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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역할놀이 (4)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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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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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가 꺼지고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복도 중앙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눈 움직임, 그 혼란스러운 시선들이 결국 피 묻은 의자를 쥐고 있는 

머리 긴 남자에게서 멈추었다. 


“재욱 씨,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 잠깐! 위험한 놈이었다고, 사람들을 죽이려고 총을 들고, 방아쇠까지 당겼다고 다들 놈이 총 쏜 거 못 본거야? 하마터면 다른 사람이 죽을 뻔했어, 내가 모두를 구한 거라고 왜 날 그딴 식으로 보는 거야?”


호영씨의 질책에 재욱이라는 머리 긴 남자는 당황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이미 총을 빼앗은 후였어. 당신도 봤잖아”


“모르는 거야, 녀석이 다시 난동을 피울지 누가 알겠어?”


“일단 그 의자부터 집어치우세요.”


은혜씨가 재욱씨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재욱씨의 손에는 아직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의자가 

들려있었고, 그 의자를 틀어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 3초간 재욱씨가 은혜씨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의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의자가 나가떨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혜란 아줌마는 고개를 돌렸고, 은혜씨 역시 

살기 가득한 재욱씨의 시선을 피했다.


“잠깐만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소리 질렀다. 뭔가 또 불길한 일이 터질 거 같아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순간 주변이 잠잠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지금 이렇게 서로 싸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재욱씨에게 죄를 추궁해도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재욱씨도 죽이실 겁니까? 재욱씨가 죽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모두 진정들 하세요.”


재욱씨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호영씨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살짝 신경 쓰였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말하려고 

앞으로 나서는데 발에 뭔가 채였다. 밑을 보니 유태수의 다리가 있었다.


"진정하는 것도 좋은데 일단 여기 있는 시신부터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철이 아저씨가 죽은 유태수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그게 순서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나와 철이 아저씨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시신을 수습했다. 우리는 시신을 들어 복도 끝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런 힘없이 축 늘어지는 시신의 팔뚝을 잡았는데 그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죽어있는 것의 촉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했다. 할아버지는 복도 끝에 둔 시신의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게 했다. 마땅히 둘 곳이 없어 그냥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둔 거였는데 고개가 

복도 중앙을 보고 있어서 왠지 꺼림칙하셔서 그러셨다고 했다. 

혜란 아줌마와 은혜씨, 두 여자는 충격을 받았는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방에서 가끔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음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재욱씨는 철문 앞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렸다. 혼자 놔두라고. 나와 철이 아저씨 그리고 호영씨 

그리고 자신을 강현구라고 소개한 할아버지 이렇게 넷이서 복도 중앙의 탁자에 빙 둘러앉아서 시간을 

때웠다. 침묵 그리고 침묵. 그 침묵이 답답했지만 딱히 이들과 나눌 이야기도 없었고, 수다를 떨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는 애매했다. 어른도 계시니.


“잠깐 확인 할 게 좀 있어서”


순간 철이 아저씨가 의자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복도 중앙을 이리저리 혼자 살피며 돌아다녔다. 

고개를 숙여 탁자 밑을 보다가, 벽을 따라 걷기도 하셨다. 뭔가를 찾는 듯한 모습에 물었다.


“뭐 찾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그냥 둘러보는 거야”


약간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한 철이 아저씨는 곧장 복도 끝에 있는 유태수의 시신 쪽으로 걸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그 뒤를 따랐다.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뒤쫓던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걸었다. 이윽고 시신 앞에 선 아저씨가 다짜고짜 

유태수의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는 티를 걷어내었다. 그러자 유태수의 가슴팍에 부착된 폭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런 아저씨의 행동에 약간 놀람과 동시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저렇게 막 다루면. 

시체매너. 

이 상황에서 시체매너라는 단어가 떠오르다니, 농담이 나와? 나란 놈아.


“뭐하시는 겁니까?”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태수에게 부착된 폭탄을 살폈다. 손으로 눌러보기도 하고, 코를 가져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시체와 폭탄을 저렇게 이리저리 만질 수 

없을 텐데, 도대체 뭐하다 온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이 폭탄 진짜일까?”


“예?”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모르잖아”


아저씨가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확인해 보시려고요?”


“폭탄만 작동 안하면 우릴 가둬놓은 미친놈 말을 들을 필요가 없잖아, 그 역할놀인지 뭔지 할 필요가 없다니까, 폭탄이 가짜면”


철이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금 폭탄을 이리저리 살폈다. 


“흠, 수제폭탄 같은데”


“폭탄에 대해 잘 아세요?”


“그냥 조금, 군대 안 갔다 왔나봐?”


“네, 아직 안 갔다 왔어요. 가기 싫었었는데 지금은 가고 싶네요.”


“허허, 이런 상황에서 농담도 하고 대단하네.”


“뭐, 그냥”


시체매너 농담을 할 걸 그랬다.


철이 아저씨가 천장을 바라봤다.


“어이, 이봐 이 유태수 학생 폭탄 좀 터뜨려봐” 


우리를 가둔 녀석에게 말한 것이었지만 스피커는 조용했다.


“뭐야? 감시 안 하고 자리 비운 거야? 빨리 폭탄 터뜨려봐 진짜인지 확인해보게”


“에에헴, 마이크 테스트. 뭘 갑자기 불어내고 그래요?”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녀석은 우리를 24시간 감시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녀석은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긴, 사람들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폭탄을 달고 하려면 혼자로선 역부족일터.


“여기 죽은 학생 폭탄 작동시켜봐”


“제가 왜요?”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철이 아저씨 표정이 굳었다.


“이 폭탄이 가짜면 누구도 네 놈 말은 듣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확인시켜봐 네 놈이 우리목숨을 가지고 놀 수 있나 없나”


“하하하, 역시 의심 많으시네. 그거 직업병 아니에요? 그럼 좀 뒤로 나와 보세요.”


스피커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뒤로 나오라고요”


나와 철이 아저씨는 얼떨결에 뒷걸음질 쳤다.


“펑!!!!”


순간 폭발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고, 터짐과 동시에 유태수의 피와 살점 따위가 나와 철이 아저씨에게 

다 튀었다. 위력은 굉장했다.


“또 무슨 일이” 


“이게 무슨 소립니까?”


소리를 듣고 놀란 호영씨와 할아버지가 달려왔다. 둘은 본의 아니게 피투성이가 된 우리 모습을 보고 

꽤나 놀란 것 같았다.


“조심들 하세요. 폭탄 진짜네요.”


피투성이가 된 철이 아저씨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폭탄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려고 위에 놈한테 이 학생 폭탄 좀 터뜨려 보라고 했습니다."


철이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죽은 사람 몸뚱이를 가지고 이러면 쓰나!!”


할아버지가 노하셨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시며 터져버린 시체를 씁쓸히 내려다 보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유태수 학생의 시신을 수습하셨다. 수습하시는 걸 도와드리려 다가갔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게’

라는 말을 하실 뿐이었다. 철이 아저씨 역시 멋쩍어하며 그 자리를 맴돌다가 이내 그곳을 피했다. 





##9



꽤나 허름한 지하방. 그곳에서 재희와 상민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형사님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여깁니까?”


상민의 물음에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겼죠?”


“외모가 중요합니까?”


“아뇨, 그래도 알아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상민의 물음에 재희는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저도 사실 얼굴을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젊은 형사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지하에서 왜 보자는 겁니까? 음산한 건 그때 이후로 질색인데 의심스럽네요.”


“형사님도 다른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오는 거라 조용히 만나야 한다고 하셔서, 형사님은 우리를 도우는 것도 있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납치 되서 역할놀이를 하고 있을 사람들을 구해내는 게 주목적입니다. 아직 우리를 신뢰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카페같은 곳에서 보고 싶습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이 사건에 감을 잡은 형사 같은데, 한 번 믿어 봅시다.”


“감만 잡았지, 역할놀이가 뭔지도 모를 텐데요.”


“똑똑똑”


순간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10



방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얼굴과 옷에 묻은 유태수의 피를 닦았다. 쉽게 닦이지 않아 빡빡 문질렀다. 

세면대를 따라 흐르는 핏물을 보자 유태수에게 달려있던 폭탄이 터지는 끔찍한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 폭탄이 내 가슴에도 달려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몸이 굳어졌다.


“으으으”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다. 그래도 세수를 하고나니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꼬르륵”


이런 상황에서 배도 고플 수 있구나.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방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설마 며칠 동안 가둬놓으면서 굶기는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방을 뒤졌는데 다행히 쉽게 

빵과 물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밥 먹고 싶다.’


대충 배를 채우고 방문을 조금 열어 복도를 살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제대로 잠겨있나 2번 3번 확인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분명히 스피커가 말했었다.


‘형사도 죽었으니 이제 악당들이 마음껏 날뛰겠네요. 하하하’


악당이 과연 누굴까? 어떤 악당들일까? 설마 내가 악당일까? 아직 내 역할도 모르는 나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내일 부터는 이 역할놀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잠을 

청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방음이 잘된다고 생각했는데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무래도 방문 바로 

앞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다투는 소리, 불안감이 

음습했다. 혹시나 하며 혼자 잔인한 상상을 하다가, 조용히 일어나 방문에 귀를 가져갔다. 


“어서 주세요.”


혜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됩니다.”


철이 아저씨도? 슬쩍 방문을 열었다. 바깥을 보니 철이 아저씨와 혜란 아줌마가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자들이 총을 가지고 있어야 되요. 남자보다 약하니 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총도 제대로 못 다루면서 무슨 총을 달래요? 예?”


“그럼 그쪽은 총을 무슨 전문가처럼 다루시나 봐요?”


“예, 전문가처럼 다룹니다. 됐죠?”


어제 유태수에게서 빼앗은 총이 문제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유태수에게 총을 빼앗은 철이 아저씨가 

어제부터 계속해서 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고, 혜란 아줌마는 그게 불만인 듯 했다. 

둘이 말싸움하는 게 팽팽해 보였지만 서서히 균형의 추가 아저씨 쪽으로 옮겨졌다.


“아줌마 군대 안 갔다 왔죠? 남자들은 군대에서 사격술 다 배워요. 괜히 사용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사고 나요. 특히 아줌마 같은 사람.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제 총입니다.”


철이 아저씨의 깔보는 말투에 혜란 아줌마가 발끈했다.


“그게 왜 아저씨 건데요? 주세요. 그리고 군대에서 권총 써요?”


“군대 안 갔다 왔죠? 전 갔다 왔습니다. 누가 더 군대에 대해서 잘 알까요?”


“아휴 정말!!”


아줌마는 답답했는지 혼자 소리쳤다.


“절대 못 줍니다.”


“두 분 그만들 하세요.”


어쩐지 내가 나서야 될 거 같아서 말렸다.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요, 아줌마 그만해요, 이제 그만 좀 합시다.”


내 말에 맞장구치며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요, 한 가지만! 딱 한 가지만. 아저씨가 총을 다룰 줄 안다고 쳐요. 알았어요. 군대에서 배웠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저씨가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잖아요? 다른 남자들도 있는데, 왜 꼭 아저씨가 가져야하죠? 아저씨가 위험한 역할일수도 있잖아요?”


혜란 아줌마의 반박이 거셌지만.


“위험한 역할? 그럼 벌써 아줌마 쐈겠죠?”


“뭐라 구요?!!”


왠지 이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 아줌마 진정들 하시라니까요.”


“그냥 놔두세요.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네요.”


은혜씨가 말리는 나를 말렸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중앙복도로 가니 재욱씨와 호영씨가 금고 주변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뭐하세요?”


“돈이 잘 있나 확인하는 거예요. 액수에 변함은 없겠죠? 누가 밤에 몰래 가져가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죠?”


내가 처음 생각했던 호영씨의 이미지와는 조금 상반되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호영씨가 이렇게 돈에 

집착할 거라고는. 물론 호영씨 말고도 한 사람 더 있지만.


“물론 돈도 좋지만 굳이 지킬 필요까지야, 그리고 돈보다 안전이 우선인데”


“여기서 감금되어서 못 볼꼴도 보고, 사실 납치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보상은 받아야죠.”


“그건 그렇지만 놈이 돈을 준다고 약속은 했지만 믿을 사람을 믿어야죠.”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에도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호영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재욱씨를 힐끔 쳐다봤다. 역시나 아직도 

재욱씨가 불편한 듯 했다. 나 역시 그렇지만.


“근데 지금 여기에 갇힌 사람이 8명에서 7명이 되었잖아요? 원래 8명이 8억을 1억씩 나눠 갖는 거였는데, 한 명이 죽어서 1억이 남잖아요. 그럼 모두가 균등하게 나누기 힘들어지는데 남은 1억을”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호영씨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사실, 유태수를 죽인 재욱씨 본인이 그런 말을 하는 게 나 역시 달갑지는 

않았다. 어제 자신이 죽인 사람의 몫을 나눠 가지겠다는 심보 자체가 글러먹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재욱씨는 그걸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그 1억을 나누지 말고 한 사람한테 몰아주는 건 어떨까요?”


나와 호영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젊은이가 뭘 그렇게 돈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구만”


묵묵히 앉아서 지켜보던 현구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니, 제가 빚이 좀 있어서”


재욱씨는 여전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이 사람은 눈치가 결여된 사람 

같다.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나는 사람. 


“젊은 나이에 돈에 욕심을 가지면 못 써”


“그럼 할아버지 몫을 제가 좀 가져도 될까요?”


웃으며 말하는 재욱씨였지만 그런 걸 용납할리 없는 할아버지였다. 그나저나 어제 사람 죽인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의 재욱씨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이런 사람과 며칠 더 같은 공간 안에 있어야 하다니.


“자네 정말 미쳤나?”


“돈에 욕심내는 게 뭐가 미친 겁니까? 그럼 이 세상사람 모두 미쳤게요? 안 그래도 지금 참고 있는 겁니다. 이 돈 내가 다 가질 수도 있는데, 이거 가져가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저런 쯧!”


할아버지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셨는지 혀를 내두르며 돌아앉으셨다. 


“아 지루해. 악당들 뭐하는 겁니까? 왜 이렇게 평화로워요? 역할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텐데”


잠자코 있던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역할놀이가 끝나면 풀어주는 게 확실 한 거요?”


호영씨가 진지하게 물었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면 풀어주죠. 뭐, 생존자 중에 제일 역할을 수행 못한 사람은 남아서 또 해야겠지만”


“생존자라는 말이 거슬리네요.”


반짝거리는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람가지고 장난치는, 저 쓰레기보다 못한 놈의 장난감이 된 

기분에 울컥했다.


“거슬리라고 말한 겁니다. 하하하. 뭐 오늘 밤이 지나면 슬슬 역할들을 수행하시겠지요? 저 기대하겠습니다.”


“꺼져!! 이 미친놈아!!”


천장을 향해 한 바탕 소리를 지르고 카메라 쪽을 보니 

철이 아저씨가 가운데 손가락을 카메라에 날리고 있었다.






“저기, 우리 토론 좀 할까요?”


방에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은혜씨가 불렀다.


“에? 무슨 토론이요?”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요?”


“좀 더 자세히는 역할에 대해서요.”


어쩐지 은혜씨의 표정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서로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 건 뭔가, 처음부터 서로들 

암묵적으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묻지 않았다. 마치 꼭 지켜야 하는 룰을 두고 게임을 하듯 말이다. 

그런 걸로 봐서 지금 그녀의 행동이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토론이 하고 싶은 것인지, 

뭔가 숨기고 있는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재간이 없었기에, 일단은 웃어넘겼다. 

무엇보다 그녀가 내게 역할을 직접적으로 물어본다고 한들 나는 내 역할을 모르기에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에? 헤? 갑자기 역할은 왜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우리끼리만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은혜씨 만약에 제가 나쁜 역할이면 어쩌시려고”


“여자의 직감이에요. 왠지 당신은 위험해보이지가 않아서” 


그녀의 얼굴에 방금 전의 섬뜩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나 넘어가는 건가.

그녀에게, 아니, 그녀의 설득에 넘어가버린 나는 그녀와 함께 방에서 토론을 시작했다.


“지금 당신 그리고 나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호영씨, 기분 나쁜 남자 이렇게 7명이 있습니다. 아직 서로의 역할은 모르고 있고. 일단 나와 당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간주하고”


떨칠 수 없는 의문에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니, 저는 은혜씨의 직감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치더라도, 은혜씨가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남자는 직감이 없나 봐요. 딱 느낌 안 와요? 그리고 위험하다 한들 저같이 연약한 여자가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연약하더라도 어제 그 학생처럼 권총 같은 무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은혜씨가 연약하진 않잖아요. 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지만 그냥 참았다. 

어제 있었던 일이나 그녀의 말투나 행동은 웬만한 남자 못지않기에. 


“그런 의심이 있는데 저랑 방에 단 둘이 왜 있어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녀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뭐든지 의심한 필요는 있기에 

경계를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은 그렇게 해두죠. 그럼 누구부터 알아볼까요?”


“서로 위험해 보이는 사람부터 뽑을 까요?”


“무슨 근거로요? 직감이요?”


“대충 감도 좋고, 사람들 관찰했을 거 아니에요. 어떤 역할인지 나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하긴, 아직까지는 딱히 특별한 일이 없긴 하네요.”


“사람들의 역할을 추리해내기 전에 이 역할놀이에 어떤 역할이 있을지 먼저 생각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역할이요?”


“그래요 분명 8명에게 역할을 주어졌을 것이고, 그 역할들은 전부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일 거예요. 지금 유일하게 역할이 공개된 건 유태수 학생의 역할인데 그것에서부터 유추해보면 대충 어떤 역할들이 있을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오호, 되게 똑똑 하시네요. 계속 해봐요.”


“일단 유태수의 역할이 형사였잖아요. 형사라는 역할이 있다면 그에 상반되는 역할이 있겠죠? 우릴 가둬놓은 놈이 말한 소위 ‘악당’이라 불리는 자들. 그때 스피커에서 분명히 ‘악당들’이라고 했거든요.”


“적어도 2명이상이 악당이라는 소리네요”


“아직 악당의 역할은 모르지만 사람들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형사 역할에게 총을 줬을 정도면 그들에게도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흠,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어떤 거요?”


“복도 중앙에 놓인 돈, 단순히 역할을 끝내고 받는 상금이라는 느낌보다는 왠지 돈을 걸고 하는 생존게임일 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 돈과 관련된 역할도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하다보니 저 혼자만의 추리를 떠들고 있네요.” 


“흠 2명이상의 악당역할과 돈과 관련된 역할이라 눈에 띄게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뭐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겠지만”


“재욱씨요?”


“원래 돈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역할 때문인지”


“그 사람은 원래 돈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데”


“차라리 그 사람이 악당역할이었으면 좋겠네요. 배신감 느끼지 않도록”


“하하, 전 불안한데? 근데 은혜씨는 뭐 역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 거 없어요? 먼저 토론 하자고 하셨는데”


“호호, 딱히 없네요. 나중에 뭔가 감이 오면 말씀드릴게요. 직감은 정확한 편이니까,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럼 이만”


에? 은혜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왠지 그녀가 가장 수상해진 건 기분 탓일까? 

아니면 이것이 직감이란 걸까?










“탕!!”


단발의 총성에 놀라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는 동태를 살폈다. 

총성 이후에 계속 되는 정적 속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밖으로 나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총성이후 

이어진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에 발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는 확실했다. 무섭다. 

총이라면 철이 아저씨가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다른 누군가 역시 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복도로 하나 둘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상황이 진정됨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바깥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문 앞에는 뭔가에 홀린 표정을 한 혜란 아줌마가 총을 들고 서있었다. 


“뭐가 어떻게”


뒤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복도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혜란 아줌마의 반대편에 서서 그녀를 조용히 

응시했다. 5:1의 대치상황. 불리함을 깨달았는지 혜란 아줌마가 소리쳤다.


“이건 실수야 정말이야, 그 사람 잘못이라고!!”


혜란 아줌마는 호소했다. 확실히 그건 호소였다.


“아줌마, 그 총은 뭐예요? 도대체 무슨”


은혜씨가 말을 하다 눈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문이 열려있는 방이었다. 

그곳은 바로 철이 아저씨의 방이었다.


“설마, 총을 빼앗으려고”


은혜씨가 재빠르게 철이 아저씨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대체 왜일까? 그녀가 방에 들어가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혜란 아줌마 역시 묵묵히 그녀의 동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걱정이 된 나는 방 

앞으로 가서 섰다. 방안에는 피로 얼룩진 채 쓰러져있는 철이 아저씨, 그리고 피 묻은 쪽지를 든 

은혜씨가 서있었다. 뭔가 멍한 표정의 은혜씨였다.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뭔가 의아해하는 표정이 뒤섞인 표정.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은혜씨가 중얼거렸다. 은혜씨는 쥐고 있던 쪽지를 내게 주었고, 그곳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의 역할은 탐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추리하세요.

역할놀이가 끝나면 시험 볼 겁니다.





“아저씨는”


뒤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줌마 뭐라도 말 좀 해봐요. 왜 그런 짓을 설마 아줌마가”


“아냐, 난 그저 총이 필요했어. 근데 그만 실수였어, 정말이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아무리 총이 필요했어도, 다른 사람들 몰래 철이 아저씨 방에까지 들어가는 행위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분명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됐으니까 진정하고 일단 총은 내려놓으세요.”


“그건 안 돼!”


총을 가지려 다가가자 순간 혜란 아줌마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리고 아줌마가 들고 있던 총의 총구가 

우릴 향했다. 모두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잠깐만요,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맞아요, 일단 말로 풀어요. 총 내려놓으세요.”


“됐어 이제! 나쁜 놈들 너네 들한테 무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빨리 내놔” 


아줌마는 무언가 단단히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진정하세요, 아주머니”


“칼 2자루, 알고 있으니까 내놔.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주겠어. 내일 내 방 앞에 칼 2자루를 가져와 마지막 경고야”


지금까지 악당은 없었다. 유태수 학생, 철이 아저씨. 둘 다 형사와 탐정, 어떻게 보면 정말 필요한 

역할들만 사라져버렸다. 설마 애초에 악당이라는 역할 자체가 없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를 가둔 놈은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을 이용해 사람들끼리 서로 불신해서, 결국에는 서로를 죽고 

죽이는 모습을 바랐던 건 아닐까? 아니면, 혹시 어쩌면, 정말 내가 악당 역할인 걸까? 

커져가는 의구심에 방안을 샅샅이 뒤져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았다. 혜란 아줌마가 말한 칼은커녕 

위협될만한 도구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어찌어찌 이틀은 그냥 넘겼지만 이렇게 

역할도 모른 채,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도무지 잘 수가 없어 방문 앞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이따금 누군가의 발자국소리가 들렸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악당이라는 놈들이 자발적으로 칼을 혜란 아줌마 방에 놓길 바랄 뿐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감고 있던 눈이 떠졌다. 고막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비명. 혜란 아줌마의 

비명소리였다. 내가 졸았었나? 나도 모르게 문고리를 잡아 일어섰지만 갑자기 느껴지는 

서늘함에 멈칫했다. 뭘까? 무슨 일이지? 무턱대고 나갔다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침착하게 행동했다. 누군가 아줌마를 공격했나?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나? 

망설이는 사이 누군가 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큰일 났어요!”


문 앞에는 다급한 모습의 은혜씨가 있었다. 복도로 나가니, 총을 들고 경계하는 혜란 아줌마가 있었고, 

그녀의 방 앞에는 칼이 꽂혀있는 현구 할아버지의 시체가 있었다. 


“다 나와!! 어서 내 눈 앞으로 다 나와!!”


이성을 잃은 혜란 아줌마가 총구를 여기저기 겨누며 소리 질렀다. 


“아줌마 진정하세…….”


“닥쳐!! 지금 몇 명이야! 하나, 둘, 셋 하나 어디 갔어?”


아줌마는 한명한명에게 총구를 들이밀며 숫자를 세었다. 나, 은혜씨, 재욱씨 죽은 유태수와 철이 아저씨, 

현구 할아버지 그리고 혜란 아줌마를 제외하면 1명이 부족했다.


“한 명 어디 갔냐고!!”


호영씨가 없었다. 


“제가 불러올테니 제발 가만히 좀 계주세요”


“빨리 데려와!!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야겠어.”


나는 당장에 호영씨 방으로 가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놀라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으아아아아!!”


혜란 아줌마를 제외한 모두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내 시선을 따라 그것을 보았고, 

그들 역시 놀라 경악했다. 호영씨의 방안에는 상반신이 터진 채 쓰러져 있는 호영씨의 시체가 있었다. 


“도대체 어젯밤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뭐야? 무슨 일이야?”


궁금했는지 혜란 아줌마가 총을 들고 다가왔다.


“호영씨가 죽어버렸네요”


“죽다니?”


순간 은혜씨가 호영씨의 방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은혜씨 뭐하세요?”


방안을 뒤지던 그녀는 급기야 호영씨의 남은 사체를 뒤적였다. 그녀는 죽은 호영씨의 바지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쪽지였다.


“호영씨의 역할은……?”


그녀는 그때처럼 나에게 다가와 쪽지를 건넸다.






당신의 역할은 금고지기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금고에 있는 8억을 지키세요.

금고에서 1원이라도 빠져나가는 즉시 폭탄이 터질 겁니다.





“다들 멈춰!!”


가만히 있던 혜란 아줌마가 다시금 총을 들어 우리를 몰아세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은 그 사람 역할이 뭐였지?”


혜란 아줌마가 총구로 시신을 슬쩍 가리키며 물었다.


“금고지기입니다.”


“그럼 내 방문에 칼 꽂혀 있던 할아버지는?”


“아직 확인을 안 해서 모르는데”


“다들 천천히 나와”


혜란 아줌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복도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은혜씨를 지목했다. 


“가서 저 할아버지 역할 확인해봐, 칼은 건드리지 말고”


은혜씨는 쓰러져있는 현구 할아버지의 옷가지를 뒤적였다. 그리고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쪽지를 찾아 

꺼냈다. 


“뭐라고 쓰여 있지?”





당신의 역할은 시체처리반입니다.

시체가 생기면 칼로 썰어서 중앙복도의 구석에 있는 수거함에 넣어주세요.

(칼은 침대 밑에 있습니다.)





그래서 유태수 시신을 폭파시켰을 때 화를 낸 거였나? 잠깐, 그렇다는 건 스피커의 말이 맞다는 

전제 하에 여기 넷 중에 2명 이상이 악당이라는 소리?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아, 이거 녹화테이프를 봐야하나? 그나저나 이제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역할 확인하고, 자신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네요. 보기 좋습니다. 하하하”


꽤 나쁜 타이밍에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닥쳐봐, 생각 좀 하게”


구석에 박혀있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마치 그녀석의 눈을 보며 말하는 것처럼.


“아, 제가 역할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었나 보군요. 그럼 관객은 닥치고 있겠습니다.”


스피커가 꺼지고 정적이 이어졌다. 저마다 머릿속에서 수 가지를 계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머리를 엄청 굴리고 있었다.


“당신들 셋 중에 악당이 있어. 그리고 악당은 남은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있겠지. 할아버지를 죽여 내 방 앞에 두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겠지만, 절대 아냐 사람 잘못 건드렸어.”


혜란 아줌마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총알은 충분해, 지금 여기서 모두를 쏴 죽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혜란 아줌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아줌마, 잊었어? 당신 죄 없는 아저씨 쏴 죽였잖아 총 빼앗으려고”


순간 잠자코 있던 재욱씨가 무척이나 대담한 투로 말했다.


“뭐, 뭐라고? 그건 실수였어, 내가 넌 줄 알아? 이 살인자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실수였어!! 내가 살인자면 당신도 살인자야!!”


재욱씨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했다. 나와 은혜씨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숨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괜히 총을 든 사람을 자극했다가는 큰일이 나는 수가 있었기에.


“아니야! 그래, 네가 죽였어. 네가 할아버지랑 호영 학생을 죽였어. 그리고 네가 돈도 훔쳤어. 맞지? 처음부터 알아차려했어!! 이 나쁜 놈!!”


혜란 아줌마는 극도로 흥분했다. 


“쳇”


순간 재욱씨가 외투에 손을 넣었고, 혜란 아줌마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쏜 터라 총알은 그에게 정확이 날아갔다. 그는 즉사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혜란 아줌마는 벽에 기대어 천천히 앉았다. 총을 든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은혜씨는 그런 와중에 재욱씨의 품을 뒤졌다. 

과연 재욱씨는 무엇을 꺼내려던 것이었을까? 

은혜씨는 재욱씨의 외투 속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었다.





당신의 역할은 살인자입니다.

형사의 눈을 피해 사람들을 죽이세요.

죽인 사람의 돈은 당신의 몫이 됩니다.

(칼은 침대 밑에 있습니다.)





역시 예감은 정확했다. 혜란 아줌마도 쪽지를 읽고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한 가지 위험요소가 제거 되었다는 생각에 우리는 만족했다. 

아줌마는 그녀가 원하는 남은 칼 1자루를 찾으려고 일어나, 재욱씨의 방으로 향했다. 

나와 은혜씨 역시 그가 훔쳤을 거라고 예상되는 8억을 찾기 위해 아줌마를 따랐다. 

칼은 쪽지내용대로 침대 밑에 있었다. 

정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채로 침대 밑에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8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 머릿속에 ‘악당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숨이 막혀왔다. 이 두 여자 중에 하나, 아니 어쩌면 이 두 여자 모두가 악당, 정말 최악이라면 

내가 악당일지도 모른다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서로 얽혀 머리를 어지럽혔다.


“잠깐만요, 칼 하나는 현구 할아버지의 것, 그리고 하나는 재욱씨 것이잖아요.”


은혜씨가 입을 열었다.


“네”


“그럼 재욱씨가 할아버지의 칼을 빼앗아 죽인 걸까요?”


“굳이 칼을 빼앗을 필요 없이 자신의 칼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너무 많아요. 역할 자체도 각자 겹치는 역할이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도?”


“예?”


은혜씨의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 은혜씨가 악당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들킨 것 같아 혼자 놀랐다. 


“그나저나 돈은 어디 있는 걸까요?”


우리는 중앙복도로 향했다. 상자, 금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혜란 아줌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날 한 번 바라봤다. 아무래도 날 의심하는 듯 했다.


“내일이면 마지막인데 의문이 많네요.”


아, 드디어 내일이면 끝나는 건가? 아직 내 역할도 모르는데. 이러다가 역할 수행 못했다고 폭탄이 

터지거나 역할 못 했다고 다시 하면 어쩌지?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그쪽 방을 뒤져도 될까요?”


역시나 날 의심하고 있었다.


“뒤져보세요.”


의심을 받는 건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건 당당했기에 나는 허락했고, 그녀들은 내 방을 뒤졌다. 

하지만 역시나 돈은 나오지 않았다. 그 후 공평성을 위해 은혜씨의 방 그리고 혜란 아줌마의 방을 

찾았지만 돈은 나오지 않았다. 


“학생, 의심해서 미안해요. 뭐 다른 비밀공간에 숨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정말 미안하시면 뒤에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우리 방에서 좀 쉬면 안 될까요? 머리가 좀 아프네요.”


은혜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모두가 지쳤을만했다. 하루 사이에 엄청난 일을 겪었고, 

지금에서야 어찌 보면 평화를 찾았으니. 살인자 역할 재욱씨도 죽고, 무기도 모두 수거했다. 

사실 나로서는 힘으로는 저 두 여자를 압도 할 수 있기에. 딱히 위협적인 존재는 없었다. 

무기만 뺀다면.


“그럴까요?”


방으로 들어가서 세수를 좀 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문을 잠갔는지 

확인했다. 


“덜컥”


잠겨있다. 뭐든지 확실하고 안전한 게 좋은 거니까, 다시금 침대에 누웠고,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밤새 깨는 일없이 푹 잤다.







###12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간만에 제대로 잤다.


“무사하네요, 다들”


하루가 지나고 만는 그들은 모두 표정이 한층 밝아진 상태였다. 주변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거 치고는.


“이게 당연한 건데, 감사하게 되네요.”


“그럼 우리 돈부터 찾아볼까요?”


혜란 아줌마는 반가움보다는 8억이 중요한 거 같았다. 나와 그녀들은 각자 방을 맡아서 돈을 찾기로 했고

그것을 실시했다. 총 하나, 칼 두 자루를 얻고 나서 평화로워진 혜란 아줌마와 수상쩍기는 하지만 

위험한 냄새는 나지 않는 은혜씨.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역할은 모르지만 내가 그 악당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펑!!”


폭발소리가 났을 때 나는 할아버지의 방을 뒤지고 있던 중이었다. 망설임 없이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은혜씨나 혜란 아줌마 둘에게 문제가 생긴 듯했다.


“제길 안심 하는 게 아니었어.”


숨죽인 채 복도를 향했다. 은혜씨? 혜란 아줌마? 둘 중 하나는 악당이 분명했다. 사실 은혜씨가 

내게 접근할 때부터 수상했다. 하지만 제발 아니길 바랐다. 

순간 맞은편 방에서 숨죽인 채 복도를 응시하는 은혜씨가 보였다.


“에?”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혜란 아줌마의 폭탄이 터진 건가? 왜지?


“무슨 일이죠?”


“저도 잘…….”


“이야!!! 대단해요!!”


“으악!”


순간적으로 들려온 스피커 소리에 소리를 질렀다. 


“역할놀이!! 4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끝났습니다.”


스피커에서 환호하는 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복도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피로 얼룩진 철이 아저씨였다. 


“도대체 무슨”


“내 총을 돌려받았을 뿐인데, 아줌마 터져버렸어, 제길”


나와 은혜씨는 놀라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철이 아저씨는 우리와는 대조되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날 밤, 아줌마가 방에 찾아왔어, 총을 달라고 자신의 목숨이 걸렸다며 다짜고짜 들어오더니 강제로 빼앗았어. 위험해서 돌려받으려고 나도 힘을 썼어. 약간의 힘 싸움 중에 총이 발사되었지. 순간적으로 손을 놓다가 쓰러졌어. 그걸 보고 내가 총에 맞아 죽은 줄 안거야, 덕분에 일이 많이 꼬였어. 원치 않게 할아버지도 죽였고”


“예? 할아버지를?”


“할아버지 역할이 공개되었잖아, 시체처리. 내가 시체가 된 줄 알고 칼을 들고 내 방으로 온 거야, 너무 놀라서”


철이 아저씨는 침을 크게 한 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내가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철이 아저씨가 죽였다니.


“참 믿을 사람 없네요.” 


“여기서 누구 믿는 게 이상한 거야”


“그럼 죽은 척은 왜……?”


“죽어있는 편이 역할을 수행하기 편했거든 뭐”


“탐정은 그냥 살아있어도 된지 않나요?”


“내 역할은…….”


철이 아저씨가 품에 손을 넣어 쪽지를 꺼내려는 순간.


“잠깐만요!!!!!”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요?”


“이러시면 안 되죠. 아직 마지막 시험이 남았는데 동작 그만!!”


“시험이라면”


“저기 아저씨는 조용히 하시고, 젊은 남녀 두 분,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말해주세요.”


순간 빛이 스쳤다. 머리에서 그것이 떠올랐다.





당신의 역할은 탐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추리하세요.

역할놀이가 끝나면 시험 볼 겁니다.





역할놀이가 끝나면 시험 볼 겁니다. 그랬었나? 내 역할은 그거였었나? 


“뭐, 둘이 잘 붙어다니 던데 둘 중 하나가 무조건 죽는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둘 다 죽을 수도 있고, 둘 다 살 수도 있고. 그냥 제가 질문하면 동시에 대답해주세요.”


“네”


“네”


“뭐 죽은 사람들은 역할이 공개가 되었으니, 강현구 씨의 역할은?”


“시체처리반”


“유태수 학생의 역할은?”


“형사”


“김재욱씨의 역할은?”


“살인자”


“이호영씨의 역할은?”


“금고지기”


“문혜란씨의 역할은?”


혜란 아줌마의 역할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남을 해하려 하지는 않지만 

무기는 필요하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으니 총을 달라고 할 정도. 

게다가 무기의 종류별 개수까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무기수집”


“무기를 모으는 역할”


“뭐, 정확한 역할 이름까지 맞추라고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만, 뭐 두 분다 맞은 걸로 해드리죠. 그럼 그 다음 윤형철 씨의 역할은?”


“잠깐만요, 윤형철씨가 누구죠?”


은혜씨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당신들이 철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요. 저기 저 사람”


“아, 예”


은혜씨가 멋쩍어했다. 사실 은혜씨가 질문하는 순간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철이 아저씨의 역할은 공개가 되었다. 탐정이라고. 하지만 내 추리가 맞는다면.


“다시 갈게요. 윤형철씨의 역할은?”










“도둑”


나와 은혜씨는 대답을 하고 서로 바라봤다. 나는 은혜씨를 보며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처음부터 나는 중앙복도 금고에 있는 8억이라는 돈과 관련된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돈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돈을 훔치는 직업은 도둑. 

그리고 철이 아저씨가 본인 입으로 방금 전에 말했다. 


“죽어있는 편이 역할을 수행하기 편했거든”


그렇다. 철이 아저씨가 탐정이라면 굳이 죽은 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도둑이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런 가정에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 

그날 철이 아저씨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날 밤, 그날 그 탐정이라고 적힌 쪽지는 무엇이었을까? 

난 그걸 간파했다. 

나를 속이기 위한 은혜씨의 트릭. 

그날 분명히 은혜씨는 나를 속이기 위해 철이 아저씨의 역할 쪽지가 아닌 

자신의 역할 쪽지를 내게 건넸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너무 많아요. 역할 자체도 각자 겹치는 역할이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도?”


역할이 겹친다고? 나는 그것을 캐치했다. 

김은혜, 이 수상스러운 것.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장 역할놀이를 못하신 분은 역할놀이를 다시하게 됩니다.





규칙. 

서로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경우 경쟁할 걸 대비해 나를 속이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내 역할이 탐정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된다. 

내 추리로 그녀는 아마 내가 잃어버린 쪽지를 주었거나 훔쳤을 것이다.

그날, 역할놀이가 시작된 그날, 내가 쪽지가 없는 걸 확인하고, 방으로 가서 쪽지를 찾으려던 그날, 

방에서 쪽지가 나오지 않아 한탄하며 방에 있을 때.


“똑똑, 나와 보세요, 모두 모였어요.”


쪽지를 찾으려 방을 뒤적이는데 은혜 씨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었다. 

이때를 기억해 알아채냈다.





‘내 방은 어떻게 알았을까?’





첫날, 내가 방에서 들어는 것도 나오는 것도 안 보고 내 방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건 내 방에 들렀다는 거 아닐까? 


[위험을 감지한 나는 일단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고리를 돌렸다. 별 힘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문고리가 맥없이 돌아갔다. 예상 밖이었다.]






“대단들 하네.”


철이 아저씨가 품에서 꺼내려던 쪽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당신의 역할은 도둑입니다. 

금고에 있는 8억을 자신의 방으로 옮겨주세요.

도둑인 걸 들키면 안 됩니다.





“은혜씨 대단하시네요.”


“당신이라면 추리해 낼 줄 알았어요. 정말 멋져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보니 역겨웠다.


“와우, 이제 두 사람만 남았네요.”


“김은혜씨의 역할은?”


“탐정”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굳었다.


“탐정은 당신 역할이잖아요. 제 역할 몰랐던 거예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말도 표정도 모두 굳은 채 그녀가 꺼내 보여준 쪽지를 바라봤다.





당신의 역할은 흉내쟁이입니다.

아무나 한 사람 고르면 그 사람의 역할을 알려드릴 겁니다.

그 사람의 역할을 따라 해주세요.





“8억을 완벽히 훔친 윤형철씨와, 탐정을 완벽하게 흉내 낸 김은혜씨는 합격이네요, 근데 아깝네요. 하나를 틀리시다니 사실 맞춘거나 다름없지만”


스피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정말 대단하시네요, 은혜씨, 자신을 위해 남도 속이고”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전 속인 적 없는데?”


“끝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시 한 번 역할놀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가 갈리고 속이 뒤집어 질 거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래, 이곳에서 누군가를 신뢰한 게 잘못이었다.


“전 정말 속인 적 없어요.”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윤형철씨와 김은혜씨는 이제 나가시는 거네요. 여기 있었던 일들 밖에 나가서 입도 뻥긋하지 말아 주세요, 아시겠죠? 하하하”


스피커의 말에 철이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잠깐 한 가지 꼭 해야 될 게 있다.”


철이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총을 들어 카메라를 향해 쐈다.


“탕!!”


“순간 쫄았네요. 하하하”


스피커가 경박스럽게 웃었다. 철이 아저씨가 들고 있던 총을 내게 던졌다.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냈다.


“이제 두 발 남았을 거야. 쏘고 싶으면 쏴, 그거 내 총이니까 조심해서 쓰고”


“아저씨 총?”


“진짜 내 총 맞아, 공포탄 2발 실탄 4발. 지금은 실탄 2발 남았을 거고, 처음 2발 공포탄 인거 보고 알았어. 탄두를 찾았는데 없더라고. 2발 남은 거 그냥 쏴버려 저 놈한테”


“이봐”


나는 경박스럽게 웃는 놈을 향해 소리쳤다.


“왜요? 당신도 쏘려고요? 에잇 내가 먼저 쏴야지, 하하하”


푸쉬이이이이.


순간 방에 가스가 흘러들어왔다. 가스를 마시자, 기분이 편안해 지고 몸이 나른해졌다. 

졸음이 오기 전에 나는 중얼거렸다.


“아니, 이 총 다음 역할놀이에도 써줬으면 해서……,”


“알겠습니다. 최재희씨”


놈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린다.




















"아저씨 너무 하네요, 재희씨 역할이 적힌 쪽지를 훔치다니, 저까지 속을 뻔 했네요."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딱 봐도 똑똑하게 생긴 애가 탐정인데 걸릴 거 같아서, 뭐 저 정도 녀석이면 살아남을 거야"










##14



재희와 상민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재희의 얼굴이 굳었다.


“오랜만이네, 최재희 군. 역시나 살아남았나보네”


윤 형사가 말했다.


“네, 덕분에요. 당신 방법을 써서 살았으니까, 아저씨는 여전하시네요. 아, 그리고 총은 잘 썼어요.”


“서로 아는 사이에요? 벌써?”


재희와 윤 형사의 귀에는 상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뜻밖의 재회. 

아니, 예견되었던 재회.


“아무래도 조무래기 박 형사보다는 내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왔어”


윤 형사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재희와 상민에게 다가갔다.



ㅡㅡㅡㅡ

출처 : 패랭이꽃님(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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