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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씨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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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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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다. 한손으로 장갑의 입구를 쥐고 반대쪽 손을 집어넣는다. 

차가운 한기에 몸이 가볍게 떨린다. 장갑은 한번에 껴지지 않았고, 

손가락을 서너번 끄떡거린 다음에야 완전히 밀착시킬 수 있었다. 

반대쪽도 마저 끼운 다음 살며시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갖다댄다.

은은한 온기가 손바닥부터 해서 온 몸으로 확산된다. 

좀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소름이 돋아왔고, 몸 전체가 제법 크게 들썩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김간호사가 준비가 끝났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선 최간호사가 튜브의 압력을 조정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구석에....씨발년이 있다.

심장소리가 우레처럼 커진다. 허벅지가 나른해 지면서 주저앉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재빨리 의자를 당겨와 엉덩이를 갖다댔다. 눈앞에 시커멓고 음습한 구멍이 보인다. 

구멍은 확장기에 의해서 한껏 벌어진 상태였는데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을 내밀자 김간호사가 집게와 가위를 쥐어준다.

그것을 양손에 나눠지고는 구멍속으로 집어넣었다. 조심스레 손을 더듬어 목표물을 찾기 시작한다.

'물컹'

찾았다. 목표를 이뤘지만 터럭만큼의 성취감도 없다. 집게를 갖다대자 그것이 요동을 친다.

소용없는 짓이다. 독안에 든 쥐다. 집게로 그것의 한 부분을 집었다. 

축적된 경험으로 그것이 팔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언하건대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위를 벌리자 그것이 더욱더 크게 요동친다.

필사적으로 벽을 긁고 두다리를 파닥 거린다. 집게가 흔들린다. 빠지기 전에 얼른 가위로 썩둑 잘랐다.

가위는 한번의 교차됨으로 깔끔하게 맞물렸다. 

팔한쪽이 떨어져 나간 그것은 구멍 전체가 흔들거릴 정도로 발광을 해댄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임전무퇴.. 무조건 밀어 붙여야 한다. 숨도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해댄다. 

독일산 의료용 숫돌에 잘 벼린 가위날은 피육을 뚫고 채 영글지 못한 뼈마저 손쉽게 가른다.

조각나고 분해된 그것이 움직을 멈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움직임을 멈춘 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다만 잠시후를 위해 뒷작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집게를 휘휘 젓자 조각들이 양수와 함께 뱅그르 돈다.

천천히 손을 빼낸다. 비릿한 짠내가 확 끼친다. 

손보다도 한발 앞선 내음은 위생마스크를 뚫고 기세를 몰아 코의 점막마저 뚫어 버렸다. 

뒤늦게 빠져나온 손...아니 시뻘건 덩어리. 덕지덕지 붙어있는 조직과 장기편들, 

그리고 그것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점도 높은 블러드. 나의 양손과 맛깔스레 버무러진 한덩이 믹스쳐.

물끄러미 그것을 보고 있자, 최간호사가 세면대의 물을 튼다. 

세면대로 가기 위해 일어서자 김간호사가 준비한 진공흡입기를 구멍에 쑤셔박는다.

손을 씻자 점차 심장박동이 정상을 되찾았다. 흔들리던 허벅지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저 깊숙한 곳에서

용기가 오아시스처럼 솟았다.

"뽀드득 뽀득"

손씻기를 마친 나는 거만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뒤로 제끼고 눈을 내리 깔았다.

'씨발년'

한쪽 구석에 그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런 짚신에 선명한 색동저고리를 입은 그년은 잠자코 서 있을 뿐이었다. 

숯많은 머리카락이 얼굴전체를 뒤덮었고, 끝은 배꼽까지 내려와 있었다.

'씨발년이 뒤질라고'

용기백배해진 나는 그년을 한번 노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수술대위의 여자가 모아둔 한숨을 토해낸다. 시계를 보니 마취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농구공만하던 배는 납짝해졌고 늘어진 뱃가죽이 잔주름으로 단층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수술실을 빠져나와 중앙 로비를 가로 질렀다.

"선생님, 우찌 됐심꺼?"

초조한 기색의 30대 남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잘 끝났습니다, 환자분 회복실로 옮겨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참말로 고맙심더..고맙심더."

남성은 연거푸 고개를 숙였고, 양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남성이 고개를 들자 일그러진 얼굴이 나타난다.

팔자주름이 길게 늘어짐과 동시에 더운 눈물이 흘렀다.

"잘해주세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안 그럼 몸 축납니다"

남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뒤 집무실로 향했다. 슬쩍 돌아보자 그년도 뒤뚱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겁에 질려서 떨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신의 털이 모조리 설만큼 무섭던 그 걸음걸이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실제로 약간 비웃은 나는 집무실 문을 힘차게 잡아 당겼다.







어린 시절 문득문득 느끼던 이질감, 위화감.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시하는 것이었다.

후레쉬맨 크레파스로 그리기에 심취하거나, 

매칸더브이가 나오는 만화에 흠뻑 빠졌을 때도 의식의 한 끄트머리에선 언제나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깜짝깜짝 놀랄때도 있었지만 그건 드문 경우였다. 

친절하게도 그것은 예고와 함께 찾아온다. 

고주망태가 되신 아버지가 현관을 들어서면 그것이 따라 들어온다. 

아버지가 토악질을 한다고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있노라면 그것이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가면 그것도 안방으로 갔고, 베란다로 나가면 그것도 베란다로 나갔다. 

그래서 평일 낮 동안은 잠시 평온하다. 

그 무렵 일기장에다 아버지가 주말에도 일하러 나갔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철부지를 불러다 놓고 담임 선생님은 이것저것을 코치코치 물었다. 

물음의 대부분에 고개를 저었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번 선생님과 독대를 가졌고 철이 들고서야 일기장 때문이란 걸 알았다.

오해였지만, 어떤식으로든지 관심을 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잠결에 요의를 느끼곤 깨어나 거실로 나왔을때, 괴괴한 가로등 빛 아래 그것이 죽은 듯 서 있었을 때에도 괜찮았다. 

털썩 주저앉아 뜨끈한 오줌을 지렸지만 죽을 정도로 무섭진 않았다. 단지 놀랐던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변

성기를 거치지 않은 하이톤의 두성소리에 안방에서 엄마가 뛰쳐 나온다. 

엄마의 호들갑에 보란듯이 더 소리를 질렀다. 안도감이 밀려들자 일부러 방광에 힘을 주었다. 

시커멓게 내복을 번져가던 오줌은 아롱지는가 싶더니 급격히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소파위에 뭉쳐있던 이불이 거치고 떡진 머리의 아버지가 고요하게 나를 바라본다. 

무심한 듯 안타까운 저 눈빛. 거기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반항심이 고개를 쳐든다.

미안해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누구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해야 정상 아닌가요.

젠장, 당신 코가 석자라 이건가요. 그래도 당신은 성인이잖아요. 나는 아직 열살도 안됐단 말이예요.

맹렬히 솟구치는 반항심을 방광의 괄약근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서서히 확산되는 오줌에 엄마가 마른 걸레를 갖다 댄다. 

걸레를 세번이나 더 빨고 난 후에야 모든 오물이 말끔히 닦였다.

최후의 한방울까지 뿜어낸 나는 노곤함을 느끼곤 벌러덩 자빠져 버렸다.





아버지의 직업은 교도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교도관 중에서도 제일 기피직종인 사형집행관이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청송교도소에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사형이 집행됐다.

아버지와 또다른 두명의 사형집행관이 각자 앞에 놓인 붉은 버튼을 바라본다. 판사의 집행명령이 떨어지자

사형수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하나, 둘, 셋... 동시에 세사람이 버튼을 누른다. 이상하다. 으레

들려야할 기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장자리에 있던 뚱뚱한 집행관의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떨려온다.

오늘따라 특히 반듯하게 다려 입은 제복에는 잔구김 하나 보이지 않는다. 네모난 안경이 아래로 쳐지자 한

손으로 안경을 매만지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목울대가 크게 확장되면서 힘겹게 침이 넘어간다.

그 소리가 천둥같이 커다랗다. 두 사람은 깊숙히 눌린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본다. 그의

버튼만 툭 튀어나온 상태다.

"탁"

"철커덕"

아버지가 부지불식간에 남은 버튼을 누른다. 공중에 매달린 사형수는 질퍽한 똥오줌을 뿌려대며 발버둥 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벌어진 철문의 아래쪽에는 커다란 대야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고..맙소"

그가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아버진 괜찮으셨을 것이다. 정말 괜찮았을 거라고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다.

눈을 감고 아버지의 표정을 상상해 본다. 기이하게 빛나는 두 눈에 슬쩍 말아올린 입꼬리, 

아마 양손을 번갈아 가며 가슴을 치고 싶었을 수도 있으리라. 

마치 킹콩이 육식공룡을 쓰러 뜨렸을때 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분명하고도 거침없이 내뱉으셨겠지.

"씨발년"








나에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언젠가 아버지와 단둘이 저녁을 먹던 날이 있었다. 

모임에 갔는지 시장에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엄마는 집에 없었다. 

우리 부자만의 비밀. 감히 짐작조차 못하는 비밀을 공유하는 우리 둘.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것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냉장고 한켠에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중이었지만, 둘다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는 척 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오줌을 지리던날 아버지는 내 입장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고, 나역시 아버지에게는 유일한 지기요 동반자가 되었다.

"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순사셨다"

잘 익은 갓김치 한조각을 주욱 찢었을때,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식사를 끝내고서도 세시간가량 더 입을 여셨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할아버지와 우리 조상들의 얘기였다.

그 당시는 다들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늙은 노인과 어린아이들 부터 자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 자빠지면

누렇게 뜬 얼굴이 시커먼 똥색으로 변해서 죽어버릴 때까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허기..무서운 허기였다. 일본놈들은 구석에 떨어진 쌀 한톨까지 가져갔고,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싣고

갔다. 갓난 아기였던 아버지는 하루종일 할머니의 젖만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리 빨아도 젖은 나오지 않았

지만 생존본능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약초꾼이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불현듯 집을 나가셨다. 

며칠 후

다시 돌아왔을 땐 보리쌀과 고구마를 한수레 싣고 오셨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바싹 말라가던 산간

마을이 기적적으로 숨통을 텄다. 이십호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할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것을 얻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은 짐작 했겠지만 입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

다. 

주기적으로 갖고오는 식량수레에 마침내 마을이 자생력을 회복했다. 

다시 논밭에 곡식을 심었고, 돼지 두마리로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일본 순사복을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착용했다. 

할머니가 정성들여 닦아 놓은 군화를 신고는 읍내로 나가셨다. 할아버지의 앞잡이 노릇덕에 근처에 활동하던 독립꾼들의 씨가 말랐다. 

그들에겐 할아버지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일본입장에서는 기특한 충견이었다. 

할아버지의 악독한 술수와 고문에 줄줄이 시체가 되어 나갔다. 

할아버지가 나서면 독립투사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버티지 못했다. 

완고하던 그들은 채 사흘도 가지않아 살 맞대고 살던 마누라의 사타구니사이 점 갯수까지도 모조리 토해내

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원폭을 맞았고, 두말없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들이 물러가던 날 할아버지

는 순사복을 벗고 다시 망태기를 집어 들었다. 

친일파에 대한 숙청작업이 행해졌지만 다행히 몇 년 간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걸음마를 떼고 말까지 배우자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집에 몇명이 살지?"

"네명요"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셨다.

"우리는 세식구뿐이다. 저사람은 우리 식구가 아니야"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그것을 무섭게 노려 보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여자가 궁금했지만

딱히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저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는데 몰두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찾아왔다. 붉은색 두건을 이마에 두른 청년 두명이 들이닥친건 이슬도 내리지 않은

꼭두새벽이었다.

"더러운 앞잡이, 장두식이는 당장 튀어나오라"

"우당탕"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눈을 떴을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당장 나오라, 개노릇을 했으면 된장이 발려야지"

"우장창"

또다시 장독대 깨지는 소리가 터졌다.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장두식이 여기있다"

할아버지는 순순히 마당으로 내려가 그들 앞에 섰다. 

박달나무 몽둥이를 치켜든 그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퍽.퍽"

할아버지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최대한 몸을 구부렸다.

"아이고, 그만해요 나으리들. 이러다 사람 잡겠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한명의 바짓가랭이를 쥐었다.

"이새끼가 몇명을 죽인지 알아?"

할머니를 거칠게 뿌리친 청년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를 질렀다.

"자그만치 34명이야, 34명.. 그중에 우리 첫째형님도 있단 말야, 알아들어?"

청년은 귀까지 새빨개진 채 울부짖었다.

"이새끼 죽이고 다음은 아줌마랑 애새끼 차례니까 억울해 할 것 없어"

둘은 멈췄던 몽둥이질을 다시 시작했다. 몽둥이끝이 붉게 물들자 그들은 잠시 숨을 몰아 쉬었다. 

할아버지는 입고있던 옷이 피칠갑으로 변한채 미동도 않고 누워 있었다. 

한명이 구석으로 가서 바짓춤을 풀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가 툭 던진 박달나무 몽둥이가 무겁게 울렸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몽둥이를 줏어들고 멍하니 있던 한놈의 대갈통을 순식간에 내려 찍었다.

"딱"

기괴한 음향과 함께 대갈통이 박살이 나버렸다. 오줌누던 청년이 황급히 돌아봤을땐 이미 늦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쓰러진 청년의 대갈통을 연거푸 내려 찍었다.

"쩍..쩍.."

두개골이 함몰되고 허연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제법 크게 떨어져 나간 부분은 찾아가서 끝까지

부수어 놓았다. 피칠갑한 할아버지의 악귀같은 모습에 할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남은 한 청년도 할말을

잊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곤죽을 넘어 반죽을 만든 후에야 몽둥이질은 멈췄다.

"자네도 할텐가"

할아버지의 입이 씨익 벌어졌다. 이빨사이의 틈으로 뻘건 국물이 질질 흘렀다.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달아났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부엌문 바른편에 서있던 그것을 향했다. 그것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씨발년이 뒤질라고"

다음날까지 멀쩡하던 할아버지가 이틀째 되던날부터 앓아누웠다. 

온몸이 아프다며 밤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며칠사이에 이가 네개나 빠졌다. 멀쩡하던 생니 네개가 빠지자 할아버지는 급격히 늙어갔다. 

죽기전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다 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전래동화인 줄 알고 들었지만, 듣고 나자 은밀한집안이야기 인걸 알았다.

조상대대로 망나니 집안...쌍놈 중에서도 가장 쌍놈만 한다는 칼춤추는 망나니..

그게 조상들의 직업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임진왜란도 일어나기 전인 먼 옛날부터라고 했다. 죽은 자들의 원혼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소름끼치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누운 상태로 할아버지는 방문 앞에 서있던 그것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따라서 그것을 보았는데, 난생 처음으로 그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윗대 조상중 한분이 조선에서 가장 영험한 무당을 불러다 놓고 굿판을 벌였다. 

무당의 요구사항이 너무도 많아 그것을 준비하는데만 삼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벌어진 굿판... 엄청난

규모의 굿판에 조선천지에서 구경꾼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한달간의 굿판이 끝나자 무당은 잠들듯 죽어

있었다.

"실패한거네요"

찢어놓은 갓김치를 도로 내려놓은 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마 그랬을테지"

아버지가 애써 냉장고쪽을 외면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신 건가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듯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들은 다음

날 사단이 일어났다. 바로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아버지가 밤중에 반사적으

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뭔가가 관통한 듯이 놀라서 깨어난 것이다. 옆을 보니 할머니가 곤히 주무시고 계

셨다. 다행이다. 다시 그 옆을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있었고, 그위에 그것이 올라타 있었다. 

그것이 그만큼

가까이 간것을 본적이 없던 아버지는 불현듯 공포심을 느끼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서웠다. 오줌이 나올것 같았다.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까. 호기심은 죽음과도 맞닿아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버지는 끝내 이불을 들추고 할아버지를 보고 말았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얼굴과 팔꿈치 하나의 거리를 둔 채 마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할아버지의 목에 뒤엉켜 있어 숨도 못쉬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스윽"

그것의 손이 이마로 향한다. 그것의 손을 보기는 처음이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 그 손이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좌우로 걷기 시작했다.

"억"

아버지의 뇌가 위험하다고 경보음을 울렸다. 심장이 발작적으로 쿵쾅거리고 전신의 털이 거꾸로 솟구쳤다.

"그래서 보..보셨나요?"

열린 창문도 없는데 싸늘한 한기가 한가닥 흐른다.

"못봤어"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잔건지 기절한건지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어"

"그럼 할아버지는요?"

"죽었어"

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쏜살같이 대답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비명을 지를뻔 했다.

"얘기는 여기까지다, 너에게 더 알려줄건 없어"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버지는 모두 얘기했다 했지만 사실은 한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차마 그것까진 말못하셨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난 그것마저도 알아냈다.






할아버지가 죽자 그것은 아버지에 대물림되었고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난 후부

터 부쩍 성숙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사의 많은 것을 깨우친듯 했다. 세수를 할때나 자려고 누웠을때 좌우로

고개를 흔든다. 맹렬히 거부해 보지만 성숙한 이성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매몰차게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나한테 오겠지. 가만히 상상을 해본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밤 골목길..쥐새끼 하나 없는 그곳을 우연찮게 걷고 있다. 

괜스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잰걸음을 재촉한다. 

한번 자라난 생각은 기하급수적으로 거대해져서 종국에는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온갖 끔찍한 상상들이 한꺼번에 떠오르자 참지 못하고 뛰기 시작한다. 저만치 앞에 검은 형체가 서있다. 

놀라서 심장이 멎는듯 하다. 자세히 보니 쓰레기봉지다.

아..깊은 안도감에 온몸이 축 늘어진다. 스스로가 바보같이 꿀밤을 한대 때린다. 

무심코 옆을 보자 색동한복의 귀신이 비틀거리며 걸어온다. 맙소사 색동한복이라니.. 

다시 미친듯이 뛴다. 한참을 뛰다가 트럭에 달린 대형 반사경을 본다.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며 그것이 달라붙고 있었다.

"우아악"

또다시 미친듯 달린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추면 안된다. 저만치 모퉁이가 보인다. 저기로 숨어야

겠다.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럴수가..아찔한 상실감에 주저 앉아버렸다. 그곳은 시멘트 벽으로 막혀 있었

다. 눈을 힘껏 감고 그 위를 손바닥으로 한번더 가린다. 귀신이 코앞에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결코 나를

만지지는 않는다. 언제까지나 서서 나를 지켜볼것이다. 언제까지나...





초등학교시절의 마지막 방학식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못보던 신발들이 보인다. 아버지가 낯선 사람들과 무언가를 의논중이다. 거실

로 들어서자 그들이 나를 바라본다. 아저씨둘과 아줌마 한명. 개량한복을 입은 그들은 저녁까지 먹은 다음

에야 일어섰다. 며칠후 그들이 다시 왔을땐 무척 요란스런 복장이었다.

온 집안에 새끼줄을 치고 거기다가 부적을 매달았다. 집안 구석구석 가져온 부적을 모두 매달자 이번엔 상

을 차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상위에 온갖 과일들이 올라온다. 

마지막으로 돼지머리가 올라오자 상차리기가 끝났다. 

여자가 방울을 들고 널뛰기를 시작한다. 알아듣지 못할 괴상한 노래와 함께 온 집안을 뛰어 다닌다. 

두명의 남자는 각각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두꺼운 책을 펼쳐든다. 상바로 앞에서 아버지가 절을 하기 

시작한다. 

연신 절을 해대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짙은 향냄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굴레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아버지가 불쌍해서였을까,

아무튼 내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버렸다. 

그 언젠가 조상 한 분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정해진 운명이지만 순순히 항복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낮부터 시작된 굿판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나는 자지 않고 굿판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새벽 두시가 되자 껌뻑 졸던 내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촛불들이 격렬하게 흔들리

고 있었고, 그것 중 몇개는 실제로 꺼져버렸다. 무척 생소한 느낌. 거대한 무언가가 집전체를 감싸고 있었

다. 그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굿이 효과가 있는 것인가. 우두커니 서있던 그것이 조금씩 움직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헉'

끔찍한 두통에 소리를 지를뻔 했다. 뭔가가 서서히 옭죄여 오고 있었다. 원망과 저주..피끓는 감정들이 회

오리 치듯 사방천지로 몰아친다. 때맞춰 그것이 점점 빨리 움직인다. 절름발이 병신처럼 뒤뚱거리며 아버지

주위를 빠르게 빙빙 돈다. 아버지의 안색이 시퍼렇다. 곧 죽을것 처럼 위험해 보인다. 지켜보기만 하는 나

도 이럴진대 당사자인 아버지는 어땠을까. 빙빙 돌던 그것이 갑자기 지랄발광을 해댄다. 온몸을 부르르 떨

며 기괴한 동작을 짓는다. 시퍼런 한. 뿌리깊은 원혼들의 한이 일제히 몰려든다. 세사람도 굿을 멈추고 벌

벌 떨고 있다. 그들도 처음 경험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만한 원한이 쌓일 수 있을까. 그들

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대를 이어올때마다 한이 쌓이고 쌓였다. 남김없이 갈무리된 그것은 깊이를 짐작키

어려울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아버지가 꺽꺽 넘어간다. 아버지의 전신을 그것이 미친듯이 어루만진다.

그러던 한순간, 그것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서서히 얼굴을 아버지에게 가져간다.

'안돼'

아버지가 보았다던 할아버지의 최후가 떠올랐다.

"스윽"

그것이 손을 뻗어 이마로 가져간다. 죽을 것 같다.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 그 옛날에 아버지는 기절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모든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천천히 머리카락을 치운다. 양쪽으로

머리카락이 갈라진다. 일순간 머리카락이 확 제쳐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니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끝이었지만 내게는 시작인 셈이다. 아버지는 예상과는 달리

제법 평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두었다. 죽는것이 차라리 편했던 것일까. 죽어서야 비로소 벗어났다고 기뻐

했던 것일까. 사람들로 붐비는 장례식장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밝은 대낮에, 형광등까지 모조리 켜져 있

고 수십명의 사람들까지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한쪽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아버지가 아닌 나를 향한채...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은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중학교 2학년, 유달리 햇살이 밝았던 날로 기억한다. 너나할것 없이 왁자지껄한 점심시간무렵, 열린 창문

사이로 고양이 한마리가 들어왔다. 새까만 도둑고양이..

"우와"

아이들이 감탄성을 내지르며 고양이에게 몰려들었다. 여긴 3층인데 저놈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고양이는 아이들이 주는 음식을 거부도 안하고 받아 먹었다.

어딜가나 악동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들이 뒤편에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잠시 일어섰다 다시 앉았을때 뭔가 물컹했다. 소름돋는 느낌과 함께 벌떡 일어섰다.

"하하하"

"와하하"

아이들이 죽는다고 웃어댔다.

"캬아"

설상가상으로 고양이가 달려들었다. 발톱으로 손등을 할퀴었다. 순식간에 뻘건줄이 죽죽 그였다. 

도망가는 내게 고양이가 힘껏 점프했다. 눈앞에 시커먼게 달라붙자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미친듯이 고양이를 가격했다.

"털썩"

축 늘어진 고양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죽은게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샤프로 놈을 힘껏 찔렀다.

"키아오"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푹.푹.푹"

수십번도 넘게 찔렀다. 그래도 놈은 죽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필통을 뒤졌다. 

커터칼이 보이자 냉큼 손에 쥐었다.

"드르륵"

칼날을 거칠게 빼고는 미친듯이 놈을 베어나갔다. 뜨끈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이한 집중력에 사로잡힌 나는 놈의 해체 외에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살을 가르고 내장을 헤집었다.

입을 강제로 벌리고 목구멍 깊숙히 칼을 쑤셔 박았다. 

나를 할퀸 앞발을 잘라내기 위해 반대쪽 손으로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슥삭슥삭"

격렬한 왕복운동에도 발은 쉽게 잘리지 않았다. 조그만 커터날이 뼈에서 더이상 들어가지지 않았다. 칼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발을 덥썩 물었다. 어금니를 사용해 힘껏 씹었다. 무서운 정적속에 와드득 와드득

뼈씹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마침내 놈의 발을 몸통에서 분리시키는데 성공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솟았다. 그것은 혈관을 따라 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거칠것이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가슴을 확장시켰다. 그것은 거대한 자신감이었다. 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벌 떠는 아

이들..아무도 자신만만한 내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처럼 사물함 한켠에서 있었다. 애써 외면하며 언제나 피했던 그것.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소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가까이 가자 그것이 저만치 물러난다. 엉거주춤 물러서는 그모습이 처량해 보

인다. 짐짓 눈을 부라려 준 다음에 돌아섰다. 만족감에 어깨가 으쓱거린다.

"씨발년이 뒤질라고"






의대에 진학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의대에 입학했다. 

머리가 좋아서도 공부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대를 간 것은 어떤 절박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버튼 하나로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었다. 

피가 튀고 살이 터져야 만족했다. 산 생명을 조각조각 해체할때의 느낌을 원한다. 

비록 더러운 살인자의 유전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문에 숨통이 트이고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적이 있다. 선서를 하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겉은 그럴싸 하지만 실상은 살인면허증이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한 생명을 죽여도 합법적이다.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아기가 작으면 흡입기로 빨아낸다. 아기가 조금 더 큰 경우는 조각조각 잘라서 긁어 낸다. 

사정의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법도 있다. 양수를 빼내고 소금물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기가 소금물에 서서히 쩔어간다. 그 과정이 아기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온몸의 수분을 토해낸 채시커멓게 말라 죽는다. 그러면 그것을 쏙 빨아내면 끝난다. 

아기를 죽이고 나면 그들은 돈을 준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도 꼭 잊지 않는다.

처음 낙태 실습을 하던 날 동기들의 과반수 이상이 먹은 것을 게워냈다.

게중에 서넛은 기절까지 했다. 세상에 쪽팔리지도 않는가. 

어떻게 의사가 될 놈들이 기절까지 하냔 말이다.

묘한 기대감에 양손을 세차게 비볐다. 십 년 차 전문의는 기계적인 말투로 설명을 해가며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잘 안 잘려요, 게다가 꽤 미끄럽기도 하구요"

전문의의 인상이 실제로 구겨졌다.

"하, 이거 잘 안 잡히네."

모두가 충격속에 시술 장면을 지켜보았다.

"잡았다"

전문의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싱그러운 미소다. 잘 정리된 치열이 꽤 지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말에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잡고나서도 안심하면 안돼요, 가끔 힘이 장사인 놈들이 있거든요"

그의 농담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는 그의 유머감각을 칭찬했다.

'그러면 지금 장래에 천하장사 한명을 죽이는 거잖아 크하핫'

"자르실때 절대 놀라서는 안됩니다, 가끔 아기가 발작하는거에 놀라는 분도 있는데 그럼 큰일나요, 산모가

다칠수도 있거든요, 가위로 자궁을 찌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산모가 아프겠어요"

그는 아기를 수십조각으로 자른 뒤에 뽑아냈다. 아마 설명해 준다고 더 잘게 잘랐을 것이다.

"아무튼 평소에 가위날 잘 갈아 두시구요, 그럼 됩니다"

그가 씻지도 않은 손을 우리에게 내민채 마지막 강의를 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토악질을 해댔다.

역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물러섰다.

'옥의 티로군'

너무도 유익한 수업이었다. 그 시간 만큼은 그것이 옆에 있든 말든 신경 쓰이지 않았다.










서른이 다 돼서야 첫 선을 봤다. 

애초에 여자를 사귈 재주도 구실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직업 때문인지 선자리는 끊임없이 들어왔고 아홉번째 만에 첫사랑을 만났다. 그녀는 내 직업을 듣고난

뒤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 보람된 일을 하시네요"

무척 선이 고운 얼굴이었다. 눈썹은 날아갈 듯 사뿐했고, 웃을때 드러나는 보조개는 치명적이었다. 

어느날 그녀가 내 손을 이끌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춘천은 왜?"

"갈 데가 있어"

그녀는 제일 뒷자석으로 간 뒤 창문을 활짝 열었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의 머리카락도 조금씩 나부꼈기 때문이다. 

숯많은 머리카락이 굵기도 무척 굵다. 수만 마리의 뱀들이 요동치는 것 같다. 

우리는 춘천에 도착했고, 곧 택시를 탔다.

"어디 가는데?"

"점집"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난 불안했다.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해댈게 분명했다. 

여태껏 찾아간 점쟁이란 점쟁이는 모조리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최악의 사주팔자. 뭘해도 망하며 뭘해도 불행해진다는 것이었다. 택시가 한적한 시골길에 멈췄다. 그

녀가 아담한 양옥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두세번 눌러도 대답이 없다.

"일반 가정집 아냐? 간판도 없는데"

"은퇴하셨어, 왕년엔 전국 최고셨는데"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이다. 전국최고라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우리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다. 시원한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길 따라 죄다 논이요 밭이었다. 황금색 벼들이 바람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방향을 틀어댄다. 

시골길엔 정말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우리 셋 뿐이다.

"앗, 저깄다"

그녀가 환호성을 지르며 가리켰다. 이백미터도 넘는 거리의 들판 한가운데 점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서 갔다와"

그녀가 생글생글 웃는다.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봐?"

그녀가 눈을 희떴다. 미친사람 처럼 흰자만 보이게 눈을 치켜떴다.

"앞이 안 보이셔"

도리없이 들판을 가로 질렀다. 가까이 가보니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도리깨를 휘두르고 계셨다.

"할아버지"

사람 소리에 할아버지가 이쪽을 바라본다. 혼탁한 동공. 눈 전체에 지독한 안개가 가득하다.

"점 보러 왔어?"

"네"

할아버지는 잠자코 내 편을 바라본다. 보이긴 보이는 걸까. 

의사인 내 소견으로 할아버지는 완벽한 장님이었다.

"무조건 잡아, 놓치면 자넨 죽어"

"네?"

의외의 대답에 가슴이 벌떡거린다.

"저 여자가 있어야 자네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진 자네가 더 잘 알거 아닌가"

"아.."

누가 뒷통수를 힘차게 후려친 기분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녀를 만난 후 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웃는 일도 많아지고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늘 따라다니는 그것마저 신경 안쓰일 정도로...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신나게 뛰어갔다. 시원한 바람이 폐 깊숙한 곳까지 식혀주었다. 단숨에 들판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갔다. 내 표정에 그녀도 신이 난 듯 묻는다.

"뭐라고 하셔?"

"너 놓치면 나 죽는대"

그녀가 함박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반나절도 가지 못했다. 이건 사기다. 이럴수는 없다.

할아버지가 길가로 나온 뒤 정식으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덩달아 우리 표정도 싹 굳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그녀가 핸드백을 챙긴다.

"벌써 가려고?"

"응"

싸늘하다. 냉기가 풀풀 넘친다. 다급하게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서울까지 오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거짓말 했어?"

차에서 내리자 그녀가 차갑게 묻는다. 어이가 없어 잠시 하늘을 올려보았다. 밤하늘 중앙에 할아버지의 간

사한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사기꾼이 분명했다. 차라리 다른 이유라면 억울하지도 않았다.

"빌어먹을 사기꾼 영감탱이가"

"함부로 말하지마"

"아 미치겠네 진짜"

"끝내"

그녀의 말한마디에 진짜로 끝났다. 이건 사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만의 어떤 믿음이 작용하는

듯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점 따위는 믿지 않았고 속설같은

것도 전혀 신뢰하지 않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결혼은 했지만 부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자식도 태어

났지만 전혀 이뻐 보이지 않았다. 과거 아버지의 시선처럼 약간의 동정심, 단지 그것 뿐이었다.

주기적으로 낙태시술을 했지만, 며칠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그것이 무서워졌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요즘따라 스트레스가 심하다. 지독한 불면증에 자면 언제나 악몽이다. 물론 깨어난다 해도 똑같지만...

그것이 부쩍 신경 쓰인다. 일이 없을땐 항상 최후를 생각한다. 그것이 얼굴을 보여주는 날 나는 죽을 것이

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 핏줄의 운명이다. 불현듯 덮치는 극심한 공포에 식은땀이 흐른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얼마나 무섭게 생겨야 바로 죽을 수가 있는걸까'

주말엔 온통 그것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대항했던 것처럼 나역시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다.

아버지는 무당에 의존했지만, 난 그것을 과감히 배척했다. 오히려 죽는 시기를 앞당긴다고 여겼다. 실제로

굿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믿었다. 미신을 배척하고 나자 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 사라졌다. 하긴 귀신

을 그럼 도대체 무엇으로 대항한단 말인가.

우선 최후의 순간에 대비했다. 그것의 얼굴에도 심장마비를 안 일으키도록 단련했다. 처음엔 시체 사진을

모았다. 평범한 시체부터 시작해서 점점 범위를 넓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사한 시체, 불에 탄 시

체, 부패하다 만 시체 등등 각종 시체들을 섭렵했다. 무서웠지만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체 중에선 범죄로 인한 시체가 가장 끔찍했다. 그 중 남녀간의 애증으로 인한 살인이 제일 처참했다.

지인의 소개로 강력계 형사 한명을 만났다. 형사는 두꺼운 사진첩을 보여주었는데, 각종 범죄의 희생자

들 모음집이었다. 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펼치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얼핏 봐도 꽤나 높은 수위의 사진들이 제법 있었다. 

면역이 되서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형사가 사진을 향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하긴 나도 나만의 분야가 있지 않은가. 눈앞의 형사가 조각난 태아사체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

금해졌다. 어쨌든 노력 덕분인지 종국에 가서는 무엇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일만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외유내강이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약 200여가지를 검사하는 종합검사를 우선 받았다.

비용만도 천만원가까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몸 전체를 샅샅이 훑는 작업이었다. 두달 동안의 검사가 종료되

고 담당의사에게 결과를 통보 받는 날이었다.

이 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대충 서로를 안다. 우리도 역시 술자리서 두어번 마주친 전력이 있다.

"저기..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그가 말끝을 흐린다. 젠장, 이거 내가 많이 하던 대사다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말하세요"

그가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께서는 생식능력을 상실하셨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의외의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에 그가 더욱 황망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은 더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

"괜찮아요, 다른 이상은 없나요?"

정말 괜찮았다. 혼전이라면 문제가 됐겠지만,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들도 하나 있지 않은가.

"저, 그게.."

아뿔싸, 드디어 감이 왔다.

"고환암 말기입니다"

"씨발"

"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물어 볼 것도 없다. 고환암은 초기 아니면 다 죽는병이다. 어쩐지 얼마전부터 고환

이 간질간질 하더라니만. 하지만 백프로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2퍼센트의 확률로 오진이란 것이 발생한다.

"고환암입니다"

"안타까우시겠지만 우선 항암치료부터 시작합시다, 두달 정도는 충분히 늘릴 수 있어요"

며칠 지나서 다른 병원의 결과까지 받았다.

두달이 언제부터 충분한 시간이었던가. 단호하게 말하던 그놈의 머릿가죽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난 이제 죽는다. 죽는다. 세달도 못가 죽을 것이다. 기어코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문득 암으로 죽을 지

심장마비로 죽을지 헷갈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무엇으로 뒈지든 그것 알아 무엇하리.

차라리 암보다는 화끈하게 심장마비가 나을 듯 싶었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란걸 그날 밤에 깨달았

다. 멍하게 거리를 걸었다. 길이 보이는 곳은 어디로든 걸었다. 

뒤에선 분명이 그것이 따라오고 있을테지만

신경쓰기 싫었다. 그냥 다 귀찮았다.

"빵.빵"

벼락같은 경적소리에 정신이 번쩍든다.

"개새끼가 죽을라고 환장했나?"

덤프트럭 한대가 멈춰 있었고 자신은 차도 한복판에 서있었다. 다시 인도로 돌아가 걷기 시작한다.

초등학교가 보인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다. 초등학교 운동장 치고는 꽤 넓다. 밤중이지만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으로 제법 밝다. 누가 있는 듯 하여 무심코 뒤를 보았다. 잘못 들었나 보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

다시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역시 아무도 없다. 사라졌다.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다 중간에서 멈춘다.

'그럼 뭐해, 곧 뒈질거'

저만치서 점 하나가 움직인다. 운동장 끝과 끝 사이. 점이 점점 커진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다. 점이 점점 커진다. 사람인 동시에 여자다. 점이 더욱더 커진다. 사람인 동시에 여자인

동시에..

"씨발년이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뒤뚱거리지도 않았다. 벌써 반이나 거리를 좁혔다. 엄청난

속도때문인지 그것의 머리카락이 사방팔방으로 나부낀다. 머리카락 사이로 희끄무레한 것이 보인다.

"쿵.쾅.쿵.쾅"

심장이 중간단계없이 최대한의 출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잠시 잊고 살았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마어마한 원한. 내몸은 어느새 그날의 아버지를 다시 보고 있다. 그것이 아버지위에 올라 타있다.

슬며시 머리카락을 젖힌다. 숨도 못쉬고 그걸 지켜만 본다. 내몸은 다자란 성인이지만 꼼짝도 할 수 없다.

마치 어린시절의 나처럼. 별안간 머리카락이 확하고 젖혀진다.

"으아아악"

순수한 공포심에서 우러나오는 비명이었다. 그것이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거의 얼굴 윤곽이 보일 듯

하다. 보면 죽는다. 저 얼굴이 망막에 아로새기는 순간 무조건 죽는다.

"우아악"

미친듯이 팔목을 물어 뜯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던지 살점과 혈관이 같이 터져 나왔다.

"싸아"

팔목에서 피가 물총처럼 쏘아진다. 그것의 달려오는 속도가 약간 느려졌다고 느꼈다.

"크아악"

뜯어진 부위사이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연한 살덩어리 사이에서 길다란 힘줄이 느껴진다. 힘줄을 잡고

서 있는 힘껏 당긴다.

"찌익"

힘줄이 대번에 팔길이 만큼 뽑혀나왔다. 그것의 속도는 이제 눈에 띌만큼 느려졌다.

"아흑"

뽑고 뽑아도 힘줄은 끝이 없었다. 키만큼의 길이에 해당하는 힘줄을 뽑아내자 드디어 그것이 달리는 걸 멈

추었다. 머리카락은 다시 얼굴을 덮었고, 그것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개씨발년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거친 호흡에 상체전체가 위아래로 흔들거린다. 

팔목을 보니 정상이다. 꿈을 꾼것이다. 너무 억울했다. 

분해서 꺼이꺼이 울었다. 울다보니 내자신이 불쌍해서 더욱 서럽게울었다.

그러고보면 이때까지 정말 편하게 지내 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울지 않고서는

배길수가 없었다. 침대맡에 조용히 서있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거실로 나왔다. 

마누라는 집에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도 거기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없다. 어차피 관심도 없었다. 

역시 오늘도 나가고 없다. 아들이 자는 방의 문을 열었다. 

자기보다 커다란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운채 정신없이 자고 있다. 이 끔찍한 인생을 물려주기 싫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생.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아들을 흔들어 깨운다.

"으응.."

아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뜬다.

"저기 문앞에 누가 서있는 줄 알아?"

녀석은 질문을 이해하느라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아마 잠결이라서 더 헷갈렸을 것이다.

"그냥 아줌마"

망설임없이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손에 쥐었다. 다시 아들방으로 갔다. 그런데 아들이 없다.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린다. 쫄쫄쫄 오줌누는 소리. 오줌을 다 누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나오자 식칼로 심장을 힘껏 쑤셨다.

"아.."

아들은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 눈을 감고 한번더 찔렀다. 최대한 빨리 죽이는게 예의리라.

아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식칼을 들고 그년을 보았다. 그년이 온몸을 비틀거린다.

"어때? 이제 대가 끊겼으니 어쩌나? 이제 네년의 복수상대도 사라졌으니 이제 어쩔거냐고"

그년이 크게 휘청거린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통쾌했다.

"자 이제 얼굴을 보여줘"

그년이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씨발년아, 면상 한 번 보자고"

성큼성큼 걸어가 그년의 어깨를 확 잡아챈다. 아마 집안을 통틀어 이런 행동을 보인건 내가 처음일 것이다.

아들도 죽였는데 그년이라고 대술까. 그년이 아무렇게나 팔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벽에 처박혔다.

"씨..씨발년이 힘은 장사네"

그년이 점점 나에게 다가온다. 내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컴온, 씨발년 베이비"

그녀가 다가옴에 따라 미칠듯한 원한이 쏟아진다.

"그래 이거야, 이 느낌이라구"

공포와 흥분으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해묵은 집안의 한. 켜켜이 쌓인 그것이 남김없이 쏟아지는

듯 하다. 그년이 내 발을 지나서 머리맡으로 왔다.

"어서 까봐"

그년이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심호흡을 했다.

"스윽"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 다시 눈을 떴다.

"어라"

그년이 없었다. 저만치서 그년이 걸어가고 있다.

"이봐 어디가?"

그년이 현관쪽으로 다가간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다. 얼른 뛰쳐가서 그년의 어깨를 돌렸다.

"휙"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카락을 치워버렸다.

"....."

뭔가 잘못됐다. 이럴수는 없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쪽으로 부적 몇 개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년이 다시 현관으로 향한다.

"안돼"

사라졌다. 그년이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면 짠 하고 나타날 줄 알았다.

"홱"

"홱"

몇번이나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그년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뚜벅뚜벅 걸어가서 아들의 시체를 안았다.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찬기운이 느껴진다. 아들만 차운게 아니었다. 거실바닥도 차웠고 공기도 얼어

붙는듯 매웠다.

"하"

숨을 내쉬자 뽀얀 입김이 퍼진다. 그러고보니 주위가 어둡다. 창문쪽을 바라보니 아무 것도 안보인다.

그냥 까맣다.

"헉"

일순 급격한 추위가 몰아 닥쳤다. 전신의 소름이 연신 돋아났고, 팔다리에 마비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이 상황을 직시했다. 지금은 한여름이다. 이런 추위는 있을 수 없다.

다시 바깥쪽을 보았다. 여전히 까맣다. 자세히 보니 까만것이 움직이는 것 같다. 베란다를 열고 들여다 보

았다.

"꿈틀꿈틀"

시커먼 덩어리들이 울룩불룩 돋아나왔다. 별안간 덩어리들 사이에서 뭔가가 솟구쳤다. 사람이다. 사람인데

목이 없다. 여기저기서 마구 솟구친다. 모두 목이 없다. 동물적인 직감으로 옷을 살펴보니 결코 요즘 시대

옷이 아니었다. 낣고 헤진 한지로 만든 옷들...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꿈틀꿈틀"

또다시 사방팔방에서 무엇인가가 솟구친다. 이번엔 목이 있다. 그런데 다들 병신이다. 팔한쪽이 없거나 발

이 없었다. 죄다 병신들이다. 옷을 살펴보니 한복이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어느새 거실까지 물러났

다.

"꿈틀꿈틀"

이번엔 가까이서 소리가 들린다. 맙소사, 천장이다. 천장에 시커먼 것들이 퍼져있다. 

그것들은 벽으로 흘러내리고 점차 온 집안을 잠식해 들어온다. 이젠 추위를 넘어서 전신이 따끔 거린다.

벽에서 또 수십명이 솟구친다. 목도 있고 병신도 아니다. 옷을 살펴보니 가슴에 번호가 새겨져 있다.

"죄수복!"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꼬리뼈까지 수십만 볼트 짜리 전류가 흘렀다.

"설마"

뒷걸음질 치다가 뭔가에 걸려 넘어졌다. 아들의 시체다. 뭔가 알듯 말듯 애매하다.

사라진 그년과 부적 그리고 나타난 원혼들. 깨알같은 힌트라도 절실했다. 

불현듯 사기꾼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수만가지 생각이 서로 넝쿨처럼 꼬였다. 

입구는 수십갠데 출구는 하나다. 이 매듭의 시작점만 쥘 수 있다면, 참말로 그럴수만 있다면.. 

수십번 침을 삼키고 미친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최대한 뇌를 쥐어 짜냈다.

가상의 선이 그어진다. 조심스레 그 선을 따라 걸었다. 눈앞에 굵은선 외에는 죄다 함정이다. 밟으면 아랫

도리가 터져버리는 지뢰밭이다. 발을 딛으려는 찰나 오른쪽에 있던 선도 굵어진다. 

곧 모든 선이 통나무 마냥 굵어져 버렸다. 서로 오라고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든다. 

빌어먹을. 더이상 짜낼 뇌도 없다. 탈수기까지 

동원해서 모조리 짜내버렸단 말이다. 알렉산더의 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느새 온 집안에 검은 덩어리들이 가득 찼다.

"꿈틀꿈틀"

이번엔 바닥이다. 그것도 내가 누워있는 바로 밑바닥이다. 온몸이 미칠듯이 따끔거렸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아팠다. 목없는 시체, 병신들, 그리고 죄수들이 다가온다. 이제는 살이 뜯길 만큼 아프다.

그들이 쳐다볼때 마다 한움큼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꿈틀꿈틀"

바닥이 들썩거리면서 가랑이 사이로 뭔가가 고개를 쳐든다. 물컹물컹한 그것이 가까이 다가온다. 

다가오면서 점차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기다. 수많은 아기가 원망어린 시선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모든 원혼들이 한데 뒤엉켜 나에게 쏟아진다.

알았다. 이제 알았다. 그년이 왜 사라졌는지 이제 알았다.

할아버지도 틀렸고, 아버지도 틀렸다. 죄다 틀렸다.



 

 

 

 

 

 

 

 

 

 

 

 



굿판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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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유 성인공포게시판

 

 

 

 

 

 

나도 처음에 다 읽고 엔딩이 무슨뜻이지 했는데

엔딩을 해석한 다른분의 말을 빌리자면

 

'원혼의 집합체라고 생각했던 '씨발년'은 오히려 굿판의 성공으로 만들어진 수호신 같은 존재였음.

선조중 한분이 사형당한 원혼들을 풀어주려고 조선 최고 영험한 무당을 불러 엄청난 굿판을 벌임.
그런데, 원한을 풀지는 못하고, 무당이 죽음.
굿판의 결정체 이거나 이 무당의 원혼이 이때부터 따라붙음.
이게 곧 이 단편소설에 나오는 '씨발년'인데 후대에서는 원혼의 집합체로 오해함.
어찌보면 무당들이 오히려 두렵고 업신여겨지는 대상이라는 암시의 표현인듯.

망나니라는 선조의 굴레 때문인지, 잔혹한 삶을 살지만 원혼들에게 둘려싸여 괴롭힘 당하지 않음.
오히려 굶어죽을 위기를 넘기고, 친일파로 연명하고, 사형수로 안정된 삶, 의사로 성공된 삶을 누림.
오로지 '씨발년'만 항상 조용히 따라 붙어 다님 - 수호신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왜 '씨발년'때문에 죽었을까?
그건 '씨발년'때문이 아니라 수호 대상이 죽을때가 닥치자

수호신은 마지막 순간에 라도 오해를 풀고자 얼굴을 보여준듯.

그 얼굴의 정체는 '부적' - 수호신이였음. 그제서야 편히 눈감을 수 있었고..

그리고, 결말...

오해와 광기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자 수호신이 충격과 혼란에 빠짐.

수호의 의무나 목적이 사라져 물러감. 쫒아가 얼굴을 확인. - 부적이였음.
수호신이 사라지자 번접하지 못했던 원혼들이 몰려옴. - 그제서야 굿판이 성공이였다는 것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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