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시인 이상이 애인과 만주로 야반도주한 동생 옥희에게 쓴 편지
49,885 477
2021.09.23 23:57
49,885 477

* 예전에 썼던 글인데 오늘 이상 시인 생신(9월 23일)에다 슼에 이상 시인 글이 많이 올라와서 감탄하다가 생각나서 다시 올림!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에게는 김옥희라는 여동생이 있었음.


hvvhF.jpg


(시인 이상)


LybCA.jpg


(남동생 김운경, 어머니 박세창 여사, 여동생 김옥희)






어느날, 동생 옥희는 애인과 만주로 야만도주를 하게 되고 이상은 동생 옥희에게 산문글 형식으로 편지글을 써 기고하게 됨.


『중앙』 1936년 9월호에 발표된 이 글의 제목은 <동생 옥희 보아라>인데, 부제는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임. 


당시에는 애인과 야반도주를 하는 것이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되었을 시절인데, 이상 시인은 그와 같은 태도를 비판하고 세상의 오빠들에게 여동생에게 취해야 할 태도를 말하려 하는듯함.








다음은 이상시인이 동생 옥희에게 쓴 편지글임.





<동생 옥희 보아라 -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


XBDet.jpg

팔월 초하룻날 밤차로 너와 네 연인은 떠나는 것처럼 나한테는 그래놓고 기실은 이튿날 아침차로 가 버렸다. 내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어른 노릇을 못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기로서니 그래도 너희들보다야 어른이다.


'우리 둘이 떨어지기 어렵소이다.' 하고 내게 그야말로 '강담판(强談判)'을 했다면 낸들 또 어쩌랴. 암만 '못한다'고 딱 거절했던 일이라도 어머니나 아버지 몰래 너희 둘 안동시켜서 쾌히 전송(餞送)할 내 딴은 이해도 아량도 있다. 그것을, 나까지 속이고 그랬다는 것을 네 장래의 행복 이외의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네 큰오빠 나로서 꽤 서운히 생각한다.



(중략)



옥희야! 내게만은 아무런 불안한 생각도 가지지 마라!


다만 청천벽력처럼 너를 잃어버리신 어머니 아버지께는 마음으로 잘못했습니다고 사죄하여라.


나 역(亦) 집을 나가야겠다. 열두 해 전 중학을 나오던 열여섯 살 때부터 오늘까지 이 허망한 욕심은 변함이 없다.


작은오빠는 어디로 또 갔는지 들어오지 않는다.


너는 국경을 넘어 지금은 이역(異域)의 인(人)이다.


우리 삼 남매는 모조리 어버이 공경할 줄 모르는 불효자식들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갔다 와야 한다. 갔다 비록 못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


너는 네 자신을 위하여서도 또 네 애인을 위하여서도 옳은 일을 하였다. 열두 해를 두고 벼르나 남의 맞자식 된 은애(恩愛)의 정에 이끌려선지 내 위인(爲人)이 변변치 못해 그랬든지 지금껏 이 땅에 머물러 굴욕의 조석(朝夕)을 송영(送迎)하는 내가 지금 차라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중략)



삼 남매의 막내둥이로 내가 너무 조숙(早熟)인 데 비해서 너는 응석으로 자라느라고 말하자면 '만숙(晩熟)'이었다. 학교 시대에 인천이나 개성을 선생님께 이끌려가 본 이외에 너는 집 밖으로 십 리를 모른다. 그런 네가 지금 국경을 넘어서 가 있구나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어린애로만 생각하던 네가 어느 틈에 그런 엄청난 어른이 되었누.


부모들도 제 따님들을 옛날 당신네들이 자라나던 시절 따님 대접하듯 했다가는 엉뚱하게 혼이 나실 시대가 왔다. 오빠들이 어림없이 동생을 허명무실(虛名無實)하게 '취급'했다가는 코 떼일 시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ubAoS.jpg

(중략)



기왕 나갔다. 나갔으니 집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너희들이 부끄럽지 않은 성공을 향하여 전심(專心)을 써라. 삼 년 아니라 십 년이라도 좋다. 패잔한 꼴이거든 그 벌판에서 개밥이 되더라도 다시 고토(故土)를 밟을 생각을 마라.


나도 한 번은 나가야겠다. 이 흙을 굳게 지켜야 할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직책과 나가야 할 직책과는 스스로 다를 줄 안다. 네가 나갔고 작은오빠가 나가고 또 내가 나가버린다면 늙으신 부모는 누가 지키느냐고? 염려 마라. 그것은 맏자식 된 내 일이니 내가 어떻게라도 하마. 해서 안 되면―. 혁혁한 장래를 위하여 불행한 과거가 희생되었달 뿐이겠다.



(중략)


이런 것 저런 것을 비판 못하시는 부모는 그저 별안간 네가 없어졌대서 눈물이 비 오듯 하시더라. 그것을 내가 "아 왜들 이리 야단이십니까. 아 죽어 나갔단 말입니까." 이렇게 큰소리를 해 가면서 무마시켜 드리기는 했으나 나 역 한 삼 년 너를 못 보겠구나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네가 그리웠다. 형제의 우애는 떨어져봐야 아는 것이던가.



한 삼 년 나도 공부하마. 그래서 이 '노말'하지 못한 생활의 굴욕에서 탈출해야겠다. 그때 서로 활발한 낯으로 만나자꾸나.


너도 아무쪼록 성공해서 하루라도 속히 고향으로 돌아오너라.


그야 너는 여자니까 아무 때 나가도 우리 집안에서 나가기는 해야 할 사람이지만 일이 너무 그렇게 급하게 되어 놓아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놀라셨다 뿐이지, 나야 어떻겠니.


하여간 이번 너의 일 때문에 내가 깨달은 바 많다. 나도 정신 차리마.



원래가 포유지질(蒲柳之質)로 대륙의 혹독한 기후에 족히 견뎌낼는지 근심스럽구나. 특히 몸조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같은 가난한 계급은 이 몸뚱이 하나가 유일 최후의 자산이니라.


편지하여라.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이 글이 실리거든 『중앙』 한 권 사 보내 주마. K와 같이 읽고 이 큰오빠 이야기를 더 잘하여 두어라.


축복한다.


내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 하루 오 전 받고 '모델' 노릇 하여 준 옥희, 방탕불효(放蕩不孝)한 이 큰오빠의 단 하나 이해자(理解者)인 옥희,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그 애인과 함께 만리 이역 사람이 된 옥희, 네 장래를 축복한다.



이틀이나 걸렸다. 쓴 이 글이 두서를 잡기가 어려울 줄 아나 세상의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여러 오빠들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衷情)만을 사다오.



닷새 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오빠 쓴다.









무묭이가 가장 감명깊었던 문장은 이 부분...


ioKAw.png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이후 여동생 옥희님의 인터뷰를 보면, 이상은 다정한 오빠였고, 버릇처럼 부모님을 생각한 효자였다고 함.

전문은 <동생 옥희 보아라> (클릭하면 이동)에서 볼 수 있음.




출처: 서울신문 '사람들은 몰랐다… 든든한 장남, 우리 오빠 ‘이상’'

연합뉴스 '천재 작가 이상' 아닌 인간 김해경을 회고하다







목록 스크랩 (242)
댓글 47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투슬래시포X더쿠✨ 반사판 댄 듯 얼굴의 입체감을 살리는, 이사배가 만든 NEW 파우더 ‘플래시 리플렉팅 스킨 피니셔’ 리뷰 이벤트 (50인) 569 04.27 30,015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106,342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295,25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086,42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587,586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04,98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5 21.08.23 8,555,09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0 20.09.29 7,464,15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17 20.05.17 8,676,216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0 20.04.30 8,566,17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503,559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56930 이슈 사이버포뮬러 6분짜리 숏 애니 제작 예정 7 14:00 193
3056929 기사/뉴스 송민호 ‘재복무 의지’, 감형 노린 전략?…현직 변호사 “재복무는 당연한 과정” 3 13:59 118
3056928 이슈 고앵이 김고은 데이즈데이즈 사진 1 13:59 290
3056927 이슈 정은원 2타점 적시타 . gif 1 13:59 152
3056926 유머 "사"로 시작해서 "해"로 끝나는 말은?.jpg 8 13:58 390
3056925 정치 정청래 "30고초려", 하정우·전은수 민주당 합류 13:58 95
3056924 유머 입짧고 말없는 아이가 두살꽉채워서 처음 한 말 13:58 310
3056923 이슈 어제 더쿠 뎡배 소소한 이슈였던 넷플릭스 <기리고> 햇살방울 부부 배우본체 나이 8 13:57 692
3056922 이슈 공놀이 기계에 중독된 강아지들 11 13:56 510
3056921 기사/뉴스 ‘이혜훈 방지법’ 드디어…30세 이상 미혼 자녀 ‘3년’ 이상 동거해야 13:56 369
3056920 정치 국민의힘, ‘한국판 IRA’ 도입… 일자리 10만 개 창출 약속 1 13:55 104
3056919 이슈 르세라핌 - Celebration (계산기 커버) 1 13:55 113
3056918 기사/뉴스 [단독] 서울시 감사위 공무원, 미성년 성추행 혐의로 직위해제 1 13:55 164
3056917 이슈 단종업고 돌아온 워너원의 컴백스토리가 궁금하다면? 3 13:54 289
3056916 이슈 위험한 공조관계로 나온다는 디플 <골드랜드> 박보영-김성철 제발회 투샷 케미...gif 6 13:52 671
3056915 기사/뉴스 서울 제외 32개 의대 정원 확정…내년 490명, 2028년부터 매년 613명 증원 1 13:51 253
3056914 유머 음식에 질렸다면서 계속 오는 단골손님 8 13:51 1,482
3056913 기사/뉴스 [단독] "죽여버리려 했다"‥'김창민 감독 사건' 피의자에 살인 혐의 검토 5 13:50 324
3056912 이슈 [국내축구] 전북현대 5월17일 홈경기 종료 직후 진행 예정인 잔나비 공연 세트리스트 4 13:49 225
3056911 기사/뉴스 [단독] 서울시 감사위 공무원, 미성년 성추행 혐의로 직위해제 5 13:48 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