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작가미상인 인터넷 단편글 중 레전드
35,910 428
2020.10.23 02:38
35,910 428
그 애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쪽 안구에 개 눈을 박아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 인형에 눈을 박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 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 두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 애는 화장실 옆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짜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그 애는 불행했다.



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우연히 그 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 그 애를 보았다. 그 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있었고 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었다. 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니네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그 애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일년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그 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3월 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6월 1일 딸기를 먹었다. 9월 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11월 4일 생일이다. 그 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 아버지는 그 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 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 고추며 토마토를 따버린다고 편지에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한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생일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 애는 왼쪽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 사고라고 했다. 라면은 구멍가게 앞에서 쌓인 것을 그냥 들고날랐다고 했다. 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얼큰하게 취해서 그 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 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파도 계란도 안 넣고. 뻘겋게 취한 그 애의 얼굴같은 라면국물을.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날 그 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 도살장에서 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백마리 소머리에 징을 내리치면서, 하루종일 탁주와 핏물에 젖어서. 어느날 은행에 갔더니 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베인거지. 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 애는 술집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그 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나지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주었다. 그 애 연락을 받고, 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 참에 생색도 내고. 그 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 애의 누나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 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그 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27살이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 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그 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꺼야. 나한테 그런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애가 좋았지만 그 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댓글 42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필사하기 좋은 문장과 사랑스러운 스누피를 한 권에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피너츠 에디션! 843 08.27 116,885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07.13 807,269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864,171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4,310,423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60812 기사뉴스 저작권법 침해 강력 제재] 20.04.29 37,439,691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296,20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2 21.08.23 8,732,95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630,24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54 20.05.17 8,863,546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5 20.04.30 8,736,347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타회원 글/댓글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773,589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44687 이슈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첼시 이적 18:38 2
3144686 유머 신발 왜 때렸을지 아는사람? 18:38 16
3144685 이슈 14살 짜리 애가 엄청난 투구를 보여주는데 댓글에서 나이 이야기만 함 18:38 31
3144684 이슈 10CM(십센치) 일말의 가능성 챌린지 with 아이브 안유진 18:36 57
3144683 유머 먼작귀 모몽가의 정체 9 18:33 431
3144682 기사/뉴스 타블로, 에픽하이 팬들에 사과…“멤버 한 명이 완전 소시오패스” 18 18:33 1,681
3144681 유머 이어폰 끼고 소원을 말해봐 듣는 사람 특징 8 18:30 904
3144680 유머 최근에 애들 밥통을 열어둔 적이 없는데 누가 자꾸 열어서 알곡 눅눅해지게 누가여는거임? 하고 어리둥절했는데 자기들이 열고 곳간 터는 거였음 5 18:30 1,503
3144679 기사/뉴스 생활고 속 간병 부담에 친형 살해한 50대 1심 징역 10년 1 18:28 156
3144678 기사/뉴스 전남광주·울산·전북·경북 호우특보‥중대본 1단계 가동 5 18:27 420
3144677 기사/뉴스 아이브, 데뷔 이래 첫 기록…'아이엠' MV 4억뷰 돌파 [공식] 4 18:25 209
3144676 이슈 신주쿠 굿즈샵에서 진행한 치이카와 인기투표 29 18:20 1,549
3144675 기사/뉴스 "청년 희망월급 350만 원, 실제 230만 원"…정부가 월급 갭 채운다 245 18:17 7,535
3144674 이슈 꿀벌이 좋아하는 콜라는? 펩시 vs 코카콜라 5 18:16 463
3144673 유머 와 돈버는법알아냄.. ㅈㄴ하기싫은 집안일 당근마켓에 구인 글까지쓰고 멈춰봐 20 18:15 3,492
3144672 기사/뉴스 [네팔 대홍수] 실종자 가족 "골든타임 완전히 지나…헬기 더 띄워달라" 14 18:11 1,860
3144671 이슈 이관희 유시은 곽민경 신승용.jpg 8 18:11 1,958
3144670 이슈 이즈나 izna 'HANDLE WITH CARE' Highlight Medley 18:10 108
3144669 이슈 [KBO] 오늘 두산 홈경기 시구한 앤팀 의주 13 18:08 893
3144668 이슈 [KBO] 오늘 롯데 홈경기 시구한 에이티즈 우영 10 18:07 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