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① 외로운 자매
서울 근교의 큰 저택에 두 자매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상당한 재산을 남겼다. 그런데 몇 해 전 동생이 대학에 입학한 직후, 어머니마저 불의의 사고로 자매 곁을 떠나 버렸다.
외로운 처지가 된 두 자매는 서로 끔찍이 아끼며 살아갔다. 시내로 집을 옮길까 했으나, 그러면 부모와 인연이 완전히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원래의 저택에서 그냥 살았다. 집 뒷동산에 있는 부모님의 산소는 그들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너 무슨 일 있니?”
동생이 그녀답지 않게 조용히 지내는 게 이상해 언니가 물었을 때, 동생은 그저 웃었다. 어릴 때부터 두 자매의 성격은 판이했다. 언니는 부드럽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동생은 대담하고 명랑했다.
그런데 일주일쯤 전부터 동생은 무얼 하는지 학교도 가지 않고 자기 방에 혼자 처박혀 있었다. 매일 즐겨 하던 컴퓨터 통신의 채팅도 안 하는 눈치였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언니는 애가 탔고 급기야 미워지기도 했다.
무슨 수가 없을까 궁리를 하던 언니는 동생을 깜짝 놀래주기로 했다. 그건 우연히 눈에 띈 옛날 일기장을 읽다가 어릴 때 동생과 같이 했던 놀이가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튿날 조금 일찍 퇴근한 언니는 차를 집 근처에 주차시켰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고, 대학시절 연극반의 경험을 살려 분장을 했다. 얼굴은 희고 푸른 빛이 은은하게 감돌게 꾸미고,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 헤쳤다. 입술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 듯 꾸몄다. 분장을 마친 언니는 대문을 따고 살며시 집에 숨어들었다. 둘이서 살기엔 너무 큰 저택은 차오르는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이윽고 동생이 현관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언니는 정원의 나무 밑에 우뚝 서 있었는데, 그녀는 정말 무덤에서 솟아난 존재 같았다. 동생이 바로 앞을 지나치려는 순간, 언니는 앞으로 스윽 다가갔다. 그러나 동생은 한 번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지나쳐 뒤란으로 가는 것이었다. 놀란 것은 언니였다. 황당하기까지 했다. 언니는 자신도 모르게 동생의 뒤를 밟았다.
동생은 뒷산으로 통하는 문을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산을 걸어 동생이 멈춘 곳은 엄마의 무덤 앞이었다. 언니는 무덤가 키 큰 억새 뒤에 숨어서 동생을 지켜보았다. 동생은 조용히 엄마의 비석을 쓰다듬고는 다소곳이 앉아 속삭였다.
“엄마, 언니도 결국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어.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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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② 가발의 주인
희영이는 같은 과 친구가 쓰고 다니는 가발이 무척 부러웠다. 요즘 신세대 멋쟁이 여성치고 가발 한두 개 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오는 길에 한 가발 가게에서 희영이는 발을 딱 멈추었다. 새까만 단발머리의 가발이었는데, 사람의 시선을 무척 끄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희영이는 일부러 날마다 그 가게 앞을 지나다녔다. 그런데 가발이 자신에게 꼭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희영이는 큰 맘 먹고 어머니를 졸라 가발을 샀다. 써 보니 자신에게 꼭 맞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희영이는 집에서나 외출할 때나 언제나 그 가발을 썼다.
어느 날 밤이었다. 가발을 쓰는데 갑자기 머리가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희영이는 기분이 이상해서 거울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발의 머리가 자라 있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희영이는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나빠서 가위로 가발의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 버렸다. 그 뒤 희영이는 그 가발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한밤중이었다. 잠이 들었던 희영이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가발을 꺼냈다. 가발은 길게 자라 있었다. 가발을 쓴 희영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대문을 열었다.
매일 밤 가발을 쓰고 어딘가로 나가는 희영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희영이의 엄마는, 어느 날 밤 몰래 희영이의 뒤를 따랐다.
휘적휘적 걷던 희영이는 마을 끝에 있는 어느 허름한 창고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희영이 엄마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빠끔히 열린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석구석마다 뒤엉킨 거미줄과 수북이 쌓인 먼지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폐가를 연상시켰다.
그 한 귀퉁이에 희영이가 산발이 된 가발을 뒤집어쓴 채 뭔가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듯 소곤거렸다. 좀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들이밀던 희영이의 엄마는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
희영이가 잡고 있는 건 머리를 싹둑 자른 여자 시체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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