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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핫게간 월 230 세 아이 엄마글 보면 생각나는 월200 아이셋집에서 자수성가한 둘째 글 (+추가)
47,127 700
2020.11.1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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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theqoo.net/BenpG

230버는 아이셋 행복하다는 엄마는 꼭 읽길
잘못 눌러서 빈글이 올라갔는데 이왕 올라간거니 그냥 이어쓴다
포털에도 기사가 뜨고 댓글이 2천개가 달렸지.
월급 200이면 결혼도 하지말고
아이도 낳지말란 이야기는 아니다.
가난한데 애들 많은 집 아이가 겪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긴 이야기지만 아이많이 낳은 가난한 당신네
딸 아이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니
읽고 처절하게 반성하며 당당이라도 더 건설적인
미래를 두 부부가 준비하길.
열 받으니 반말로 쓸거라 양해바래요.


현재 나는 이 악물고 자수성가해서
나름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둘째다.
당신 자식들도 자수성가하면 되지 않느냐고?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읽어보렴.
가난이 뭔지.



우리집은 아이가 셋이었다
지금 내가 30대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 당시 200을 버셨다. 외벌이.
그 시절 200이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지.
나는 가진 것 하나없이 맨몸으로 결혼한 부모님의

세 자녀중 둘째였고.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다들 수준이 비슷비슷한 가난한 주택가의 허름한 동네였다.
어릴적의 기억은 행복했다. 근데 딱 초등학생까지만이었어.
지금은 스마트폰, 매체가 발달해서 정보가 빠르니
요즘 아이들은 초등 들어가자마자 느낄수도 있겠다.

그 당시 잘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정보를 몰랐으니 내가 느끼지못했던 상대적 박탈감은
초등 고학년이 되기 전부터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어.

유치원때는 아예 불행한 기억이 없어. 어리니까 가난을 모르거든.
없는 형편에도 엄마는 외식을 못하니 집에서
나름 피자까지 만들어 주셨어.
롯데리아라는 패스트푸드는 초등1학년때 처음 먹어봤는데
1년에 한번 먹을까말까 하는 최고급 외식이었고
돌이켜보니 그게 데리버거세트였다.
우리집은 외식은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케이크는 정말 특별한 날에 먹을까 말까한 음식이었는데
초등학교때 외동 친구집에 갔더니
(그 친구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부유한 친구였어)
식탁에 하얀 과일생크림케이크가 자주 놓여져 있어서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옷을 물려입었고 당연히 용돈은 없었기에

늘 친구들이 먹는 것 지켜보고, 얻어먹고.
고등학교까지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문제집도 못 샀기때문에 선생님이 주신 거였고
매점에 간식 사먹고는 싶은데 늘 돈은 없고.
그래도 착한 친구들이 많이 사줬다.
하도 얻어 먹어서 내 별명은 "빈대"였어.
그때는 웃어넘겼지만 항상 없는 형편이라
돈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학창시절
잠시 성격도 어두워진듯 하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밝고 긍정적이고
기부도 하면서 산다. 아직 국내에도 나처럼 힘든 아동이
많을거라서 절대 해외기부는 하지않고 오로지
국내아동돕기에만 기부를 하고 있다.

아무튼.


학교에서 급식비를 못내서 항상 행정실로 불려다녔고

전교에 급식 미납자명단을 방송하는데
매번 내 이름이 빠져본적이 없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한장으로 오래 버티다가
아래가 헐기도 했지.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지
그래서 지금도 생리대가 없어 운동화깔창을 깔았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우리집이 없다는게 약간은 불편하지만
행복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살면서 점점 고통스러운 순간들과
수치심느껴지는 순간들이 늘어만 가더라.
아버지의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오를 수 없는 직종이었고
가난은 물가상승률과 맞물려 너무 지독해지는 수순이었다.
가난한 우리에게 월세는 평생 월세였다.


어느 날은 동사무소에서 불우한 이웃울 돕는다며
반찬과 쌀 김치를 가져다 줬는데
내가 중학생이라 정말 부끄럽고 싫었지만
집에 먹을 것이 없어 그냥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낡은 주택에 살았는데 겨울엔 우풍이 들고
기름이 떨어지거나 보일러가 고장이라도 나면
파카를 껴입고 덜덜 떨면서 자야했지.
수도가 얼면 뜨거운물을 끓여 부어서 녹여줘야 했는데
그래서 씻지도 못하고 학교에 간 적도 많고
찬물로 머리를 감다가 너무 고통스럽고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이 괴로워서 중간중간 멈추고 쉬어가며
끝끝내 머리를 감았던 적도 있어.

하루는 세탁기가 고장이 났는데 고칠 돈이 없어서
한 겨울에 찬물에 손빨래도 해봤고
수건을 널어두면 얼어서 그걸로 닦느라 추웠던 기억..
정말 수건에 얼음이 생기는걸 그때 알았지.
그래서 아직도 겨울이라면 치가 떨리게 싫다.


가난하게 늘 월세로 낡은 주택에 살았기에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놀러갔을때는 정말 신세계였고
따올려 보니 그 아파트는 주공이었는데
주공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그시절 미치도록 부러웠다.
나는 언제 이런 집에 살아볼까....언제 아파트라는 곳에 살까?


아버지가 직장을 잃자 가계는 더욱 기울어 힘들어졌다
학교에 내는 공납금과 급식비는 언제나 밀렸고
고등학교까지 학원 한번 못 다녀봤으며 먹고살기 힘드니
자녀교육은 당연히 방치였어.
어머니도 일을 하러 다녔고
맞벌이 부부가 집을 비우면 아이셋 우리집은
항상 가난했고 아이들만 남겨졌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

머리는 나쁘지 않아서 성적은 중간보다 약간 높았고
대학에 진학할때 중상위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당연히 대학 학비는 없었다.
4년간 전액 학자금대출을 받았으며 그나마도 중간중간
휴학해서 알바라도 해야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 수 있었기에
졸업을 하는대만 7년이 걸렸어.

남들에겐 대학이 낭만이었다면 나에게 대학생활은
하루하루가 생존이었다.
주말은 토일 모두 주말알바
주중 쉬는 시간엔 학교에서 하는 근로장학금을 받느라
학과 사무실에서 잔일을 했으며
방학때는 한달 내내 아르바이트에 올인하느라 해외는 커녕
제주도도 한번 못가보고 그렇게 아르바이트만 하고살았다
그래도 근로장학금을 받아야했기에 성적관리는 나름 하느라
정말 시간과 돈 모두 여유가 없었던 삶.
학원다니며 공부하는 친구들
방학때 다녀온 친구들의 해외경험
가족끼리의 외식
모두 나에겐 사치였고 남의 일이었어.
그 속에 나는 없었지만 괜찮은 척 침묵하며
한편으로 가슴이 참 아팠다.
늘 같은 옷. 비싼 옷 한벌 못 사입고 보세 싸구려만 입었고
백화점에서 무언가를 산다는 건 남의 일이었지.
이런 가난한 나에게도 미안하게도 남자친구가 생겼고
정상적인 데이트는 어려웠기에
그 당시 착했던 내 남자친구는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
같이 아르바이트 해주면서 그 곳에 데이트장소 였지.
지금 생각하면 그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가난한 내가 남자친구라니....



아르바이트는 패밀리레스토랑이었는데
가장 긴 스케쥴로 잡아달라고
늘 매니저님에게 부탁을 했고 저녁 야간 마감조를 하면
택비시와 약간의 야간수당을 더 줬기에
새벽2시에 마감조를 마치며 받은 택시비도 아끼려고
30분 거리의 집까지 걸어올 정도로 가난하고 가난했어.
그때마다 돌아오는 그 추웠던 거리의 차가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힘들게 졸업하고 항상 돈돈거리며
싸구려입고 먹으며 그게 싸구려라고 생각도 못하고
그냥 좀 사는게 힘들구나 난 가난하구나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어느날 돌이켜보니
내가 살았던 우리지역의 특산음식을 파는
음식점에서 그 음식을 한번도 사먹어보질 못했더라.
내가 먹고 입은건 죄다 싼거였더라는 걸 뒤늦게 느끼고
상대적 박탈감에 둘러쌓여 이렇게 살다간 끝도 없겠다싶어
이 악물고 공부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았고
평소 계산이 무척이나 빠른 내가
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슬프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꽤 높은 연봉에 잘 산다.
그러나 여전히 내 아버지는 아직도 가난하고
내 형제들도 가난하다



연봉이 올라가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달라졌고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며 많은 걸 느꼈다

중산층에서 자란 그와 만나면서
내가 겪었던 가난의 순간들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말 가난했었구나.

대학때 재미삼아 용돈 벌어 떠나보는 첫 해외여행
등록금과 학원비를 지원받고
취업전까지 공부할 수 있는 여유
백화점에서 사는 옷
가족들과 외식
새 아파트에서만 살아보고
할부없이 구매해준 자동차를 타는 그
나누고 사주는게 당연한 그와
항상 아끼고 아끼느라 낡아빠진 내 모든 것
나누기보단 뺏기기싫어 지켜려하고 했던 일생
늘 계산에 빠르고 악착같았단 내 모습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항상 억척스러웠던 나

물건을 살때 항상 저렴한 가격순
싼거
가난이 오랫동안 나에게 준 건 나도 모르게 깊숙이 침범한
피해의식과 돈에 대한 민감함
그리고 싸구려와 타협하는 법.
아버지의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마당에드러눕던 기억
푸세식 화장실.
낡고 추운 주택
엄청난 더위에도 에어컨이 없었기에
낡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했던 기억들

같은 시절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르게 살았던 그를 보며
내가 살아온 삶은 왜 그렇게 늘 힘들고 어려웠을까...



이 모든 것이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고 절박하게 노력할 수 있었던 동기부여
계산과 돈 냄새에 예민한 후각덕분에 좋은 성과를 내며
받게되는 높은 연봉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하기엔
동기들을 비롯, 결혼 후 만난 중산층 사람들의 가정환경은
너무 다르다

그들은 처음부터 나와 출발선이 달랐고
내가 고통스럽게 이뤄낸 것들은 그들이겐 당연한거였어
주어지는 것이었다.

혼자 벤츠를 타고 고향 톨게이트로 들어서서 달리는데
갑자기 예전에 너무 힘들게 다녔던 그 길이
나타날때 가슴에 뜨거운게 차오르며 서러움의 눈물이 터졌다.
그 춥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그게 오버랩되면서 너무 아프고 슬퍼서
혼자 운전하면서 우는데 진정이 안되더라
지금의 나는 그때 가난해서 30분씩 걸어다니던 그 아이가
아닌데 마음속에 깊이 침범한 가난의 상처는
현재에도 불쑥불쑥 나를 괴롭힌다.
좋은거 먹고 사고 즐길때 문득문득 그 가난한 내가
떠오르며 눈물이 울컥울컥 난다.
그 감정을 정의해보면 지금의 성공에 대한 감회따위가 아니다.
그건 명확한 서러움이었다.


물론 늘 그렇진 않다.
여유로 인해 마음이 행복하고 즐겁고 지금은
나눌수 있게 되었으며 돈돈 거리지 않는다.
지금은 좋은거 신고 입고 먹으면서 가격은 안본다.
항상 가격표부터 보고 헉...하던 버릇
그 버릇을 고쳤고 해외여행도 일년에 두번씩은 간다


아이는 딱 하나만 낳고 더 안낳았다
외동이어야만 해서가 아니다. 내 노후도 내가 준비해야 한다.
아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우리아이는 꼭 대학등록금 내줄거다.
하고 싶었던거 배우고 싶었던거 헝제들에게 양보하느라
말도 못꺼냈던 기억때문에 많이 물어보고 소통할거다.

내가 입사 전까지 매달 나를 옥죄였던 학자금대출...
아버지가 밀린 건강보험료때문에
내 아르바이트 통장이 압류되던 기억.
모두 잊지 않을거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더욱 더 부모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내 아이에게 최소한의 뒷바라지는 하고 싶다.
명품 해외여행을 주는게 아니라

최소한.
돈때문에 치욕스럽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주기 싫은 것이다. 가난은 그런것이다
지금도 20년전 내가 겼었던 가난의 고통을 겪는
어린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좀 더 중산층의 세계를 접해보면
계속해서 느낄 것이다.
내 고향의 특산음식 식당에 30살이 넘어 처음 가보고
남들이 평범하게 하는 것들이 신기하고
맛있는 과일도 사먹어 보고
입사후 첫 제주도에 갔을때 느낀 감정
해외여행이란걸 신혼여행에 처음 가보고 느낀 기분.
이제 10만원이 넘는 비싼 것도 사도 된다는 기분
결혼하면서 산 드럼세탁기를 보며
내 어린시절 고장난 세탁기가 떠오르고
그 옆에서 찬물로 빨래하던 어린 소녀의 꽁꽁언 손..
그 기억이 겹쳐지며 울었던 서러움

내 손으로 뽑던 외제차
항상 야간 마감조 2천원을 더 받으려고
추운 새벽 어둑한 길을 걸어다니고 오래 서있서서 퉁퉁붓던
내 다리가 겹쳐지면서....

이제는 중산층의 삶을 여유있게 살아가고 있지만
모든게 고통속에서 이뤄졌고 가난의 상처는 큰 흉터로 남아
불쑥불쑥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아는 가난으로 인한 부끄러운 기억들
좋은 옷을 입고 비싼 신발을 신고
외제차를 타도 내가 이래도 되나 싶고
가난했던 시절에 비해 너무 사치인 것 같아 드는 죄책감.
그리고 서러움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매순간 서럽진 않았을테지

지금도 내 부모와 헝제들은 가난하다
가정의 대소사는 내 돈으로 치뤄져야 돌아가고
얼마전에도 가난한 내 부모는 돈을 빌려달라했다
시댁은 부유하진 않아도 평범하기에 우릴 도와주지만
가난한 내 집은 나에게서 가져만 간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는 고마우나
가난한 집의 둘째로 처절하고 불쌍하게 살아온
내 청춘에게는 전혀 고맙지 않다. 낳아달라고 한적도 없다.
그냥 내가 내동생이 안태어났으면
우리 큰언니 혼자 덜 가난했을지도.
지금 아직까지도 나는
가난했고 가엾고 억척스러운 과거의 나라는 소녀에게
매우 깊은 슬픔을 느낀다.



행복하게 살며 잊고 있었던

내 깊은 어둠을
잔인하게 하나하나 나열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부모님은 이 감정을 모르기때문이다.
이것은 오로지 내가 다 감내해야했다.
행복은 돈이 다가 아니고 개인의 방식이라 한다
그러나 가난의 현실은 이러하다.



230버는 아이 셋 엄마야.
돈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음으로서 느끼는
처절하고 불쌍한 모든 순간에 당신의 딸들은 틀림없이
노출될 것이다. 주변이 다 가난하면 그때는 모른다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내가 얼마나 가난했었는지
피부로 느끼는 그 순간에 몰려오는 고통.
당신은 우린 행복해라며 자위할건가?
그 세 딸이 부디 나처럼 아프지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아버지의 연봉은 오르지않을 것이며
일찍 철이 들 수 밖에 없는 세 아이중 누군가는 당신들을
부양하겠지. 과연 그 아이는 행복할까?


그리고 지금 가난한 친구들아. 이 악물고 꼭 가난을 벗어나라
욕심내고 욕심내면 너의 삶은 달라질거야.


그리고 내가 성공하기전까지 집이랑 인연을 끊던지

경제적 지원은 끊어라

내가 성공해야 가난한 내 집도 도와줄 수 있는거다.
계속 못 벗어나면 평생 "모두" 다 함께 가난하다.
우리 부모도 가난한 채로 두고

나는 성공에 집중했다.
두분 굶어죽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사시더라.
지금도 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을 하신다.
두분에게는 벤츠타는 자랑스러운 딸이겠지만
그 딸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고
지금까지도 마음깊이 아픈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는지
모르실테지.

소고기따위가 아닌.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가 아닌.
아이많이 낳은 가난한 집의 일찍 철든 자녀로서
가난으로 인한 상처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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