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⑬ 누나의 일기
누나의 방을 치우면서 현진이는 아련한 슬픔을 느꼈다. 누나가 이렇게 세상을 뜰 줄 알았더라면 좀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을 텐데…….
수학여행 첫날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 버스에 탔던 누나 학교의 많은 학생이 죽고 다쳤다. 누나도 말할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누나의 삶이 그늘진 것이었기에 현진이의 가슴은 더욱 아팠다. 누나가 중2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며칠을 뜬눈으로 지샌 누나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잠에서 깬 누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기억하고 중학교 이후부터 장례식까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열흘 이상 입원 치료를 하고 나서야 누나는 기억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쾌활하던 성격의 누나는 말없고 조용한 소녀로 변해 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후 새엄마가 들어왔다. 누나는 더욱 말이 없어졌고,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 누나가 안쓰러웠지만 현진이는 아직 어려 자기 감정을 추스르기에도 버거웠다.
책상 속의 유품을 박스에 담던 현진이는 서랍 속에서 검은색 누나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었다. 현진이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기장을 뒤적이던 현진이는 마지막으로 쓴 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들여다보던 현진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수학여행 떠나는 날 아침에 썼는지 그 날짜로 된 일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ㅡ나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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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⑭ 운전중에 생긴 일
안개비가 내리는 늦여름 저물 무렵. 홍제동에 사는 개인택시 운전기사 김홍식 씨는 춘천까지 장거리 손님을 모셔다 주고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다.
대성리 강변유원지 옆을 지나는데 한 소녀가 차를 세웠다. 여고생, 아니 여중생쯤으로 보이는 소녀는 비를 맞았는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홍제동 화장터 고개에 있는 초등학교 정문 앞에 세워 주세요.”
“허허, 내가 사는 동네로구먼.”
안개비가 흩날리는 경춘가도를 달려 목적지 홍제동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바로 저기 파란 대문 집이 우리 집인데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택시비를 갖고 올게요.”
택시에서 내린 소녀는 파란 대문 안으로 쑥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녀가 나오지 않자 김홍식 씨는 그 집으로 들어갔다. 향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집 안에서 소복을 입은 부인이 걸어 나왔다.
“택시비 주세요.”
“택시비라뇨?”
김홍식 씨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방안으로 들어간 부인이 사진을 한 장 들고 나왔다.
“혹시……?”
“예, 맞습니다. 바로 이 학생인데요.”
“난 이 아이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 그앤 작년 바로 오늘 대성리에서 물에 빠져 죽었어요. 시신도 찾지 못했었는데……”
부인의 마지막 말은 눈물로 변했다. 솜털까지 일어선 김홍식 씨는 덜덜 떨며 택시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막 출발하려는데 뒷자석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차비 여기 있어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흠뻑 젖은 소녀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폐를 들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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