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예전 일이긴 함. 내가 스물 네살 땐데, 우리 할아버지는 나 스물한살때 돌아가셨거든. 급작스럽게 돌아가신건 아니고 간경화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어. 스물 네살때 나는 개인적인 성향+하고있던 일 때문에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음. 그래서 그런가 예민함이 극에 달해서 가끔 예지몽을 꿀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 꿨던 꿈 중의 하나임.
꿈 속에서 나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댁 마당에 와있었음. 구조 자체는 실제 집이랑 똑같았어. 우리 할머니네 시골집에는 안방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벽에 작은 창이 나있음. 크기가 큰 창은 아니고, 보통 원룸에서 화장실에 나있는 환기용 창 정도? 고개만 내밀 수 있을 정도야. 실제 집은 그 문으로 내다보면 뒷집 마당이 보이는데, 꿈속에서 내가 그 창을 내다봤더니 끝도 없이 펼쳐진 대나무밭이 거기 있는거야. 뭐지.. 싶던 찰나에 대나무밭에서 할아버지가 나오심.
할아버지는 생전 흑색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셨어. 아주 까만 색은 아니고 먹색이라고 해야하나, 좀 회색끼가 도는 두루마기인데 그걸 입고 나오시는걸 보면서 '할아버지는 분명 돌아가셨는데, 왜 여기 계시지?' 하는 의문과 함께 좀 무서운 마음이 들었음. 하지만 할아버지 임종때 마지막으로 내 얼굴 보시면서 엄지 척 치켜드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곧 반가운 마음이 더 크게 들더라.
할아버지가 대나무밭에서 나오셔서 내 앞까지 서셨는데, 나는 "할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고 물었고 할아버지는 그 말엔 대답 안하시고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보심. 대충 고개 끄덕이면서 네 잘 지낸다고 했더니 그럼 됐다, 하시곤 누군가를 부르시는거야. 그러자 대나무숲 기슭에서 누군가 나옴.
나는 처음 보는 할머니였음. 저 할머니는 누구시지... 하면서 빤히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이제 가야 한다고 할머니한테 눈짓을 하시더니 두분이서 대나무숲으로 다시 들어가시더라고. 그게 끝이었음.
꿈에서 깬 나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꿈 얘기를 하면서 좀 이상한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엄마는 그냥 귓등으로 들으시며ㅋㅋㅋ 할머니한테 물어나 보겠다고 했음.
그러고 일주일 후, 엄마한테 안부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좀 머뭇거리면서 너 저번에도 이상한 꿈 꾼적 있지 않냐는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그 꿈을 꾸고난 바로 다음날, 시골 할아버지네 동네에서 할머니 한분이 돌아가셨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댁만 왔다갔다해서 동네 노인분들은 전혀 모르는데, 원래 그분이 편찮으셨는데 그날 아침에 돌아가셨다는거. 엄마가 소름돋으니까 그런 꿈 고만 꾸라고 장난처럼 얘기하긴 했는데, 그 이후로도 한 5년에 두세번 정도 태몽이랑 예지몽 꾸고는 지금은 그냥 개꿈만 꾸는 머글이 됨ㅋㅋㅋ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가끔 생각해, 우리 할아버지는 저승 가셔서 차사 자리를 꿰차신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만약에 저승에 가게 되면 할아버지가 마중 나오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