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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초초초긴글주의)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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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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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대충요약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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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요약

한국에는 미국, 유럽, 남미의 대도시에 현존하는 슬럼이 없다. 슬럼의 초기 모델이었던 '달동네'조차 사라졌다. 도시 개발이 이들을 몰아냈다. 60년대 청계천, 80년대 상계동, 90년대 난곡 등을 거치며 빈민촌의 거의 전부를 도시에서 밀어냈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그 효과는 확실하다. 한국인들은 빈곤을 체감하지 못한다. 몇 블럭 건너 범죄와 마약의 소굴이 있는 뉴욕, 런던, 파리의 부유층과 어딜 가도 (겉보기엔 멀쩡한) 연립주택이 들어선 서울의 부유층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인지하는 더듬이가 다르다.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투명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빈곤 노동은 투명 노동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난이 없다 치고' 사는 일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것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다.

그렇다고 빈자들이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만난 절대 다수의 빈곤 청년은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등에 살고 있었다. 연립주택이 들어선 도시 곳곳에 이들이 산다.

다만 고시원과 반지하방과 옥탑방은 달동네와 다르다.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유대감이 없다. 얇은 벽을 두고 같은 고시원에 살아도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한국의 빈곤은 더 이상 군집을 이루지 않는다. '원자화'된 빈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중략

이제 가난은 좀체 추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이 보이지 않는 시공간에 익숙해져 버렸다.간혹 가난을 마주쳐도 시선을 돌린다. 가난한 사람을 보지 않고, 그저 통계로 가난을 추상한다. 빈곤 청년은 통계만으로 입증되지 않고, 더구나 체감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들의 상당수가 가난하다면, 그 가난이 대부분 체감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중략

청년의 대학과 청년의 일자리는 다음의 쌍을 이룬다. - 서울 소재 유명대학을 졸업한 소수는 이들 대기업의 사무직에 취업한다. 나머지 중위권 이하 또는 지방대를 졸업하면,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사무직 또는 관리직으로 일한다. 전문대 졸업자는 그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그보다 못한 학력이라면, 대기업과 하청기업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각종 서비스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것이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오직 위만 본다. 그 아래로 뻗어가는 먹이사슬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은 노동의 먹이사슬 구조 가운데 최상층에 기초해왔다. 그 사슬 아래에서 버둥거리는 빈곤 청년 대부분에게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략

모든 일을 바꾸는 힘이 정치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투표일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하는 사내하청업체, 공단내 소공장, 백화점, 대형마트 등은 투표일에 쉬지 않는다.

투표일에 이들 업체가 모두 쉰다 해도 그들은 부족한 잠을 자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건 그들은 일체의 정치·사회적 '의사표현'에 무관심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당 전체에 무심했다. 언론 또는 노조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인생을 통틀어 정부·정당·노조·언론이 버팀목이 됐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힘 있는 사람'을 믿는다. 세상을 향해 제 의지를 관철하는 다른 인물을 일찍이 접한 적이 없으므로, 이들이 믿고 따르는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일하는 업체의 사장이다. "우리 사장님은 그래도 착한 분"이라는 말을 취재과정에서 수도 없이 들었다. 자연스레 '사장님'의 철학과 신념까지 그대로 수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기부양' 신화다. 빈곤청년은 신문 따위 읽을 생각도 시간도 없다. 이들이 보수화되는 것은 <조선일보> 탓이 아니다. 월급 80만~130만원을 받으려면 가게에 손님이 많아야 되고, 손님이 많아지는 것은 경기가 좋을 때라는 말을 이들은 사 장으로부터 매일 듣는다(물론 사장은 그런 신념체계를 <조선일보>에서 배운다).

만약 그들에게 정치의식이 있다면, 보수 정당에게 몰표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보수 정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한다. 선거운동원들은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그 말을 번역한다. 진보 정당은 "복지를 강화 하겠다"고 공약한다. 선거 운동원들은 "공평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그 말을 번역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지와 공평에 대해선 아는 바도 겪은 바도 없다. 경기가 좋아지는 게 무엇인지만 안다. 빈곤청년은 자신에게 떡고물을 나눠줄 힘 있는 자를 인정하고 수용한다. 그들이 큰 떡을 다 먹는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월급 100만원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면, 사장이 한 달에 수억 원을 번다해도 상관없다. 떡고물을 준다는 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들에겐 복지가 늘어난 기억은 없고, 일자리가 줄어든 기억만 남아 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민주정부 시기 복지제도의 확장은 자취없이 사라진다. 복지 정치의 연대가 구축될만한 기초도 사라진다. 복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복지를 지지할 까닭이 없다.

중략

빈곤 청년들은 ‘탓’을 하지 않는다. 정부·정당·노조·언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동시에 그들에게 제 인생을 책임지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다. 부모 사업이 망해버렸으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말했다.

고교 졸업 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졸린 눈을 부비며 공부하여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대형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스물여섯 살 점원의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은 공평한 거 같아요. 저는 공부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죠."

빈곤 청년들은 '경쟁'을 내면화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열성은 없지만, 경쟁에서 낙오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열패감을 자연스레 수용한다. 그들의 열패감 또는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탓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중략

그들에게 더 나은 '물질적 풍요'를 약속할 수 없다면, 이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호명'이라도 필요하다. 사회적 호명은 공동체의 복원에서 시작한다. 공동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누군가 도닥여주어야 한다. 혜택을 주지 못하면, 의미라도 제공해야 한다. 국가주의, 군사주의의 껍질은 벗기되, 새로운 민주적 공동체의 의미를 담아 그들의 가난한 삶을 우리 모두가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중략

정치는 소통이다. 무릇 정당이라면 이들 청년세대와 교감하고 싶을 것 이다. 기자인 나는 그런 방법까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을 취재할 때, 질문부터 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밥먹고 일하고 어울렸다. 세상이 남긴 상처 때문에 그들에겐 수많은 가시와 방패가 있는데, 그걸 스스로 거둬들일 때까지 섞이고 스며들려 애썼다. 대화는 그 다음에야 가능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대화 자체만으로 즐거워했다. 그들은 인격과 인격으로 만나는 일을 진정으로 반겼다. 비록 나의 기사는 그들의 삶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함께 일하며 밥 먹는 기자를 좋아해주었다.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통계로 분석하고 문자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두려워하는 이는 대통령이 아니라 주민센터 직원이고, 도움을 청하는 곳은 정당이 아니라 복지관이며, 진심으로 신뢰하는 이념은 언론이 아니라 사장에게서 비롯한다. 주민센터 직원, 복지사, 사장의 자리에 정치인이 가면 된다. 복지정치의 스타트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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