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⑤ 돈가방
달 밝은 밤, 김씨는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읍내에서 수금을 끝내고 묵을 곳을 찾았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읍내에 하나뿐인 여관은 이미 빈 방이 없었다. 이렇게 달 밝은 밤이면 농가에서 하루를 묵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김씨는 두둑한 돈가방을 끌어안고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수금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 정도 돈이면 이제 충분히 새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어서 김씨는 뿌듯했다.
앞날의 계획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문득 그는 자기가 어느 집 대문 앞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몇 백 년이나 된 듯한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집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더욱이 나뭇가지 사이로 휘영청 보름달이 걸려 있어 김씨는 그 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김씨가 하루 묵을 방을 청하자 그집 젊은 부부는 쉽게 승낙을 하였다. 모처럼의 손님이라 그런지 바깥주인은 술까지 청했다. 둘을 소줏잔을 기울이며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겪은 이런저런 일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늘어놓았다.
밤이 되자 얼큰해진 김씨는 자기가 묵을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 부부는 밤이 깊을수록 아까 김씨가 늘어놓았던 이야기가 귀에 쟁쟁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날 날이 가까운데 살림은 날로 어려워져 하루하루를 걱정으로 보내고 있는 그들이었다. 김씨의 돈만 가지면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우며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돈에 눈이 뒤집힌 부부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김씨의 시체는 감나무 밑에 묻었다.
김씨의 돈가방에 든 돈으로 부부는 새 장사를 시작했는데, 예상 외로 장사가 잘 되어 풍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사건 직후 태어난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는데, 항상 감나무 밑에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부부는 과거의 그 일이 너무도 꺼림칙하여 매장한 시체를 파내어 멀리 내다버리기로 하였다.
어느 보름 밤, 부부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열심히 땅을 팠다. 그런데 아무리 파도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그게 어디로 갔을까?”
그때 갑자기 나무 둘레에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나 여기 있어.”
아이가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그들 뒤에 서 있었다. 달빛이 그 아이의 얼굴에 하얗게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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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⑥ 복수
이제 미라 차례였다. 남은 자는 미라뿐이니까. 전국을 경악과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사건은 마지막 제물로 미라를 제단에 올려놓으면 끝날 일이었다.
미라를 포함한 일당 넷이서 재산을 노리고 친척인 경주, 영주 자매를 독살하고 시체를 유기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언니인 경주가 살아나 복수극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경찰에 의지할 형편도 못 되는 미라는 꼭꼭 숨어서 공포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자는 행복할 수 없는 법이다. 미라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복수의 칼날은 시시각각 죄어 오고 있었다.
불안으로 지새는 어느 날, 미라는 파마를 하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의자에 앉아 수심으로 내리깔고 있던 눈을 떠 정면의 거울을 보는 순간, 미라의 얼굴은 흙빛이 되고 말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유난히 큰 가위를 든 미용사가 거울에 비쳤는데, 차가운 웃음을 흘리면서 미라를 바라보는 미용사는 바로 연쇄살인범 경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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