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사 나온지 꽤 된 집인데 나는 그 집이 정말 좋았거든
뷰도 탁 트였고 바로 앞에 공원에 쇼핑몰에 집이 작긴 했어도 좋았음
이사 나온지 몇 년 뒤에 가족들이랑 수다 떨다가 아 그 집 좋았는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매매해서 혼자 살까봐. 라고 했더니 다른 가족들이 치를 떠는 거야 살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면서 들려준 이야긴데
당시 우리 아빠는 신학을 공부하러 기숙사로 내려간 상태였어
그러니까 집에는 엄마, 나, 동생 2명만 있었음
집은 작은 방 하나, 거실, 큰 방 하나로 12평 아파트였는데
현관 바로 옆에 작은 방, 쭈욱 이어지는 거실, 끝에 큰 방과 베란다의 구조로 ㄷ자같이 생겼음
엄마는 작은 방에서 동네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부방을 하셨고, 우리는 다같이 큰 방에서 잤어 나랑 둘째는 중학생, 초등학생이었고 막내는 어린이집 다니는 아기였음
하루는 엄마가 우리를 옆에 다 눕히고 잠에 드려 하시는데, 발치에 있는 이불이 들썩거렸대
애들은 당신이 바라보는 쪽에 차례로 다 누워있는데, 발 근처에서 이불이 슥 올라갔다가 툭 떨어지고, 슥 올라갔다가 툭 떨어졌다는 거임
엄마도 하나님을 믿으니까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며 밤새 속으로 기도하셨대
어떤 날은 거실 너머 작은 방에서 책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그 왜 선생님들이 책장 넘길 때 조용히 한장 두장 넘기는게 아니라 촥 촥 촥 촥 넘기시잖아 딱 그런 속도로
환청이면 귓가를 맴돌아야 할텐데 정확히 거실 너머 작은 방 안에서 들려왔대
밤을 꾹 참고 아침에 가보면, 엄마가 펼쳐놨다고 기억하는 진도보다 몇 단원씩 더 앞서 나가있었다는거임
애들은 어리지 남편은 기숙사에 있지 집은 무섭지 말할 곳도 없고 매일매일 울면서 기도하셨다고 함...
동생들도 그 뭔가를 봤었는데
둘째는 나랑 컴퓨터로 자주 싸웠었거든 그날은 동생이 먼저하는 날이었는데 내가 자꾸 뒤에서 팔꿈치를 당기더래 나오라는 투로.... 그래서 아 하지마 하고 보지 않은 채 뿌리쳤다가, 또 당기니까 뿌리치고, 또 당겼을 때 아 나 하는 중이잖아!! 하고 뒤돌아봤는데 내가 없더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언니는 이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서 저녁엔 집에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더래
막내동생은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현관에 앉아있는 학생을 자주 봤었대
집이 공부방이다보니까 외부인을 봐도 별다른 의심을 안하고 그러려니 했나봐 아주 어린 네댓살의 아이니까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고...
그 기억 가지고 살다가 좀 머리가 크고나서 돌이켜보니 엄마가 집에 없던 시간에도 오도카니 앉아있기도 하고, 이미 수업 중인데도 앉아있기도 했던게 생각났다 하더라고
이런 일들 말고도 누운 자리 옆에 서있던 어떤 형체라던가, 데려온 아기강아지가 현관을 보고 미친듯이 짖는다던가, 벽장에서 놀땐 유난히 추웠다던가 그랬대 난 단 한번도 본적이 없음 ㅠㅠ
아빠가 와계신 방학 때는 이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대ㅋㅋㅋ그래서 엄마는 그냥 신학공부 하러 간 사이 사탄이 방해하려 찾아왔다고 생각하신다고 했음
엄마랑 막내는 그뒤론 본 적이 없고, 아빠랑 둘째는 영이 예민한 편이라서 간혹 보기도 하는데 공포물에 관심이 많은 나만 살면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