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팁/유용/추천 한 사람이 오는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
33,319 595
2019.07.28 14:56
33,319 595
https://img.theqoo.net/oVhAL


연애를 시작하면 한 여자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많은 것이 함께 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과 먹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요리. 처음듣는 유럽의 어느 여가수나 선댄스의 영화. 그런걸 나는 알게된다. 그녀는 달리기 거리를 재 주는 새로 나온 앱이나 히키코모리 고교생에 관한 만화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녀는 화분을 기를지도 모르고, 간단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먹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거나 혹은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의외로 송어를 낚는 법을 알고 있을수도 있다. 대학때 롯데리아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까닭에 프렌치후라이를 어떻게 튀기는지 알고 있을수도 있다,

그녀는 가족이 있다. 그녀의 직장에, 학교에는 내가 모르는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 나라면 만날 수 없었을, 혹은 애초 서로 관심이 없었을 사람들. 나는 그들의 근황과 인상, 이상한 점을 건너서 전해듣거나, 이따금은 어색하나마 유쾌한 식사자리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엿보게 된다.

그녀는 아픈 데가 있을수도 있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특정한 부분에 콤플렉스가 있을수도 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을수도 있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형태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심각한 방식으로 사람을 위협한다.

그녀의 믿음 속에서 삶이란 그냥 잠시 지속되었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의 빛 같은 것일 수도, 혹은 신의 시험이자 선물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는것이 삶 자체라고, 그녀는 피로에 지쳐 있을 수도 있다.

요컨대 한 여자는 한 남자에게 세상의 새로운 절반을 가져온다. 한 사람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협하기 때문에 세상의 아주 일부분 밖에는 볼수 없다. 인간은 두 가지 종교적 신념을 동시에 믿거나, 일곱 가지 장르의 음악에 동시에 매혹될 수 없는 것이다.

친구와 동료도 세상의 다른 조각들을 건네주지만, 연인과 배우자가 가져오는건 온전한 세계의 반쪽. 에 가깝다. 그건 너무 커다랗고 완결되어 있어서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오는 세상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조금 덜 편협한 인간이 된다.

실연은 그래서 그 세상 하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인이 사라진 마음의 풍경은 그래서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그 밀물이 남기고 거대한 빈공간에는 조개껍질 같은 흔적들이 남는다. 나는 혼자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가보기도 하고, 선댄스의 감독이 마침내 헐리웃에서 장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을 이따금 발견하고 주워 들여다보는 것은 다분히 실없지만, 아름다운 짓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러한 실연이 없는 관계-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면 그 모든 절반의 세계는 점차 단단히 나의 세계로 스며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굉장히 이상하고 기묘한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의 리스트에는 그녀가 가져온 좋은것과 문제점 모두가 포함된다. 그건 혜택과 책임으로 복잡하게 얽힌 대차대조표라서 어차피 득실을 따지기가 어렵다.

세월이 감에 따라 그녀가 최초에 나에게 가져왔던 섬세한 풍경들의 윤곽, 디테일한 소품들은 생활이라는 것에 차차 -혹독히- 침식되겠지만, 그 기본적인 구성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나와 몹시 다르고, 다양해서- 이따금 경이로울 것이다.

한 사람이 오는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는 말을 웬 광고판에서 본 적이 있다. 왜 아침에 그 문구가 생각났을까. 아무튼 사람을, 연인을 곁에 두기로 하는 것은 그래서, 무척이나 거대한 결심이다.




전 1박2일 PD였던 유호진 PD의 글인데 읽다 좋아서 가져왔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세상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네
목록 스크랩 (496)
댓글 59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려 x 더쿠] 두피도 피부처럼 세심한 케어를! 떡짐 없이 산뜻한 <려 루트젠 두피에센스> 체험 이벤트 159 00:18 2,990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3,641,12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444,77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5,643,365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7,032,29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4 21.08.23 5,261,793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1 20.09.29 4,241,79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54 20.05.17 4,821,70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2 20.04.30 5,293,65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040,976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54933 이슈 레전드 프리뷰 같은 에스파 윈터 사진 03:19 153
2554932 이슈 미국 주식 2년 6개월 투자해서 10억 만든 사람.jpg 6 03:16 556
2554931 이슈 비주얼 정말 예뻤던 어제 2024 KGMA 카리나.jpg 6 03:05 556
2554930 이슈 입양 한 달 차 고민이 많은 부부, 생후 9일 만에 입양된 19살 수아를 만나다.jpg 8 03:05 954
2554929 기사/뉴스 `야수의 심장` 마이크로스트래티지, 비트코인으로 미국 금융자산 `13위` 03:04 201
2554928 이슈 2001년 대학로 길거리 모습들 12 02:54 907
2554927 유머 오늘 광야갔다가 놀람 진짜 미감 구림... 24 02:52 2,319
2554926 유머 주식 28년차 고수의 매매 방법.jpg 3 02:52 808
2554925 이슈 🐼 루이바오와 후이바오 💜🩷 500일 🎉🎉 10 02:34 812
2554924 기사/뉴스 송승헌, 신사역 스벅 건물주…바로 뒤 상가도 매입, 678억 차익 6 02:32 1,229
2554923 유머 안 잔다고 아직 일요일인거 아닙니다 21 02:30 843
2554922 이슈 서울,대전은 1.2도까지 내려간 현재 전국 기온.jpg 26 02:17 2,649
2554921 이슈 9년 전 오늘 발매♬ aiko 'プラマイ' 02:17 267
2554920 이슈 [프리미어12] 야구 잘 몰라도 야구 국대 감독 바꿔야 한다는 건 좀 알아주라 류중일은 안 된다는 사실 그 사실만은 야구 잘 몰라도 기억해주세요ㅠㅠ 제발 16 02:10 1,564
2554919 유머 근무시간 끝나고 퇴근하는 인형 찍힘 10 02:08 3,095
2554918 이슈 모든걸 뺏긴 부용이 65 02:07 5,244
2554917 이슈 [펌]동덕여대 사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 유튜버 (맹온) 17 02:04 2,082
2554916 이슈 담당 사육사 지켜보는 아기 삵 오둥이 4 02:01 1,979
2554915 팁/유용/추천 귀에서 💩을 꺼내는듯한 귀지 빼기 52 01:56 4,636
2554914 이슈 @성추행 교수 쉴드치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재학생들보다, 락커칠된 학교건물을 더 걱정하는 사람들하고 한 사회에 살아가야된다는게 힘들다 ‘얌전한 시위’할땐 기사도 0건이라 이제야 알게된건데 말이다 12 01:55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