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진이랑 멘트 출처는
지금은 고인이 된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 트위터임
[BIFF플래쉬백]시리즈
아시아 영화인, 영화제 글이나 짧은 출장기 보는 재미가 있어서 간혹 들어가서 피드 구경 했었는데...
2017년 칸 영화제 출장중에 돌아가셨음.
당시 올라온 사진들이 링크를 타고 새 창을 열게 (?) 되어 있어서
원문을 가져오지는 못함
에러 창 떠서 못 가져온 사진들도 많고
암튼 재밌게 봐주길
제 1회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준비중인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 당시 국내에 처음 소개된 대형 야외스크린은 관객을 압도하였고, 곧바로 부산영화제의 명물이 되었다.
제 1회 부산영화제의 피프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조안 첸이 무대인사를 하자 모여든 어마어마한 숫자의 관객들의 모습.
제 1회 부산영화제 상영관 중 지금은 문을 닫은 아카데미극장(구 왕자극장)의 모습. 실내 인테리어가 촌스럽게 보여도 당시에는 개봉관이었다.
1996년 제 1회 부산영화제에서는 중앙동부두에서 요트경기장 개막식장까지 배를 타고 이동. 선상에서 개막작 연기자들과의 인터뷰진행. 하지만, 이후 요트경기장에 정박하기 힘들어 배로 이동은 포기.
제 1회 부산영화제, 영화 '잠자는 남자'의 감독 오구리 고헤이감독과, 잠자는 남자로 출연했던 안성기씨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모습
제 1회 부산영화제에 '풍월'로 참석한 첸카이거감독. 당시 이장호 감독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이다
2회 부산영화제 야외상영장에 입장하는 관객의 모습. 아치가 매우 소박하다.
2회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부문에는 '초록물고기'의 이창동감독, '모텔 선인장'의 박기용감독,'내 안에 부는 바람'의 전수일감독이 초청되었다. 그야말로 쟁쟁한 감독들의 인상적인 데뷔무대.
2회 부산영화제가 발굴한 또 한명의 젊은 감독 프룻 첸(홍콩). '메이드 인 홍콩'으로 호평을 받았었다. 당시 프룻 첸감독의 앳된 모습
BIFF 플래쉬백]1997년 2회 부산영화제 메인 극장 중의 하나였던 남포동 국도극장의 당시 모습. 지금은 문을 닫았다.
제 2회 부산영화제(1997) 개막작 기자회견은 파라다이스호텔 야외가든에서 이루어졌다. 주연 제레미 아이언스는 기자회견 중 담배도 피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자회견에 임했다
1997년 2회 부산영화제 검열철폐시위 중 경찰에게 시위를 막지말라며 항의 중인 이용관 집행위원장(당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과 김동원 감독
2회 부산영화제 최고의 인기감독이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핸드프린팅 장면. 남포동 PIFF 광장
제 2회 부산영화제의 폐막작은 허안화의 '반생연'. 허안화감독과 주연배우 여명이 폐막식에 참석. 여명은 겸손하고 친절한 매너로 영화제 스탭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97년, 1회에 이어 다시 부산을 찾은 에릭 쿠감독. 역시 아주 젊은 청년의 모습
[BIFF 플래쉬백]2회 부산영화제에 '초록물고기'로 초청된 이창동감독과 문성근씨의 모습
BIFF 플래쉬백]1998년 3회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게스트 중 이병헌씨. 풋풋한 꽃미남의 모습.
3회 영화제 개막작 감독인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굳이 비지니스 클래스 티켓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 중의 한 분.
부산영화제 초창기 메인 극장 중의 하나였던 부영극장의 내부모습. 지금은 쇼핑센터로 변했다. 차이밍량감독이 부영극장을 보고, 고향인 말레이시아 쿠칭의 극장과 유사하다고 코멘트하기도.
1998년 3회 부산영화제에 <파란 대문>으로 초청을 받은 김기덕감독과 배우 이지은씨가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모습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사진전과 오픈토크를 했었던 이자벨 위페르는 1998년에도 <육체의 학교>로 부산을 찾았었다.
[BIFF 플래쉬백]3회영화제 폐막작은 <간장선생>(일본). 폐막식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이마무라 쇼헤이감독과 주연여배우 아소 쿠미코
3회 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작은 지아장커의 <소무>. <소무>는 그의 장편데뷔작.
1999년 4회 부산영화제 야외상영장 입구. 아직도 입구 아치는 다소 소박한 모습
1999년 4회 부산영화제 개막작은 이창동감독의 <박하사탕>.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개막식에서 이창동감독과 배우,설경구,김여진,문소리씨, 제작자 명계남씨
1999년 4회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과 수상자. 왼쪽부터 인도네시아의 국민배우 크리스틴 하킴,수상자 오쿠하라 히로시감독(일본), 배우 모모이 카오리, 배용균감독,지아장커감독
]1999년 4회 부산영화제 개폐막식장 겸 야외상영장 입구에는 노천카페와 간이 레스토랑이 있었다. 당시 모습.
1999년 4회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이 끝난 뒤 무대에 걸터앉아 편안하게 관객과의 대화에 임하는 <송어>팀. 오른쪽부터 박종원감독, 강수연,설경구,황인성씨
]1999년 4회 부산영화제 핸드프린팅의 주인공은 유현목감독, 황정순여사, 장이모감독. 유현목감독은 회고전,장이모감독은 폐막작 감독으로 부산을 찾았다.
2000년 5회 부산영화제, 남포동 부산극장 외벽에는 영화제 참가 감독들의 사진을 담은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2000년 5회 부산영화제의 개막작은 부다뎁 다스굽타의 <레슬러>. 인도영화로는 첫 개막작. 사진은 부다뎁 다스굽타감독과 주연여배우 자야 실, 김동호집행위원장님.
2000년 5회 부산영화제 뉴커런츠부문의 쟁쟁한 심사위원단. 지앙원,크즈쉬토프 자누쉬,강수연,부다뎁 다스굽타,미셸 시망.
수영요트경기장의 야외상영 장비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야외상영 전문업체인 시네렌트사로부터 장비를 대여해서 사용했었다. 사진은 시네렌트사의 여성 엔지니어.
2000년 5회 부산영화제 화제작이었던 용유스 통큰턴의 퀴어시네마 <철의 여인들>(태국)의 감독과 출연배우들의 GV.
2000년 5회 부산영화제 PSB 관객상은 류승완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차지
5회 부산영화제(2000) 폐막작은 왕가위의 <화양연화>. 왕가위, 장만옥, 양조위가 폐막식에 참가
]5회 부산영화제(2000) 뉴 커런츠상 수상자는 <내가 여자가 된 날>의 마르지예 메쉬키니(이란). 그녀는 모흐센 마흐말바프감독의 부인이기도.
5회 부산영화제(2000)의 PPP 부산상은 로우예와 유릭와이가 공동수상.로우예의 <여름궁전>은 이후 완성되어 200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
5회 부산영화제(2000) 뉴커런츠 초청감독들(2).림위화,유키사다 이사오,딩지안쳉,변혁,우미선감독.
2001년 6회 BIFF. 부산영화제의 가장 열렬한 팬이자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한 허우샤오시엔감독의 핸드프린팅 행사 모습.
2001년 6회 BIFF. 영화 <잔다라>로 부산을 찾은 단골손님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과 홍콩여배우 종려시.
]2001년 6회 BIFF. 뉴커런츠상과 관객상 수상자는 <꽃섬>의 송일곤 감독.
2001년 6회 BIFF의 대미를 장식한 영화는 차트리찰레름 유콘 감독의 대작 <수리요타이>. 태국영화로는 처음 폐막작에 선정된 작품
2001년 6회 BIFF 에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로 다시 부산을 찾은 이마무라 쇼헤이감독. 연로하셔서 관객괴의 대화는 의자에 앉아서 진행하셨다.
2001년 6회 BIFF 에 다큐멘터리 <캬카라바아>로 부산을 찾은 나오미 가와세 감독의
2001년 6회 BIFF 뉴커런츠 심사위원단. 폴 클락, 피터 반 뷰런, 윤정희, 허우샤오시엔, 논지 니미부트르
2001년 6회 BIFF 에는 칸,베를린 집행위원장이 모두 참가. 사진은 김동호 위원장님,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집행위원장, 자크 제베르 칸 감독주간 프로그래머, 디터 코슬릭베를린영화제집행위원장
2001년 6회 BIFF 개막식 사회는 배우 송강호씨와 방은진 감독이 맡았다.
[BIFF 플래쉬백]2001년 6회 BIFF는 11월에 개최. 추위때문에 개,폐막식은 실내공간인 전시컨벤션홀 벡스코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