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저주에 관한 글을 읽고요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가기에 저 역시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보려고요. 저는 친구를 저주했던 적이 있어요. 어차피 익명이니까 뭐,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그때가 삼 월 중순이었어요. 막 점심을 먹고 난 후였죠. 친구랑 주말에 만날 약속을 잡으면서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더니 어깨를 꽝 세차게 부딪히더라고요. 거의 반 나자빠질 뻔 했죠. 신경질이 나서 뒤를 돌아봤더니 얼굴만 아는 같은 반 친구였어요. ...솔직히 걔한테 친구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네요. 하지만 편의상 그렇게 지칭할게요.
뒤에서 다른 애랑 격하게 장난을 치다 실수로 제게 부딪힌 것 같았어요. 그런 일이야 학교생활하다보면 비일비재하죠.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사과만 받으면 바로 제 갈길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씨발. 걔가 욕설만 내뱉지 않았다면요.
뭐?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습니다. 제가 걔한테 다가가서 부딪힌 게 아니니까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저를 노려보는 태도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더군요. 뭐라고 한 마디 하려던 찰나, 옆에 있던 친구가 슬그머니 제 교복을 잡아당겼습니다. 돌아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어요. 주위를 감싼 기류가 평범한 느낌이 아니라서 그냥 모르는 척 친구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세 걸음 네 걸음 멀어지는 귓가로 '씨발년.......' 이를 가는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걔가 소위 말하는 일진이고 미친년이라는 사실은 그날이 지난 후에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새학기고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니 저야 알 도리가 없었죠. 친구가 속삭이며 해 준 이야기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제깟게 나를 뭐 어쩌겠나 싶기도 했어요. 저 역시 한창 객기가 충만하던 시기였으니까요. 실상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이 와서 부딪힌 일을 남 탓을 하겠나 싶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요. 십대는요, 교실 안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실 안에서 보내잖아요. 선생님과 부모님과는 유리된 또 하나의 세계이지요. 어차피 나이나 직위는 모두 동등하니까 결국 그 안에서 권력을 잡는 건 기운과 이빨이에요. 내가 가진 게 80이면 100 이상을 가진 것처럼 부풀려 보이는 거죠.
새학기고, 아직 서로를 모르던 시기였으니까요. 걔는 자신의 권력을 내보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운 나쁘게 제가 그 레이더에 걸렸던 거예요.
익명이니까 솔직하게 밝히자면 그날의 일을 저는 수백번은 되돌려 보았습니다. 복도에서 걔랑 부딪혔을 때 말이에요. 그냥 눈을 내려깔거나 모르는 척 비키거나 아니면 미소를 짓거나 제 쪽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하고요. 제가 비굴해보이시죠? 제삼자였다면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실제로 처음 걔와 부딪혔던 순간에는 사과를 하지 않는 그 아이가 뻔뻔해 보였거든요. 제가 사과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사람이 괴로우니까, 하루하루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까짓 자존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더라고요.
그렇게 악몽은, 며칠이 지난 타이밍에 툭, 머리를 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몇 번 반발을 하는 사이에 그 괴롭힘은 급속도로 심화되었죠. 교과서가 개수대에 처박히거나 아차 하는 사이에 머리가 뭉텅이로 잘려나갔습니다. 체육복은 사라지고 조별활동을 할라치면 '누가 또라이를 끌고 가냐!' 윽박을 질렀어요.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맞서 싸웠죠. 같이 욕을 하거나 머리카락이라도 잡아당겼어요. 그런데요, 몇 년 전부터 형성된 그룹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제가 걔한테 침을 뱉으면요, 우루루 쫓아나온 애들이 저를 붙잡고는 사정없이 뺨을 때렸어요. 그게 그 아이들의 의리표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어느새 교내에서 소문난 왕따가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불쌍한 피해자였습니다. 저랑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뒤에서라도 욕을 본다고 걔들이 나쁜 거라고 위로를 해줬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고정된 채로 몇 달이 지나버리니까 슬슬 제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맞서 싸우지 않고 저렇게 당하고만 있느냐, 알고보면 약점 잡힌 거라도 있는 거 아니냐, 사실 나 쟤 좀 음울해 보이더라, 친구도 많은데 굳이 쟤랑...? 저는 그렇게 학급 내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하루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날이 없었어요. 일차원적인 괴롭힘에 생리적인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건 군중 속의 고독이었습니다. 네, 군중 속의 고독이요. 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셋이고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 하나면 그 하나는요, 셋만 무서운 게 아니라 지켜보는 구십 육명의 눈이 두렵습니다. 단순히 나를 때리고 욕해서가 아니라요, 내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구십 육명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 속에서 지키고 있던 무언가가 가닥가닥 뚝뚝 끊겨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걔가 제 교복을 뒤집어서 배에다 걸레라고 적었을 때 집에 돌아와서 엄마 몰래 샤워를 하다가 그대로 변기를 부여잡고 속에 든 모든 것을 게워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본능적으로 꼭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집에 있는 아무 인형이고 붙잡아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버렸습니다. 솜이 덥수룩하게 튀어나와 인형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몰골이 됐어요. 손으로 쥐어짜면 빨래마냥 비틀어지는 인형을 구겨잡고는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제 자신이 헝클어진 솜처럼 느껴졌어요.
어쩌면 그래서였을 거예요. 믿지도 않던 미신에 매달린 것은요. 미워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구해다가 인형에 넣고 저주를 하면 그대로 실현된다길래 네, 그대로 했습니다. 걔 머리카락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어요. 걔는 학교에 있을 때면 어느 때든 제 곁에 있었거든요. 그즈음에는 학교에서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면서 핸드폰을 들고 자기 뒤를 개마냥 쫓아다니게 했거든요. 저는 일종의 안테나였죠. 걸어다니는 안테나요. 때로는 샌드백도 되고 밟아죽이는 개미도 되고 부정적인 역할이란 역할은 모두 도맡아하는 편리한 안테나였습니다.
저주인형을 처음 만든 날에 작은 못을 하나 걔 가슴에 박아넣으면서 덜덜 떨었습니다. 걔에 대한 미움이 덜해서가 아니라요, 누군가를 상상하며 못을 박아넣는다는 행위가 뭐랄까, 스스로를 오물에 처박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할 최소한의 선을 넘는 기분이었어요. 인형의 한복판에 못을 하나 찔러넣고는 그날은 잠을 자지 못하고 내내 뒤척였습니다. 걔가 정말 저주처럼 아플까, 만약에 아프면 그것 참 통쾌하다, 그러면 내 탓인가? 알게 뭐야, 당한 게 얼마인데.... 사라져버려, 사라져버려....... 알 수 없는 괴로움에 그날은 또 울었습니다. 다음 날 반에서 걔를 보고 너무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어제의 자신이 우스울 정도였어요.
인형은 더 이상 저주를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 채로 제 책상 서랍 한 구석에 그대로 처박혔습니다. 저는 괴로워하면서도 꼬박꼬박 학교에 나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차라리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걔를 제 주위에서 치웠버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고등학교가 제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실상 사회에 나와보면 더 독한 인종들이 많죠. 법에 위촉되지 않기 위해 물렁거리는 혓바닥을 간사하게 놀리는 부류들이요. 고등학교 때는 그때의 친구들, 그때의 관계가 평생을 갈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졸업하면 기억이 나는 얼굴조차 몇 되지 않잖아요. 그걸 그때도 알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어린 시절의 저는 학교 속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거든요. 또래가 아닌 어른들에게 고자질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비겁하고 더불어 제 연약함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짓이라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그렇게 괴로워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삶을 살아갔을런지도 몰라요.
그날은 절 괴롭히는 무리가 제 얼굴을 과녘 삼아 동그랑땡을 집어던졌습니다. 기름때문에 얼굴이 끈적해져서 씻으러 화장실에 갔죠. 얼굴을 대강 훔치고는 새어나오는 눈물을 닦으려고 칸막이 안에서 휴지를 뜯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초반에 제가 이야기했죠? 저랑 같이 복도를 걷던 친구요. 학기 초에 형성되려던 무리가 있었거든요. 왜 같이 우르르 매점 가고 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걔가 그러더라고요. 불안해 죽겠다고. 자기도 그 타이밍에 옆에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요즘 한 번씩 시비를 걸어온다고요. 가만히 들어보니 어깨를 부딪혔던 처음 그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왕따가 아니잖아. 괜히 옆에 있다가.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불안한 목소리였어요. 걔도 무서웠겠죠.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저는 그 순간에요, 가슴 속에 거대한 깔때기가 생긴 기분이었습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깔때기가 생겨서요, 저를 이루고 있던 모든 감정의 근간이 우수수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괴롭힘을 당한 건 저인데 왜 제가 피해야할 오물이 되어버린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 피해가 갈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 왜 제가요. 왜 제가요?
그렇다고 뭔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막 굴리기 좋은 만만한 샌드백이었죠. 걔는 심지어 하교할 때까지 저를 끌고다니며 이리저리 괴롭혔습니다. 안테나에게는 결정할 권리가 없었죠. 저는 항상 몇 보 뒤에서 걔를 따라다녔고 걔는 그림자보다 더 저를 경시했습니다. 걔가 야자를 빠지는 날이면 저 역시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걔 뒤를 따라다녀야만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노을이 지는 학교를 등진 채 좁은 골목길을 걷노라면 흔적없이 땅 밑으로 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운명의 날에 걔는 여전히 제 앞에 선 채로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연신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는 상태였죠. 저 역시 핸드폰을 든 상태로 조금은 멍하게 그 아이의 왜소한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걔는 유난히 어깨가 좁았어요. 뒤에서 보면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었는데 저는 그 왜소한 등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골목길의 끝에서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는 그 아이의 옆 얼굴에 전조등이 드리워지는 게 보였습니다. 노을에 휩싸여 자동차의 빛은 아른아른했어요. 그 순간에 저는 선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 모르는 채 자판만 두드리고 있는 걔를 소리를 내어 불러세울 수도 있었고, 모르는 척 행운의 신에게 걔의 운명을 맡길 수도 있었고, 그리고 또.......
타이어가 급정지 하는 소리가 그렇게 찢어진다는 것을 저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어요. 걔는 차에 치여 얼마간 붕 떴고 양팔이 이상하게 꺾여 바닥을 굴렀습니다. 사람의 피를 본 것 역시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전에야 피라고 해봤자 여기저기 쓸리고 까진 제 팔의 생채기 뿐이었죠. 아주 느리고 천천히 걔 주위로 붉은 물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운전자가 고함을 질렀고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떤 감정 때문에 제가 비명을 터뜨렸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걔는 구겨진 인형같은 모습 그대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며칠 간 아이들이 저를 힐끔거렸고 오일이 지난 아침에 담임이 침통한 낯을 하고서는 검은 옷을 입은 채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 저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되었어요. 꼭 걔가 죽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한가득 들어찼기 때문이겠죠. 따돌림 당하던 아이와 괴롭히던 애가 나란히 하교했는데 개중 하나가 사고로 죽고 다른 하나가 목격자가 되면요, 누구든 음습한 상상을 해보지 않겠어요. 따돌림이 멈췄다기보다는 모두가 저를 외면했다는 게 정확한 말이 되겠지만 적어도 이유없이 쓰레기통을 뒤집어 쓰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꽤나 새로운 생활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직은 아이들이었죠. 제가 인형의 가슴에 못을 박고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너무 직접적인 재앙은 친구들에게 상당히 불길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시작은 저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제 이야기만 늘어놨네요. 요는 그렇습니다.
저는 저주를 이루는데 거창한 주문이나 복잡한 제의는 필요하지 않다고 봐요. 닭피를 묻힌 식칼이나 공동묘지에서 가져온 흙이요? 식칼은 휘둘러야 사람이 죽는 거고 흙은 생매장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낱 흙일 뿐이잖아요. 저주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죠.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강한 의지라고 봅니다. 그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그걸 찝찝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악의요.
처음에 제가 그 아이의 머리카락으로 인형을 만들었을 때, 제게는 그 의지가 부족했어요. 고작 못 하나 박아놓고서는 저주가 실현될까봐 밤새 덜덜 떨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인간으로서 온전할 때의 이야기겠지요. 남을 상해하는 것에 가책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양심을 가지고 있을 때요.
저는 아직 그 인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이 잘리고 배가 덜렁거리는 인형 말이에요. 죽은 애의 머리카락은 현재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겠죠. 저는 저주를 계속한다든가 처리하는 게 무서워서 그 인형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순수했던 시기의 기록이죠.
걔는 제 머리를 툭 치는 것만으로 괴롭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저는 그걸 고스란히 돌려줬고요. 그저 적절한 타이밍에 약간의 힘을 가해 걔의 좁은 등을 한 차례 툭 밀었을 뿐입니다. 이전이라면 절대 못했을 짓이죠. 이쯤 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덧붙이지만 이건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진짜가 아니에요. 그저 저주에 관한 괴담을 지어낸 것 뿐입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요, 나이를 먹어 생각해 보면 저는 그때 동반자살을 꿈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걔가 너무 좋아서 같이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스스로를 뭉개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걔를 죽여버리고 싶었으니까요. 분명 태어나고 자라길 저는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그 시기를 거쳐 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래서요, 너무 글이 길어졌는데 정말로 저주를 성공시키고 싶다면요, 스스로를 지옥불에 던질 각오 정도는 해야 그 저주가 성공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무형의 저주가 이뤄지지 않으면요, 내가 그 사람의 멱을 손수 따러 갈 그런 각오 말이에요.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가기에 저 역시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보려고요. 저는 친구를 저주했던 적이 있어요. 어차피 익명이니까 뭐,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그때가 삼 월 중순이었어요. 막 점심을 먹고 난 후였죠. 친구랑 주말에 만날 약속을 잡으면서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더니 어깨를 꽝 세차게 부딪히더라고요. 거의 반 나자빠질 뻔 했죠. 신경질이 나서 뒤를 돌아봤더니 얼굴만 아는 같은 반 친구였어요. ...솔직히 걔한테 친구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네요. 하지만 편의상 그렇게 지칭할게요.
뒤에서 다른 애랑 격하게 장난을 치다 실수로 제게 부딪힌 것 같았어요. 그런 일이야 학교생활하다보면 비일비재하죠.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사과만 받으면 바로 제 갈길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씨발. 걔가 욕설만 내뱉지 않았다면요.
뭐?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습니다. 제가 걔한테 다가가서 부딪힌 게 아니니까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저를 노려보는 태도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더군요. 뭐라고 한 마디 하려던 찰나, 옆에 있던 친구가 슬그머니 제 교복을 잡아당겼습니다. 돌아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어요. 주위를 감싼 기류가 평범한 느낌이 아니라서 그냥 모르는 척 친구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세 걸음 네 걸음 멀어지는 귓가로 '씨발년.......' 이를 가는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걔가 소위 말하는 일진이고 미친년이라는 사실은 그날이 지난 후에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새학기고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니 저야 알 도리가 없었죠. 친구가 속삭이며 해 준 이야기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제깟게 나를 뭐 어쩌겠나 싶기도 했어요. 저 역시 한창 객기가 충만하던 시기였으니까요. 실상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이 와서 부딪힌 일을 남 탓을 하겠나 싶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요. 십대는요, 교실 안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실 안에서 보내잖아요. 선생님과 부모님과는 유리된 또 하나의 세계이지요. 어차피 나이나 직위는 모두 동등하니까 결국 그 안에서 권력을 잡는 건 기운과 이빨이에요. 내가 가진 게 80이면 100 이상을 가진 것처럼 부풀려 보이는 거죠.
새학기고, 아직 서로를 모르던 시기였으니까요. 걔는 자신의 권력을 내보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운 나쁘게 제가 그 레이더에 걸렸던 거예요.
익명이니까 솔직하게 밝히자면 그날의 일을 저는 수백번은 되돌려 보았습니다. 복도에서 걔랑 부딪혔을 때 말이에요. 그냥 눈을 내려깔거나 모르는 척 비키거나 아니면 미소를 짓거나 제 쪽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하고요. 제가 비굴해보이시죠? 제삼자였다면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실제로 처음 걔와 부딪혔던 순간에는 사과를 하지 않는 그 아이가 뻔뻔해 보였거든요. 제가 사과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사람이 괴로우니까, 하루하루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까짓 자존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더라고요.
그렇게 악몽은, 며칠이 지난 타이밍에 툭, 머리를 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몇 번 반발을 하는 사이에 그 괴롭힘은 급속도로 심화되었죠. 교과서가 개수대에 처박히거나 아차 하는 사이에 머리가 뭉텅이로 잘려나갔습니다. 체육복은 사라지고 조별활동을 할라치면 '누가 또라이를 끌고 가냐!' 윽박을 질렀어요.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맞서 싸웠죠. 같이 욕을 하거나 머리카락이라도 잡아당겼어요. 그런데요, 몇 년 전부터 형성된 그룹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제가 걔한테 침을 뱉으면요, 우루루 쫓아나온 애들이 저를 붙잡고는 사정없이 뺨을 때렸어요. 그게 그 아이들의 의리표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어느새 교내에서 소문난 왕따가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불쌍한 피해자였습니다. 저랑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뒤에서라도 욕을 본다고 걔들이 나쁜 거라고 위로를 해줬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고정된 채로 몇 달이 지나버리니까 슬슬 제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맞서 싸우지 않고 저렇게 당하고만 있느냐, 알고보면 약점 잡힌 거라도 있는 거 아니냐, 사실 나 쟤 좀 음울해 보이더라, 친구도 많은데 굳이 쟤랑...? 저는 그렇게 학급 내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하루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날이 없었어요. 일차원적인 괴롭힘에 생리적인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건 군중 속의 고독이었습니다. 네, 군중 속의 고독이요. 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셋이고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 하나면 그 하나는요, 셋만 무서운 게 아니라 지켜보는 구십 육명의 눈이 두렵습니다. 단순히 나를 때리고 욕해서가 아니라요, 내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구십 육명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 속에서 지키고 있던 무언가가 가닥가닥 뚝뚝 끊겨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걔가 제 교복을 뒤집어서 배에다 걸레라고 적었을 때 집에 돌아와서 엄마 몰래 샤워를 하다가 그대로 변기를 부여잡고 속에 든 모든 것을 게워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본능적으로 꼭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집에 있는 아무 인형이고 붙잡아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버렸습니다. 솜이 덥수룩하게 튀어나와 인형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몰골이 됐어요. 손으로 쥐어짜면 빨래마냥 비틀어지는 인형을 구겨잡고는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제 자신이 헝클어진 솜처럼 느껴졌어요.
어쩌면 그래서였을 거예요. 믿지도 않던 미신에 매달린 것은요. 미워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구해다가 인형에 넣고 저주를 하면 그대로 실현된다길래 네, 그대로 했습니다. 걔 머리카락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어요. 걔는 학교에 있을 때면 어느 때든 제 곁에 있었거든요. 그즈음에는 학교에서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면서 핸드폰을 들고 자기 뒤를 개마냥 쫓아다니게 했거든요. 저는 일종의 안테나였죠. 걸어다니는 안테나요. 때로는 샌드백도 되고 밟아죽이는 개미도 되고 부정적인 역할이란 역할은 모두 도맡아하는 편리한 안테나였습니다.
저주인형을 처음 만든 날에 작은 못을 하나 걔 가슴에 박아넣으면서 덜덜 떨었습니다. 걔에 대한 미움이 덜해서가 아니라요, 누군가를 상상하며 못을 박아넣는다는 행위가 뭐랄까, 스스로를 오물에 처박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할 최소한의 선을 넘는 기분이었어요. 인형의 한복판에 못을 하나 찔러넣고는 그날은 잠을 자지 못하고 내내 뒤척였습니다. 걔가 정말 저주처럼 아플까, 만약에 아프면 그것 참 통쾌하다, 그러면 내 탓인가? 알게 뭐야, 당한 게 얼마인데.... 사라져버려, 사라져버려....... 알 수 없는 괴로움에 그날은 또 울었습니다. 다음 날 반에서 걔를 보고 너무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어제의 자신이 우스울 정도였어요.
인형은 더 이상 저주를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 채로 제 책상 서랍 한 구석에 그대로 처박혔습니다. 저는 괴로워하면서도 꼬박꼬박 학교에 나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차라리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걔를 제 주위에서 치웠버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고등학교가 제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실상 사회에 나와보면 더 독한 인종들이 많죠. 법에 위촉되지 않기 위해 물렁거리는 혓바닥을 간사하게 놀리는 부류들이요. 고등학교 때는 그때의 친구들, 그때의 관계가 평생을 갈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졸업하면 기억이 나는 얼굴조차 몇 되지 않잖아요. 그걸 그때도 알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어린 시절의 저는 학교 속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거든요. 또래가 아닌 어른들에게 고자질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비겁하고 더불어 제 연약함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짓이라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그렇게 괴로워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삶을 살아갔을런지도 몰라요.
그날은 절 괴롭히는 무리가 제 얼굴을 과녘 삼아 동그랑땡을 집어던졌습니다. 기름때문에 얼굴이 끈적해져서 씻으러 화장실에 갔죠. 얼굴을 대강 훔치고는 새어나오는 눈물을 닦으려고 칸막이 안에서 휴지를 뜯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초반에 제가 이야기했죠? 저랑 같이 복도를 걷던 친구요. 학기 초에 형성되려던 무리가 있었거든요. 왜 같이 우르르 매점 가고 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걔가 그러더라고요. 불안해 죽겠다고. 자기도 그 타이밍에 옆에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요즘 한 번씩 시비를 걸어온다고요. 가만히 들어보니 어깨를 부딪혔던 처음 그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왕따가 아니잖아. 괜히 옆에 있다가.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불안한 목소리였어요. 걔도 무서웠겠죠.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저는 그 순간에요, 가슴 속에 거대한 깔때기가 생긴 기분이었습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깔때기가 생겨서요, 저를 이루고 있던 모든 감정의 근간이 우수수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괴롭힘을 당한 건 저인데 왜 제가 피해야할 오물이 되어버린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 피해가 갈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 왜 제가요. 왜 제가요?
그렇다고 뭔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막 굴리기 좋은 만만한 샌드백이었죠. 걔는 심지어 하교할 때까지 저를 끌고다니며 이리저리 괴롭혔습니다. 안테나에게는 결정할 권리가 없었죠. 저는 항상 몇 보 뒤에서 걔를 따라다녔고 걔는 그림자보다 더 저를 경시했습니다. 걔가 야자를 빠지는 날이면 저 역시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걔 뒤를 따라다녀야만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노을이 지는 학교를 등진 채 좁은 골목길을 걷노라면 흔적없이 땅 밑으로 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운명의 날에 걔는 여전히 제 앞에 선 채로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연신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는 상태였죠. 저 역시 핸드폰을 든 상태로 조금은 멍하게 그 아이의 왜소한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걔는 유난히 어깨가 좁았어요. 뒤에서 보면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었는데 저는 그 왜소한 등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골목길의 끝에서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는 그 아이의 옆 얼굴에 전조등이 드리워지는 게 보였습니다. 노을에 휩싸여 자동차의 빛은 아른아른했어요. 그 순간에 저는 선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 모르는 채 자판만 두드리고 있는 걔를 소리를 내어 불러세울 수도 있었고, 모르는 척 행운의 신에게 걔의 운명을 맡길 수도 있었고, 그리고 또.......
타이어가 급정지 하는 소리가 그렇게 찢어진다는 것을 저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어요. 걔는 차에 치여 얼마간 붕 떴고 양팔이 이상하게 꺾여 바닥을 굴렀습니다. 사람의 피를 본 것 역시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전에야 피라고 해봤자 여기저기 쓸리고 까진 제 팔의 생채기 뿐이었죠. 아주 느리고 천천히 걔 주위로 붉은 물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운전자가 고함을 질렀고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떤 감정 때문에 제가 비명을 터뜨렸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걔는 구겨진 인형같은 모습 그대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며칠 간 아이들이 저를 힐끔거렸고 오일이 지난 아침에 담임이 침통한 낯을 하고서는 검은 옷을 입은 채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 저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되었어요. 꼭 걔가 죽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한가득 들어찼기 때문이겠죠. 따돌림 당하던 아이와 괴롭히던 애가 나란히 하교했는데 개중 하나가 사고로 죽고 다른 하나가 목격자가 되면요, 누구든 음습한 상상을 해보지 않겠어요. 따돌림이 멈췄다기보다는 모두가 저를 외면했다는 게 정확한 말이 되겠지만 적어도 이유없이 쓰레기통을 뒤집어 쓰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꽤나 새로운 생활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직은 아이들이었죠. 제가 인형의 가슴에 못을 박고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너무 직접적인 재앙은 친구들에게 상당히 불길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시작은 저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제 이야기만 늘어놨네요. 요는 그렇습니다.
저는 저주를 이루는데 거창한 주문이나 복잡한 제의는 필요하지 않다고 봐요. 닭피를 묻힌 식칼이나 공동묘지에서 가져온 흙이요? 식칼은 휘둘러야 사람이 죽는 거고 흙은 생매장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낱 흙일 뿐이잖아요. 저주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죠.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강한 의지라고 봅니다. 그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그걸 찝찝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악의요.
처음에 제가 그 아이의 머리카락으로 인형을 만들었을 때, 제게는 그 의지가 부족했어요. 고작 못 하나 박아놓고서는 저주가 실현될까봐 밤새 덜덜 떨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인간으로서 온전할 때의 이야기겠지요. 남을 상해하는 것에 가책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양심을 가지고 있을 때요.
저는 아직 그 인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이 잘리고 배가 덜렁거리는 인형 말이에요. 죽은 애의 머리카락은 현재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겠죠. 저는 저주를 계속한다든가 처리하는 게 무서워서 그 인형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순수했던 시기의 기록이죠.
걔는 제 머리를 툭 치는 것만으로 괴롭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저는 그걸 고스란히 돌려줬고요. 그저 적절한 타이밍에 약간의 힘을 가해 걔의 좁은 등을 한 차례 툭 밀었을 뿐입니다. 이전이라면 절대 못했을 짓이죠. 이쯤 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덧붙이지만 이건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진짜가 아니에요. 그저 저주에 관한 괴담을 지어낸 것 뿐입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요, 나이를 먹어 생각해 보면 저는 그때 동반자살을 꿈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걔가 너무 좋아서 같이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스스로를 뭉개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걔를 죽여버리고 싶었으니까요. 분명 태어나고 자라길 저는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그 시기를 거쳐 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래서요, 너무 글이 길어졌는데 정말로 저주를 성공시키고 싶다면요, 스스로를 지옥불에 던질 각오 정도는 해야 그 저주가 성공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무형의 저주가 이뤄지지 않으면요, 내가 그 사람의 멱을 손수 따러 갈 그런 각오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