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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기지 살인사건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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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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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따르르릉..."

 

내가 이 부대에 온지 1년이 되었지만 내 숙소 개인 전화가 울린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도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연락은 내 휴대폰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새벽 4시......


오랜만에 듣는 낯선 벨소리에 나는 벌떡 깨어났다.

 


"네?"

 


"통신보안, 헌병대 병장 이ㅇㅇ입니다."

 


"헌병대? 헌병대에서 이 새벽에 무슨 일이지?"

 


"박한수 대위님이십니까?"

 


"그래.."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

 


"급한 일이니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야...병장아...니가 그냥 오라 그러면 내가 가야 하냐?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지."

 


"지금 전화로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어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단 잠에 빠져있던 터라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이 자식이 말귀를 못알아 듣네. 그냥 이유를 말하라고."

 


"...............살인사건입니다."

 


"뭐? 살인사건?"

 

 

나는 옆으로 누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대위님 부대의 최태영 중사가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나는 수화기를 던지 듯 내려놓고 서둘러 복장을 챙겼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 부대에 오자마자 최중사와 친해졌다.


그의 거침없는 유머와 넉살은 매번 규칙과 복종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군인인 나에게 마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나에겐 최중사와 같은 능력이 없다.


내 성격만큼이나 늘 나의 삶은 메마르고, 딱딱했다.


그런 나에게 최중사의 언행은 마치 인생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만난 지 한 달도 안되어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할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온화한 성격임에도 늘 책임이 앞서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더 강직하고 우직하게 그 일을 수행했다.


그 때문인지 최중사는 상관들 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 그가 지금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헌병대에 도착한 나는 바로 최중사를 찾았다.


유치장에 수갑을 차고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최중사가 눈에 들어왔다.


군수사관이 나의 출현을 보자 먼저 말을 걸었다.

 

"동거하던 여자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뭐라구요?"

 

"이건 관할 경찰서에서 1차 조사를 마치고 저희 쪽으로 보낸 파일입니다."

 

군 수사관은 두툼한 파일철을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군 검찰로 송환되기 전에 한 번 보시죠. 그리고 검찰로 송환되면 저 친구와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겁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지금 얘기를 나누시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파일을 급히 열어봤다.


수 많은 조서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끔찍한 사건현장 사진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본 군 수사관은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살해 도구는 K5 권총입니다.


여자 친구의 멱살을 쥔 채 권총으로 무려 십여발을 얼굴에 대고 쏜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권총의 총알은 몸에 박히는데 워낙 근접 사격이라 총알이 모두 머리를 뚫고 나갔습니다."

 


나는 사체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토악질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 막았다.


사체는 반듯이 누운 상태였고,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뒤통수 부분이 총탄의 파열효과로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고, 여자의 머리는 으깨어 세워놓은 삶은 달걀처럼


사방에 파편을 뿌린 채 누워 있었다.

 


"최..최중사가 죽인게 맞습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현재로서 그렇다니요?"

 

"총소리를 들은 최중사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 최중사가 권총을 들고, 사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고 하더군요."

 

"최중사가 자기가 죽였다고 하던가요?"

 

"본인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로는 외부 침입흔적이 전혀없고, 그 방안에 있는 족적은 최중사와 여자 친구 뿐이었다고 합니다.


곧 감식 결과가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제 3자의 소행으로는 보기 힘듭니다."

 

"권총은....권총은 어떻게 된 겁니까? 평소 소지하지도 않는데.."

 

"권총의 일련번호로 보아 대위님 부대 무기고에서 탈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파일을 들여다 보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최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까이 철창 너머의 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최중사....니가 그랬어?"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최태영!!  니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알아?"

 

여전히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야 임마..말을 해봐!!  죽였든 안 죽였든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감에도 최중사의 대답이 없자 군 수사관이  중간에서 말을 끊었다.

 

"지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극도로 혼란스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사가 계속 진행되면 본인도 입을 열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여기까지 하시죠."

 

나는 철창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최중사를 향한 시선을 계속 유지했다.


이대로 군 검찰로 넘겨져 재판까지 간다면 범행의 잔혹성으로 보아 분명히 사형선고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조금 전에 사단장까지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아침이면 국방장관까지 보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셔서 부대 재정비에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당분간 이리 저리 불려 다니느라 고생 좀 하실 겁니다."

 


나는 군 수사관의 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친구를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태영...니가 그런거 아니지? 내가 알아보마.."

 

나는 나즈막한 숨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넨 후 조용히 뒤돌아 섰다.


그런데 그가 반응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자세임에도 최중사는 나의 돌아서는 발걸음을 느꼈는지 뭐라고 혼자 속삭였다.

 

"애기...울음"

 

나는 돌아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뭐라고?"

 

군 수사관도 그의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듯 내 얼굴을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다시 한 번 최중사가 죽어가는 숨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기....애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애기 울음소리?"

 

나와 군 수사관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확인 한 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신음소리처럼 들리긴 했지만 최중사의 말은 모두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기괴한 최중사의 말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수사관과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수사관과 나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채, 이 상황에 대한 결론을 내주길 서로에게 바라고 있었다. 

 

부대로 돌아온 나는 우선적으로 무엇부터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행정실에서 얼굴을 감싸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당직 근무자들도 나의 표정을 한 두 번 관찰하더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침 6시가 넘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행정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당직근무자가 전화를 받은 후 곧 바로 나를 불렀다.

 

수화기에 대고 하는 근무자의 경례소리로 보아 대대장이 분명했다.

 


"중대장님...대대장님 전화입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충성! 통신보안, 대위 박한수입니다."

 


-지금 곧 사단본부로 와라. 사단장님 호출이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복장을 정비하고 부대 차량을 이용해 곧 바로 사단장실로 행했다.

 

 

사단본부에 도착하여 사단장실로 향하는 복도가 유난히 길어보였다.

 

대대장과 나의 뚜벅거리는 걸음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사단장실의 집무실 문을 열고 우리는 들어섰다.

 

골초로 소문나 있는 사단장은 역시나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대대장과 나는 사단장에게 예를 갖추고 열중쉬어 자세로 사단장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불 붙은 담배를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엄지로 간신히 머리를 받치고 있는 사단장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책상에는 관할 경찰서와 헌병대에서 보낸 1차 조사자료가 놓여 있는 듯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페이지를 넘기며 자료를 훑어보던 사단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조사자료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사단 통합 훈련 때문에 한창 바빠야 할 시기에 이게 뭔가?"

 

"면목이 없습니다."

 

대대장은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사단장의 얼굴을 살펴 볼 여유도 없어보이는 듯했다.


고개를 떨군 채 사단장의 물음에만 대답을 할 뿐이었다.


"사병들 사건보다 간부들 사건이 크다는 것 알고 있나?"

 


"네."

 


"총기 탈취에...게다가 이건 총기를 이용한 민간인 살해사건이야. 나 뿐만 아니라 군단장님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

 

 

사단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고 시선을 우리에게 향한 채 말을 이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최중사와 친했나?"

 


"박한수 대위입니다."

 


대대장이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대답을 했다.
 

 

"그럼 대대장은 지금 돌아가서 부대 정비에 신경쓰고, 부대원들이 절대로 외부사람과 일체 접촉하지 않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예를 갖추고 곧 바로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사단장은 두 손을 깍지끼고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최중사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나?"

 


"아주 성실하고 근면하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여자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았다거나 그런 거 눈치 못챘나?"

 


"여러 차례에 걸쳐 번 최중사 집에서 밥을 얻어 먹었었는데, 그런 것은 눈치챌 수가 없었습니다.

곧 결혼할 거라며 자랑하기도 하였고, 제 앞에서 애정표현을 할 정도로 무척 사랑하는 사이 같았습니다.

3일 전에도 그 집에서 저녁을 얻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당최 알 수가 없군. 경찰서나 헌병대 조사에서도 살해동기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사단장님, 최중사 사건 이대로 군 검찰로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본인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분명히 다른 내막이 있을 겁니다."

 


"그 걸 어떻게 확신하나?"

 

나는 입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제 직감이 확실합니다. 그 친구는 사람을 죽일 만큼 악인이 아닙니다."

 

나의 단호하고 분명한 대답 소리에 사단장은 잠시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자네, 공수여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더군."

 

"네, 그렇습니다."

 

"주특기가 정찰이었지?"

 

나는 잠시 나의 전력을 사단장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 작은 아버지가 3년 전 퇴역한 군 사령관 아닌가?

예비역 사성 장군의 친인척이 군에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래서 말인데....이 사건 자네가 한 번 조사해 보겠나?"

 

 

사단장은 이유모를 차가운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네? 제가 말입니까? 헌병대도 있고, 관할 경찰서도 있는데..."

 

 

"난 다른 각도로 이 사건을 알고 싶어.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 줄테니까 별도로 이 사건을 조사해 보게.

자네도 최중사가 이런 끔찍한 사고를 저지를 친구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잠시 대답을 유보했다.

 

 

"어떤가...박대위?"

 


솔직히 나도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최중사가 이대로 법정에 선다면 그는 분명히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부대로 돌아온 나는 우선 최중사가 부대에서 총기를 탈취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총기 탈취가 일어난 시점에 당직근무를 섰던 병사를 불러들였다.


"총기 점검을 하고 오겠다며.. 무기고로 열쇠를 들고 나갔습니다."


 자신이 마치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 마냥 지레 겁을 집어먹은 이틀전 당직 병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특이한 점은 없었나? 화가 나 있었다든가 아니면 제 정신이 아닌것 같았다거나..."


"지나치게 말 수가 적은 것 빼고는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부대 밖으로 나섰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당직 병사로부터 별다른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나는 사건현장을 파헤쳐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곧바로 사단에 요청하여 첨단장비인 음파탐지기를 확보하였고, 1명의 장비관리병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나섰다.

 

마을 외곽의 허름한 단독주택이 띄엄띄엄 있는 곳에 최중사는 살고 있었다.

 

족히 50년은 넘게 보이는 허름한 기와집이었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잘 단장이 되어 있었다.

 

사건 현장에는 이미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었고, 몇 차례 조사가 끝났는지 현장에는 경찰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집 안에 들어서자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사체만 치워졌을 뿐 현장은 그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닥과 벽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특히 벽에는 누렇게 변색된 작은 유기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살해된 최중사 여자 친구 머리에서 튀어나온 살점이나 뼛조각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쏟아져 나왔다.

 

밖으로 급히 뛰쳐 나온 나는 집 앞 화단에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그것이 3일 전에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와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파편이라니.......


나는 헛구역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에 동행한 장비병인 김석우 병장이 나를 보고 괜찮냐는 듯 묻고는 히죽거리는 웃음으로 비아냥거렸다.

 

 

"중대장님, 비위도 참 약하십니다."

 


"닥쳐 임마!!"

 


내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180 이 넘는 우람한 체구의 김병장은 계속 손으로 입을 가리며 히죽거렸다.

 

나는 사건 현장에서 나와 최중사의 주변 이웃들을 조사했다.

 

옆집, 뒷집 모두 조사해 봤지만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 밤, 주변 이웃들은 아무도 싸움소리나 듣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날 만한 어떠한 징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궁금해 했던 가장 큰 의문점인 아기 목소리를 찾는데 실패했다.

 

주변 이웃들은 모두 연로한 노인들이거나, 자식들이 최소 중학생 이상인 중년의 부부들만이 살고 있었다.

 

최근까지 아기가 집에 있었거나, 현재 아기를 키우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낮부터 구름이 몰려오는 듯 싶더니 저녁이 되자 이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변 조사를 마치고 사건 현장 집의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던 김병장과 나는 빨리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장님. 왠지 으스스합니다. 오늘은 그냥 부대로 복귀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비가 장난 아니게 내리는데 이거 차 몰고 부대까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천천히 몰고 가면 됩니다."

 

"그래 가자"

 

우리는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힘껏 달렸다.

 

20여 미터를 달렸을 뿐인데 속옷까지 빗물에 젖은 느낌이었다.

 

"와...이거 비가 장난 아닙니다. 앞이 하나도 안보입니다."

 

시동을 켜던 김병장이 얼굴을 앞유리에 들이대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늘을 주시하며 말을 했다.

 

차량의 와이퍼가 빠른 속도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바가지로 퍼붓는 듯한 빗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차량은 움직일 수가 없었고, 시동만 켜 놓은 채 우리는 쏟아지는 장대비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젠장....이거 걸어가는게 더 빠를지 모르겠군."

 

"중대장님, 그런데 음파탐지기는 왜 요청하신 겁니까?"

 

"너 말 잘했다. 그 기계 한 번 작동시켜봐."

 

김병장은 뒷좌석에 놓인 사과박스 크기의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나는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예전 공수여단에서 근무할 때 한 두번 본 것 빼고는 전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 이거 어떻게 사용법을 알고 있냐?"

 


나의 질문에 김병장은 기계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작동시키더니 헤드폰을 머리에 얹고 말을 이었다.

 

"제가 한미 연합사 훈련에 파견 나가서 배워 온 겁니다. 이 장비는 사단에 없어서 군단에 요청한 걸로 들었습니다.


이게 말입니다. 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사람 소리인지 기계소리인지 구별을 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예를 들어 건물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 누가 숨어있어도 찾아낸다는 것 아닙니까?


미군 애들은 장비 하나는 정말 끝내줍니다."

 

"나도 다 알아 임마."

 

"그런데 진짜로 왜 이걸 요청하신 겁니까?"

 

"필요할 일이 있어."

 

어둠 속에 파묻힌데다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장대비가 사정없이 쏟아지자 슬슬 나는 부대 복귀가 걱정되었다.

 

게다가 사건 현장 옆에서 차를 세우고 있으니 이젠 나까지 으스스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김병장에게 출발할 것을 명령하려는 순간 갑자기 김병장이 차량의 시동을 꺼 버렸다.

 

"김석우, 너 왜 시동 꺼?"

 

그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한 번 빤히 쳐다보더니 헤드폰을 낀 머리를 음파탐지기의


모니터에 가까이 하며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야, 김병장!!"

 

나의 부름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세우며, 나에게 조용히 할 것을 부탁했다.

 

"중대장님............"

 

그는 가는 숨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수신기를 이리저리 돌려 방향을 맞추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무..무슨 소리?"

 

내 귀에는 차 위로 쏟아지는 장대비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애기 울음 소리......."

 

"뭐야? 애기 울음 소리?"

 


나는 순간 최중사의 말이 떠오르면서 온 몸에 조여드는 긴장감과 공포에 순간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지 잊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김병장은 가만히 수그린 자세를 유지하며 연신 수신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것이라도 찾느냥 김병장은 천진스런 모습으로 파괴적인 빗소리에서 정체 모를 어떤 소리를 골라내고 있었다.

 


"오케이!!  찾았다!!"

 


김병장은 자신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싱글벙글한 모습을 한 채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는 나의 어두운 표정을 살피고는 안테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씨발 놀래라!!!"

 


김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나의 존재도 무시한 채 욕설을 내뱉았다.


접시형 안테나가 사건현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김병장,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찾아내......"

 

내 말에 김병장은 부릅 뜬 눈을 한 번 깜박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두 눈을 부릅 뜬 김병장의 표정은 그가 겁을 집어 먹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차량 내의 우의와 우산을 꺼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김병장은 천천히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발을 옮겼다.


진원지가 서서히 가까와 올 수록  김병장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정체 모를 그 소리는 김병장은 사건 현장의 낮은 대문으로 유도하였다.


낮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나는 심장박동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그만 마당 가운데로 들어서자 김병장이 감자기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의 그 집을 조용히 응시했다.

 

"왜 그래?"

 

나의 물음에 김병장은 조용히 그리고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바로... 앞....앞에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손전등을 전방을 향해 비추었다.


작은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이 자식...고양이 울음소리를 착각한 거 아냐?"

 

그러자 김병장은 전방을 주시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답을 했다.

 

"고양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코 앞입니다."

 

나는 계속하여 전방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소리가 끊겼습니다..."

 

헤드폰을 쓰고 있던 김병장이 멍하니 한마디 내뱉았다.


나는 잠시 동안 손전등이 비추어진 툇마루 주변을 멍하니 응시했다.


빗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중대장님, 못 들으셨습니까? 상당히 크게 들리던데..."

 

"헤드폰을 내가 쓴 것도 아닌데 어떻게 들어?

 

"군바리 새끼들...."

 

"뭐? 뭐라구?"

 

뜬금없는 독백과 함께 갑자기 김병장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음을 느낀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우의를 뒤집어 쓴 채 그는 나를 보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너...지금 뭐라고 그랬지?"


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고 손전등을 그의 얼굴에 비추었다.


그런데 손전등 빛으로 확인된 그의 표정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지금 장난친거냐?"

 

"아닙니다. 제가 왜 장난을 칩니까?"

 

그러나 여전히 낮은 음성과 그의 비웃는 듯한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너 왜 웃고 있지?"

 

이 말에 김병장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 경직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윽박지르듯 대답하였다.

 


"그럼!!!!!!!!!!  이런 표정으로 있습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과 발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있나!!!"

 

공수부대 출신인 나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내가 생각해도 치명적이고 거칠었다.


그러나 이러지 않으면 그의 기이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김병장은 힘없이 고꾸라져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연발했다.


얼마나 나갈지 모르는 그 비싼 장비의 상태가 염려되었지만 다행히도 김병장은 그것을 꽉 움겨잡고 있었다.

 

"일어나 새꺄!! 감히 나한테 장난질을 해?"

 

나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끌고갔다.


나는 조수석에 그를 던지듯이 쳐박아 놓고 운전대를 잡았다.


연신 몇 번의 기침을 하던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죄..죄송합니다. 중대장님...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이 새끼... 한 번만 그런 장난치면 머리통에 총구멍을 내 주겠다. 알았어?'

 

이렇게 말은 했지만 왠지 장난같지가 않은 김병장의 행동은 나를 서서히 알 수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빗속을 내달렸다.

 

 

그 날 밤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조사를 시작하면 정리될 것만 같았던 사건이 자꾸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머리가 복잡했다.


게다가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마음에 걸려 더더욱 나는 잠 못드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힘겹게 밤을 보낸 나는 일어나자 마자 급한 연락을 받았다.

 

최중사가 군 검찰로 이송된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해 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이송되다니...


헌병대는 사건조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사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미 이송명령이 떨어진 후라 사단장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사단장 끗발도 벌거 아니구만."

 

나는 절로 탄식이 나왔지만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헌병대로 향하였다.


내가 도착하자 벌써 최중사는 이송준비가 완료되어 검찰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내가 급히 달려오자 온 몸을 포박당한 채 말없이 차안으로 들어서던 최중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중대장님.."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불렀다.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알 수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말하는 미소짓는 저 표정, 저게 내가 아는, 살인을 저질러 죄책감의 시달리던 최중사란 말인가?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머리속이 믹서기로 갈려진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는 기분이었다.


문득 지금 저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제서야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다시 보자. 행운을 빈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금부터 나는 최중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서 들은 얘기라고는 단 세 가지 뿐이었다.


애기울음 소리를 들었다는 것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


어쩌면 지금 나는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무엇을 더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알리바이, 살해도구, 족적, 지문, 그리고 총소리를 들은 주변 이웃들, 현장을 목격한 경찰들........


이미 모든 증거들은 최중사가 확실한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이것을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나 최중사는 내가 아는 선량한 모습으로, 깊은 내면 속에 잔인한 살인자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의 겉모습에 속은 것은 아닐까?

 

어제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은 정말 장난이었을까?


내 머릿속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답답한 머리를 식히고자 모자를 손으로 벗어 쥐었다.


오른손에 쥐어든 모자가 종이장처럼 구겨지고 있음을 모른 채 나는 천천히 뒤돌아서 걸었다.


멍하니 넋나간 표정으로 뒤돌아 걷는 나의 모습을 본 헌병대원들이 연신 나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나는 부대에 돌아와서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행정실을 지켰다.

 

'애기 울음소리.....툇마루 근처에서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김병장이 기이한 행동을 했다.'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하겠는데, 아니 무엇인가를 지금해야 하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 때 불현듯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툇마루...거기를 파보자.'

 

나는 서둘러 사단에 굴삭장비와 차량을 요청했다.


그런데 행정실을 나가려는 순간 나는 갑자기 CP의 간부용 무기고가 떠올랐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권총을 챙겨야 할 것 같다는 본능적인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기고에서 권총 한자루를 꺼내고, 실탄이 삽입된 탄창을 권총에 끼워 넣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장전은 하지 않고 조정관을 안전에 위치하였다.


밸트 뒷쪽에 깊숙히 총을 숨긴 나는 부대 밖으로 나와 사단 본부에서 내려오는 지원차량을 기다렸다.


본부 차량이 눈 앞에 나타났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지원차량을 바라보고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전병이 김석우 병장인 것이다.

 

"너, 뭐야? 난 운전병을 요청했는데...."


김병장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죄송한 것도 있고 해서 자원했습니다."

 

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사건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고 도는 다리를 하나 지나야 한다.


낙석이나 산짐승 같은 위험 요소 때문에 지나치게 가파른 산악지형에는 강물을 끼고 도는 다리를 만들어 지나도록 한다.

 

다리 위를 내 달리는 차량 내에서 몇 분여 동안 아무 말없이 우리 둘은 전방을 주시한 채 앉아 있었다.

 

"굴삭 차량은 언제 오지?"

 

"곧 뒤따라 올 겁니다."

 

다시 침묵 속에 우리는 빠져 들었다.

 

이 침묵을 다시 깬 것은 김병장이었다.

 

"최태영 중사는 어떻게 애기울음 소리를 들은 겁니까?"


"몰라 임마. 그 얘기 그만해."

 

전방을 주시한 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앉아 있었다.

 

"난 하고 싶은데.....왜 안하지?"

 

그의 말이 존칭이 아닌 짧은 어구로 끝나는 것을 눈치 챈 나는 고개를 돌려 김병장을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김병장이 앞을 보지 않고 나를 보며 웃는 모습으로 운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온 몸이 싸늘해지는 한기가 순간적으로 몰려왔다.


최중사 얘기를 저 놈이 어떻게 아는 것일까?

 

"너...이 개새끼....최중사가 얘기 어떻게 알았어?"

 

이에 김병장은 전방을 주시하는 것을 포기한 채, 잇몸이 모두 드러날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 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다시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의 엽기적인 표정을 보는 순간 나에겐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너...이 씨발새끼!!!"

 

이 말과 동시에 이미 내 오른손은 밸트 뒷쪽에 깊이 숨어있는 권총을 찾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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