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팁/유용/추천 [스크랩]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이동진 칼럼)
4,036 57
2021.08.06 19:40
4,036 57
https://img.theqoo.net/XEurs
터널을 지날때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목록 스크랩 (47)
댓글 5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이자녹스 X 더쿠💙] 여름 꿀템🔥❄️ 얼려쓰는 비타민 수딩젤! 이자녹스 <비타맥스 아이싱 수딩젤> 체험 이벤트 426 06.17 44,334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4,393,890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5,165,14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1,638,332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2,850,43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7 21.08.23 3,881,11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23 20.09.29 2,772,47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81 20.05.17 3,453,479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64 20.04.30 4,038,93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스퀘어 저격판 사용 무통보 차단 주의) 1236 18.08.31 8,457,352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38351 유머 지형지물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후이바오 🐼 22:19 36
2438350 기사/뉴스 숨겨진 친동생→치매 고백까지…이래도 돼? ‘가족사 오픈’ 예능 [Oh!쎈 초점] 22:18 305
2438349 이슈 [KBO] 프로야구 6월 20일 달성 기록 9 22:16 488
2438348 이슈 [놀아주는 여자] 신박한 ㅅㅂ 초성퀴즈 연출.twt 3 22:15 434
2438347 정보 랩하는 블랙핑크 제니 비츠 솔로 버즈 광고 7 22:14 686
2438346 이슈 손아섭 KBO 역대 최다 안타 달성.gif 2 22:13 179
2438345 이슈 뉴진스 캐릭터에 수영복 입히고 인증샷…배틀그라운드 속 '성희롱' 논란 9 22:13 1,468
2438344 이슈 더위 vs 추위 명답.jpg 3 22:13 301
2438343 이슈 또 없는게 없는 무한도전 (feat 뉴진스) 12 22:12 809
2438342 정보 [KBO] 프로야구 6월 20일 각 구정 관중수 10 22:11 588
2438341 이슈 여름만 되면 생각난다는 여자아이돌 레전드 직캠 2 22:10 575
2438340 정보 일본 맥도날드X마녀 배달부 키키 콜라보! 6 22:10 974
2438339 이슈 일본 히메지성 입장료, 외국인 관광객만 '4배로' 검토... 17 22:10 704
2438338 이슈 30년전 형님들을 찾습니다.jpg 9 22:09 400
2438337 정보 [KBO] 프로야구 6월 21일 각 구장 선발투수 17 22:09 606
2438336 이슈 레드벨벳 이번 컴백곡 레드 컨셉일지 벨벳 컨셉일지 궁예 하는 달글 8 22:09 447
2438335 이슈 반차내고 집와서 댕댕 산책중인데.JPG 8 22:09 1,546
2438334 이슈 케이윌뮤비 터널씬 대사와 눈빛연기 잘말아준 서인국 23 22:08 1,260
2438333 이슈 업무강도 어마어마한 에스파 아마겟돈 뮤비 제작진들 8 22:07 1,400
2438332 정보 [KBO] 프로야구 6월 20일 경기결과 & 순위 47 22:06 1,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