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방 글 재미있게 읽다가 문득 떠올라서 적어 봄
우선 난 무교 무신론자 귀신 존재 안 믿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데다
평생 가위 눌린 적이 한 손에 꼽으며 그 가위조차 잠들 때 상황 생각해서 생리학적으로 답을 찾는 타입이야
그렇지만 이런 쪽 이야기는 좋아해서 2ch이나 레딧, 각종 사이트 괴담이랑 미스터리 열심히 찾아봄ㅋㅋㅋㅋ
한 10년 전쯤 번역 연습도 할겸 2ch 괴담을 번역해서 모 커뮤니티에 열심히 올린 적이 있었어
번역 자체도 즐거웠고 고른 글들도 재미있었고 커뮤 반응도 기분 좋아서 하루에 5개 정도씩 꼬박꼬박 번역해서 올렸는데
그러던 중,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해서 번역하고 다음날 올릴 거 다듬고 편히 잠들었던 어느 날
버릇처럼 벽에 있는 책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자세로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깼어
공기의 색도 밀도도 분명 새벽이었고 한여름이라 집에 아예 빛이 없지는 않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그땐 혼자 자취했고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는데 나랑 늘 같이 자던 한 마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음
대신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어
존재는 있는데, 그러니까 뭔가의 덩어리로 느껴지고 감촉도 잡힐 듯한데 무게감은 없는 희한한 인기척이었지
난 분명 잠에서 깨어 있었고 온몸을 움직일 수도 있었는데, 게다가 상대가 어쩌면 집에 침입한 괴한일 수도 있는데
돌아봐선 안 된다는 마음의 경고가 계속 울리더라 그래서 잠들어 있는 척하면서 가만히 있었음
무심결에 '덩치가 있는 남자'로 인식한 그 인기척은 내 등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몇 걸음을 걷고는
한참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다가 - 이상하게 시선 자체는 느껴지지 않는데 본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음 - 나갔어, 방밖으로
방 문 바로 밖이 부엌이었는데 부엌 싱크대까지 가나 싶다가 바로 인기척이 사라짐
아무리 겁이 없어도 그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거 같은데
또한 이상하게 그 '남자'가 나가고 나니까 다시 잠이 쏟아지는 거야
자고 일어났더니 고양이가 내 옆에서 자고 있더라
물론 집에 발자국 같은 건 없었고 아무 변화도 문제도 없이 그냥 출근해야 하는 평범한 아침이었음
그 날부터 바로 괴담 번역을 관뒀어
뭐가 붙었다거나 갑자기 영안이 트였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매일 몇 개씩 괴담을 보고 내용을 해석하고 다시 옮겨서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과정에서
생각 자체가 그쪽으로 고정된 거 같음 그러니 그렇게 온 감각이 총동원된 '헛것'을 느꼈겠지
그 때 이후로도, 지금도 괴담을 즐겨 읽고 10년 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 안 그랬으면 공포방에도 못 들어옴 ㅋㅋㅋㅋ
그 날 새벽의 공기 색과 그 '남자'의 인기척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별 거 아닌 지루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