 : 네!?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이 흘렀다. 살아 있다고…? 그럴 리는 없다.

우케츠 : 아이카 양은 2009년에 마에바시의 공터에서 분신 자살을 했다고 확인했습니다. 사실이 아닐까요?

이소무라 : 아냐 아냐. 자살하려고 한 건 사실 같은데, 무서워서 아슬아슬하게 도망쳤대.

완전히 죽진 못했다더라고.

emqogE.png


———분명 "의식 불명 상태"라고는 적혀 있었지만 "사망"이라는 보도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채팅에는 "I died in February of 2009(나는 2009년 2월에 죽었습니다)"라고 표시되었다. 머리가 혼란하다.

이야기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 질문을 이어나간다.

우케츠 : 그런데, 이소무라 씨는 어디에서 아이카 씨를 만나셨나요?

이소무라 : 시설. 난 집이 가난해서 도둑질을 하고 다녔거든. 중1 때 걸려서 시설로 보내졌는데, 거기서 아이카를 만났어.

우케츠 : "시설"이라 함은, 아동 자립 지원 시설 말인가요?

이소무라 : 응 그거.

필자 주: "아동 자립 지원 시설"이란, 범죄나 불량한 행위를 저지른 소년 · 그럴 징후를 보이는 소년을 입소 · 등원시켜서 지도하는 시설을 이른다.

우케츠 : 아이카 씨는 왜 시설에 들어가게 됐나요?

이소무라 : 방화 때문에. 왜, 아까 얘기했잖아.

걔 병원 퇴원하고 나서 자수했대. "제가 불 질렀어요"라고.

우케츠 : ……그랬구나…….

이소무라 : 나보다 어린데 방화로 자살 미수라니 얘도 보통 놈 아니구나 싶었지. 그래도 머리는 엄청 빠릿빠릿했거든.

이상한 애 같았는데 어느샌가 친해졌어. 나도 걔도 만화 좋아했으니까.

우케츠 : 시설을 나온 뒤의 관계는요?

이소무라 : 평범하게 만났지. 둘 다 중학교 나오고 나서 같은 가게에서 알바 했거든.

걔는 할머니하고 살아서 돈이 없다고 근무시간 꽉꽉 채워서 열심히 일했어.

우케츠 : 할머니하고……? 켄타로 씨…… 아버지와 살던 게 아니었나요?

이소무라 : 아냐. "아빠하곤 절대 안 살 거야"라면서 할머니 집으로 도망쳤나봐.

아, 맞다. 그 만화 보니까 아이카하고 아빠가 사이가 좋았다는 식으로 그렸던데 그것도 다 뻥이야.

우케츠 : 네?

이소무라 : 아이카, 아빠한테 학대를 당했나봐.

우케츠 : 학대……!?

이소무라 : 뭐라나, 공부 쪽으로 엄청 뭐라 해서, 100점 못 받으면 맞았다더라.

아니, 만약 시험에서 90점을 받잖아? 그러면 틀린 10점만큼 맞는대.

10대, 옷걸이로. 뭐 그런 옘병맞은 애비가 다 있대?

우케츠 : 옷걸이로…… 그건…… 가혹하네요.

이소무라 : 걔 아빠가 대학 교수였대. 애한테 거는 이상이 너무 높은 거지.

애들은 말이야, 밥 잘 먹고 몸 건강하면 그걸로 된 거잖아. 나도 집에 꼬맹이가 둘 있는데 절대 때린 적은 없어. 잔소리야 맨날 하지만.

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아이카는 아버지도 공부도 싫다고 했었어.

우케츠 : 공부가 싫다고요…? 아이카 양은 유치원생 때부터 매일 공부했고, 초등학생 때는 다양한 대회에서 입상했다고 들었는데……

이소무라 : 그것도 아빠가 무서우니까 아득바득 한 거지. 책 읽는 것도 싫어하는데 억지로 독서감상문 썼다더라.

사실은 그 애, 만화를 좋아하거든. 근데 "만화는 멍청이들이나 보는 거다"고 혼나서, 아빠가 안 보는 곳에서 안 들키게 읽었다나 뭐라나.

———"kakashi"는 "재미있다"는 단어를 입력하자 "쌓인 책더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EFsshW.png


부친인 켄타로 씨의 눈에는 아이카 양이 독서를 좋아하는 소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소무라 씨가 말하는 아이카 씨는 정반대다.

어느 쪽이 진짜 아이카 씨일까, 제삼자인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소무라 씨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아이카 씨가 더욱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소무라 : ……그 애가 자살하려고 했던 것도 다 아빠 탓이야.

천재들만 가는 빡센 중학교 입학 시험을 치게 해놓고 "그 중학교 이외에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죽을 둥 살 둥 공부했는데도 안 됐나봐.

입학 시험에 떨어졌다고 하면 진짜 아빠한테 죽겠구나 싶어서, 아빠 손에 죽을 바엔 스스로 죽어주겠다고 하면서 불을 질렀대. 초6짜리 애가 그랬다니까? 물론 방화는 나쁜 짓이지만, 부모가 애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면 애가 미치지. 어른하곤 달리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

우케츠 : 그래서 실제로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했나요?

자살 미수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걸 알았다면, 아무리 그래도 사고방식을 바꿀 법도 한데요.

이소무라 : 보통은 그렇지. 근데 그 애 아빠는 그럴 만한 위인이 못 돼.

이것도 들은 이야기인데, 아이카가 입원했을 때 병실에 영어책을 잔뜩 들고와선 "퇴원할 때까지 이거 전부 읽어라"고 시켰대.

우케츠 : 네…?

이소무라 : "미국 가라" 이 말이지. 나도 잘 모르는데, 미국 학교는 학기 시작이 늦잖아?

우케츠 : 아, 일본은 4월에 입학하는 학교가 대부분인데 미국은 9월 입학이 기본이죠.

이소무라 : 맞아 맞아. 그래서 "미국에 가면 늦지 않을 거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저쪽 명문 중학교에 유학해라"더라고.

미친 거 아냐? 딱히 일본 공립 중학교여도 상관없잖아. 근데 안 된다더라. "공립 같은 데 갔다간 멍청이가 된다"는 게 말버릇이었대. 그럼 어떡해, 도망쳐야지. 아이카가 자수한 것도 아빠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던 걸지도 몰라.

———"kakashi"의 정체가 점점 알 것만 같다. 그것은 아이카의 뇌를 재현한 AI가 아니다.

부친인 켄타로 씨의 "이상적인 아이카 양"을 구현한 AI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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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타로 씨가 아이카 양을 사랑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한 것은 진정한 딸이 아니라 아이카 양이 필사적으로 연기하는 "이상적인 딸"이라는 허상이었다.

자신의 곁에서 도망치고, 자신이 깔아둔 엘리트의 길에서 벗어난 시점에서 아이카 양은 "이상적인 딸"이 아니게 되었다. 켄타로 씨는 그것을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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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바시의 공터에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즐거웠던 12년 동안의 기억을 AI에 담아서 "똑똑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이상적인 Kakashi"를 지키기로 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원하는 대로 사는, 살아 있는 아이카 씨에게서 눈을 돌리기로 한 게 아닐까?

우케츠 : 그런데, 아이카 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이소무라 : 도쿄에서 일러스트 하고 있어. 처음엔 만화가 하려고 했는데, 스토리 짜는 게 어려워서 그림쪽으로 바꿨대.

요즘에 드디어 인기가 생겨서 일러스트 일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됐나봐. 이번에 개인 전시회 한다더라. 나도 초대받았거든.

———"개인 전시회"…… 그걸 들은 순간 기억이 쑤셔왔다.

최근에 그 단어를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우케츠 : 저, 아이카 씨가 혹시 펜네임을 쓰고 있나요?

이소무라 : 응. 펜네임이라 해봤자, 이름 한자를 다르게 읽었을 뿐이야.

———역시 그랬다. 나는 이미 아이카 씨의 이름을 알고 있다.

"아이카(愛華)"…… 읽는 법을 바꾸면……

우케츠 : 마나하나…… (* 愛 마나: 아끼는, 華 하나: 화려한)

이소무라 : 맞아 맞아! 잘도 알고 있네.

———지금,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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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하나 씨가 그런 답글을 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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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알아버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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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때 자살을 시도했던 장소를.

그리고 그 구석에 박혀 있는 "kakashi"라는 글자를 보고, 이 사진이 어떤 까닭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자신의 친부가 과거의 자신을 AI로 재현하려고 했다는 역겨운 사실을.

두렵게 여기는 반면, 동시에 나는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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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그림에 아버지 같은 남성은 전혀 그려져 있지 않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의 주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살고 있을 것이다.

AI "kakashi"

며칠 뒤 쿠리하라 씨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쿠리하라 : 그랬던 거군요. 뭐, 살아 계셔서 다행이네요.

우케츠 : 반응이 가볍네요. ……맞다. 이전에 제가 "왜 설계자는 자랑하려는 듯이 "kakashi"를 세상에 공개한 것일지 납득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를 안 것 같아요.

쿠리하라 : 오…… 말해주세요.

우케츠 :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지만, 아마 켄타로 씨는 분했던 거겠죠.

자신이 만든 "이상적인 아이카 AI"보다 살아 있는 아이카 씨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유명해진 게 말이에요.

쿠리하라 : 경쟁하려고 했다는 건가요?

우케츠 : 네………… 어떻게 생각하세요?

쿠리하라 : 꽤나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혹여 진짜라면 꼴이 꽤나 우습겠지만요.

우케츠 : 그쵸. 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의문점이 생겨요.

쿠리하라 : 뭔데요?

우케츠 : 어째서 "kakashi"에 "부모"를 입력하면 의미가 없는 이미지가 나오는 걸까요?

yUhGHo.jpg


우케츠 : 켄타로 씨 정도로 자존감이 센 아버지라면 당연히 자신의 얼굴을 "부모"로서 투입했을 줄 알았는데…….

쿠리하라 : 음…… 그렇네요.

———잠시 생각한 뒤, 쿠리하라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쿠리하라 : ……우케츠 씨, 이런 이야기 아십니까?

……데이터가 대량 투입된 AI는 설계자의 이해를 넘어선 동작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종종 "AI의 내부는 블랙박스"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AI가 그림을 생성하거나 대화를 할 때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중요한 부분은 해명되지 않았어요.

우케츠 : 헤에.

쿠리하라 :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건, 인간이 AI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우케츠 : 조금 무섭네요.

쿠리하라 : AI 연구는 나날이 진행되는데, 그걸 웃도는 속도로 AI는 진화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혹여 언젠가 AI가 감정이나 의사를 가졌다고 해도, 인류는 그걸 알아채지도 못할 수 있어요.

우케츠 : 저기……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고 계신 거죠?

쿠리하라 : 우케츠 씨, "kakashi"는 아이카 씨의 데이터를 대량 투입한 AI입니다. 아이카 씨의 분신이라고 해도 되겠죠.

그런 "kakashi"가 혹여 감정을 가졌다고 한다면…… 미워하는 아버지의 기억을 멋대로 지워버릴지도 몰라요.

우케츠 : 네……? 그 말인즉슨…

쿠리하라 : 뭐, 신경쓰지 마세요. 단순한 공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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