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전설의 리뷰.txt
친애하는 친구에게
당신이 이걸 읽고 있다는 건, 저는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겠지요. 아뇨, 사라졌다는 표현은 조금 틀릴까요. 적어도 당신이 알고 있던 제가 아니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이런 편지를 받아서 당혹해할 당신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당신에게만은 설명해두고 싶었습니다. 변명, 혹은 참회라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순서에 따라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그날, 저는 친구가 권해서 한 편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타이틀은 "신세계". 한국 영화입니다. 친구는 "같이 보자. 너한테 딱 맞는 작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내용도 모르는 작품을 보는 건 좀 무서웠지만, 친구를 신용했기에 가벼운 기분으로 신쥬쿠로 향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습니다. 거기에는 수트를 입은 세 명의 남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걸 본 순간, 저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버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신세계"는 흔히 말하는 뒷세계 영화로, 잠입수사관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 내용에 대해 어쩌구 저쩌구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리 자세하게 줄거리를 설명해도 그뒤 134분간 제가 받은 충격을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엄청나게 야오이였습니다.
지금 분명히, 당신은 질렸다는 얼굴을 하겠지요. 확실히 저는 오프에서도 트위터에서도 하루에 30번은 야오이야오이 떠들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의 9할은 남자랑 남자 사이의 곱하기 계산식의 답을 찾기 위해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거도 저거도 뭐든 야오이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 부녀자가 뭔 소리야.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 세계에 야오이로 만들지 못할 것은 그 무엇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신세계"는 삼라만상 중에서도 정말 일부만 도달할 수 있는 "엄청나게 야오이"의 포텐셜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인 잠입수사관 자성은 겉으로는 범죄조직 골드문의 간부로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말수가 적고 말끔하고 쿨한 타입입니다. 자성의 보스인 정청은 말수가 많고 밝고 장난스러운 타입입니다.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의 관계입니다만, 서로 대하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때로는 정청을 무시하고, 때로는 반말을 하거나, 때로는 몸을 바쳐 지키는 자성. 때로는 자성을 놀리고, 찌르고, 윙크하고, ……하는 정청. 강한 신뢰관계를 느끼게 하는 사이입니다만, 자성은 잠입중. 그 인연은 거짓입니다. 아니, 거짓이어야만 한다, 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시나요? 잠입이나 스파이 등 "누군가를 속이고 들어가는" 직업 이야기는 어딘지 NTR…… 네토라레의 향기가 납니다. 영화 중 스파이나 잠입은 조금 있다가 본래 반려였던 조직을 배반하고, 일시적인 관계였을 범죄자와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남자…… 언더커버 공무원들은, 다들 비틀거리는 유부녀입니다. 이 영화의 유부녀 자성이 마지막으로 어떤 남자를 선택하는지, 여기에 쓰는 건 관두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 선택을 앞에 두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영화는 무서운 영화입니다. 진득거리는 피와 시멘트의 뜨거움. 흐린 하늘 해안의 차가움. 사나이들이 갑옷처럼 걸친 수트의 검정. 사방으로 튀는 피의 암갈색. 오감을 흔드는 화면 속에, 흔히 말하는 "좋은 얼굴"을 한 남자들이, 점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성은 퍼스트 컷에서는 피부가 깨끗한 히가시노 코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이야기의 비극성과 비례하는 것처럼 그 용모가 변화해가며, 마지막으로는 마치 라파엘로가 그리는 성인처럼 아름다움을 내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 영화의 마력에 완전히 혼을 빼앗겼음을 깨달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PC 안에 새로운 폴더가 만들어져 있었고, 수백장의 화상과 백 개에 가까운 즐겨찾기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말도, 로컬 룰도,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한국 부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환경도 모든 것을 초월한 한 가지 공통언어, 이 세계의 평화의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 신세계의 에스페란토―― 야오이가, 조용히, 그리고 강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이쯤해서 펜을 놓겠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슬슬 택배 오빠가 DVD (한국산 초회한정판)과 어머니가 물려주신 한글 공부 세트를 배달하러 올 것입니다. 그것을 받으면, 정말로 안녕입니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가는 신세계는 즐거운 장소인 모양입니다. 늪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웃고 있는 언니나 오빠들이 텅 빈 지갑을 흔들며 환영해주고 있습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으므로, 한 번 빠져들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더한 야오이를 찾기 위해 이 한국영화의 늪에 빠져들려 합니다. 그럼, 너도 조심하도록 해요. Ann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