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거래처에서 돈이 늦게 들어왓는데 우린 당일정산해서 통장잔액을 0으로 맞춰놔야하는 직장이라서 다른 직원분들 먼저 퇴근하시라 하고 내가 문단속 하고 가겠다하고 야근했단 말이야
한 8시쯤 일이 끝나서 밖에도 어둑하고 시골이라 가로등도 별로 없어서 에어팟 끼고 걸어가는데(직장서 집까지 걸어서 15분) 뭔가 쌔한 느낌?이 나서 걍 무심결에 오른쪽 골목으로 고개를 돌렸어 근데 골목 안쪽에 검은 후드티에 검은 마스크 그리고 캡모자까지 뒤집어쓴 젊은 남자가 상의 주머니(후드 앞쪽에 연결 되어있는 주머니 알지 거기)에 손넣고 그냥 서있더라고
첨엔 와 미친 개 놀랬네 싶었는데 그냥 무시하고 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단말이야 불안해서 에어팟도 빼고 근데 뭐 딱히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도 안났고 얼른 집가서 치킨이나 먹어야지 이러면서 가는데 내가 꺾어야 하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순간 저 앞에 가로등 불빛이 안닿는 곳에 그 사람이 서있는거야
진짜 사람이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하니까 약간 멍해지고 귀에 삐---- -소리 나더라고 분명 내 뒤에 따라오는 소리도 안들렸고 날 지나가지도 않았고 그 사람을 본 골목에서 내가 가야할 골목으로 가는 길은 내가 걸어온 길 아니면 진짜 마을 외곽으로 빙글 돌아서 가는거밖에 안되는데 그러기엔 너무 말도 안되는 시간만에 내 앞에 서있어서 갑자기 등뒤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너무 무서운거야
그렇게 잠깐 멈칫하는새 오만 생각을 다했는데 그 사람이 점점 내쪽으로 다가오더라고 여전히 후드 앞주머니에 손을 넣고 근데 내가 막 소리지르면서 도망가는것도 그렇고 우리 회사 유니폼을 입고있어서 여기서 도망가도 맘먹으면 언제든 찾아오겠다 싶어서 아무렇지 않은척 나도 그냥 앞만보고 걸어갔어 거리 좁혀질수록 진짜 뒷목이랑 축축하게 다 젖고 난리났는데 혹시 주머니에서 뭐 꺼낼까봐 정말 완전 긴장한 채로 걸어갔어
근데 딱 스쳐 지나가는 순간 가래낀 목소리로 '얘는 아니네..' 하더라고 너무 긴장하고 있던 나머지 완전 토끼같이 제자리서 펄쩍 뛰면서 뒤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더라 그 골목길에 진짜 아무도 없더라 말도 된다 싶어서 왔던길을 막 뛰어가서 내가 왔던길도 봤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더라 그때부턴 거의 반쯤 울면서 친구랑 전화하면서 집까지 정신없이 왔어
3월초라 추웠는데 머리카락이랑 유니폼이랑 땀범벅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에 주저앉아서 엉엉 움
그리고 담날 회사갔는데 앞자리 대리님이 그러더라고 우리동네에 내 또래 아가씨 한명 어제 저녁에 죽었다고
나는 어제 본 그 남자가 생각나서 설마 살인이냐고 했더니 완전 놀라시면서 아니라고 원래 아픈 아가씨였는데 병사라고 새벽에 자다가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져서 병원으로 이송되다가 죽은거라고 그러더라고
내 또래인것도 무서웠는데 돌아가신 여자분은 갑상선 암이 전이 되면서 혈액암으로 돌아가신거였고 나는 평소에 가족력으로 갑상선암 있고 매년 2회씩 갑상선 세포검사 하는사람이라 생각이 어제 그남자는 저승사자였고 내가 같은곳이 아프고 그 여자분이랑 또래라서 나 확인하고 간건가?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