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아이돌들은 잘 알려져있고 유명하지만 그 전에도 아이돌이 있었음
어떻게 보면 0세대 아이돌들이 있었기 때문에 1세대 아이돌의 탄생 기반이 생겼다고 볼수도 있음 서로 연결된 지점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ㅋㅋ
이 시기 아이돌들을 X세대 아이돌이라고 부르기도 함
데뷔 순서대로 써봄
1. 소방차 (1987데뷔)
DSP 미디어 이호연이 기획한 대한민국 최초 3인조 댄스그룹.음악방송 KBS 2TV '젊음의 행진'에서 백댄서팀으로 활동하던 김태형, 정원관, 이상원으로 구성됨
https://gfycat.com/TimelyDeepAurochs
1집 데뷔앨범 '어젯밤 이야기'가 대히트하면서 학생들 사이에 소방차의 머리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소방차 학용품 굿즈 등이 유행하였음
하지만 1988년 인기멤이었던 이상원이 솔로전향을 하며 탈퇴하고 도건우를 영입하였지만 이후로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면서 점점 하락세를 타게됨
복잡한 역사를 겪으며 짧은 전성기를 누린 그룹
여담
- 이호연은 소방차의 성공 후 살던 집을 털어 DSP를 창업 후 젝스키스, 핑클, 클릭비, SS501, 카라 등 아이돌 그룹들을 기획하고 데뷔시킴
- 그리고 소방차 매니저였던 김태송은 20년후 TS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근황
- 김태형 : 소방차 해체후 솔로 데뷔, 이후 작사가 및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1세대 아이돌 NRG를 발굴
- 이상원 : 88년 솔로로 전향했다가 93년 7인조 아이돌그룹 '잉크'로 재데뷔, 다시 소방차로 복귀하였다가 트로트 혼성그룹을 결성하기도 하였음
- 정원관 : 이후 연예계 활동을 지속하면서 소방차 재합류와 탈퇴를 반복. 걸그룹 'i-13' 제작. 현재 연예기획사 에스엔비이엔티 사장
- 도건우 : 소방차 해체 후 음반기획사를 운영하며 MC몽 등 피플크루 멤버 육성, 현재는 R.ef 멤버 발철우와 동부이촌동에서 LP바 운영중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 불린 남성 솔로 댄스 가수, 80년대 한국 흑인음악, 클럽댄스계 0세대 인물.
SM 1호 가수. 외모, 춤, 가창력, 작사작곡 능력까지 다 갖추었으나 인기 최정상마다 잘못된 선택으로 무너진 재능캐
한편 80년대 후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수만은 '새로운 음악', '새로운 춤'을 앞세워 흑인음악에 기반을 둔 가수를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문나이트 관계자에게 춤 잘 추는 사람을 추천해달라 하였음. 이때 현진영와 이주노를 추천받았으나 노래를 더 잘하는 18세의 현진영을 발탁하게 됨.
몇개월 후 출소한 현진영은 이수만에게 버림받게될까 두려웠으나 이수만은 따뜻하게 감싸주며 '네가 다시 성공하려면 더욱 피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다독였다함. 이때 현진영은 친구 이탁과 함께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작곡해서 이수만에게 들려주었고,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를 지켜본 이수만은 당장 판을 찍자고 했다함.
현진영은 1992년 8월 '흐린 기억속의 그대'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함. 발매 2주만에 1위 한 것을 시작으로 93년 초까지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후속곡인 '현진영GO 진영GO'역시 큰 인기를 끌었음. 무대마다 현진영이 입고나온 X자가 그려진 후드티는 전국적으로 유행하였고 X세대의 상징이 됨. 또한 미국의 크리스 크로스 춤 스타일에 탈춤 동작을 접목한 '엉거주춤'이 전국 초딩들 사이에 유행하게됨. 현진영의 회고에 따르면 한창 잘나갈 시절 두 달 카드값으로 1억 7천만원을 쓰기도 했다고.
2집이 대성공을 거두고, 현진영은 3집 앨범에 들어갈 곡들을 작곡하면서 아프리카에 직접 가서 주민들의 노래소리를 따오기도 하고 대선배 인순이에게 피처링을 부탁하는 등 만반의 준비 끝에 1993년 9월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매함. 2집의 대성공 직후여서 3집 앨범은 선주문 100만장을 돌파하기도 하였음.
현진영 - 두근두근 쿵쿵
위 영상에서 와와3기 멤버인 션 (지누션의 션)을 찾아볼 수 있음ㅋㅋ
하지만 첫 방송날 '하얀색 팬티라인이 노출되었다'는 이유로 방송3사에서 방송정지를 먹음
사실 이날 리허설에서 조끼 지퍼를 잠그기로 피디와 합의를 했으나 대기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수만이 '진영아. 그럴거면 너 그거 왜 입고왔니? 생방 들어가면 지퍼를 내려라'라고 말해서 그대로 했다고 함. 이수만은 방송 정지 당한 후에도 멋있으니 잘했다고 칭찬했다고.
현진영은 3주간의 방송정지 후 활동재개 일주일만에 다시 마약 복용 혐의로 잡혀가면서 3집 활동을 접게됨. 이때 회사가 압수수색을 받고 이미 생산해놓은 앨범 40만장을 압류당하는 등 SM은 도산할 뻔 했지만 이수만이 개인재산을 처분하면서 겨우 회사를 살림. 그리고 그 가난한 연습실에서 탄생한 그룹이 H.O.T
이때 와와의 매니저였던 정해익은 현진영의 잇따른 마약사고를 지켜본 끝에 H.O.T 부터 숙소시스템을 도입해 함께 생활하며 사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됨.
이렇게 현진영의 짧고 화려한 전성기는 막을 내림
여담
- 현진영이 데뷔할때 하고나온 '헤드셋 마이크'가 대한민국 최초. 이후 댄스가수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됨
- 마약혐의로 세 번째 수감됐을때 방장이 "어 현진영이네? 흐린기억속에 불러봐라"라며 노래와 춤을 시켰으나 지금 해버리면 나갈때까지 매일 노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방장과 대립했다함. 하지만 어느날 맞은편 방에서 전인권(마약혐의로 같은 구치소에서 복역)이 '그것만이 내세상...' 하고 노래하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니 선배도 노래하는데 니가 감히 안하냐"는 방장의 말에 결국 승복하여 매일 구치소에서 '안개비...', '그것만이 내세상...'이 교차로 울러퍼졌다고...
근황
- 2002년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결심후 대학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공개입원, 수개월간의 입원치료 끝에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마약근절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공개입원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4집 앨범 판매량이 높아지기도 했다고...
- 재즈힙합 장르로 전향 후 '소리쳐봐'라는 노래로 다시 한 번 재기에 성공함
- 10년간 연애 끝에 배우 오서운씨와 결혼하고 방송,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중
- 애견인으로 유명하며 유기견, 학대견 구출활동을 하기도 하였음
4. 서태지와 아이들 (1992데뷔)
대한민국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그룹.
락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는 시나위 해체 후 랩 음악에 심취하게 되고 댄스 그룹을 만들겠다는 결심 끝에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나 3인조 댄스그룹을 결성하게 됨. 이때 양현석이 서태지한테 춤 가르쳐준다고 돈 받고 군대로 튀는 일이 있기도 했음. 이주노는 늦게 합류한 바람에 1집에 이주노의 목소리가 없음.
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
이 무대 중간에 앉았다가 눕기도 하는데 이 방송을 본 고위 관계자들이 노발대발 했다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와 함께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10대들의 상징이 되었고 랩을 대중화 시킴. 이후로도 랩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국악과 힙합, 헤비메탈을 접목하고(2집 하여가), 랩 메탈(3집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갱스터 랩(4집 컴백홈) 등 매 앨범마다 새로운 장르를 소개하며 가요계에 변화를 가져옴.
서태지 이후로 대한민국 가요계는 모던 댄스와 랩 뮤직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수많은 댄스, 힙합 뮤지션들이 탄생하는 기반이 됨. 또한 매 앨범마다 새로운 컨셉과 패션을 선보이며 유행을 선도하게 됨. (스쿨룩, 힙합, 스노우보드 패션 등). 최초로 전속 코디네이터를 두었고 돈을 투자하여 질높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여러 변화를 불러일으킴.
서태지와 아이들 - 발해를 꿈꾸며
서태지와 아이들은 3집 부터 사회문제를 반영한 곡들을 선보이며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함. 특히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이데아'에 대해 기성세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으며 3집 활동 당시 '치마'를 입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당하기도 하였음. 하지만 이같은 사회비판 가사는 이후 대한민국 아이돌들의 노래에 큰 영향을 미침. (SMP같은...)
또한 1집 성공 이후 독자적으로 회사를 차려 활동하는 이들에게 업계 사람들은 '누구때문에 떴는데 건방지게'라는 시선 속에 각종 어이없는 이유들로 방송금지를 당하거나 공격을 받았음. 당시 기준 곱상한 외모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던 서태지를 향해서는 임신설, 호모설 등 각종 황색 언론의 루머들이 따라다니기도 하였음.
당시 방송국은 연예인들에게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자나 다름없었고 방송국이 불러서 활동하라면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으나 서태지는 '음악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활동을 접고 다음 앨범때까지 휴식기를 가지는 형식을 최초로 취하게 됨. 이같은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서태지가 1집내고 은퇴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음.
서태지와 아이들은 잦은 복장, 외모 규제와 강제적인 타 프로그램 출연 강요 등을 거부하면서 방송국과 맞서며 PD들에게 괘씸죄로 찍히기도 하였음. 하지만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기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이같은 규제는 곧 풀리게 되었고 동시기 활동하던 댄스 가수들이 이 덕분에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링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고마워하기도 했음.
서태지와 아이들 마지막 방송- 필승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96년 1월 뚝섬에서 4집 활동곡 '필승' 라이브를 마친 후 서태지와 아이들이 갑자기 잠적하였음. 며칠간 멤버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떠도는 등 큰 소란이 일었음. 그리고 얼마 후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뉴스
1얼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태지는 이렇게 말함.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 주었다." 이 말을 끝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해체를 하고 은퇴하게 됨. 이 소식은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3대 방송사의 9시 뉴스에 메인으로 보도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킴.
이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해체를 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됨
여담
- 해외에서 케이팝의 시초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론한다고 함
-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1~4집 모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음.
- 서태지와 아이들의 총 활동 기간은 단 4년
- 공교롭게도 다들 어린 아내를 맞이함. 서태지는 16살 연하, 양현석은 12살 연하, 이주노는 23살 연하, 도합 51년
- 양현석은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팀명을 서태지와 아이들로 정한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사실 원래 팀명은 Taiji Boys 였으나 매니저가 방송출연을 위해 상의없이 한글로 개명시킨 것이었다고...
근황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듯하지만
- 서태지 : 1998년 5집 발매를 시작으로 2000년 6집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솔로 활동 시작, 지금까지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는 중. 배우 이은성과 결혼 후 딸과 함께 잘 살고있음. 최근 평창동 집 내놨다고 기사 뜸
- 양현석 : 여러모로 악명높아진 YG엔터테인먼트의 회장;;; 이만 줄임 으
- 이주노 : 1996년 영턱스클럽을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본인의 솔로활동은 큰 인기를 얻지 못함. 예능에 간간히 출연하며 안무가로 활동중
5. 노이즈 (1992데뷔)
가볍고 달달한 댄스곡의 대명사.
김창환 사단 출신 댄스 그룹. 본래는 노래와 작사작곡 실력이 있는 홍종구와 천성일 2인조로 데뷔하려 했으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박을 목격한 소속사에서 댄스 그룹으로 재편하기 위해 댄스 멤버 한상일, 김학규 두 명을 영입하여 4인조로 데뷔하게 되었음. 하지만 이 덕분에 그룹내에 프로듀서, 래퍼, 보컬, 댄서 포지션이 생기는 효과를 얻었음.
노이즈 - 너에게 원한 건
1집 데뷔곡이자 가요톱텐 골든컵 수상곡
이 곡을 시작으로 단번에 인기그룹이 되었고 후속곡인 '변명'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와 함께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게 됨. 92~93년은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등을 앞세운 댄스 음악들이 인기를 끈 시기였는데 노이즈는 미성에 듣기편한 사운드를 추구하며 다른 댄스가수들과 차별성을 보이며 인기를 구축하게 됨.
노이즈 - 상상속의 너
3집 타이틀곡이자 노이즈 최대 히트곡
1집 활동에 비해 다소 인기가 주춤했던 2집 이후 입대한 김학규를 대신하여 홍종호를 새 멤버로 영입 후 3집 '상상속의 너'를 발매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됨. 상상속의 너는 노이즈에게 두 번째 골든컵을 안겨주기도 하였음. 이후 4집, 5집도 가요 프로그램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이어가게 됨.
5집 이후 멤버들의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다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져갔으며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됨.
여담
- 슈가맨 13화에 출연하였음
근황
- 홍종구 : 98년 활동을 끝으로 은퇴후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영화배우 '고수'를 발굴함. 현재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부회장, 국제대학교 초빙교수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 불후의 명곡 같은 예능에도 간간히 출연 중
- 천성일 : 98년 활동 이후 은퇴. 홍경인, 신승훈, 조정현 등 여러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등 작곡활동을 이어갔으나 2004년을 마지막으로 작곡 활동에서도 은퇴. 방송활동은 완전히 접은 상태. 슈가맨 노이즈 편에도 출연하지 않음
- 한상일 : 의류사업 종사
- 김학규 : 배우로 활동중
- 홍종호 : 쇼핑몰 운영중
6. 듀스(1993데뷔)
대한민국 최초 힙합 그룹이자 대한민국 뉴잭스윙의 대표주자. 활동 당시보다 해체 후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그룹이기도 함.
이현도와 김성재는 구준엽, 강원래의 추천으로 현진영의 백댄서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함. 이들은 원래 와와2기로 활동하여 이름을 조금 알린 후 SM에서 데뷔할 계획이었으나 지방 야외행사 무대에서 현진영이 형사에게 붙잡혀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후 큰 실망을 하게됨.
현진영와 '와와들'로 뽑혔을 당시 김성재 잡지 사진(맨 오른쪽)
이후 이현도가 합류하면서 와와2기가 되어 현진영의 1집 후속곡 활동을 함께하게됨
현진영과 와와 2기 - 슬픈마네킹
이현도와 김성재의 얼굴과 동작이 가장 잘 보이는 영상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이현도는 여러번 오디션을 보았고 김성재 역시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여 한양대에 입학하였으나 춤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음. 김성재와 이현도는 김광수 (그 광수 맞음ㅎ;)에게 오디션을 보지만 퇴짜를 맞기도 함.
시간이 흘러 현진영이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이현도는 '너에게만'을 작곡하여 현진영 2집 앨범에 수록하기도 하였음. 이때 현진영이 와와를 계속 하자고 제안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SM을 떠나기로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SM과 결별하고 93년 새로운 소속사에서 듀스로 데뷔하게 됨.
이 둘이 떠나고 이수만이 와와3기로 발탁한 사람이 션. 참고로 션도 와와3기 끝나고 SM에서 데뷔할 계획이었는데 현진영이 마약을... (그래도 나중에 지누션으로 데뷔하고 대박남)
듀스 - 나를 돌아봐
1993년 4월 1일 데뷔앨범 '나를 돌아봐'를 발표함. 하지만 앨범 발표 후 한 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았음. 이때 듀스를 높게 산 SBS의 피디가 듀스를 음악방송에 출연시키면서 세련된 사운드로 인기를 얻었으며 대중음악계에 힙합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함.
김성재의 힙한 패션 스타일와 이현도의 뛰어난 작곡 능력으로 인기를 끌었음. 듀스의 2집과 3집은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되고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큰 인기를 얻었으나 3집 활동중 살인적인 스케줄과 스트레스 누적으로 가요톱텐 생방송 펑크 사건 등을 필두로 결성 2년 만에 고별 콘서트를 열고 해체하게 됨.
듀스-여름 안에서
지금도 여름명곡으로 꼽히는 3집 타이틀곡
이현도의 회고에 따르면 이때 해체한 이유는 각자가 원한 길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함. 이현도는 작곡가, 프로듀서로의 길을 가고 싶었고 김성재는엔터테이너의 길을 원했음. 그래서 이현도는 작곡을 하고 그 노래를 김성재가 부르는 투트랙 전략으로 해체를 했던 것인데...
김성재 - 말하자면
1995년 이현도가 작곡한 '말하자면'으로 성공적인 솔로 무대를 마친 김성재가 의문사를 당하게 됨....
여담
- 이현도는 아르헨티나 이민 관련 병역 문제로 논란이 있기도 했는데(아르헨도), 이현도의 말에 따르면 이미 듀스 결성 전부터 가족들 모두가 아르헨티나에 거주중인 상황이었으며 연예인 병역기피 문제가 일어났을때 자진출두하여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고 함
근황
- 이현도 : 듀스 해체 이후 솔로활동을 하다 프로듀서로 전향. 프로듀싱한 앨범으로는 룰라의 3!4!, 지누션 1집(말해줘), 유승준 3집(열정), 4집(비전, 연가) 등
- 이후 아이돌그룹 디베이스를 기획, 제작하기도 하였음
- 계속 음악활동을 하는 중
- 김성재님의 의문사를 다룬 그것이알고싶다 김성재편이 두 차례나 방송금지 처분을 받아 방송되지 못하고 있음. 이것과 관련하여 최근 김성재님의 동생 김성욱님이 현진영의 유투브에 출연해 참담한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음
그 외에 탑골지디로 뜨고 있는 양준일, 소방차의 이상원이 재데뷔 했던 7인조 그룹 잉크 등 인기를 크게 얻지 못한 남아이돌들도 있었음
이후 95년 위에서 언급된 박철우와 문나이트 출신 댄서 성대현이 속한 R.ef, 96년 이수만이 현진영 이후로 망망을 거듭한 끝에 제작한 그룹 H.O.T, 97년 소방차를 띄웠던 이호연이 제작한 젝스키스가 데뷔하며 화려한 1세대 아이돌 시대가 열리게됨
여성편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