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할머니 이야기 2편
추천도 생각 보다 많이 받고 댓글 써 주신 분들께도 감사 합니다.
기분 좋아 기쁜 맘으로 얘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혹시,
제 글 퍼 가신다면 개인 블로그나 카페, 타 괴담 사이트등 어디든 퍼 가셔도 상관 없습니다.
굳이 제게 물어 보고 허락 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출처랑 글 변형만 시키지 않으시면 전 상관 없으니 맘껏 가져 가십시요.
제 얘기가 널리 읽혀지면 저야 뿌듯하고 좋치요. 데헷!
지금 할 얘기는 제 큰 외삼촌에 얽힌 얘기 입니다.
어머니와 제가 외가집으로 이사간지 햇수론 2년쯤,
달수론 한 20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 입니다.
제가 상주로 간게 3살 가을쯤 이었는데 그 일이 일어난건 두 해후 늦 봄 이었으니까요.
제가 그 날을 또렷히 기억 하는 건 그 날 벌어진 일이 참 불가사의 하고 많은 소동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 날은 늦은 봄 이었습니다.
한 4월쯤 되었을 라나요?
아시겠지만 산골은 날이 늦게 풀립니다.
겨우 그때 쯤에야 그 동네는 농사 준비에 분주했고,
제가 살던 그 마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의 매일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선 늦도록 밭이며 논에 나가시어 농사 준비에 늦은 밤까지 수고를 하셨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농사 준비 거들랴, 집안 일 하랴 무척 바쁘셨지요.
그 날도 외 조부모님과 어머닌 밭인지 논인지에 나가시어 늦게 까지 일 하셨습니다.
`전 같이 있다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상주 할머니 댁에 가서 간식을 먹었지요.
할머니 댁에는 약과며 떡이 떨어질 날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주려고 굿하는데서 얻어 오셨던거 같아요.
그 날도 할머니가 주시는 약과와 장작불에 먹음직 하게 구어 주시는 떡을 먹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집에 돌아 오시는 걸 보고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엘 갔지요.
집에 오신 어머니는 아마 외 조부모님 보다 먼저 집에 오시어 식사 준비를 하시려던것 같았습니다.
동생을 제게 맡기시고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셨습니다.
구수한 밥 냄새가 집안에 퍼져 나가자 전 또 허기를 느꼈지요.
뱃속에 걸뱅이(경상도선 거지를 걸뱅이라고...)가 들었는지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상주 할머니 댁에서 먹은 떡이며 약과가 다 소화된것을 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던거 같습니다.
이윽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겨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어 오셨고,
우리 식구는 밥상에 둘러 앉아 늦은 저녁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맛있게 밥을 먹고 있을 때 였습니다.
마당에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할머닌 누군교? 하고 물으셨고,
마당에선 좋아 할매야! 하는 부르는 소리가 났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주 할머니 셨습니다.
할머니는 시골 집에 흔한 여닫이 문을 여시고는 반색을 하셨지요.
할매 어서 들어 와서 밥 한술 같이 뜨소!~ 하고요.
그런데 마당에 서 계신 상주 할머니 안색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린 제가 느끼기에도 평소랑은 너무 다르신 할매가 이상하게 보였지요.
외 할머니도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셨는지,
와 그라는교? 하시고선 식사를 하시다 말고 수저를 놓으시고는 문을 닫으시고
마당으로 나가셨지요.
그리고는 마당에서 두 할머니가 수군수군 말하는 소리가 한참을 들리더니,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고는 외 할머니가 사색이 되어 방으로 뛰어 들어 오셨습니다.
외 할아버지를 위시한 저흰 모두 놀라서 뜨던 수저를 멈추고 얼음이 되었지요.
할아버진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 이냐며 역정을 내셨지만 할머닌 그런 할아버지의 말에 대꾸도 않으시고는
안방에 놓여 있던 전화기로 달려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봐도 떨리는 손놀림으로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하시는 것이었어요.
루린 할머니의 서슬에 뭐라 묻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지켜 봤지요.
몇번의 신호가 가는 소리가 정적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그리곤 곧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나자
할머닌 급하게 ㅇㅇ이 애미냐? 애비는 집에 들어 왔냐? 하시는 것 이었어요.
ㅇㅇ이는 큰 외 삼촌네 딸(사촌 누나)의 이름 이었죠.
할머니가 전화를 거신 곳은 대도시(아마 대구였을껄요?) 사시던 큰 외삼촌네 집이었고,
전화를 받으신 분은 큰 외숙모셨죠.
그리고는 한참 말씀도 없이 외숙모 얘길 듣는거 같더니 갑자기 전화기를 힘없이 떨구시며
무너지듯 주저 앉으시 더군요.
그리고선 계속 이 일을 어쩜 좋노, 이 일을 어쩜 좋노 하고 혼잣말을 하시기 시작 하셨어요.
우린 궁금 했지만 할머니 서슬에 누구도 묻질 못했는데 참다 못한 할아버지께서
벌컥 화를 내시면 뭔일이고? 하시며 고함을 치셨죠.
그 말조차 안들리시는지 할머닌 계속 그말을 되뇌이시며
전화 번호 적어둔 수첩을 미친듯이 뒤지기 시작 하셨어요.
항상 순종적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말씀을 그리 무시 하신건
평생 첨보는 희귀한 광경 이었다고 나중에 엄마가 얘기 하시더군요.
할머닌 그만큼 정신이 없으셨던거지요.....
그리고는 수첩에서 뭔가를 찾아 전화버튼을 미친듯 눌러대기 시작 하셨어요.
그 땐 지금처럼 핸드폰이 대중화 되지 않던 시절 이었어요.
전화가 있어도 무선국이 얼마 없어 그런 두메산골까지는 전화가 될턱이 없던 그런 시절 이었죠.
아주 부자가 아니면 전부 삐삐라고 부르던 페이저를 사용하던 시절이었고,
할머니는 큰 외삼촌 호출기로 계속 호출을 하셨어요.
정말,
1분에 한번씩은 호출을 하신거 같아요.
삼촌껜 답장이 없었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할머니께 내가 해볼께라시면서 전화를 뺏으시고는
할머니 대신 호출을 하기 시작 했어요.
그나마 할머니는 호출이라도 하실줄 아시던 신식 할머니 셨지만,
딱 거기까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께 호출하시면서 갈고 닦으신 현란한 기술을 접목 하셨죠.
삐삐란 물건이 전화로 호출하면 호출한 상대방 번호가 찍히는데 거기에 여러가지 숫자를 더해서
뭔가 메시지를 주고 받을수 있다더군요.
주로 번호 뒤에 1004를 찍으면 천사.......연인끼리 자기를 표시 한다던가
기분이 나쁘다던가 욕을 할때는1092....씹탱구2라고 읽는다죠?
1818 .....씨8씨8이라던가 급할 때는 828282 빨리 빨리등의 숫자를 더 찍어 표시를 했다고 해요.
엄마의 손가락이 전화번호 다이얼을 날라 다니고 한참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어요.
큰 외삼촌 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외 할머니는 니 오데고?를 연발 하셨고,
삼촌의 얘길 들으시는지 잠시 계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그러셨어요.
니 무조건 오늘 집에 올 생각 말고 상주서 자고 아침에 오라고요.
삼촌이 뭐라고 반항을 했던지 양반중 양반이셨던 할머니가 거의 욕을 하시면서 오면 직여 뿐다고.......
몇번을 단단히 주의를 주신후 다짐에 다짐을 받으시고는 길고 긴 통화가 끝났습니다.
평소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할말만 딱 하고 끊으시던 분이 그땐 그렇게 오래 통화 하시고도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제사 마당에 안절부절하고 서 계시는 상주 할매를 보시곤 방으로 들어 오시라고 했어요.
상주 할머니가 앉으시고는 하시는 말씀에 저희 가족은 전부 놀라 까무러칠뻔 했지요.
제가 할머니댁에서 놀다가 온후 상주 할머니는 피곤함을 느끼시고는 잠깐 초저녁 잠을 주무셨다고 해요.
그런데 꿈을 꾸신거였어요.
선명하게 보이는 꿈속에서 할머니는 누군가를 봤다고 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터래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는 팔도 부러졌는지 이상하게 꺾여 있고
어디다 부딪혔는지 얼굴도 심하게 망가진 모습이더래요.
딱 봐도 저건 산 사람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드셨는데 자세히 보니 낯이 익더라고 하셨어요.
자세히 보이깐 그게 진이 더라카이!~라고 할머니가 얘길 하셨어요.
진이....저희 큰 외삼촌 함자가 끝자가 진 이거든요.
경상도 사람들은 그렇게 손 아래 사람은 끝자로 많이 불러요.
할머니가 놀라서 꿈에서도 야가 와이라고 여그 서있노? 하시는데 외삼촌 주위로
잡귀들이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있더래요.
그 모습이 흡사 새로운 동료가 생겨서 좋다, 신난다 하는 표정이더래요.
할머니는 얼른 다가가서는 니 여 있으면 안된다 얼른 가자고 잡아 끄셨는데
삼촌은 슬픈 표정으로 꼼짝도 않으시더래요.
그리고는 삼촌 주위로 춤울 추고 있던 잡귀들이 할머니를 조소하듯 그랬다고 합니다.
할매, 헛힘 빼지 말고 가소!!! 앤 우리꺼야!~~~~~
할머니는 화가나서 이 육시랄 것들하시면서 뚜디려 패려 쫓아 다니는데 귀신들은 할머니를 약 올리면서
요리조리 피하더랍니다.
할머니가 너무 분해 씩씩 거리고 있었는데 그때서야 가만 주위를 둘러보게 되니 풍경이 많이 낯이 익더래요.
그곳은 마을로 들어오던 입구쪽의 산 길 이었답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시고는 절대 마을로 못오게 해야된다는 생각에 우리집으로 뛰어 오셨던거죠.
기가 막힌건 그때 절대 올 일이 없으셨던 큰 외 삼촌은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지셔서는
그 날 회사에서 다음 날 월차인지 휴가인지를 내시고는 혼자 상주로 향했다고 해요.
할머니가 전화 하시자 외숙모는 그 얘길 하시면서 집에 도착할 때가 되었을 꺼라고 얘기 하셨고,
할머니는 졸도 직전까지 가셨던거죠.
그나마 삼촌이 오랜만에 집에 오신다고 상주 시내에서 고기랑 과일 같은 걸
사시는 바람에 그나마 연락이 간신히 닿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얘길하며 온 식구가 뭔지 모를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던 때,
밖에서 뭔가 큰 소리가 들렸어요.
불길했지만 원래 산골엔 간혹, 특히 해빙기엔 바위같은게 굴러 떨어지는 일이 왕왕 있었기에 그런건가보다 했고,
우린 그나마 안심 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에 마을에선 난리가 났어요.
밤사이 마을 진입로 얼마 못미쳐서 유일한 외부통로인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가
해빙되면서 떨어진 큰 바위에 막혀 버린거였어요.
전날 밤에 들었던 소리가 그 바위 굴러 떨어지는 소리 였었지요.
밤사이 마을로 들어올 차도 없어 모르고 있다가 새벽 마을로 들어오는 첫 버스에 발견이 되었지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들 몰려 나갔는데 버스 뒤로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던 몇대의 차들 사이에 큰 외삼촌 차가......
사람 힘으론 못하고 결국 포크레인이 와서 치웠지요.
그날 마을에 있던 초,중,고생 형 누나들은 전원 지각을 하고.
삼촌이 집에 와서 한 얘긴 정말 위기일발 이었어요.
상주에 오셔선 과일이랑 고기 사신다고 잠시 지체하시고는
곧 출발을 하셨는데 계속 할머니께 호출이 오더랍니다.
삼촌은 거기서 차로 한 20분이면 집에 도착하는지라 그냥 무시하곤 출발 하셨다고해요.
그러다 엄마가 보낸 호출을 받으신거죠.
82821818......
삼촌은 이건 뭐냐는 생각에 마침 보이는 공중전화 앞에 차를 세우시곤 전화를 하신거 였어요.
그 공중 전화가 시내서 우리 동네까지 오기 전에 있던 마지막 공중전화 였다고 해요.
그 바위가 굴러 떨어진곳이 위치가 절묘해서 커브 돌자마자 였거든요.
그냥 그대로 집에 오셨다면 바위에 깔리셨던 아니면 삼촌 성격에 잘 아는 길 속력 내셨을꺼니 피할 사이도
브레이크 밟을 사이도 없이 충돌하셨을꺼고 포크레인으로 겨우 치운 바위에 박으셨으면 살아 나셨을까요?
그 뒤론 큰 삼촌은 항상 명절때나 집에 오실 땐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이랑 같은 걸 상주 할머니께 선물 하셨고,
일생의 은인으로 지금도 상주 할머니 기일을 챙겨주시고 성묘도 가십니다.
자손들이 챙기는지 안챙기는진 몰라도 삼촌도 나 살아서는 그리 하신다고 하셔요.
얼마나 잘 챙기시는지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 하셨던
지금은 단종되어 없는 솔이란 담배도 할머니 제사용으로 냉동실에
몇갑이 근 20년째 보관중 이시래요.
상주할머니 이야기 3편 -전
벌써 3번째 글을 씁니다.
제가 올리는 글은 거의가 저희 가족들이나 제가 겪은 일들 입니다.
하더라가 아니고 제 눈으로 보고 겪은 것만 쓰려하니 그렇습니다.
오늘은 특이하게 저희 가족과는 상관 없는 일이지만
제가 직접 본 일이기에 자신 있게 쓸수가 있네요.
2가지의 다른 에피소드 입니다.
꼬마때 어느 날 이었습니다.
4,5,6살때중 한 날인데 정확히는..
제가 할머니를 따라 다닌건 거의 취학 전의 8살 전의 기억 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 이후에는 학교를 가느라고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기가 쉽지 않았지요.
장날이 공휴일이거나 방학 때나 따라 갈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무더운 여름 날 이었습니다.
날도 너무 좋아 한 낮의 태양이 대단 했던 날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전 오전에 장에 도착하여 장구경 한바퀴 하고는
할머니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분명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전 고기랑 밥 먹으러 가는 길임을 직감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때 상주 무속계의 대모? 최종 보스? 두목? 같은 느낌 이었네요.
꼭 구역 순찰 하시는 듯 했죠.
그 날도 어딘가에 있는 무속인 집으로 찾아 갔던거 였었는데
전 첨 가보는 동네 였어요.
무척 더운 날이라 땀을 많이 흘렸는데 어느 집 앞을 지나가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가시자 하셨습니다.
그곳은 제법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곳 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자주 쉬는 곳 인듯 평상이 하나 그늘에 놓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좋아 많이 덥지? 하시면서 가지고 계신 부채를 연신 제게 부쳐 주셨어요.
할머닌 더위에도 거의 땀을 흘리지 않으셨죠.
할머니가 제 목덜미의 옷깃을 늘리시어 옷 안으로 시원한 바람을 넣어주시느라 바빴는데
그 평상이 있던 곳 맞은 편의 집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에서 어떤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마당으로 나오시다가
우리를 발견 하시고는 쳐다보시다가
곧 집안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잠시후 다시 그집 문이 열리면서 잠시 전의 그 아주머니가 애기를 포대기에 업으시고는
손에 쟁반을 하나 받쳐 드시고는 대문을 따고 나오셔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릴 보시고는 할매!~~ 날이 무척 덥지예? 손잔가 보네예?
날 이리 더운데 손자 데리고 다니시느라 힘드실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고 가시이소 하며 쟁반을 건냈습니다.
거기엔 예쁜 유리컵에 얼음을 넣고 탄 보기만해도 시원해 보이는
미숫가루 두잔과 깎은 참외가 놓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반색을 하시면서 첨 보는 늙은이 한테 뭘 이런걸....하시면서 고마움에 인사를 건네시면서
잘 마시겠다고 하시고선 제게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라셨어요.
저도 인사를 꾸벅 드리고는 찬 미숫가루 잔을 들었습니다.
그 더위에 땀 흘리고 마시는 미숫가루는 정말 꿀맛 이었습니다.
그리고 정갈히 깎아 내온 참외도 아마 냉장고에 있었던듯 참 시원하고 달고 맛났답니다.
아주머닌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참외를 먹는 제가 무척 예뻐 보이셨던지
손자가 참 귀엽다시며 제 머릴 쓰다듬어 주셨답니다.
그리곤 잔을 들어 다시 마시다가 뭔가 이상하단걸 느꼈습니다.
고맙다면서 만면에 웃음을 띄시며 미숫가루를 마시시던 할머니가
웃음을 싹 지우시곤 뭔가를 골똘히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착한 아주머니가 계셨지요.
아니, 정확히는 아주머니 등에 포대기로 업혀 있던 애기를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께 한 말씀 하셨습니다.
아가 좀 아파 보이는데......
그 말을 들으신 아주머니는 전까지 얼굴 가득 피어 있던 미소가 싹 사라지시고는
금방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이었습니다.
예.....자꾸 자다가 경기에 들린듯 울고 젓도 잘 물지 않고 그래서 걱정이라 하시면서
병원에서는 감기 초기 증세이거나 날이 더워 더위를 좀 먹은것 같다며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안 그래도 오늘도 더위 한풀 꺽이면 병원 가보려고 한다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얘길 하셨지요.
그 얘길 들으신 할머니는 혼잣말 처럼 중얼 거렸습니다.
빙원 데리고 가 봐야 소용 없을낀데? 의사가 고칠 병 아니다.
그, 얘길 들으신 아줌마는 깜짝 놀라셨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와!!! 우리 할매는 의사 선생님 맹쿠로 사람 병도 아시는 가보다 하고요.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시면서 할매요, 그게 무슨 소린교? 하고는 할매 옆에 찰싹 붙어 앉았습니다.
자식에 대한 얘기면 어떤 어머니던 제 1 관심사 아니겠습니까?
할머닌 대꾸도 않으시고는 아주머니 등에 업힌 애기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셨어요.
내가 참견 안하려고 했는데 애기 엄마 심성이 너무 착하니 내 미숫가루 맛있게 대접 받은 값으로
애기 엄마 한번 도와줄거니 잘들으라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시고는 집안에 가까운 친지중에 집에서 못 돌아가시고
밖에서 객사 하신 어른 있제?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습을 보니 뭔 사고가 크게 난거 같은데.....하시면서요.
사실,
이렇게만 얘길 했다면 아줌마는 믿지 않으셨을껍니다.
저도 이제와 생각 해보면 집안에 가까운 친척 한분 객사나 사고사, 전쟁(가까이는 베트남전)나서
죽은 이 하나 없는 집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흔히 사이비 무당이나 종교단체가 사람들에게 접근 할때 쓰는 방법이 아닌가요?
하지만,
할머니의 얘긴 달랐지요.
아주 구체적 이었거든요.
할머니께선 키는 얼만하고 입고 있는 옷은 어떻고
생김새는 어떻다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처음엔 반신 반의 하시는 표정으로 들으시던 아주머니는
점점 낯빛인 어두워지시더니 급기야 눈물을 주르르 흘리시는거예요.
그리곤, 지금 말씀 하시는 그 어른은 자기 시 아버지가 틀림이 없으시다고 우셨어요.
그리고 말이 이어졌습니다.
작년에, 그러니까 애기를 임신하고 계셨을 때에 시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시어 돌아가셨답니다.
손자를 그리도 기다리셨는데 그런 손자 얼굴한번 못보시고
한번 안아 보시지도 못하고 돌아 가셨다고요.
상주 할머니는 그 얘길 들으시고는 쯧쯧 하시면서 혀를 차시면서 아줌마를 토닥거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이 이어지셨어요.
참 귀한 손주인가 보다 그런데.....죽은 사람은 얼른 저승에 가셔야지 안 가시고 손자 귀엽다고 자꾸 만칠라 카문 우야노?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시 아버지 돌아 가시고 천도제는 했나? 하고는 물으셨어요.
아주머닌 모르시는지 대답을 못하셨습니다.
그러자 할매는 아마, 안했을 끼다. 했으면 벌써 가셨겠지 저러고 아 뒤따라 다니시진 않을 끼다...
특히, 집에서 잘 가신 분 아니고 사고로 그리 가셨으면 꼭 해 드렸어야 하는데.... 이러셨어요.
그러시고는 치맛속으로 손을 넣으시고는 뭔가를 꺼내셨습니다.
항상 할머니가 차고 다니시던 쌈지 였습니다.
할머니는 꼭 복 주머니 같이 생긴 쌈지를 항상 2개 차고 다니셨는데
하나는 돈을 넣어 다니시던 쌈지였고 하나는
뭘 넣으신건지 한번도 속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전 어린 맘에 저거도 돈 넣은 쌈진갑따, 할매 윽수루 부자네...라고 어린 맘에 생각 했었는데.
꺼내신 쌈지중에 지금껏 한번도 여신 적이 없는 쌈지를 여시고는 안에 든걸 꺼내셨습니다.
그건 여러장의 종이였어요.
이상한 글이 써져있던 그것이 부적 이란건 나중에야 알았지요.
그리고 뭔가를 찾으셨어요.
이건 아니고....이거두 아니고....하시며 뒤적이시다 요있네! 하고는 부적 한장을 손에 쥐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께 부적을 건네주시며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몰골은 이래뵈도 억수로 비싼 사람이데이...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새댁 맘이 너무 예뻐서 내가 감동 받아서 도와주는거다 하시면서
이 부적을 포대기에 넣던지 아 옷에 넣어 두던지 애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면 더 이상 애가 보채거나 울지 않을꺼라고
하시면서 애기를 바라보시면서 그러셨습니다.
아무리 아가 이뻐도 그렇치 죽은 사람이 갈길 안가고
아 뒤를 졸졸 쫓아 다니면서 자꾸 아를 만치면 우야노?
죽은 사람 자꾸 몸에 닿으면 건강한 어른도 기빠져서 힘든데 깐난 아를 저래 자꾸 만칠라 카노?하셨어요.
그리고는 니 시아버지 원망은 말거라 하시며 손자가 너무 예뻐서 저러시는거니 이 부적 몸에 지니고 있음
더 이상은 건드리진 못할꺼라고 하시면서
그래도 이건 임시방편이니 최선은 시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빨리 떠나 보내 드리는 거라
말씀 하시며 남편이랑 상의해서 빠른 시간 안에 천도제를 한번 드려주라 하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부적을 받아 즉시 업은 애기를 풀으시더니 바로 애기 옷 속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불안한 얼굴로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할매요! 됐는교? 이자 못 만치시는거 맞아예? 하고요.
할머니는 웃으시며 고개를 끄떡 이시며 말씀을 하셨어요.
잘 아는 절이나 무속인이 있냐고요.
아주머니 고개를 흔드셨지요.
천도제 그기 아무나 막하면 제대로 안되는데.....괜히 돈만 많이 내라카는 반편이들도 많고...하시면서
새댁이 좋타면 내가 소개 시켜줄까? 하셨어요.
아주머닌 좋아 하셨고 할머니는 그럼 2,3일 내로
이리 들리라고 할테니 어디 가지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시고는
잘 먹었네! 하시고 제 손을 잡고 떠나셨어요.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듯 시크한 표정으로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가셨는데 제가 할머니 따라가며 뒤돌아 볼때마다
아주머닌 멀리 사라지는 우리를 보며 연신 인사를 하시더군요.
그러시며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거였어요.
좋아야! 사람은 항상 맘을 곱게 쓰고 착하게 살아야 하는거란다.
그렇게 살면 예기치 않은 행운도 찾아오고
주위 사람들도 어려울때 힘이 되어주고 그렇커든.....
제가 맹랑하게 한마디 했죠.
그란데 왜 할매는 만날 남들이랑 싸우노? 하고요.
한참을 더 걸어 우린 그날 가고자 했던 곳엘 갔고
그 날도 처음 본 아주머니가 반기시며 상이 휘도록 식사를 내 오셨습니다.
그 날은 그렇게 식사중 할머니는 그 아주머니께 그 얘기를 하며 자네가 한번 찾아가 보게 하셨고
아주머닌 공손히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곤 한 마디 하는걸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번 제는 꼭 들어갈 최소 비용만 받고 봉사한다 생각하고 해주라고요.
그리고 한참을 지난후 그 무녀 아줌마네 집엘 다시가게 되었어요.
밥을 먹고 있었는데 누가 헐떡이면서 급하게 집으로 들어 왔어요.
그리고는 곧 방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 미셨죠.
그 착한 아줌마 였어요.
아주머니는 방문을 열고는 상주 할머니 얼굴을 확인하자 마자
뛰어들어와서는 할매요! 우찌 한번도 걸음을 안 하셨어예를 연발 하시며
할매 손을 꼭 붙들곤 놓치 않았고 할머니는 허허 웃으시면서 잘 지냈는가? 하시더군요.
그리고선 아줌마 등에 업혀 웃으면서 놀고 있는 애기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인제 애는 안 아프지? 하셨고,
아줌마는 하모요, 그때 할매가 부적 주시고 가시고는 한번도 놀라서 울지도 않고 잠도 잘자고 젓도 너무 잘 먹어
이제 포동포동 살찐거 좀 보이소 하고 업고 있던 애기를 풀어 할매 품에 안겨 드렸습니다.
할매는 한번 애기를 안아 보시고는 바로 아주머니께 돌려드렸어요.
할매는 저 빼고는 애들 안 좋아 하시거든요. 데헷!
그리고는 바로 다음 날 찾아 오신 무녀 아주머니랑 상의하여 가까운 길일에 천도제를 했고,
그 뒤론 이상하게 맘이 편안하고 집에 걱정이 없다시더군요.
그리고는 너무 고마워서 꼭 할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어쩜 그리 뵙기가 힘드냐며
무녀 아줌마께 할매가 오시면 꼭 자기에게 연락 해달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지금 오셨단 전화 받고
애 들쳐 업으시곤 찾아 오셨던 거였어요.
그리고선 자기는 그런거 안해봐서 몰랐는데 나중에 여기저기서 들으니 돈도 남들보다 반도 안들어
제사를 지낸거란걸 알고는 할머니가 더 고마우셨나봐요.
할머니는 다 자네가 착해서 복 받은 거라시며 애도 잘 클꺼고 남편 하는 일도 더 잘될꺼니
앞으로도 그 착한 심성 잃치말라고 하셨지요.
그리고선 딴청 피우는 무녀 아줌마를 한번 흘겨 보시며 거...쓸데 없는 짓을 해가지곤....하고 책망을 하셨지만,
그닥 혼내시는 느낌은 없었어요.
식사를 끝내자 마자 할머니는 좋아야, 다 뭇나? 다 무쓰면 고마 가자 하고 예의 그 시크한 표정으로 일어 나셨고
그때까지 할머니 곁을 지키던 무녀 아줌마라 새댁 아줌마도 따라 일어나며
두분이 벌써 가시냐면서 둘다 똑 같이 하얀 봉투를 꺼내 건네셨어요.
전 그게 돈인줄 그땐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우와!!! 봉투가 2개다, 우리 할매 오늘 돈 많이 벌었네 했는데
할머니는 무녀 아줌마가 주는 봉투는 당연 하다는 표정으로 받아 챙기셨지만,
새댁 아줌마가 주는 봉투는 절대 받지 않으시는 거였어요.
새댁 아줌마는 정말 서운한 표정으로 할매 너무 감사해서 드리는건데...하시며
얼마 되지도 않아예 그냥 성의로 받으시고 손자랑 맛난거 사드이소...쪼매 밖에 안되예를
연발하셨지만,
할매는 내가 도와준건 자네 맘에 대한 내 보답이였다시며 이걸 받으면 다시 자네 한테
신세지는거니 그냥 그 맘만 받겠다 하셨고,
그 무녀 아줌마를 돌아보시고는 내가 야들이 주는건 내 그만한 일을 해주고는 정당한 댓가를 받는거니
자넨 그럴 필요 없네 하시고는 끝까지 거절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잡고는 떠나셨죠.
새댁 아줌마는 문밖까지 따라나와선 계속 아쉬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며,
할매요. 언제라도 좋으니 지나가시다가 저희 집에 손자 데리고 꼭 한번 들려 주이소를 연발 하셨고,
할머닌 가타부타 대꾸도 안하시고 두 여인네의 배웅을 받으시고 뒤도 안 보시고 떠나셨습니다.
그 뒤로 제가 아는 범위안에선 그 새댁 아줌마네 집에 찾아 가신적이 없습니다.
참 매몰 차신 할매 입니다.
그래도 내 강아지(좋아)에겐 뜨거운 사랑이 넘치시던 할매....
이 글을 쓸때마다 할매가 너무 보고 싶네요.
에피소드가 2가지라고 말씀 드렸는데 하나 쓰고 나니 출근 해야될 시간 이네요.
글 중간에 끊어지는게 아니라 전혀 별개의 다른 얘기니 전,후로 나눠도 무방 할꺼 같아 올립니다.
상주할머니 이야기 3편 - 하
이번 얘기는 저 8살 일때 얘기 입니다.
그 해 봄....드디어 학교를 가게 되었으니까요.
제 찬란한 자유가 끝장나던 해라 잘 기억 합니다.
학교에 입학 하고는 몇 달이 지난 때 였습니다.
처음 입학하고 몇번은 엄마가 따라 오셨었는데
그 이후론 전 동네 그 학교 다니는 형 손에 넘겨져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된 때까진 그 후로 1-2년이 걸렸어요.
1학년은 수업이 빨리 끝나는 관계로 학교가 끝나면 모여서 집엘 가곤 했어요.
그때 저렁 같이 방과후에 맨날 같이 집에 오던 친구는 남자 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하나 ..
그렇게 3명이 항상 동네까지 뭉쳐서 다녔습니다.
보통 점심시간 이전에 수업이 끝나고 집에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오는 좋아에게 밥을 차려 주셨지만,
전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보다는 가방을 집에 던지곤,
옆집에 가서 상주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을 먹을 때가 훨씬 많았답니다.
우리집과 할머니 댁은 반찬 때깔 부터가 달랐으니까요.
항상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닌 우리 강아지 오냐시며 반겨 주셨고,
곧 푸짐한 밥상을 차려 주셨었지요.
그러면 전 맛나게 밥을 먹었고,
할머닌 항상 미소를 지으시고 밥 먹는 제 옆에 앉으셔서는
밥에 이것 저것 맛있는 반찬을 집어 올려 주셨습니다.
고기 위주로요.
할머니 집엔 항상 고기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 정말 좋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닌 절 먹이시려고
일부러 항상 고기를 사다 놓으셨던거 같습니다.
할머닌 육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언제나 돼지 고기, 소고기를 볶아 주셨고,
간혹 집에서 기르시던 암닭도 손수 잡아 몸 보신을 시켜 주셨었죠.
떡이랑 약과와 함께 할머니집 냉장고 냉동실에 항상 있던 음식은
산적이나 고기 꼬지 같은 음식 이었고
간혹 겁나게 큰 생선도 통째 들고 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건 다 저의 뱃속으로 들어가 저의 살과 피가 되었지요.
그 날도 할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먹고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놀다가 뭔가 이상해서 할머니를 돌아봤습니다.
평소 할머니께선 그렇게 제가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항상 마루에 앉으셔선 제 동선만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쳐다보고 계셨는데 그날은 왠지 자꾸 딴 생각을 하시는지
자꾸 한숨도 쉬시고 딴 생각을 하시는게 눈에 훤히
보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근래 몇일 할머니가 좀 이상 하셨어요.
자꾸 딴 생각을 하셨던거 같아요.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답니다.
애들이 뭘 깊게 생각 하나요?
한참을 그러시더니 자리를 털고 내려 오셔서는 툇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을 신으시곤,
한숨을 푹 쉬시고는 내 팔자를 내가 뽂네....우짜겠노, 사람은 살려야지...하시고는
좋아야! 할미 좀 나갔다 올꺼니까 예서 놀고 있던 집에가서 놀던 하거라 하시면서 휘 나가셨습니다.
전 잠시 생각하다가 할머니 뒤를 따라갔습니다.
할머니가 어디 멀리 가시는게 아니란걸 알았거든요.
할머니는 항상 장에 가시던 옆 마을을 가시건 마을을 벗어 나실땐
항상 깨끗하게 다린 새옷과 외출시에만 신으시는 꽃신을
신고 나가셨는데 그날은 입고 계시던 무명 한복과 고무신 차림으로 그냥 나가셔서 멀리 안가시고 마을 어딘가에
가신다고 예측 할수 있었습니다.
나가보니 벌써 할머니는 까마득히 앞에 가고 계셨답니다.
걸음이 워낙 빠르신 분이라 젊은 여자들은 물론 청년 남자까지도
할머니랑 보조 맞추어 걷기 힘들어 하는데 제 걸음이야 뭐....
전 할머니를 놓칠새라 뛰어 갔는데 할머니가 보인 곳 까지 도달해 보니 이미 할머니의 종적은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행방을 찾고 있던 제 귀에 그때 고성이 들렸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은 길에서 좀 떨어진 집 안이었는데,
그 곳은 할머니 또래의 노 부부와 40을 넘기고도 장가를 못 갔던 그집 큰 아들이 살던 집 이었습니다.
마을에선 가장 잘 사는 축에 속했던 그 집은 집도 많이 넓었어요.
그곳에서 상주 할머니의 고함 소리가 나고 그 못잖은 그집 할머니의 고성이 들려왔습니다.
누가봐도 싸우는 상황 이었고 전 즉시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집엔 마루에 어머니랑 할머니가 같이 앉으시어 콩인지 뭔지 곡물을 다듬고 계셨습니다.
전 어머니 할머니께 할매 얘길 했습니다.
할무니, 엄마!! 상주 할매 또 싸운다~~였고 이 말의 주제는 싸운다가 아니고 또 싸운다 였습니다.
외 할머니는 아이고 못산다!! 우디서 또 싸우시더노? 하고 제게 물으셨고,
전 지금 보고 온 집을 말씀 드리며 지금 그집 할매랑 그집 마당서 막 싸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랑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어머니가 할머니를 쳐다보시며 그러셨습니다.
엄마!~~ 상주 할매 정말 노망 나신거 아이가?
안 그래도 그 집 ㅇㅇ이 오빠가 아파가 다 죽어가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닌 집에 와 가서 그라는데? 하셨고
외 할머니께서도 그러게 말이다 하시며 두분이 급히 신을 신으시고 달려 나가셨습니다.
저도 엄마 나도! 하고는 따라 나가려다 혼자 있는 동생을 보고는
달려가서 히야 손 잡고 따라온나 하며 어머니와 할머니 뒤를 따랐지요.
동생을 데리고 그 집 마당에 들어서니 이미 소동을 들으신 동네 어른들 몇 분이 마당에 서서 보고 계셨고,
자기들 끼리 수근수근 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외 할머니는 상주 할머니 양쪽에서 한 팔씩을 잡으시고
할매 와카는교? 하고 상주 할매를 말리고 계셨습니다.
할매의 앞엔 그 집 할매가 노기가 등등 하여
상주 할매에게 삿대질을 해대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계셨어요.
이 할망구가 미칠꺼면 곱게 미치지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구만 남의 집에와 왜 지X이고 하시고요.
그 집 할아버지는 남자 체면에 여자랑 같이 싸우시진 못하시고
담배만 연신 피우시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그러이까 니 아들 좀 나와 보라캐라.
내가 왠간해선 남 일 참견 안할라꼬 몇날 몇일을 생각 했꾸만 그래도 한 동네 사는
정이 있고 사람 목숨은 일단 건져야 겠다 생각해서 왔더니 누구 한테 큰소리고 큰 소리가.
니 아들 니 앞서 피 토하고 고꾸라져 되지는거 보기 싫음 퍼뜩 나와보라 해라 하셨어요.
그러시며,
니 아들 병원에 갔었제? 빙원서 뭐라 카드노? 무신 병인지 모른다고 안하더나? 갸 가만 두면 두어 달 못 산다 하셨어요.
저희 모두는 벙쪘고 그 얘길 들으신 그 집 할머니도 그제사 이게 뭔 소린가 하시는 표정으로 목소리 까지 부들 부들 떨리시며
그..그기 뭔 소리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어떤 엄마가 제 정신 이겠습니까?
상주 할머니의 얘기가 이어졌습니다.
니 아들 데리고 병원에 갔었제? 니 병원서 뭐라카드노? 분명 뭔 병인지 모른다고 했을 낀데?
빙원선 당연히 모르제. 귀신에 시달리는 구만 그걸 빙원서 우찌 알겠노?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상관하긴 싫치만 그래도 우짜겠노? 한 동네 사는 인연인데
알고도 모른 척은 못하겠고....뭐하나? 퍼뜩 아 안데리고 나오고...
그 집 할머니는 그 집 할아버지를 돌아보시며 ㅇㅇ이 아베요. 하셨어요.
그러자 그때까지 듣고 있던 그 집 할아버지가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셨고,
아프다는 그 집 큰 아들을 부축하여 나오셨어요.
그 할매네 아들이 나오자 모두들 깜짝 놀랐어요.
그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였습니다.
저도 그날 전에 수시로 그 아저씨를 보고 인사도 드리곤 했었는데
풍채도 좋으시고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 주시던 좋은 아저씨 였거든요.
그러나,
그날 본 그 아저씨는 산 사람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모습 이셨어요.
두어달 못 본 사이 아저씨는 영화 미이라에 나오는 이모텝같이 바싹 마른 모습 이었지요.
할배의 손에 부축을 받고 나오신 아저씨는 잠시 서 계시는 것도 힘드신듯
어른들이 서 계시는데도 마당에 있는 평상에 털썩 걸터 앉았습니다.
그러시고는 안에서 상주 할머니가 한 얘길 다 들으셨는지 멍한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봤지요.
상주 할매가 평상 가까이 가셔서는 그러셨어요.
몰골 봐라, 이기 이기 한달도 더 못 버티겠구만? 니 니가 뭔 죄 지었나 아나?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정말 자긴 뭔 죄가 있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그 순간 할매를 슬쩍 좌우에서 잡고 계시던
외 할머니와 어머니가 대처할 사이도 없이
할매의 뼈에다가 가죽만 입혀둔거 같은 할머니 주먹이 아저씨 머리로 날아갔고,
아저씨의 해골에 가죽만 입혀둔거 같은 머리는 상주 할매의 주먹과 부딪치며 정말 큰 소리가 났습니다. 빡!!!!!
할매 와 그라는교? 하고 엄마와 외 할머니가 붙드시고 그 집 할매는 비명을 지르며 아들에게 달려 갔어요.
상주 할매가 그러시더군요.
아프나? 살아 있으니까 그나마 아픈거도 느끼는기다 죽고 나면 그 껍데기는 아무 소용 없는기다 하시면서
니 우짜자고 남의 무덤엔 손 댔노? 그리고 무덤인걸 모르고 건드렸으면 잘 수습해서 다시 묻어 드려야지.
니가 한번 생각 해봐라, 누가 난중에 니 죽고 쉬고 있는데 언 놈이 니 무덤 파헤치고 쓰레기 취급 해가 아무데나 갔다 버리면
니 화 나겠나 안 나겠나? 니가 판 무덤 주인이 지금 니 꼭 데리고 가겠다고 이를 갈고 니한테 달라 붙어 있다 하셨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다 놀라고 그 집 할머니, 할아버지도 첨 듣는 얘기인양 참말이가? 니 여 할매 얘기가 참말이가?
하셨습니다.
그제야 뭔 생각이 났는지 아저씨는 몹시 당황 하셨고,
상주 할매를 보고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몰랐어예, 이래될지 몰랐어예 아주무이요 어쩌면 되겠습니꺼?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노발 대발 하시던 그집 할머니 ,할아버지도 할머니께 애원하는 눈빛으로 할머니 입에서 뭔 얘기가 나올까
입도 벙끗 못하고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닌 예의 그 씨크한 표정으로 우짜긴 뭘 우짜노? 잘못했다고 용서 하실때 까지 빌어야지 하시며
그 집 할머니와 할아버질 쳐다 보시고는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얘길 하셨습니다.
할배는 땅 팔 도구랑 제사때 쓰는 깨끗한 흰 종이 큰거 준비 하고 할매는 지금 당장 차 타고 시내가가
제수로 쓸 술이랑 과일이랑 고기 사가 오소....정성껏 젤 좋은 놈으로 준비 하소. 제사는 정성이 반이라 카이.
그리고 내 아들 살려 달라는 간절한 맘으로 음식 준비 하소. 시간 없다.빨리 빨리.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할머니의 카리스마는 어떤 굿판의 무당님들도 당해낼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여담으로 굿판을 호령 하시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녀 아줌마들도 할머니 앞에만 오면 말 잘 듣는
양순한 강아지로 변하셨으니까요.
그리곤 아저씨께 얘기 하셨습니다.
니 밥은 뭇나? 언제 부터 굶었노?
입맛 없어도 억지로라도 밥 한술 떠 먹어라.
산에 가서 니까지 장사 지내고 오긴 실타 하시며 밥 먹고 목욕 깨끗이 하고 옷 싹 새옷으로 갈아 입으라 하셨습니다.
그 일은 이랬습니다.
장가도 못가고(그 시절 농촌 총각 문제가 심각 했지요. 그땐 국제 결혼도 없던 시절이라,)부모님 모시고 농사짓고 살던 아저씨는
동네서도 참 착하고 부지런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엄마도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아저씨를 오빠라 부르시며 따르셨고요.
아저씨네 밭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농부들의 땅 욕심은 정말 한이 없지요?
산 바로 밑에 있던 밭을 일구시던 아저씨는 밭을 좀 늘리실 생각으로
바로 붙어 있던 산을 조금씩 개간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한 날, 땅을 파시는데 곡갱이가 푹 들어가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 해서 땅을 파 보니 다 썩은 관이 나오고
그 안에 꺼멓게 변해버린 아직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골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미 거의 다 없어지고는 큰뼈랑 이빨등의 작은 조각만 좀 나왔다고 하는데
딱 봐도 무덤이라 생각 될 봉분도 다 까뭉개 진것이
누구도 돌보지 않는 오래된 무덤 이란걸 알겠더라 합니다.
그 동네서 평생 사신 아저씨도 몰랐고 어른들께도 거기에 무덤이 있단걸 들은 기억이 없어
무덤은 굉장히 오래전에 뭍힌거란걸 알수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그 뒤 하지 마셔야할 행동을 하셨습니다.
주인도 모르고 연고도 없는 무덤이다 보니 대충 바께스에 모으셔선 밭에서 멀지 않은 산에다 갔다 뿌리신 겁니다.
그 무덤의 주인이 화가나서 아저씨께 해꼬지를 시작 하신거죠.
그렇게 준비를 하신 후 몇시간이 지나 준비가 다 되고는
상주 할매가 아들을 앞장 세우고 유골을 뿌린 곳으로 갔습니다.
아저씨랑 그집 부모님, 마을 .어른들 여러 분과 우리 엄마랑 외할머니까지요.
그곳에 도착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깨끗한 흰 종이를 펴게 하신후 아저씨께 유골을 수습하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못 도와주게 하시고는 니가 한 조각 한조각 사죄하면서 정성껏 모시라며 아무도 돕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저씨가 유골을 뿌린 숲을 헤치고 들어가셨는데 잠시후 비명을 지르시며 주저 앉으셨습니다.
분명 그 아저씨는 바케쓰에 남은 뼈를 담아 숲에 막 뿌렸었는데,
유골이 없어지고 흙이 된거 빼고는 거의 원래 제자리에 맞춰져 있더군요.
전 그땐 그 장면은 엄마가 못 보게 해서 못봤는데 나중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듣고 알았죠.
그리고는 다 수습 하고는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리려 할때 였어요.
할매가 거는 안된다 하시면서 처음 뭍혔던 자리를 보시고는
누가 무식하게 저따 묘 자리를 잡았노? 하시더군요.
저는 물길인데 저다 묘를 쓰면 우짜노? 하시면서 원래 땅속의 물길은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거 감안해서 묘는 산 정상서부터 중턱 까지만 쓰는거래요.
산 아래 부분은 언제 물이 찰지 모른다고.
묘에 물이차면 시신이 썪지도 못하고 뼈도 시커멓게 변하는 건데 그럼 혼이 얼마나 화가 났겠노?
그런데다 쓰레기 취급 받고 아무데나 뿌려졌으니 그 원망이 다 너 한테 간기지...하셨어요.
아저씨는 수습한 유골을 정성껏 들고는 산으로 올라 가셨고,
상주 할매가 지정한 자리에 고이 모시고는 준비해온 제수로 젯상을 차리시고는 정성껏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집 할매랑 할배도 같이 앉아 우리 아가 뭘 모르고 그랬니더 제발 노여움 푸이소 하고 간절히 비셨어요.
한참후에 할매가 이자 되었다 하실때 까지요.
그 뒤 아저씨는 잠도 잘 주무시고 먹는 것도 잘 드시고 한달 후쯤엔 예전 모습으로 돌아 오셨고,
간혹,
일 하시다가 가게 가셔서는 막걸리 하나 사들고 산에 올라 가셨죠.
그분께 드리러 가셨었나 봅니다.
그리고 명절때등엔 이름도 모르는 그 분의 무덤에 성묘도 하셨어요.
그 집 할매는 그 뒤론 완전히 상주 할매의 팬이 되시어
상주 할매가 팥으로 메주 쑨다해도 믿을 기세 였답니다.
할매랑 손잡고 어디라도 가려고 그 집 앞에만 지나 가면
어찌 아시고는 귀신처럼 뛰어 나오시어 행님! 어데 가시는교?
(상주 할매가 두어살 위셨어요) 시원한 음료수 한잔 자시고 가이소 하고 잡아 끄셨습니다.
아저씨의 정성이 그 분께 통했는지 그 1년쯤후 경사도 생겼답니다.
아저씨가 상주 도회지 여자랑 결혼을 하셨죠.
나이 차이도 제법 많이 나고 시골로 시집올 분이 아닌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두분이 인연이 되시었어요.
아저씨랑 그집 어른들은 기뻐 하시며 그 분이 도와 주셨나보다며 좋아 하셨고,
아저씨 장가 가던 날 우리 마을은 무려 3일 동안을 잔치를 했답니다.
그 집서 기르던 수십 마리 닭을 때려 잡고,
시내 정육점에서 돼지 몇 마리랑 소도 한 마리분 배달 받으셔선 정말 거하게 잔치를 했죠.
그 잔치의 VIP는 상주 할매셨고 저도 덩달아 VIP.
다음 번엔 여름이고 하니 물놀이 조심 하시란 의미로 물귀신 얘기 하나 할께요.
제가 물에서 노는 걸 정말 좋아 하는데 할매가 질색을 하셨습니다.
저랑 물이랑 아주 상극 이랍니다.
할매 죽고 나서도 니 이담에 죽는 날까지 절대 바다나 강이나 계곡등의 큰 물에 가면
안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 하셨죠.
제가 오래 전에 할머니 살아 계실 때 그리 저랑 안 맞으면
물이 무서워야 하는데 난 물이 너무 좋타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할머니 말씀이 지금도 박혀 있어요.
애둘러 말씀 하셨지만 생각해 보면 요점은 그게 물귀신 될 팔자란 겁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3번인데 결론은 할머니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전 좀 특이한 트라우마가 하나 있습니다.
물과 관련 있지요.
지금도 여름 휴가는 무조건 안전한 워터 파크 갑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바다나 강으로 바캉스 가자 해도 아마 전 그럴꺼면 우리 헤어져!!!라고 할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