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디시 부동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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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질문
최근에 올린 글에 대하여, 지인이 덧글로 이렇게 물었다. 다소 길지만 그대로 옮겨 본다.
흥미로운 글 너무 잘 읽었어요!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서울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최소한 몇 억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잖아요 대출을 받는 다는 것이 규제때문에 한계가 있구요. 왜 그 돈을 다른 방향으로 쓰질 않고 부동산으로 올인하는 걸까요? ooo님 얘기처럼 미국사람들은 은퇴 후에 부동산 자산을 현금화해서 좀 더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기는데 반해 우리 나라 하우스 푸어들은 현금자산이 적어 생활비가 없어 쩔쩔매는 걸 선택했을까요? 자식 때문일까요? 서울의 편리함 때문일까요? 님 말대로 국민들이 서울의 집값을 올린 게 맞는 거 같아요 다 욕심이죠 지금 평범한 일반 국민들은 절대 서울의 아파트를 살 수 없어요 어디 로또라도 되지 않으면 ... 신도시 4억 아파트 2억을 대출받아 산다고 해도 월 나가는 원리금만 백만원이 넘어가고 있어요 일반 가정에서는 이것마저도 부담인 현실이죠 실제적인 서울의 아파트를 가지고 싶다는 염원이 있어도 일반국민들은 청약조차도 넣기 힘든 현실인데 ... 실제 서울의 아파트를 거래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선에서 평범하지 않다고 봐야겠죠 어느 정도 받춰 줄 재산이 있는 사람들 청약까페에 서울 청약 올라와도 대부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넘사벽이라서;;; 근로소득 말고 금융소득으로 생활하기! 를 목표로 가지고 제테크 하시는 분들이 눈에 띄던데 아직은 한국은 의식 구조가 어쩔 수 없나 봐요 곧 죽어도 부동산... 그 만큼 시세 차익이 커서 그렇겠죠? 어느 블로거는 부동산이 안전 자산이라고 ... 저부터도 지방제외 서울 부동산이면 안전하다 생각할듯해요. 주식으로 1억을 투자했을 때 매년 40-50만원의 월세를 받는 것 처럼 하게 만들려면 너무 어려워요 참 어렵네요. 수요가 많아도 모두가 다 가지고 싶어해도 일반 사람들은 살 수가 없는데도 억제 정책이 효용이 없는 걸까요? 어차피 사는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이잖아요 ... 투기를 하려고 해도 자본이 있어야 하고 ...일반사람들은 서울쪽 아파트에 접근이 힘든데;;; 나라면 내가 돈이 많다면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좀 고민해 봐야겠어요.
여기서 묻고 있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내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왜 한국 사람은 서울 아파트에 열광하는가?” 였다. 그리고 그에 대답 하려다 보니 글 한 꼭지를 쓸 정도로 답이 길어지게 되어 아예 이렇게 별도의 글로 옮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당연하다.” 서울(권)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은 감히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는 별 다른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를 그저 반복할 뿐이다.
덧붙여, 이 글에서 말하는 “서울 아파트”란 “서울권 아파트”를 칭한다. 다만 입에 감기는 맛을 중시하여 서울 아파트라고 부르겠다.
1. 일반국민은 없다
서울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을 헤아리기 전에, 지인의 질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반국민>이라는 단어를 검토해보자. 저곳에서 지인은 자연스럽게 <서울 아파트 살 수 없는 사람 = 일반국민>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 = 비 일반국민>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구분 기저에는, <빈자=일반국민>, <부자=비 일반국민>이라는 기준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적절하지 않으며, 일반화 시킬 수도 없다.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하여 부자인 것은 아니며, 살 수 없다고 해서 꼭 빈자인 것도 아니다. 이 시장에서 일반 국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모두가 일반 국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장을 분석하고자 할 때 보다 유용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 VS 서울 아파트를 아직 못 산 사람
그리고 한국 부동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응당 있어야만 하는 세번째 그룹, <서울 아파트를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너무 소수여서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한 마디로 한국인 모두가 서울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 혹은 살 수 있는 사람은 돈이 많은 소위 “자본가”만 가능한가? 일단 그렇지 않을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를 사는 사람을 자본가라 부르는 것은 적절한 호칭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이 인과 관계가 반대이기 때문이다. 즉, 몇 억을 가진 사람들만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샀기 때문에 몇 억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러 통계를 살펴봐도 한국인의 자산형태는 부동산이 항상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자산들은 대부분 60년대부터 시작된 부동산 급등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누군가 아파트를 산 돈을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추적하면 대부분 아파트로 번 돈이다. 30년 전에 1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고, 조금 더 큰 아파트를 사고… 그렇게 계속 조금씩 갈아타면서 형성된 자산이 가장 많다는 뜻이다. 이들을 ‘비 일반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시대정신이었고, 우리 부모님 세대의 너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도리어 한국에서는 노동이나 부동산 외 금융으로 자산을 형성한 사람이 훨씬 더 드물다. 거칠게 말하자면, “현재” 아파트를 사는 사람과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거” 아파트를 샀던 사람과 사지 못했던 사람인 것이다. 이 역전된 인과관계 속에서, 질문자가 전제한 일반인과 비일반인이라는 구분이 와해된다. 모두가 일반인이다. 아파트를 샀느냐, 못 샀느냐, 혹은 샀더라도 그걸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로 운명이 갈릴 뿐, 그 모습들은 너무나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일반인과 비일반인, 부자와 빈자라는 관점을 던져버리고, 서울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1. 투자 상품으로서의 아파트. 2. 집으로서의 아파트. 3. 계급으로서의 아파트. 4. 승계로서의 아파트를 이야기 할 것이다.
2. 너무 완벽한 투자 상품, 서울 아파트
A. 완전한 안전자산
서울 아파트는 금융 투자 상품이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완벽하다는 데 있다. 얼마나 완벽하냐면, 한국에서 태어나 아파트 말고 다른 금융 상품에 손 댄다는 것이 너무 어리석은 일일 정도이다. 서울 아파트에는 너무 경이로운 특징들이 있어서 도리어 금융 투자 상품이라고 말하기가 꺼려질 정도이다. 나는 이 이유들에 대해 간단히 열거만 하겠다. 왜냐하면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경이는 당연히 서울 아파트가 완전한 안전자산이라는 데 있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러한 완전한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금융을 논하며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1950년대 이후로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수치의 낙폭을 경험하지 않았다. 주식처럼 등락을 거듭했다고 말하기엔, 등이 너무 높았고 낙이 너무 적었다. 금융 상품 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예금과 국채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바로 그 은행조차 도산하는 것을 보아왔으며, 몇몇 인접 국가가 모라토리움 선언을 하는 것도 꽤 많이 보아 왔다. 반면, 서울 아파트는 어떠 했는가? 한국 현대사 그 수 많은 곡절의 순간에도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한국 국민들이 서울 아파트의 안전성에 가지는 믿음은 엄청나며, 그리고 이 믿음은 고스란히 현실로 구현된다. 현실은 믿음을 불러오고, 믿음은 현실을 불러온다. 서울 아파트의 안정성은 믿음과 현실의 공고한 결합체이다. 이 안정성은 객관적 사실이며, 그렇기에 은행은 그 어떤 경우보다 부동산 담보 대출을 손쉽고,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그 어떤 금융 상품도 이보다 더 안전하지 못하다.
B. 가장 높은 수익률
두번째 경이는 그 수익률이다. 현재 하나은행에서 제공하는 펀드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은 17.40%이다. 대신에 매우 높은 위험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상품은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것이 금융계의 보편법칙이다. 서울 아파트만 뺀다면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서울 아파트의 리스크는 없다. 서울 아파트에서 예상되는 유일한 리스크(폭락)는 전쟁, 자연재해 정도이다. 경제위기조차 서울 아파트 값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IMF당시 집값은 확실히 낮아졌지만, 그 하락세는 몇 개월도 가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집값 폭락을 입에 담지만, 그것을 지금 예로 든 펀드 등의 금융상품과 비교하면 리스크라 부르기도 무안하다. 서울 아파트는 원금 손실이 나지 않는다. 반면 수익률은 어떠한가? 엄청나다! 이에 대한 여러 통계와 자료는 생략하겠다. 과연 서울 아파트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이 몇 개나 있을까? 10년 전 코스피 지수는 1700선이고, 오늘 코스피 지수는 2195이다. 물론 코스피지수로 금융상품의 수익성을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한국 전체 기업계의 성장률과 부동산 가격의 성장률 사이에 너무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보다 더 수익률이 높지 않다.
C. 엄청난 금융 혜택
세번째 경이는 금융 혜택이다. 서울 아파트에 관하여, 혹은 부동산 전체에 대하여 주어지는 금융 혜택은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관대하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무감각하지만, 은행에 가서 내가 10억짜리 펀드에 들겠으니 7억을 대출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담보는 그 펀드이다. 은행직원은 미친놈을 쳐다보는 눈길로 당신을 쳐다 볼 것이다. 그런데 왜 부동산은 이것이 가능한가? 당연히 앞서 말한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특징 때문에 그렇다. 은행 역시 부동산을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은행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이 부동산 불패를 믿고 있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일으킨 그 미치광이 같은 파생상품을 만들지는 않았겠지.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인은 “대출을 받는 다는 것이 규제 때문에 한계가 있구요.” 라고 말했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다. 다른 금융상품에 비하여 오직 부동산만이 규제 덕분에 엄청나게 특별히 대출을 받고 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디딤돌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살펴보라. 엄청난 저리로, 엄청난 돈을 선뜻 빌려준다. 물론 이것은 서울 아파트 가격을 올려주는 매우 주요한 요인이다. 현재 신도시 아파트의 가격이 대부분 4억으로 맞춰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를 정부 대출제도의 영향으로 본다. 아파트 가격이 4억에 70% 대출(2.8억)을 받는다면 자기 돈 1.2억이 필요한데, 신혼 부부가 각자 6000만원 정도를 모았다고 가정하면 간신히 하나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이 4억이라는 금액은 신혼부부가 서로 목마를 타고 까치발까지 서서 간신히 손이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아슬아슬한 지점인 것이다. 아파트 분양가는 바로 그 가격에 맞추어 형성되었다. 그 외에도 현재 문재인 정권은 전세자금 대출을 대폭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 역시 서울 부동산 가격을 급등 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앞선 글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민주주의 하에서 정부는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할 수 없고, 특히나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국민의 요구라는 것이 국가 전체에 대한 어떤 이상적인 그림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인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즉각적 해답들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이 요구들이 상호 모순적인 경우도 왕왕 있다. 집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요구와 디딤돌 대출과 전세자금 대출을 더 많이 해달라는 요구는 서로 상반되는 요구이다. 그리고 이 상반된 요구 속에서 정부는 마치 곡예사가 줄을 타듯 정책을 입안한다. 대부분은 정책의 타겟 층을 나누는 방식이다. 즉, 대출 지원의 타겟은 청년들이며, 집값 억제 정책의 타겟은 고가 아파트 소유자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 대출 정책에 대해 지금 길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이 다른 건 몰라도 아파트와 부동산 사는데 돈은 매우 기꺼이, 매우 많이 빌려주는 나라라는 점만 강조하겠다.
게다가 전세는 또 어떤가? 한국 특유의 제도인 이 전세 제도는 아파트를 사는데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여러가지 매우 특이한 부동산 전략을 가능케 한다. 전세, 그것은 무이자 대출이다. 이것이 갭투자를 가능케 한다. 지금 당장 호갱노노 어플을 켜보라. 그러면 갭 금액에 따라 아파트를 검색할 수도 있다. 현금 2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서울권에 수두룩 하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는 소액 투자가 가능한 금융 상품이다. 그리고 소액을 투자했다고 해서 수익률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 조차 아니다. 3억짜리 아파트를 전세끼고 2000만원으로 사고, 그 후 아파트 시세가 오른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다. 심지어 전세이기 때문에 이자도 내지 않는다. 그 외에도 온갖 방법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낼 수 잇는 방법이 부동산계, 특히 아파트에는 많다. 나는 여기에서 분양과 청약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역시 작은 자본으로 매우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들이 많다. 아파트는 소액 투자로 로또에 버금가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길이 가장 다채롭게 열려 있는 금융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보다 더 적은 자기자본비율로 살 수 없다.
D. 일반인을 위한 투자 상품
네번째 경이는, 일반인을 위한 투자 상품이라는 점이다. 내가 여기서 일반인이라고 일컫는 것은 “금융 전문가가 아닌 사람”을 뜻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퀴즈를 하나 내보자.
STX팬오션 주식의 미래 가격을 예측해보시오.
STX팬오션은 주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정도 익숙해도,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생소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어지간히 금융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저 주식이 앞으로 오를지 떨어질지 예측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저 질문에 맞닥뜨리면 겁을 먹는다. “난 그런 쪽은 잘 몰라서…” 라고 손사래 치기 쉽다. 게다가 주식은 그나마 쉬운 장르이다. 선물, 옵션, FX, 파생상품, 펀드, 비트코인(?) 등, 소위 금융 상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모두 상당한 학습을 요구하며, 그러고 나서도 그 확실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반면 다른 퀴즈를 내보자.
서울 X 아파트의 미래 가격을 예측해보시오.
여기서 내가 그냥 임의의 아파트 X라고 한 것은, 그나마 문제를 좀 어렵게 보이기 위해서 한 것이다. 반포 자이 아파트의 미래 가격을 예측해보라고 하면 너무 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하여튼, 저 퀴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겁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일반인으로서 그 아파트를 평가한다. 그 평가 기준은 너무 익숙한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인가?” 오직 그 기준 하에서만 아파트를 판단해도 좋다. 교통은 어떤지, 학교는 어떤지, 분위기는 어떤지, 언덕길인지… 그리고 그 일반인의 판단은 항상 매우 정확하다. 왜냐하면 아파트 가격은 바로 그 일반인들의 선호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STX 팬오션의 주식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낯선 지식을 학습해야 하지만, 어떤 아파트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 없다. 간단히 말해, 내 눈에 좋은 아파트는 남의 눈에도 좋다. 이것은 다른 금융상품에 통용되는 특징이 아니다. 내가 어느 날 어느 주식에 꽂혔다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좋은 주식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어느 아파트에 꽂혔다면? 아마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 아파트는 좋은 아파트일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아파트 투자의 일반성은 수 많은 패가망신의 근원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파트를 통해 자산을 획득했다. 그런데 자산을 획득하고 보니, 자신이 무언가 유능한 투자자라도 되는 기분에 휩싸인다. 특히 우리 시대 많은 아빠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금융 전문가 행세를 하며 서울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 투자하고 패가망신했다. 그것은 무지렁이 농사꾼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노벨상을 받은 생명공학자라도, 배우지 않았다면 금융 상품에 대해서는 무지렁이 농사꾼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는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로 성공한 자들은 이런 상식을 쉽게 망각한다. 본디 금융 상품이란 어려운 것이고, 난해한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 접근할 만한 장르가 아니다. 하지만 다만 서울 아파트만은 아무런 전문적 지식을 요하지 않고도 엄청난 안정성과 엄청난 수익성을 동시에 보장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아파트는 진정한 ‘일반인을 위한 투자상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보다 더 일반적이지 않다.
정리해보자. 금융 상품으로서의 서울 아파트는, 위험이 없고, 여러 금융 상품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며, 소액 투자가 가능하고, 레버리지 효과를 받는게 쉽고, 전문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계인에게 이러한 상품이 있다고 설명한다면 그는 날 거짓말쟁이라 비난하리라.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실제로 그렇다. 이것은 금융 상품이라기엔 너무 완벽하다. 금융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한국에서 투자를 하고자 할 때 서울 아파트 외의 것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 집으로서의 서울 아파트
A. 집에 대한 유구한 집착
그렇다면 투자 상품으로서의 아파트가 아니라, 집으로서의 아파트는 어떠할까? 투자 상품이 아니라 내가 주거하는 서비스로서의 집 말이다. 이 지점에서도 아파트는 너무나 탁월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아파트 가격의 방어선을 이룬다.
하지만 아파트가 아니라 먼저 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국인이 집에 가지는 그 유구한 집착을 길게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땅에서부터 시작 되었을 이 땅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 오래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농경 민족 중에서도 유달리 집착이 심한 편인 것 같다. 여하간 우리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의미는 너무 크다. 내 집, 그것은 삶 전체의 기반이다. 월세와 전세는 너무나도 불편하다. 모든 것이 다 충족되어 있어도 월세와 전세를 살면 ‘집 없는 설움’이라는 것이 계속 누적된다. 집주인이 굳이 고약하게 굴지 않아도 그렇다. 현대로 오며 한 곳에서 평생을 사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나의 터”를 잡기를 그리도 원한다. 엄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집 값이 떨어지든 오르든 상관 없다. 다 같이 오르고 내리니까. 집 하나 팔아 집 하나 살 뿐이다.”
이 인식 속에서 집은 금융상품이 아니다. 심지어 그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 4억짜리 집이 10억으로 폭등해도, 반대로 10억짜리 집이 4억으로 폭락해도, 그것은 숫자의 변화일 뿐이다. 급등했다 하여 부자가 되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집 한 채일 뿐이다. 급락했다 하여 가난한 자가 되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집 한 채일 뿐이다. 나만 떨어지거나 오른 게 아니라, 주변이 함께 오르고 떨어졌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집 없는 자와 집 가진 자의 인식의 차이가 많이 벌어진다. 집 없는 사람에게 10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엄청난 자산가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아파트 가진 사람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10억 이 아파트를 팔아도, 간신히 같은 동네로 이사할 수 있을 뿐이지, 더 ‘좋은’ 동네로 이사할 수 없다. 보통 서울 집값은 같이 오르니까 말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집 한 채 가졌을 뿐.” 이다.
아파트 자산이 일반적으로 소비재가 아니란 것을 기억하자. 그 돈은 까먹을 수 없는 돈이다. 10억 아파트를 팔아서 그걸로 맛있는 거 사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15억짜리 아파트를 사는데 쏟아 붓는다. 정말로 피치못할 상황(파산 등)에만 더 싼 집으로 이사한다. 한국 사람들은 집에 묶인 돈을 단순한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돈은 오직 다른 집으로만 교환된다는 의미에서 바우처(voucher)에 가까운 형태의 자산이다. 그것은 금액과 무관한 그저 한 장의 교환권이다. 집은 쪼개지지 않는다.
내 소유의 집 한 채를 소유하려는 한국인의 이 마음은 매우 강하며, 집에 관한 모든 움직임의 가장 깊은 바닥을 이룬다.
B. 위치적 가치: 서울
하지만 이것은 ‘집’에 대한 이야기고, ‘서울의 집’은 이야기가 또 다르다. 서울 아파트는 모든 집 중에서도 최고인데, 그 위치적 가치 때문이다.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 있고, 모든 편의가 있으며, 모든 것이 좋다. 지방의 궁궐 보다 강남의 지하 방이 더 좋다는 건 가격으로도 증명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생략한다. 하지만 아마 이 지점이 서울 아파트의 가장 사랑스러운 지점일 것이다.
C. 내적 가치: 아파트
하지만 이것은 ‘서울 집’에 대한 이야기이고, ‘서울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르다. 서울의 아파트는 그 내적 가치도 훌륭하다. 즉, 여타 다른 대안보다 살기 편하다는 의미이다. 아파트는 가장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건축 장르이며, 지금도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건축 장르이다. 빌라는 아직도 개인 건축주와 소규모 건축사들이 그리 깊은 고민 없이 설계하는 반면, 아파트는 수십 명의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작년에 분양한 아파트보다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그 결과 아파트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고, 거의 모든 측면에서 생활의 편리가 완벽하게 보장된다. 주차대수, 보안, 공간 활용, 공원, 학교, 쓰레기처리, 녹지, 일조권, 교통, 누수, 단열, 방음, 단지 내 부가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요소에서 아파트는 다른 주거공간에 비해 우월하다. 특히 최근 5년 사이에 부쩍 많아진 대단지 아파트들은 그 아파트 단지가 “모든 것을 다 갖춘 하나의 마을”이라는 개념 하에 건축되었다. 정말로 그곳에는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존재한다. 아파트의 편의성은 압도적이다.
결국 서울 아파트란, 그저 집으로서도 가장 높은 쾌적도와 만족도를 제공한다. 이것은 집값의 방어선을 이룬다. 만약 집이 순수하게 금융 투자의 대상이라면, 집값이 폭락하면 너도나도 팔 것이고, 이에 따라 낙폭은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금융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폭락한다 하여도 아주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맑스 식으로 말하자면 교환가치 뿐만 아니라 사용가치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가 집값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준다. 이러니 돈 욕심이 없는 사람도 서울 아파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돈 욕심 있는 사람은 더더욱 서울 아파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계급으로서의 아파트
아파트는 계급이다. 이 지점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왜 한국 사람들이 모두 서울 아파트에 열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서울 집 값이 너무 올라 서민이 살 수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때 그들이 쓰는 ‘집 값’이라는 용어와, 그들이 내심 생각하는 ‘집’은 상당히 다른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서울 아파트, 그 중에서도 꽤 괜찮은 동네의 아파트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TV 에서도 보통은 15억이 넘어가는 아파트 가격만을 비춰준다.
하지만 그들의 내심을 알면서도, 굳이 말꼬리를 잡자면, 서울에서 집을 사고자 할 때, 3억 미만으로 살 수 있는 곳은 꽤 있다. 아파트도 꽤 있으며, 빌라,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 주택 등으로 확장하면 정말로 상당한 선택지가 있다. 만약 여기서 지하 방과 달동네까지 포함한다면 선택지는 더욱 늘어난다. 자기 자본이 1억이 있다면, 대출을 끼고 어느정도 노려볼만한 가격들이다. 또한 서울이라 하더라도 그 위치에 따라 매우 천차만별이다. 물론 가격은 정직하다. 3억짜리는 모두 구리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그도 고려할만한 선택지 아니던가? 그러나 내가 서울 집값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그렇다면 빌라를 사는 건 어때?” 라고 할 경우, 모두 완전히 동일한 대답을 했다.
“빌라는 안 오르잖아.”
그들이 말한 집이란 아파트이다. 이를 의심할 순 없다. 그들은 서울 아파트 값이 너무 비싸 서민이 살 수 없다는 <요구>와, 빌라는 안 오르니까 싫다는 <거부>를 동시에 하는데, 어딘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는 이 이중적 태도에는 다소 복잡한 욕망이 뒤엉켜 있다.
먼저 <요구>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이 요구를 할 때, 그들은 자신이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처럼 말을 한다. 그런데 다른 상품에 대해서는 보통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람보르기니가 너무 비싸 서민들이 구매할 수 없으니 가격을 내리라는 요구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물론 단박에 집과 람보르기니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확실히 <집>이라면 그것은 필수재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약간 다르다. 서울 아파트는 람보르기니와 좀 더 비슷하다. 자동차에도 싼 자동차가 있고 비싼 자동차가 있는 것처럼, 집에도 싼 집이 있고 비싼 집이 있는 법인데, 서울 아파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비싼 집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래, 단순히 말해 돈이 없으면 싼 집을 사면 된다. 싼 빌라를 사라. 당연히 아파트보다 편의성은 떨어지겠지만 그것은 “필수재로서의 집”을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이 <요구>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나는 여기에서 그런 요구가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눈 여겨 보는 것은, 그들이 이 요구를 거의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지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치재를 요구한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된 것처럼 절박하다. 그들은 자신이 당연히 주어져야만 하는 필수재를 요구한다고 인식한다. 사실 서울 아파트는 필수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왜 그런가? 이 의심을 품은 채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거부>를 살펴보자. 그들은 빌라가 오르지 않아서 싫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아파트의 가격 오름세에 비해 빌라의 가격 오름세는 매우 둔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실 필수재가 아니라 자산 증식을 위한 ‘금융 상품’으로서의 아파트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분명 맞는 말이다. 옛날부터 아파트는 집이면서 투자상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석해도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할 순 없다. 돈이 없어서 수익률 좋은 펀드를 사지 못한다고 그리 절박해지진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아파트 요구>와 <빌라 거부>는 단순히 배부른 소리나 투정이 아니다. 그 요구가 절박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 절박한 것인가? 이때 아파트란 금융 상품으로서의 아파트도 아니고, 집으로서의 아파트도 아닌, 계급으로서의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계급으로서의 아파트. 우리는 이것을 매우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중, 고등학생들조차 “걔 타워 팰리스 산대.” 혹은 “개네 집 지하방이래.” 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좋은 아파트는 람보르기니처럼 성공과 부의 상징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파트가 단순히 “계급의 상징”이라는 지점이 아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아파트를 요구하고 있다면, 그들은 정말로 뻔뻔스럽게 사치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맞다.
문제는 아파트가 계급의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파트는 계급을 결정짓는다. 그것도 아주 장기간에 걸쳐서 말이다. 한국의 모든 사람은 아파트를 사느냐 안 사느냐에 따라 자신의 계급이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오늘 아파트를 사면, 나는 내일 더 부자가 될 것이며, 50년 후에 더욱 부자가 될 것이다. 나의 계급은 계속 상승할 것이다. 반면, 내가 오늘 아파트를 사지 못하면,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므로, 나는 내일 더욱 아파트를 사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는 더더욱 아파트를 살 수 없을 것이다. 나의 계급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계급차는 나의 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계급까지도 결정한다.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금 단칸방 월세로 살고 있는 나와, 부모님 지원을 받아서 반포 자이에 신혼집을 차린 친구 사이에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40년 전에 부모님이 압구정 싸구려 아파트를 샀느냐 안 샀느냐인 경우가 아주 많다. 그 하루 때문에 40년 후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것이다. 내가 지금 든 예시와 같은 상황을 아마 모두들 한 두 개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노비가 속량을 갈구하듯 아파트를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
람보르기니는 계급의 상징일 뿐이지만, 서울 아파트는 계급의 창조자다.
5. 승계로서의 아파트
계급이란 대를 잇는 것이다. 노비의 자식은 노비이며, 양반의 자식은 양반이다. 현대 한국에서 계급간의 이동은 80년대에 비하여 무척 경화되었다. 특히 2000년대로 들어오며 계급간의 이동은 점점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마치 그 불가능성을 가리는 듯 개천에서 나온 용이 계속해서 강조된다. 하지만 여러 통계로 보아 계급은 점점 세분화되고 있고, 고착화되고 있다. 그 이유야 정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부동산도 매우 큰 이유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위에서 말하였듯, 아파트는 계급이다. 그리고 대를 이어 계급을 보장해준다. 이는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땅 한마지기라도 가지고 있는 양인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지켜 물려주는 것을 부모의 의무라 생각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결혼 할 때 집 한 채라도 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가 되었으며, 그것이야말로 큰 자긍심이 되었다. 너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자식에게 집 한 채 해주기 위해 부모는 그 고된 삶을 살아간다. 집 한 채 해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부모의 의무가 끝났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 삶이 헛되지 않았단 증명이 된다. 이러한 사상은 너무 이상하고, 너무 전근대적으로 보인다. 좋다. 우리 부모님 세대야 아직은 전근대적의 물이 덜 빠졌으니까 그러려니 하자.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어떨까? 우리 세대는 과연 쿨한 서구처럼, “자식아, 너는 네가 알아서 사는 것이다. 나는 내 노후나 즐기며 살련다. 알아서 집 구해서 알아서 잘 살아라.” 라고 하는 세대인가?
여기에 대해서 딱히 통계 같은 것은 없지만, 글쎄, 난 약간 회의적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 30~40대 부모들이 자식에게 쏟는 그 애정의 형태는 우리 부모들과 무척 비슷해 보인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구화된 것 같지 않다. 출산율은 줄어들었지만 해가 갈수록 과열되기만 하는 입시시장, 경쟁적으로 비싸지는 유아용품 등, 몇가지 징후들을 살펴보면 우리 시대가 전 시대보다도 훨씬 극성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관점으로 봐도 현 세대의 부모가 전 시대의 부모보다 더 ‘쿨’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건 부모 문제만도 아니다. 부모가 아무리 쿨해도, 현대 한국에서 자식에게 “네가 알아서 집 구해라.” 라고 말하며 독립시키는 것은 실질적으로 자식을 고시원에 처박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우리 세대(자식 세대)는 사실 집을 구할 수가 없다! 아니, 집이 다 무엇이냐, 자식이 취직만 해도 소 잡고 잔치를 벌여야 하는 시대가 우리의 시대다. 과거에 사 놓았던 집 한 채 뒤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잔인한 풍파를 간신히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심지어 이것도 집이 있는 사람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질문자의 질문 이전에, 다른 분이 이런 뉴욕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서브프라임이 있긴 했으나)자연스럽게 인구유동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젊은이들은 뉴욕에 비싼 집값을 내면서 살더라도 나이가 좀 들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다 싶으면 조금 외곽으로 자연스럽게 빠져서 뉴욕의 집값보다 훨씬 싼 금액으로 집을 구하고, 남은 현금을 금융자산에 넣어둔 뒤에 은퇴생활을 하거나 친목생활을 한답니다. 그게 은퇴계획이 되기도 하구요.
좋다. 뉴욕은 저렇다고 치자. 그런데 한국에서 저러한 은퇴 계획(귀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서울이란 낙원에서 영원한 추방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후손조차 결코 서울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상황이 이러하니, “나는 나, 자식은 자식.”이라는 쿨한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서울 아파트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식에게 넘어가 더더욱 그 부가 커질 것이며, 따라서 자식의 계급을 올려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는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현대의 족보이다. 물려줘야만 한다.
6. 닫는 말
이제 서울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정리해보자.
서울 아파트는 위험이 없고, 가장 높은 수익률을 가졌으며, 소액투자가 가능하고, 레버리지효과를 극대화시킬 방법이 많으며, 별다른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완벽한 금융상품이다.
서울 아파트는 다른 주거 형태에 비해 압도적으로 편리하고, 서울이라는 낙원을 만끽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은 터로서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서울 아파트는 계급을 만들어낸다. 오늘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은 내일 좀 더 계급이 올라갈 것이며, 오늘 서울 아파트를 사지 않은 사람은 내일 좀 더 계급이 내려갈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족보로서, 대를 이어 자식에게 계급을 물려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 우린 최초의 질문, “왜 한국인들은 아파트에 열광하는가?”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부동산 말고 다른 곳에 투자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완벽한 물건에 단점은 없는가? 있다.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바로 “월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초의 지인이 품은 질문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이것은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아파트의 수익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 투자에 가장 적합한 이들은 안정적인 수익이 ‘다른 곳’에서 보장된 자들, 다시 말해 월급쟁이들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돈을 버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먹고 사는 것은 노동을 통해 해결하고, 자산의 증식은 아파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척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중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투자안을 찾아 낸 셈이다.
반면, 누군가 월 수익을 위해 아파트라는 투자안을 포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이야말로 그는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을 절실하게 깨달을 것이다. 수익형 건물? 주식? 펀드? 아파트 외 어떠한 투자안을 선택해도 위험하고, 수익률이 낮고, 대출이 힘들고,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생활의 편리도 주어지지 않으며, 계급도 흔들리며, 계급 상속의 기능도 없다. 어줍지않은 재주로 황야와 같은 투자의 세계로 들어갔다가는 전부 날려 먹기 십상이다. 아파트 투자가 너무 편하여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본디 투자란 극히 어렵고 극히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그보다는 아파트를 사고 직장을 다니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아파트에 몰린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사실 아파트가 주는 이 수 많은 매력에 비하면 먹는 것에 돈 쓰는 것조차 사치다. 하우스푸어가 되어,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금을 갚으면서 삼시 세끼 라면만 먹어도 괜찮다. 그렇게 해서 서울 아파트를 가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한 일신상의 불편함은 서울 아파트가 주는 이득에 비하면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는 그만큼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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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질문
최근에 올린 글에 대하여, 지인이 덧글로 이렇게 물었다. 다소 길지만 그대로 옮겨 본다.
흥미로운 글 너무 잘 읽었어요!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서울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최소한 몇 억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잖아요 대출을 받는 다는 것이 규제때문에 한계가 있구요. 왜 그 돈을 다른 방향으로 쓰질 않고 부동산으로 올인하는 걸까요? ooo님 얘기처럼 미국사람들은 은퇴 후에 부동산 자산을 현금화해서 좀 더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기는데 반해 우리 나라 하우스 푸어들은 현금자산이 적어 생활비가 없어 쩔쩔매는 걸 선택했을까요? 자식 때문일까요? 서울의 편리함 때문일까요? 님 말대로 국민들이 서울의 집값을 올린 게 맞는 거 같아요 다 욕심이죠 지금 평범한 일반 국민들은 절대 서울의 아파트를 살 수 없어요 어디 로또라도 되지 않으면 ... 신도시 4억 아파트 2억을 대출받아 산다고 해도 월 나가는 원리금만 백만원이 넘어가고 있어요 일반 가정에서는 이것마저도 부담인 현실이죠 실제적인 서울의 아파트를 가지고 싶다는 염원이 있어도 일반국민들은 청약조차도 넣기 힘든 현실인데 ... 실제 서울의 아파트를 거래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선에서 평범하지 않다고 봐야겠죠 어느 정도 받춰 줄 재산이 있는 사람들 청약까페에 서울 청약 올라와도 대부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넘사벽이라서;;; 근로소득 말고 금융소득으로 생활하기! 를 목표로 가지고 제테크 하시는 분들이 눈에 띄던데 아직은 한국은 의식 구조가 어쩔 수 없나 봐요 곧 죽어도 부동산... 그 만큼 시세 차익이 커서 그렇겠죠? 어느 블로거는 부동산이 안전 자산이라고 ... 저부터도 지방제외 서울 부동산이면 안전하다 생각할듯해요. 주식으로 1억을 투자했을 때 매년 40-50만원의 월세를 받는 것 처럼 하게 만들려면 너무 어려워요 참 어렵네요. 수요가 많아도 모두가 다 가지고 싶어해도 일반 사람들은 살 수가 없는데도 억제 정책이 효용이 없는 걸까요? 어차피 사는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이잖아요 ... 투기를 하려고 해도 자본이 있어야 하고 ...일반사람들은 서울쪽 아파트에 접근이 힘든데;;; 나라면 내가 돈이 많다면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좀 고민해 봐야겠어요.
여기서 묻고 있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내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왜 한국 사람은 서울 아파트에 열광하는가?” 였다. 그리고 그에 대답 하려다 보니 글 한 꼭지를 쓸 정도로 답이 길어지게 되어 아예 이렇게 별도의 글로 옮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당연하다.” 서울(권)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은 감히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는 별 다른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를 그저 반복할 뿐이다.
덧붙여, 이 글에서 말하는 “서울 아파트”란 “서울권 아파트”를 칭한다. 다만 입에 감기는 맛을 중시하여 서울 아파트라고 부르겠다.
1. 일반국민은 없다
서울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을 헤아리기 전에, 지인의 질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반국민>이라는 단어를 검토해보자. 저곳에서 지인은 자연스럽게 <서울 아파트 살 수 없는 사람 = 일반국민>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 = 비 일반국민>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구분 기저에는, <빈자=일반국민>, <부자=비 일반국민>이라는 기준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적절하지 않으며, 일반화 시킬 수도 없다.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하여 부자인 것은 아니며, 살 수 없다고 해서 꼭 빈자인 것도 아니다. 이 시장에서 일반 국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모두가 일반 국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장을 분석하고자 할 때 보다 유용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 VS 서울 아파트를 아직 못 산 사람
그리고 한국 부동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응당 있어야만 하는 세번째 그룹, <서울 아파트를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너무 소수여서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한 마디로 한국인 모두가 서울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 혹은 살 수 있는 사람은 돈이 많은 소위 “자본가”만 가능한가? 일단 그렇지 않을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를 사는 사람을 자본가라 부르는 것은 적절한 호칭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이 인과 관계가 반대이기 때문이다. 즉, 몇 억을 가진 사람들만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샀기 때문에 몇 억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러 통계를 살펴봐도 한국인의 자산형태는 부동산이 항상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자산들은 대부분 60년대부터 시작된 부동산 급등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누군가 아파트를 산 돈을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추적하면 대부분 아파트로 번 돈이다. 30년 전에 1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고, 조금 더 큰 아파트를 사고… 그렇게 계속 조금씩 갈아타면서 형성된 자산이 가장 많다는 뜻이다. 이들을 ‘비 일반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시대정신이었고, 우리 부모님 세대의 너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도리어 한국에서는 노동이나 부동산 외 금융으로 자산을 형성한 사람이 훨씬 더 드물다. 거칠게 말하자면, “현재” 아파트를 사는 사람과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거” 아파트를 샀던 사람과 사지 못했던 사람인 것이다. 이 역전된 인과관계 속에서, 질문자가 전제한 일반인과 비일반인이라는 구분이 와해된다. 모두가 일반인이다. 아파트를 샀느냐, 못 샀느냐, 혹은 샀더라도 그걸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로 운명이 갈릴 뿐, 그 모습들은 너무나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일반인과 비일반인, 부자와 빈자라는 관점을 던져버리고, 서울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1. 투자 상품으로서의 아파트. 2. 집으로서의 아파트. 3. 계급으로서의 아파트. 4. 승계로서의 아파트를 이야기 할 것이다.
2. 너무 완벽한 투자 상품, 서울 아파트
A. 완전한 안전자산
서울 아파트는 금융 투자 상품이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완벽하다는 데 있다. 얼마나 완벽하냐면, 한국에서 태어나 아파트 말고 다른 금융 상품에 손 댄다는 것이 너무 어리석은 일일 정도이다. 서울 아파트에는 너무 경이로운 특징들이 있어서 도리어 금융 투자 상품이라고 말하기가 꺼려질 정도이다. 나는 이 이유들에 대해 간단히 열거만 하겠다. 왜냐하면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경이는 당연히 서울 아파트가 완전한 안전자산이라는 데 있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러한 완전한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금융을 논하며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1950년대 이후로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수치의 낙폭을 경험하지 않았다. 주식처럼 등락을 거듭했다고 말하기엔, 등이 너무 높았고 낙이 너무 적었다. 금융 상품 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예금과 국채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바로 그 은행조차 도산하는 것을 보아왔으며, 몇몇 인접 국가가 모라토리움 선언을 하는 것도 꽤 많이 보아 왔다. 반면, 서울 아파트는 어떠 했는가? 한국 현대사 그 수 많은 곡절의 순간에도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한국 국민들이 서울 아파트의 안전성에 가지는 믿음은 엄청나며, 그리고 이 믿음은 고스란히 현실로 구현된다. 현실은 믿음을 불러오고, 믿음은 현실을 불러온다. 서울 아파트의 안정성은 믿음과 현실의 공고한 결합체이다. 이 안정성은 객관적 사실이며, 그렇기에 은행은 그 어떤 경우보다 부동산 담보 대출을 손쉽고,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그 어떤 금융 상품도 이보다 더 안전하지 못하다.
B. 가장 높은 수익률
두번째 경이는 그 수익률이다. 현재 하나은행에서 제공하는 펀드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은 17.40%이다. 대신에 매우 높은 위험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상품은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것이 금융계의 보편법칙이다. 서울 아파트만 뺀다면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서울 아파트의 리스크는 없다. 서울 아파트에서 예상되는 유일한 리스크(폭락)는 전쟁, 자연재해 정도이다. 경제위기조차 서울 아파트 값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IMF당시 집값은 확실히 낮아졌지만, 그 하락세는 몇 개월도 가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집값 폭락을 입에 담지만, 그것을 지금 예로 든 펀드 등의 금융상품과 비교하면 리스크라 부르기도 무안하다. 서울 아파트는 원금 손실이 나지 않는다. 반면 수익률은 어떠한가? 엄청나다! 이에 대한 여러 통계와 자료는 생략하겠다. 과연 서울 아파트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이 몇 개나 있을까? 10년 전 코스피 지수는 1700선이고, 오늘 코스피 지수는 2195이다. 물론 코스피지수로 금융상품의 수익성을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한국 전체 기업계의 성장률과 부동산 가격의 성장률 사이에 너무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보다 더 수익률이 높지 않다.
C. 엄청난 금융 혜택
세번째 경이는 금융 혜택이다. 서울 아파트에 관하여, 혹은 부동산 전체에 대하여 주어지는 금융 혜택은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관대하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무감각하지만, 은행에 가서 내가 10억짜리 펀드에 들겠으니 7억을 대출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담보는 그 펀드이다. 은행직원은 미친놈을 쳐다보는 눈길로 당신을 쳐다 볼 것이다. 그런데 왜 부동산은 이것이 가능한가? 당연히 앞서 말한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특징 때문에 그렇다. 은행 역시 부동산을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은행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이 부동산 불패를 믿고 있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일으킨 그 미치광이 같은 파생상품을 만들지는 않았겠지.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인은 “대출을 받는 다는 것이 규제 때문에 한계가 있구요.” 라고 말했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다. 다른 금융상품에 비하여 오직 부동산만이 규제 덕분에 엄청나게 특별히 대출을 받고 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디딤돌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살펴보라. 엄청난 저리로, 엄청난 돈을 선뜻 빌려준다. 물론 이것은 서울 아파트 가격을 올려주는 매우 주요한 요인이다. 현재 신도시 아파트의 가격이 대부분 4억으로 맞춰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를 정부 대출제도의 영향으로 본다. 아파트 가격이 4억에 70% 대출(2.8억)을 받는다면 자기 돈 1.2억이 필요한데, 신혼 부부가 각자 6000만원 정도를 모았다고 가정하면 간신히 하나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이 4억이라는 금액은 신혼부부가 서로 목마를 타고 까치발까지 서서 간신히 손이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아슬아슬한 지점인 것이다. 아파트 분양가는 바로 그 가격에 맞추어 형성되었다. 그 외에도 현재 문재인 정권은 전세자금 대출을 대폭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 역시 서울 부동산 가격을 급등 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앞선 글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민주주의 하에서 정부는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할 수 없고, 특히나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국민의 요구라는 것이 국가 전체에 대한 어떤 이상적인 그림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인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즉각적 해답들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이 요구들이 상호 모순적인 경우도 왕왕 있다. 집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요구와 디딤돌 대출과 전세자금 대출을 더 많이 해달라는 요구는 서로 상반되는 요구이다. 그리고 이 상반된 요구 속에서 정부는 마치 곡예사가 줄을 타듯 정책을 입안한다. 대부분은 정책의 타겟 층을 나누는 방식이다. 즉, 대출 지원의 타겟은 청년들이며, 집값 억제 정책의 타겟은 고가 아파트 소유자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 대출 정책에 대해 지금 길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이 다른 건 몰라도 아파트와 부동산 사는데 돈은 매우 기꺼이, 매우 많이 빌려주는 나라라는 점만 강조하겠다.
게다가 전세는 또 어떤가? 한국 특유의 제도인 이 전세 제도는 아파트를 사는데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여러가지 매우 특이한 부동산 전략을 가능케 한다. 전세, 그것은 무이자 대출이다. 이것이 갭투자를 가능케 한다. 지금 당장 호갱노노 어플을 켜보라. 그러면 갭 금액에 따라 아파트를 검색할 수도 있다. 현금 2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서울권에 수두룩 하다.
결과적으로, 아파트는 소액 투자가 가능한 금융 상품이다. 그리고 소액을 투자했다고 해서 수익률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 조차 아니다. 3억짜리 아파트를 전세끼고 2000만원으로 사고, 그 후 아파트 시세가 오른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다. 심지어 전세이기 때문에 이자도 내지 않는다. 그 외에도 온갖 방법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낼 수 잇는 방법이 부동산계, 특히 아파트에는 많다. 나는 여기에서 분양과 청약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역시 작은 자본으로 매우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들이 많다. 아파트는 소액 투자로 로또에 버금가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길이 가장 다채롭게 열려 있는 금융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보다 더 적은 자기자본비율로 살 수 없다.
D. 일반인을 위한 투자 상품
네번째 경이는, 일반인을 위한 투자 상품이라는 점이다. 내가 여기서 일반인이라고 일컫는 것은 “금융 전문가가 아닌 사람”을 뜻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퀴즈를 하나 내보자.
STX팬오션 주식의 미래 가격을 예측해보시오.
STX팬오션은 주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정도 익숙해도,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생소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어지간히 금융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저 주식이 앞으로 오를지 떨어질지 예측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저 질문에 맞닥뜨리면 겁을 먹는다. “난 그런 쪽은 잘 몰라서…” 라고 손사래 치기 쉽다. 게다가 주식은 그나마 쉬운 장르이다. 선물, 옵션, FX, 파생상품, 펀드, 비트코인(?) 등, 소위 금융 상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모두 상당한 학습을 요구하며, 그러고 나서도 그 확실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반면 다른 퀴즈를 내보자.
서울 X 아파트의 미래 가격을 예측해보시오.
여기서 내가 그냥 임의의 아파트 X라고 한 것은, 그나마 문제를 좀 어렵게 보이기 위해서 한 것이다. 반포 자이 아파트의 미래 가격을 예측해보라고 하면 너무 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하여튼, 저 퀴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겁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일반인으로서 그 아파트를 평가한다. 그 평가 기준은 너무 익숙한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인가?” 오직 그 기준 하에서만 아파트를 판단해도 좋다. 교통은 어떤지, 학교는 어떤지, 분위기는 어떤지, 언덕길인지… 그리고 그 일반인의 판단은 항상 매우 정확하다. 왜냐하면 아파트 가격은 바로 그 일반인들의 선호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STX 팬오션의 주식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낯선 지식을 학습해야 하지만, 어떤 아파트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 없다. 간단히 말해, 내 눈에 좋은 아파트는 남의 눈에도 좋다. 이것은 다른 금융상품에 통용되는 특징이 아니다. 내가 어느 날 어느 주식에 꽂혔다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좋은 주식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어느 아파트에 꽂혔다면? 아마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 아파트는 좋은 아파트일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아파트 투자의 일반성은 수 많은 패가망신의 근원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파트를 통해 자산을 획득했다. 그런데 자산을 획득하고 보니, 자신이 무언가 유능한 투자자라도 되는 기분에 휩싸인다. 특히 우리 시대 많은 아빠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금융 전문가 행세를 하며 서울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 투자하고 패가망신했다. 그것은 무지렁이 농사꾼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노벨상을 받은 생명공학자라도, 배우지 않았다면 금융 상품에 대해서는 무지렁이 농사꾼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는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로 성공한 자들은 이런 상식을 쉽게 망각한다. 본디 금융 상품이란 어려운 것이고, 난해한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 접근할 만한 장르가 아니다. 하지만 다만 서울 아파트만은 아무런 전문적 지식을 요하지 않고도 엄청난 안정성과 엄청난 수익성을 동시에 보장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아파트는 진정한 ‘일반인을 위한 투자상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어떤 금융상품도 이보다 더 일반적이지 않다.
정리해보자. 금융 상품으로서의 서울 아파트는, 위험이 없고, 여러 금융 상품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며, 소액 투자가 가능하고, 레버리지 효과를 받는게 쉽고, 전문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계인에게 이러한 상품이 있다고 설명한다면 그는 날 거짓말쟁이라 비난하리라.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실제로 그렇다. 이것은 금융 상품이라기엔 너무 완벽하다. 금융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한국에서 투자를 하고자 할 때 서울 아파트 외의 것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 집으로서의 서울 아파트
A. 집에 대한 유구한 집착
그렇다면 투자 상품으로서의 아파트가 아니라, 집으로서의 아파트는 어떠할까? 투자 상품이 아니라 내가 주거하는 서비스로서의 집 말이다. 이 지점에서도 아파트는 너무나 탁월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아파트 가격의 방어선을 이룬다.
하지만 아파트가 아니라 먼저 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국인이 집에 가지는 그 유구한 집착을 길게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땅에서부터 시작 되었을 이 땅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 오래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농경 민족 중에서도 유달리 집착이 심한 편인 것 같다. 여하간 우리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의미는 너무 크다. 내 집, 그것은 삶 전체의 기반이다. 월세와 전세는 너무나도 불편하다. 모든 것이 다 충족되어 있어도 월세와 전세를 살면 ‘집 없는 설움’이라는 것이 계속 누적된다. 집주인이 굳이 고약하게 굴지 않아도 그렇다. 현대로 오며 한 곳에서 평생을 사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나의 터”를 잡기를 그리도 원한다. 엄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집 값이 떨어지든 오르든 상관 없다. 다 같이 오르고 내리니까. 집 하나 팔아 집 하나 살 뿐이다.”
이 인식 속에서 집은 금융상품이 아니다. 심지어 그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 4억짜리 집이 10억으로 폭등해도, 반대로 10억짜리 집이 4억으로 폭락해도, 그것은 숫자의 변화일 뿐이다. 급등했다 하여 부자가 되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집 한 채일 뿐이다. 급락했다 하여 가난한 자가 되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집 한 채일 뿐이다. 나만 떨어지거나 오른 게 아니라, 주변이 함께 오르고 떨어졌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집 없는 자와 집 가진 자의 인식의 차이가 많이 벌어진다. 집 없는 사람에게 10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엄청난 자산가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아파트 가진 사람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10억 이 아파트를 팔아도, 간신히 같은 동네로 이사할 수 있을 뿐이지, 더 ‘좋은’ 동네로 이사할 수 없다. 보통 서울 집값은 같이 오르니까 말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집 한 채 가졌을 뿐.” 이다.
아파트 자산이 일반적으로 소비재가 아니란 것을 기억하자. 그 돈은 까먹을 수 없는 돈이다. 10억 아파트를 팔아서 그걸로 맛있는 거 사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15억짜리 아파트를 사는데 쏟아 붓는다. 정말로 피치못할 상황(파산 등)에만 더 싼 집으로 이사한다. 한국 사람들은 집에 묶인 돈을 단순한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돈은 오직 다른 집으로만 교환된다는 의미에서 바우처(voucher)에 가까운 형태의 자산이다. 그것은 금액과 무관한 그저 한 장의 교환권이다. 집은 쪼개지지 않는다.
내 소유의 집 한 채를 소유하려는 한국인의 이 마음은 매우 강하며, 집에 관한 모든 움직임의 가장 깊은 바닥을 이룬다.
B. 위치적 가치: 서울
하지만 이것은 ‘집’에 대한 이야기고, ‘서울의 집’은 이야기가 또 다르다. 서울 아파트는 모든 집 중에서도 최고인데, 그 위치적 가치 때문이다.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 있고, 모든 편의가 있으며, 모든 것이 좋다. 지방의 궁궐 보다 강남의 지하 방이 더 좋다는 건 가격으로도 증명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생략한다. 하지만 아마 이 지점이 서울 아파트의 가장 사랑스러운 지점일 것이다.
C. 내적 가치: 아파트
하지만 이것은 ‘서울 집’에 대한 이야기이고, ‘서울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르다. 서울의 아파트는 그 내적 가치도 훌륭하다. 즉, 여타 다른 대안보다 살기 편하다는 의미이다. 아파트는 가장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건축 장르이며, 지금도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건축 장르이다. 빌라는 아직도 개인 건축주와 소규모 건축사들이 그리 깊은 고민 없이 설계하는 반면, 아파트는 수십 명의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작년에 분양한 아파트보다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그 결과 아파트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고, 거의 모든 측면에서 생활의 편리가 완벽하게 보장된다. 주차대수, 보안, 공간 활용, 공원, 학교, 쓰레기처리, 녹지, 일조권, 교통, 누수, 단열, 방음, 단지 내 부가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요소에서 아파트는 다른 주거공간에 비해 우월하다. 특히 최근 5년 사이에 부쩍 많아진 대단지 아파트들은 그 아파트 단지가 “모든 것을 다 갖춘 하나의 마을”이라는 개념 하에 건축되었다. 정말로 그곳에는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존재한다. 아파트의 편의성은 압도적이다.
결국 서울 아파트란, 그저 집으로서도 가장 높은 쾌적도와 만족도를 제공한다. 이것은 집값의 방어선을 이룬다. 만약 집이 순수하게 금융 투자의 대상이라면, 집값이 폭락하면 너도나도 팔 것이고, 이에 따라 낙폭은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금융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폭락한다 하여도 아주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맑스 식으로 말하자면 교환가치 뿐만 아니라 사용가치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가 집값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준다. 이러니 돈 욕심이 없는 사람도 서울 아파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돈 욕심 있는 사람은 더더욱 서울 아파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계급으로서의 아파트
아파트는 계급이다. 이 지점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왜 한국 사람들이 모두 서울 아파트에 열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서울 집 값이 너무 올라 서민이 살 수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때 그들이 쓰는 ‘집 값’이라는 용어와, 그들이 내심 생각하는 ‘집’은 상당히 다른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서울 아파트, 그 중에서도 꽤 괜찮은 동네의 아파트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TV 에서도 보통은 15억이 넘어가는 아파트 가격만을 비춰준다.
하지만 그들의 내심을 알면서도, 굳이 말꼬리를 잡자면, 서울에서 집을 사고자 할 때, 3억 미만으로 살 수 있는 곳은 꽤 있다. 아파트도 꽤 있으며, 빌라,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 주택 등으로 확장하면 정말로 상당한 선택지가 있다. 만약 여기서 지하 방과 달동네까지 포함한다면 선택지는 더욱 늘어난다. 자기 자본이 1억이 있다면, 대출을 끼고 어느정도 노려볼만한 가격들이다. 또한 서울이라 하더라도 그 위치에 따라 매우 천차만별이다. 물론 가격은 정직하다. 3억짜리는 모두 구리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그도 고려할만한 선택지 아니던가? 그러나 내가 서울 집값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그렇다면 빌라를 사는 건 어때?” 라고 할 경우, 모두 완전히 동일한 대답을 했다.
“빌라는 안 오르잖아.”
그들이 말한 집이란 아파트이다. 이를 의심할 순 없다. 그들은 서울 아파트 값이 너무 비싸 서민이 살 수 없다는 <요구>와, 빌라는 안 오르니까 싫다는 <거부>를 동시에 하는데, 어딘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는 이 이중적 태도에는 다소 복잡한 욕망이 뒤엉켜 있다.
먼저 <요구>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이 요구를 할 때, 그들은 자신이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처럼 말을 한다. 그런데 다른 상품에 대해서는 보통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람보르기니가 너무 비싸 서민들이 구매할 수 없으니 가격을 내리라는 요구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물론 단박에 집과 람보르기니는 다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확실히 <집>이라면 그것은 필수재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는 약간 다르다. 서울 아파트는 람보르기니와 좀 더 비슷하다. 자동차에도 싼 자동차가 있고 비싼 자동차가 있는 것처럼, 집에도 싼 집이 있고 비싼 집이 있는 법인데, 서울 아파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비싼 집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래, 단순히 말해 돈이 없으면 싼 집을 사면 된다. 싼 빌라를 사라. 당연히 아파트보다 편의성은 떨어지겠지만 그것은 “필수재로서의 집”을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이 <요구>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나는 여기에서 그런 요구가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눈 여겨 보는 것은, 그들이 이 요구를 거의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지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치재를 요구한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된 것처럼 절박하다. 그들은 자신이 당연히 주어져야만 하는 필수재를 요구한다고 인식한다. 사실 서울 아파트는 필수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왜 그런가? 이 의심을 품은 채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거부>를 살펴보자. 그들은 빌라가 오르지 않아서 싫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아파트의 가격 오름세에 비해 빌라의 가격 오름세는 매우 둔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실 필수재가 아니라 자산 증식을 위한 ‘금융 상품’으로서의 아파트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분명 맞는 말이다. 옛날부터 아파트는 집이면서 투자상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석해도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할 순 없다. 돈이 없어서 수익률 좋은 펀드를 사지 못한다고 그리 절박해지진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아파트 요구>와 <빌라 거부>는 단순히 배부른 소리나 투정이 아니다. 그 요구가 절박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 절박한 것인가? 이때 아파트란 금융 상품으로서의 아파트도 아니고, 집으로서의 아파트도 아닌, 계급으로서의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계급으로서의 아파트. 우리는 이것을 매우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중, 고등학생들조차 “걔 타워 팰리스 산대.” 혹은 “개네 집 지하방이래.” 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좋은 아파트는 람보르기니처럼 성공과 부의 상징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파트가 단순히 “계급의 상징”이라는 지점이 아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아파트를 요구하고 있다면, 그들은 정말로 뻔뻔스럽게 사치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맞다.
문제는 아파트가 계급의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파트는 계급을 결정짓는다. 그것도 아주 장기간에 걸쳐서 말이다. 한국의 모든 사람은 아파트를 사느냐 안 사느냐에 따라 자신의 계급이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오늘 아파트를 사면, 나는 내일 더 부자가 될 것이며, 50년 후에 더욱 부자가 될 것이다. 나의 계급은 계속 상승할 것이다. 반면, 내가 오늘 아파트를 사지 못하면,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므로, 나는 내일 더욱 아파트를 사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는 더더욱 아파트를 살 수 없을 것이다. 나의 계급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계급차는 나의 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계급까지도 결정한다.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금 단칸방 월세로 살고 있는 나와, 부모님 지원을 받아서 반포 자이에 신혼집을 차린 친구 사이에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40년 전에 부모님이 압구정 싸구려 아파트를 샀느냐 안 샀느냐인 경우가 아주 많다. 그 하루 때문에 40년 후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것이다. 내가 지금 든 예시와 같은 상황을 아마 모두들 한 두 개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노비가 속량을 갈구하듯 아파트를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
람보르기니는 계급의 상징일 뿐이지만, 서울 아파트는 계급의 창조자다.
5. 승계로서의 아파트
계급이란 대를 잇는 것이다. 노비의 자식은 노비이며, 양반의 자식은 양반이다. 현대 한국에서 계급간의 이동은 80년대에 비하여 무척 경화되었다. 특히 2000년대로 들어오며 계급간의 이동은 점점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마치 그 불가능성을 가리는 듯 개천에서 나온 용이 계속해서 강조된다. 하지만 여러 통계로 보아 계급은 점점 세분화되고 있고, 고착화되고 있다. 그 이유야 정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부동산도 매우 큰 이유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위에서 말하였듯, 아파트는 계급이다. 그리고 대를 이어 계급을 보장해준다. 이는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땅 한마지기라도 가지고 있는 양인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지켜 물려주는 것을 부모의 의무라 생각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결혼 할 때 집 한 채라도 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가 되었으며, 그것이야말로 큰 자긍심이 되었다. 너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자식에게 집 한 채 해주기 위해 부모는 그 고된 삶을 살아간다. 집 한 채 해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부모의 의무가 끝났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 삶이 헛되지 않았단 증명이 된다. 이러한 사상은 너무 이상하고, 너무 전근대적으로 보인다. 좋다. 우리 부모님 세대야 아직은 전근대적의 물이 덜 빠졌으니까 그러려니 하자.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어떨까? 우리 세대는 과연 쿨한 서구처럼, “자식아, 너는 네가 알아서 사는 것이다. 나는 내 노후나 즐기며 살련다. 알아서 집 구해서 알아서 잘 살아라.” 라고 하는 세대인가?
여기에 대해서 딱히 통계 같은 것은 없지만, 글쎄, 난 약간 회의적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 30~40대 부모들이 자식에게 쏟는 그 애정의 형태는 우리 부모들과 무척 비슷해 보인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구화된 것 같지 않다. 출산율은 줄어들었지만 해가 갈수록 과열되기만 하는 입시시장, 경쟁적으로 비싸지는 유아용품 등, 몇가지 징후들을 살펴보면 우리 시대가 전 시대보다도 훨씬 극성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관점으로 봐도 현 세대의 부모가 전 시대의 부모보다 더 ‘쿨’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건 부모 문제만도 아니다. 부모가 아무리 쿨해도, 현대 한국에서 자식에게 “네가 알아서 집 구해라.” 라고 말하며 독립시키는 것은 실질적으로 자식을 고시원에 처박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우리 세대(자식 세대)는 사실 집을 구할 수가 없다! 아니, 집이 다 무엇이냐, 자식이 취직만 해도 소 잡고 잔치를 벌여야 하는 시대가 우리의 시대다. 과거에 사 놓았던 집 한 채 뒤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잔인한 풍파를 간신히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심지어 이것도 집이 있는 사람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질문자의 질문 이전에, 다른 분이 이런 뉴욕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서브프라임이 있긴 했으나)자연스럽게 인구유동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젊은이들은 뉴욕에 비싼 집값을 내면서 살더라도 나이가 좀 들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다 싶으면 조금 외곽으로 자연스럽게 빠져서 뉴욕의 집값보다 훨씬 싼 금액으로 집을 구하고, 남은 현금을 금융자산에 넣어둔 뒤에 은퇴생활을 하거나 친목생활을 한답니다. 그게 은퇴계획이 되기도 하구요.
좋다. 뉴욕은 저렇다고 치자. 그런데 한국에서 저러한 은퇴 계획(귀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서울이란 낙원에서 영원한 추방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후손조차 결코 서울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상황이 이러하니, “나는 나, 자식은 자식.”이라는 쿨한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서울 아파트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식에게 넘어가 더더욱 그 부가 커질 것이며, 따라서 자식의 계급을 올려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는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현대의 족보이다. 물려줘야만 한다.
6. 닫는 말
이제 서울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정리해보자.
서울 아파트는 위험이 없고, 가장 높은 수익률을 가졌으며, 소액투자가 가능하고, 레버리지효과를 극대화시킬 방법이 많으며, 별다른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완벽한 금융상품이다.
서울 아파트는 다른 주거 형태에 비해 압도적으로 편리하고, 서울이라는 낙원을 만끽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은 터로서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서울 아파트는 계급을 만들어낸다. 오늘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은 내일 좀 더 계급이 올라갈 것이며, 오늘 서울 아파트를 사지 않은 사람은 내일 좀 더 계급이 내려갈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족보로서, 대를 이어 자식에게 계급을 물려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 우린 최초의 질문, “왜 한국인들은 아파트에 열광하는가?”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부동산 말고 다른 곳에 투자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완벽한 물건에 단점은 없는가? 있다.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바로 “월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초의 지인이 품은 질문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이것은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아파트의 수익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 투자에 가장 적합한 이들은 안정적인 수익이 ‘다른 곳’에서 보장된 자들, 다시 말해 월급쟁이들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돈을 버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먹고 사는 것은 노동을 통해 해결하고, 자산의 증식은 아파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척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중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투자안을 찾아 낸 셈이다.
반면, 누군가 월 수익을 위해 아파트라는 투자안을 포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이야말로 그는 아파트의 사랑스러움을 절실하게 깨달을 것이다. 수익형 건물? 주식? 펀드? 아파트 외 어떠한 투자안을 선택해도 위험하고, 수익률이 낮고, 대출이 힘들고,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생활의 편리도 주어지지 않으며, 계급도 흔들리며, 계급 상속의 기능도 없다. 어줍지않은 재주로 황야와 같은 투자의 세계로 들어갔다가는 전부 날려 먹기 십상이다. 아파트 투자가 너무 편하여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본디 투자란 극히 어렵고 극히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그보다는 아파트를 사고 직장을 다니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아파트에 몰린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사실 아파트가 주는 이 수 많은 매력에 비하면 먹는 것에 돈 쓰는 것조차 사치다. 하우스푸어가 되어,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금을 갚으면서 삼시 세끼 라면만 먹어도 괜찮다. 그렇게 해서 서울 아파트를 가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한 일신상의 불편함은 서울 아파트가 주는 이득에 비하면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는 그만큼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