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평일도 인생이니까.txt
17,270 312
2019.06.15 15:35
17,270 312

376979563a16a3b6b82d8a488446a0ae083637b6

평일도 인생이니까
그동안 숱한 평일들을 인생에서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2019 . 04 . 10

#황금 같은 주말에 최악의 선택을 하다니

3월의 어느 주말, 수목원에 다녀왔다. 친구가 1년 전에 선물로 준 수목원 입장권이 3월 31일로 만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네받을 때만 해도 언제 가면 좋을까, 봄꽃을 보러 갈까, 단풍을 보러 갈까 기분 좋은 고민을 했지만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까먹고서 한 고민이었다. 모든 공짜 티켓은 기한 만료 직전이나 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 전엔 부러 눈에 띄게 하려고 지갑에 넣어두거나 책상 앞 코르크 보드에 꽂아놔도 투명 티켓처럼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번엔 모처럼 때를 놓치지 않을 참이었다. 도로는 주말답게 붐볐다. 집을 나선 지 2시간이 지났건만, 거북이 운전으로 반도 못 온 상황이었다. 꽃도 안 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뭘 보러 집을 나선 걸까. 애꿎은 나들이객 탓을 하며 보조석에 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렇게 막힐 줄 알았으면 그냥 하루 연차 쓰고 평일에 갈걸. 아니 그냥 집에서 쉴걸. 공짜 티켓이 뭐라고. 집에 있었으면 지금쯤 몸도 마음도 아주 편했을 텐데.

오랜만에 놀러 나선 길이 꽉 막히니 사소한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눈앞에 보이는 웬만한 것은 다 원망스러웠다. 막히는 차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뻥튀기를 흔드는 손길도, 앞차에서 흘러나오는 쩌렁쩌렁한 노랫소리도, 찌뿌듯하게 흐려지는 게 곧 비를 쏟을 것 같은 하늘도. 망했다. 다 망했어. 나는 되는 게 없어.


#어딘가로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

이럴 땐 후회를 입 밖으로 내뱉어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후회하게 만드는 게 내 특기다. “괜히 나왔다, 그치.”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진작 가자고만 했었어도….” “그냥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3시간 걸리는 것보다 지금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의 2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는 내 자아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다시방’에라도 욱여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던 K가 말했다.

“그냥 ‘가는 길’인 거야. 차가 막혀도 안 막혀도 우린 지금 수목원에 가고 있는 중이잖아. 그 시간을 그냥 좀 즐겨도 돼.” K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한다. 수시로 기우뚱거리는 나를 대신해 시소 위에서 그때그때 앞으로 두 칸, 뒤로 한 칸씩 옮기며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말을. 듣고 나면 늘 이 상황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하는 말을.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을 출발해 막히는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이 3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9157eabceffce6061a59a9fc06435a0fc135eba3

K의 말을 곱씹는 동안 생각했다. 이 3시간을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지금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의 주말, 나의 토요일이었다. 엄연히 내 인생의 3시간이고.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이런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힘들어하게 되었다. 그건 아마 견디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일 거다. 예전의 나는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시간을 그 나름대로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마음이 자꾸 비좁아진다. 어쩌면 이미 과정보다 도착이 중요한 어른이 되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도 인생이니까

목적지에만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인생을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으로 구분하고, 나머지 날들을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이라 치부하지 않는 것. 내게 필요한 건 그것뿐인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삶의 시간이 다 그렇다. 대학에 합격하기 전, 취업하기 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나누어 놓고 그전의 시간을 다 ‘진짜가 아닌’ 시간으로 여기면 우리 앞에 촘촘히 놓여 있는 시간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출퇴근하며 입버릇처럼 “빨리 토요일 되면 좋겠다.”라고 하는 순간 평일은 인생에서 지워지는 것처럼. 그건 참 이상한 말이다. 그럴 때 우린 월·화·수·목·금요일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주말에 도착하기 위해 버리는 날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싶은 벌칙 같은 시간? 나는 종종 월요일의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다크서클이 드리운 얼굴로 말하곤 했다. “오늘 금요일 아닌가요? 왜 아니죠…?” 그렇게 말할 때마다 멀쩡한 평일들은 순삭되어야 마땅한 날들이 되었다. 버려도 되는 날은 없는데도.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평일도 인생이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 앞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까워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외의 시간들을 하찮게 대할 때, 우리가 버리고 있는 건 시간이 아니라 인생인데도. 그동안 숱한 평일들을 인생에서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던 나처럼 말이다.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일이다.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 뿐이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주말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봄의 한나절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
[885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목록 스크랩 (256)
댓글 312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코스맥스 쓰리와우❤️] 이게 된다고??😮 내 두피와 모발에 딱 맞는 ‘진짜’ 1:1 맞춤 샴푸 체험 이벤트 622 10.23 45,598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3,259,840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002,423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5,081,256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6,449,40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2 21.08.23 5,035,73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0 20.09.29 4,019,29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44 20.05.17 4,621,41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0 20.04.30 5,075,08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9,810,998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37198 이슈 3년 전 오늘 발매♬ 히나타자카46 'ってか' 06:24 54
2537197 이슈 오늘자 음바페 기록..jpg 6 06:05 833
2537196 이슈 미국 휴스턴의 클럽에서 나온 아파트 떼창 8 06:02 981
2537195 이슈 방금끝난 엘클라시코 경기 결과.jpg 2 05:58 691
2537194 이슈 더쿠 아이디 시세 근황 66 05:50 3,594
2537193 이슈 충격과 공포의 스페인 라리가 엘클라시코(레알 대 바르샤) 실시간 스코어 3 05:46 768
2537192 이슈 [엘클라시코] 바르샤-레알마드리드 4:0 4 05:46 416
2537191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만 운영하는 우유 디저트 카페 입니다~ 2 05:38 329
2537190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도 운영하는 갈치 식당 입니다~ 2 05:35 323
2537189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만 운영하는 치즈냥 식당입니다~ 2 05:31 364
2537188 이슈 황성옛터(황성의 적) - 이애리수 (1932 취입) 8 04:59 640
2537187 유머 새벽에 보면 완전 추워지는 괴담 및 소름돋는 썰 모음 33편 3 04:44 717
2537186 이슈 추가보고서 신뢰성 올라가는 기사 8 04:19 4,043
2537185 유머 출근길 사람하고 기싸움하는 포메라니안 7 04:09 2,601
2537184 유머 위험한 스티커를 붙이고 나타난 피크민.twt 3 04:07 1,674
2537183 유머 판다월드 최고 순둥이🐼 11 04:06 2,105
2537182 유머 할머니가 안 계실 때 가게 보는 멍멍이 7 04:04 2,443
2537181 이슈 하루를 망치더라도 행복해지는 꿀팁 4 04:02 2,447
2537180 유머 건강한 더쿠생활🤎건강지킴이 지나갑니다...🐌허리펴 양반다리풀어 고개들어 6 03:57 1,051
2537179 유머 화재경보기 울리자 개만 들쳐업고 나옴 30 03:52 5,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