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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악기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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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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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겨울 저녁 기운이 주택단지 안으로 가라앉는다.저녁 5시 무렵, 한 사내가 건물의 좁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본다. 찬 공기를 맞은 입속의 열기가 뿌연 연기로 변해 하늘을 덮어간다. 몇번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갔다 하더니 어느 순간 그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다. 하루에도 수백번 고민하다 결국은 피우게 된다.



김철수. 그의 이름이다. 옛날 학교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그 이름. 부산에서 서울으로 상경한 지 벌써 3년째. 30이 다되어가는 나이. 공시생이라는 허울뿐인 직업을 가지고 현재까지도 방황 중이다. 오늘은 빨리 일어나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바람은 산산이 조각났다. 습관처럼 죄책감을 느끼며 마지막 한모금을 찐하게 폐속으로 밀어넣었다. 땅거미 지기 전 푸르스름한 저녁공기는 죄책감을 느끼기 정말 좋은 소재였다. 밑으로 꺼질 것만 같은 그 느낌과 독한 담배는 정말 잘 어울렸다. 어쩌면 이런 우울감에 도취되어 계속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깊은 확신이 들었다.



그는 창문을 닫고 원룸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어두운 방을 밝히고 있는 것은 책상 위 켜진 컴퓨터 한 대뿐이었다. 그 옆에는 표지 위에 뽀얗게 먼지 앉은 공무원 수험서 한 권이 놓여져 있다.



철수는 켜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인강 강사가 오래 전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이 자연스럽게 멈춰있었다. 그는 폰을 들여다 본다. 먼저 자주가는 커뮤니티의 인기글들을 가볍게 훑어 봐준다. 그리고 자신이 어제 작성한 글에 댓글이 얼마나 달렸는지 확인하고, 신경쓰이는 댓글에는 일일이 답을 해준다. 이것이 그가 몇년째 해오는 의식과도 같은 일과의 첫 시작이다.



그는 인기글에 자신의 글이 순위권에 든 것에 흡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커뮤니티의 뜨거운 감자는 '애완 인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글이 올라왔다. 게시판 절반이 넘게 그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오늘도 내 애인 밥 잘 먹이고 왔다.-





-새로운 애인 떴다. 밥먹이러 갈 사람 모집한다-





-내 애인 너무 말랐다. 화력지원 바람.-





-이번에 새로온 애인 여인이던데, 연예인 000닮았다. 내꺼 찜.-





'애완 인간'을 줄여 속칭 '애인', 남자를 '남인' 여자를 '여인'으로 불리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살고 있는 철수도 당연히 이런 유행에서 뒤쳐질 수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커뮤니티를 나와 '지하 TV'라는 방송 플랫폼에 접속 했다. 아프리카, 유튜브 등 제재가 강해지고, 상위 몇 퍼센트의 크리에이티브, 스트리머, BJ 들의 독식으로 설 곳을 잃은 사람들이 모인 곳. 자극적인 콘텐츠로 돈을 버는 곳이다. 철수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이곳을 보다보면 다른 방송들은 재미가 없어서 못 본다.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쉼없이 액정을 위로 쓸어올린다. 실시간 방송부터, 편집을 한 영상까지 다양하다.



-BJ사슴, 오늘 끝까지 보여준다. 오빠들 컴컴.-





-캡사이신 원액 원샷, 가능? 불가능?-





-00여고 앞, 고딩 여고생들 번호따기.-





-부산 1통, 김만수. 인사오지게 박습니다.-





-전직 조폭, 썰 푼다. 보복 폭력 문의 가능.-





-내 몸 경매, 오늘 밤 날 가질 사람.-



자극적인 방의 제목들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렇게 천천히 살피던 철수는 즐겨찾기 목록으로 들어간다. 여러개의 목록 중 '애완 인간 김초롱, 초밥, 1000원 후원 시 한개.' 라고 적힌 방을 터치한다. 벌써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 와 있었다. 방의 채팅창이는 '초롱이 밥먹자', '내가 더 맛있는 거 사줄게. 만나자.' 등등 저급하고 민망한 글들이 쉴새 없이 올라왔다. 철수는 낄낄대며 그 무리 속으로 합류했다.



그는 충전 해 놓았던 돈으로 후원을 했다. '애완 인간' 방은 한 번에 1000원씩, 시간 텀을 두고 후원을 할 수 있었다. 한번에 많은 금액을 줄 수 없었다. 틈틈히 1000원씩 그녀에게 후원이 가고 있었다. 1000원이 후원되었다는 알림이 뜨면 그녀는 입으로 초밥을 한개씩 넣었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방송이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았지만, 평균 50-60명은 꾸준히 보는 것 같았다. 이런 방송을 하는 사람이 요즘 부쩍 늘었다.



하나하나 먹던 그녀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며칠 밤낮 자지 못했는지 눈은 퀭했다. 그런데 멈추지를 않았다. 후원이 계속되고, 그녀의 입으로 음식은 계속해서 들어갔다. 잘못하면 들어갔던 음식이 다시 도로 나오지 않을까? 싶을 찰나, 사람들도 그녀의 위태로운 모습에 후원을 멈추었다.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정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 이 방송이 끝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흥미가 떨어진 사람들이 한명씩 나갔다. 철수는 쉬지않고 계속 후원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녀에게 쓸 만큼 돈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수도 슬슬 나가려는 찰나, 그는 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구토를 했다. 몇번의 구토와 신물이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하고나서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입가에 묻은 토사물을 휴지로 닦았다. 목과 속의 아린 통증때문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옆을 잠시 흘깃 보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멍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철수은 비위가 상해 얼른 방송에서 나왔다. 캡쳐를 하려했으나 그 방에서는 후원하기와 채팅 이외에는 할 수 없었다.



"미쳤다, 미쳤어. 완전 돈에 미친 또라이 아니야."



철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얼른 커뮤니티에 접속하여 글을 썼다. 그는 한편으로는 기뻤다. 그 모습을 본 것은 자기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랑 아닌 자랑글을 쓰고 다시 방송을 보기 위해 '지하 TV'에 접속했다.



"이건 해도 너무 하네."



반이상이 '애완 인간' 컨텐츠에 철수는 인상을 찌뿌렸다. 사각형 안 모든 사람들이 퀭하고 멍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섬찟하게 복사된 듯한 영상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중이다.



"아아, 여기있네. "



그가 들어간 곳은 성매매 집창촌을 안경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는 방송이었다. 화면가득 붉은 조명으로 찼다.



몇시간을 자세 하나 바꾸지 않고 보던 철수는 새벽 늦게 집을 나섰다. 얼마동안 방송과 각종 성매매 후기들로 욕구를 억누르고 살던 그의 병이 오늘 다시 도졌다. 그는 집창촌으로 향했다.





-2-



새벽 한적한 도심의 도로. 택시 한 대만이 달리고 있다. 도로 양옆 화려한 네온 사인이 음침하게 빛난다. 뒷자석에 앉은 철수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술집 앞에서 비틀거리며 몸을 주체하지 못 하는 남성, 담배 한 대씩 꼬나물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무리들, 모텔이 모여있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는 남녀. 혼탁한 밤거리에 영혼들을 팔았다. 흐느적 흐느적 녹아드는 그들을 보는 철수의 검은 눈동자도 흰자위에 퍼져 나간다.



어느덧 화려한 거리를 지나, 고요한 도로로 진입한 택시가 멈춰섰다. 병원과 마트, 각종 프렌차이즈 식당, 은행 등 사람들의 편의시설들이 즐비한 곳이다. 도로 양옆 낮은 가게 너머로 아파트들이 솟아나 있었다. 불이 거의 다 꺼진 채 숨죽이고 있었다. 암흑 가운데로 초록색 열십자 문양이 홀로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평화병원이다. 그 옆으로 끝을 알수없이 뻗어있는 골목이 있다.



철수는 택시에서 내려 거침없이 병원 옆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파출소에서 경찰 한명이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흠칫 놀란 철수는 골목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경찰은 180은 넘을거 같은 덩치를 앞세워 철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기.. 너 철수 맞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일부러 모른 체 하던 그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야아, 이거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경찰의 묵직한 팔이 철수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몸이 앞으로 눌렸다.



"아.. 우현이?"



철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예전 학교다닐 때 그와의 얽힌 불쾌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우현의 큰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린다. 그들이 철수를 보며 낄낄대며 웃고있다. 그에게 당한 폭력의 멍들이 피부를 뚫고 올라오는 것 같다.



"이 새끼, 오랜만이네. 요즘 뭐하고 지내는데."



우현은 철수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갑을 철수에게 내밀었다. 철수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숨기려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다. 담배를 빼어드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현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치켜올라갔다. 수초간 어색한 침묵 속에 흰 연기만 피어올랐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철수는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새차게 빨고 있었다.



아까 어깨를 감쌌던 우현의 팔의 감촉이 아직도 피부에 온전히 남아있었고, 그것이 개줄이 된 듯 벗어날 수 없었다. 그냥 그가 가라고 할때까지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철수의 불편하다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우현은 무시한 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 새벽에 여기는 왜 왔는데, 볼일 있어서 왔나?"



철수는 간신히 고개를 들고 대답 할 말을 찾았다. 그의 눈에는 병원의 출입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병문안가려고, 친척분이 다쳤거든."



우현은 참던 웃음을 터뜨렸다. 새벽 3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에 병문안? 철수 자신도 후회했다. 우현의 코에서 웃음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철수의 등에서 차가운 땀이 흘러 내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기분이 붕 뜨는 듯 했다. 다행히 우현이 그의 어깨를 두어번 치는 바람에 막혔던 숨이 터져나왔다. 그 모습조차 우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가자, 가서 나도 인사드리고 그러면 되잖아. 나도 니 친군데 그정도는 해야될거 아니가. 어서어서 내랑 지금 음료수 사러가자. 지금 문 연 편의점 어딨나 찾아볼게."



우현은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허둥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철수의 팔을 잡고 병원 쪽으로 끌었다.



"앞장서."



철수는 그런 우현의 손에서 팔을 뺴려고 했다. 여전히 고개는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가고나서 우현이 자기 주변사람들에게 철수 자신을 어떤 놀림감으로 만들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떻게든 해명하고 싶었다.



"사실 자취방이 여기 있어."



철수는 어린아이처럼 울먹거리며 애원하 듯 말했다. 그런 그를 들은 채 하지 않고 우현은 계속 그를 재촉했다. 웃음을 참는 듯 했다. 지루한 야간근무 시간에 유희감을 찾은 것이다. 철수는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30이 다되어가는 나이,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는 순경이 되었고, 자신은 취직도 못한 채 성욕을 채우러 길거리를 전전하고 있다는 이 현실에 기분이 저 밑으로 꺼지는 듯 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그에게 흥미가 떨어진 우현은 그에게 다가와 작은 말로 속삭였다.



"빙신아, 적당히 발발거리면서 다녀, 성매매하고 다니는 변태새끼야. 어디서 말도 안되는 구라들을 치고 다녀."



우현은 피우던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튕겼다. 꽁초는 철수의 윗옷을 맞고 불꽃을 내며 떨어졌다. 철수의 눈에 그 불꽃 하나하나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처음부터 집이 여기 있다고 해야지. 바보야."



우현은 뒤돌아가면서 까지 철수를 조롱했다.



"야, 기수한테 들었다. 아직도 공시 준비한다며!"



동네 사람 다 들으라는 듯 마지막으로 크게 말하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수는 그의 뒷모습이 멀어져 갈때까지 그대로 서있었다.



과거의 고통과 현실의 암울함은 어두운 새벽 공기가되어 철수를 감쌌다. 악몽의 존재가 지나가고서야 열등감과 좌절감이 분노가 되어 피어났다. 스트레스와 분노는 지금 이순간 그를 더욱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 곳으로 오기 전 부모님과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서 이 감정을 표출 할 곳이 필요했다.



그는 골목길 안쪽 붉은 조명 가득 찬 곳으로 들어갔다. 양옆으로 늘어 선 통유리 중 한 곳으로 들어간 철수는 한 여성에게 화대를 지불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철수는 붉은 방 안에서 맨 몸으로 누워있다. 방문이 열리고 그는 화들짝 놀라 용수철 튀어오르 듯 몸을 일으켰다. 이불로 몸을 감싸려고 하였으나 자신의 모습이 이미 휴대폰에 담기고 난 후 였다. 경찰복을 입은 우현의 큰 몸이 열린 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좌절한 듯 앉아있는 철수를 찍으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옆에는 아까 철수에게 화대를 받은 여성이 그런 우현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오빠, 우리가게 손님 다 떨어지면 책임질거야?"



"미안미안, 이것만."



우현은 마지막으로 철수의 사진을 담고 만족스러운 듯 넘겨보았다. 그리고 걸려있던 철수의 옷가지를 거칠게 그에게 던졌다.



"친구야, 옷 잘 입고 나온나. 앞에서 기다릴게."



여성의 경멸어린 눈빛을 받으며 허겁지겁 옷을 입고 나온 철수는 가게앞에 서 있는 우현에게로 다가갔다.



"기죽지 말고, 이제부터 내가 전화하면 나와서 내부탁 좀 들어주라."



우현은 폰에 저장되어 있는 철수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붉은 등 아래 벌거벗고 허둥대고 있는 그의 모습은 흉했다.



범죄현장에서 잡힌 범죄자였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주면 다 지워줄게."



철수의 눈 앞에서 우현은 폰을 흔들어보였다.



"만에하나 연락을 씹거나, 내가 니 집을 찾아갔을 때 없으면 니가 아는 지인하고 가족뿐 아니라 인터넷에 다 뿌릴거디. 알았제?"



우현은 먼저 골목을 빠져나갔다. 철수에게 무기력함이 엄습해왔다. 날이 점차 밝아오고, 붉은 전등 하나하나 사라질 때까지 철수는 골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줄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그의 손에 돌려받은 화대가 들려있었다.





-3-



캄캄한 방안 각종 약통과 봉지들이 즐비하게 어질러져 있다. 뚜껑 열린 패트병 안에는 먹다 남은 생수가 담겨있다. 베개 옆 놓여있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시체같이 웅크려있던 사람이 겨우 손을 뻗어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잠시 누군가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철수는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전보다 많이 마른 몸에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로 머리 중앙이 휑하게 비어있었다. 휴대폰의 알림이 계속 울렸다. 보지 않은 메시지가 많이 쌓였다. 대부분 대출업체에서 며칠내 입금을 하라는 문자들이었다. 그는 생수통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들이 붓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어두운 지하에 위치한 그의 방에서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련의 방들이 붙어 있는 지하 복도를 지나야했다.



철수가 원룸에서 지하방으로 옮긴 지는 몇 달 전이다. 우현은 그의 약점을 잡고 제3금융에서 철수의 명의로 사채를 쓰게했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불러 철수를 괴롭혔다. 빚은 그대로 철수의 몫이 되었다. 사채업자들이 꾸준히 철수를 찾아 와 괴롭혔고, 그는 임시방편으로 보증금을 빼서 일부 빚을 매꾸었다. 하지만 이자는 계속해서 불어갔다.



철수는 계단을 올라와 마당의 대문을 빠져나와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재래시장 입구였다. 그 앞에서는 우현이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우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철수는 처음으로 그에게서 두려움이 아니라 살의를 느꼈다.



"새끼, 좀 씻고 나오지."



철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요즘 우현을 보거나 벨소리가 울리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이 뒤로 넘어 갈 것만 같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입으로 털어 넣었다. 신경안정제다. 약을 삼키려 고개를 뒤로 넘겼을 때 목에는 가로로 길게 붉은 찰과상이 패여 있었다.



"완전 환자네, 야, 니 죽는거 내가 살린거야, 감사하다고 느껴 임마."



우현은 재래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제발 지워주라. 나도 이제 니한테할 만큼 했다 아니가."



철수는 우현의 뒤를 따라가며 말을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현은 들은 체도 안하고 시장 구석으로 걸어갔다.



"우현아, 더 이상 하면 나도 못 참아. 이만하면 됐잖아. 너도 사람이면 내 꼴 좀 봐도."



우현은 여러번 헤매다 낡은 건물 앞에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건물 입구 옆 벽에는 '행복 인력소'라고 적혀있었다.



"오늘은 여기. 들어가서, 알지? 이제 니 얼굴 다 팔려서 빌려주는 데도 별로 없다. 겨우 한 곳 찾은 거니깐 빌려온나."



우현은 철수의 어깨를 건물 입구로 떠밀었다. 철수는 완강하게 버티고 섰다.



"이 새끼야, 니 부모한테까지 다 불어버릴까? 온 세상 니가 성매매하는 사진 떠돌게 해줘?"



철수는 뒤돌아 우현을 째진눈으로 흘겨보았다. 우현은 코웃음쳤다.



"새끼야, 니가 이미 다 퍼뜨렸잖아."



철수는 어제 항상 하던 커뮤니티에 들어가 충격적인 사진을 보았다. 빨간 전등 아래 허둥대는 자신의 모습. 우현의 짓이었다. 우현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철수의 손에 쥔 칼 끝이 그의 복부를 파고 들려고 하고 있었다. 우현의 두꺼운 손이 철수의 손목을 잡고 있다. 철수는 복부를 찌르기 위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철수는 칼을 바닥에 떨군 채 우현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건물 안으로 끌려갔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컴컴한 복도를 지나 오래된 화장실에 도착했다. 철수는 푸세식 변기칸에 던져졌다.



"이 시발, 이 새끼 정신나갔네. 경찰한테 칼을 겨눠? 그래, 내가 퍼뜨렸다. 어쩔건데? 성매매나 하는 새끼가 죽고싶어?"



우현은 철수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뺨 몇대를 때리더니 다시 더러운 변기로 내동댕이 쳤다. 철수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피로 범벅이었다.



"아, 이 더러운 새끼."



우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털었다.



"어차피 오늘까지만 쓰고 버릴려고 했어, 쓸모없는 새끼야. 꺼져."



우현은 화장실을 나갔다. 바닥에는 그의 경찰 신분증이 놓여 있었다. 철수는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다. 철수의 세상은 끝이 났다. 몸을 추스리고 계단을 내려온다. 아마도 어깨가 나간 듯 하다. 육신과 정신이 지칠대로 지친 그는 아무 생각도 나지않았다. 마지막으로 방탕하게 놀고 이 생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하로 내려갔다. 자신이 끌어 쓸 수 있는 돈을 모두 빌릴 생각이다.



지하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외에 역겨운 냄새가 심하게 났다. 복도의 끝에는 '대출'이라는 붉은 네온사인 간판이 매표소 입구 위에 달려있었다. 음침한 기운에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철수는 매표소 앞에 섰다. 반원으로 뚫린 창구 위를 두드렸다. 잠시후 입구가 열렸다. 안에서 찌든 담배 냄새와 썩은 듯한 역겨운 냄새가 새어 나왔다. 늙은 노파의 흰자가득 한 눈이 철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동안 노려보던 노파의 눈이 사라지고 굉음과 함께 옆에 있던 철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간 철수의 눈에는 수백개는 족히 될 것 같은 철문들이 보였다. 철문 중앙에 있는 창으로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뒷통수가 보였다. 그 옆에는 험상 굳게 생긴 덩치 큰 사내가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의 의자 밑은 뚫려 있었다. 그대로 배변을 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옆에는 한동안 치우지 않은 토사물이 있었다. 곳곳에서 구역질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무엇인가 열심히 먹고있는 사람을 철수가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옆으로 살짝 보이는 모니터에서 '지하TV'라고 적혀있었다.



철수는 얼마 전 보던 '지하TV'의 영상들이 떠올랐다.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매서운 눈으로 철수를 노려보자. 흠칫 놀란 그는 문에서 한참을 떨어졌다. 방들 모두 이런 구조로 되어있었다. 영상을 찍어대는 공장같았다.



"돈 빌릴거면 어서 빌리고 나가."



철수는 한참이나 고민하는 듯 하더니 책상에서 돈다발을 세던 노파에게 다가갔다.



"제가 빌릴 게 아닌데, 괜찮나요?"



노파는 쳐다도 보지않고 대답했다.



"몸뚱이만 주면 되지."



철수는 우현의 경찰 신분증을 내밀었다.



"이 사람 이름으로 빌릴 수 있는 돈 최대로 빌려주세요."











요즘 커뮤니티에서 인기있는 이슈는 성매매를 하다가 걸린 한 남성의 이야기, 또 다른 하나는 왕따 가해자가 경찰이 되어 잘 살고 있다는 글이다. 철수는 그날 이후 우현의 불법적인 행위와 학창시절의 행태들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글을 적어 올렸다. 우현의 사진도 구해서 크게 붙여넣기 했다. 이 글의 여파는 다른 커뮤니티로도 번져나갔다.



어두운 방안에서 밝은 액정화면, '지하 TV' 영상 목록만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엄지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추고 한 스트리밍 영상을 터치했다. 폰 화면에 경찰 근무복을 입은 덩치 큰 한 사내로 가득찼다. 오른쪽 가슴에는 '최우현'이라는 명찰이 박혀있었다. 우현은 퀭한 얼굴과 멍한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원을 하자 한입가득 음식을 밀어넣었다. 넘기기 힘들어보였다.



화면의 빛에 적셔진 철수의 입에 미소가 번진다. 한번 열린 입은 누런 이를 드러낸 채 한동안 닫히지 않는다. 철수는 커뮤니티에 재빨리 글을 쓰고있었다.



"왕따가해자 경찰 '최우현' 지금 '지하 TV'에서 방송중. 화력지원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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