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구미 우산남 사건이란
메구미가 왠 남성과 함께 비 오는데 같이 우산을 다정히 쓰고 있는 모습을 파파라치에게 찍혀서 사진 유출된 사건을 말함
(따로 따로 우산을 쓴게 아니라 한 우산이라 상상력 부풀리기에 좋은 장면)
DVD,앨범에 이어..메이저 데뷔 싱글 발매할 중요한 타임에 연애에 엄격한 아이돌이 이런 장면을 찍혔으니
당연히 더쿠들에게 온갖 질타가 쏟아졌지
(아직 제대로 된 메이저 데뷔도 안했는데 팬도 별로 없을텐데 뭔 문제냐?싶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하로덬들이야 기존 하로타들이 돌고도는 시스템에,DD들이 많은 편이고..이런 스캔들은 그룹 초기 신규 팬들 확보에 치명적인 일이라서..)
문제는 아직 정식적인 데뷔(일본은 싱글 데뷔를 메이저 첫싱글로 굉장히 중요하게 여김)전이라
이런 더쿠들의 질타가 더 조심해야지 하는 반 질타..반 염려의 소리였는데
(메구미는 큐트의 푸쉬라인인 핵심 맴버 였으니..우산남 사건때 쓴소리를 많이 했지만..이게 애와 증이 섞인 질타 였슴)
아~~글쎄 우산남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더쿠들은 여전히 애증이 섞인 충고질 하고 있었지)
덜컥 메구미가 큐트에서 탈퇴한다고 하는거야
하로공지로 메구미 탈퇴 소식이 떳을때..한,일 하로 더쿠들 전부 맨붕이 왔지
옆집이나 하로도 일본 아이돌 연애 문제로 기획사들이 처벌한다고 해봐야 사실 비인기맴버나 엄격하지..푸쉬라인,인기맴버들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메구미의 탈퇴는 짐작도 못한 사건이었어
다들 하로에서 적당히 언플하고,,메구미는 걱정시켜 미안하다.앞으로 조심하겠다..정도의 발표가 있을줄 알았는데 바로 탈퇴라니
메구미 탈퇴는 우산남 사건이 일어난지 10여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급작스럽게 일어났고
하로공지와 메구미의 자필 탈퇴 선언문에선 학업 이유로 탈퇴한다고 나왔어
아직도 메구미 탈퇴가 하로에서 주도 한건지?메구미 개인 의지인지? 명확하진 않아
하로에서 시켰다기엔 푸쉬,인기,에이스인 맴버인데 곧 바로 탈퇴 시키기엔 부담이 됐을거고
메구미 본인으로선 하로키즈로 몇년간 바닥에서 있다가 이제서야 정식 메이저 데뷔하고,데뷔싱글을 발매할 시점에 학업 탈퇴는 시기상 맞지 않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온갖 추측이 난무했고,각종 우와사가 쏟아졌지
어쨋든 이로서 큐트는 공식 메이저 싱글 데뷔 하기도 전에 에이스급인 메구미를 잃어버리면서
2006년1월 아리하나 칸나 영입으로 7인조에서 8인조로 된후 다시 8인조에서 2006년10월 무라키미 메구미 탈퇴로 7인조가 됐어
무라카미 메구미를 잘 모르는 덬들도 있을텐데 오랜 하로덬들이 키즈 에이스라 칭하던 무라카미 메구미를 소개하자면
92년생으로 하로키즈들중 언니조와 동생조를 잇는 중간 나이대였고
댄스 실력은 하로키즈들중 단연 최고였어..토크력도 엄청 뛰어났고..비쥬얼과 가창력도 키즈들중 평균이상이었지
2002년 하로키즈 오디션이후 본격적인 키즈들의 활동을 위한 유닛이 2003년 만들어 졌는데
그게 ZYX라는 유닛과 아아(다나카 레이나,스즈키 아이리,나츠야키 미야비)
ZYX가 먼저 본격적인 키즈유닛으로 만들어 졌는데 키즈 언니조들은 대부분 들어갔지
ZYX 맴버들은(야구치마리,우메다 에리카,야지마 마이미,무라카미 메구미,시미즈 사키,츠구나가 모모코)
ZYX의 활동시 리더는 야구치 였지만..센터,에이스는 메구미가 맡았어
가장 먼저 제대로 선보인 키즈유닛..그것도 언니조에서 센터,에이스룰을 메구미가 맡으면서 메구미가 키즈 전체 에이스라는 평가가 일부 더쿠들에게 나왔지
2005년에 또다른 키즈들이 참가한 유닛이 만들어 졌는데 섹시오토나잔(후지모토 미키,무라카미 메구미,나츠야키 미야비) 여기에도 메구미가 참가했어
하로키즈들이 참가한 본격적인 유닛이라면
직스,아아,섹시오토나잔이 있는데..무라카미 메구미는 ZYX와 섹시오토나잔 2곳이나 중심맴버로 들어가 활동했지
미야비도 아아와 섹시오토나잔 2곳에 들었지만..좀 곁가지 역활이었는데..메구미는 직스에선 센터,에이스롤을 맡았으니
키즈 유닛 참가와 룰역활을 보면 메구미에게 키즈 에이스라는 타이틀이 붙을만 했지
큐트에서 메구미 역활은
큐트 결성 초기엔 아이리와 투탑..좀 지나선 아이리,마이미와 쓰리탑인 푸쉬 맴버였고
자타공인 키즈전체 춤실력 NO.1이라 불릴 정도로 큐트에서 댄스 중심이었고(퍼포먼스로 유명한 큐트지만 메구미가 있었다면 큐트 퍼포먼스는 역대급 평가를 받았을지도)
큐트 3탑으로 파트 분배를 받았고(가창력은 아이리보단 아래 마이미보단 위 정도 평가)
무었보다 토크력이 뛰어나 큐트 인디즈 시절 사회를 도 맡아 했어
리더는 마이미였지만..토크력이 메구미가 워낙 좋다보니(메구미 토크력은 진행솜씨도 훌륭했지만,발음상도 완벽했어..알다시피 큐트 맴버들 발음들이 대부분.......)
큐트가 메이저 데뷔해 방송에 나올때 토크력이 약점으로 지적 받았는데..메구미가 있었다면 이 약점을 가릴수 있었을텐데..
한가지 약간 아쉬운게 외모가 호불호가 좀 있다보니 인기가 약간 정체된감이 있었어
아이리와 쌍벽..오히려 더 앞설정도의 키즈시절 활약상과 명성이었는데
아이리가 정변이 되면서 인기에 대적이 되지 않았고..마이미에게도 거의 인기가 따라 잡혀가고 있었지
대충 이정도 메구미에 대한걸 끝 마치고
메구미 탈퇴로 큐트 메이저 데뷔싱글은 좀 늦쳐진것 같아.
2006년 5월부터 8월까지 인디 4장의싱글 낼 정도로 매달 인디싱글 쏟아냈고,곧바로 다음달인 9월에 메이저 DVD발매..다음달인 10월에 첫 앨범 발매
메이저 첫 싱글 발매는 이 추세라면 11월이나?12월..늦어도 다음해인 2007년 1월초엔 발매가 될것으로 여겨졌는데
2007년 2월21일 첫 메이저 싱글이 나왔지
메구미 탈퇴의 영향이 있었을까?
개인적으론 있었다고 여겨..팀의 핵심맴버가 갑자기 빠졌는데 체제 변화가 없을리가.......
메구미의 갑작스런 탈퇴로 어수선한 가운데 재 정비해 나온 큐트의 대망의 메이저 첫 싱글인 사쿠라 치라리
이곡이 처음 선보인게 2007년1월에 열린 하로 겨울 합동 콘서트장에서 였는데
하로덬들 사이엔 좀 충격을 받은 덬들이 많았어
곡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 완전 아이리 원탑의 심한 쏠림곡이었거든
모닝구 무스메나 베리즈코보 하로유닛들..푸쉬,비푸쉬 라인은 분명했지만..2탑,3탑,4탑 수준이었지 이만한 원탑 쏠림은 좀처럼 없는 형편이었으니
더군다나 파트뿐만 아니라 안무에서 아이리 센터 수준이 아니라 아이리를 한 가운데 두고 나머지 맴버들이 빙빙 도는 들러리 수준을 보였으니
아무리 큐트가 아이리 중심에 아이리 인기가 높다지만..이건 너무 한거 아닌가?하는 의견들 많이 나왔지
큐트가 아이리 원탑 체제를 내세운건 메구미 탈퇴로 인한거다
원래 신인그룹이 눈에 뛸려면 다 눈에 들어올수 없으니 일단 에이스 센터를 돋 보이게 하는게 맞다
뭐~~국내나 일본이나 하로커뮤 사이엔 설왕설래 오갔지만
2007년 2월21일 발매된 큐트의 첫 싱글 사쿠라 치라리는 23,827장의 초동 판매량으로 오리콘 주간차트 5위를 기록했는데
이 판매량은 3년 동안 활동한 베리즈코보의 역대 초동 판매량을 다 넘어서는 판매량에 베리즈코보의 오리콘 최고 순위가 7위였는걸 감안하면
일단은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평을 받았지
(그전까지 팀의 핵심맴버였던 메구미 탈퇴로 인한 악재도 있었고)
2번째 싱글은 사쿠라 치라리와 비슷한 판매량을 보였지만
3번째 싱글 도시아이의 순정이 초동 27,943(오리콘 3위) 총판 38,085장을 팔면서 하로내 판매량으론 대박을 쳤지
이 당시 베리즈코보가 총판 2만장남짓..모닝구 무스메도 4만장 정도
물론 이 판매량은 하로에서 일본레코드대상 시상식중 신인상을 노리고 푸쉬 노출도 많았고,이벤트도 당시엔 거의 하지 않는 하로에서 이벤트도 많이 벌인 결과로
나타난거지만..(총판이 높은건 이벤트 영향을 무시못하지만..초동이 2만3천에서 2만8천 가까이 오른걸 보면 곡 자체도 좋았어)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성공해 하로프로젝트 사상 처음으로 일본레코드대상 최우수 신인상을 큐트가 수상하게 됐지
이 당시엔 정말 큐트 기세가 하로내에선 대단했던 기억이 나네
최우수신인상에 홍백에도 출장(물론 모닝구에 곱사리 낀거지만)..매스컴 노출도 많았고
하로타들도 침체된 하로(당시 akb가 뜨기전이었지만..하로도 침체기로 그냥 일본 아이돌 시장 자체가 침체기였어)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는 평가였고
당시에도 어그로들은 항상 많아서 큐트가 모닝구를 넘니 마니로 어그로 끌기도 했는데
어그로들이 꼬일만큼 2007년의 큐트 기세가 그 만큼 있었다는게 되겠지
아이리 칭찬을 좀 해보자면
2007년 큐트는 아이리 원탑 체제였지
메구미 탈퇴가 원인이든? 아이리 인기가 넘나 폭발적이라 어쩔수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구미 탈퇴로 어수선한 가운데 데뷔싱글 성공시켰고..
최우수 신인상도 탓고
(이때는 사실 경쟁자가 거의 없었어 큐트 안티들조차 최우수 신인상은 딴지 못 걸어..일반적이라면 우파 로비력 타령하겠지만..경쟁자 운도 따라줬지..신인상 발표때 나도 생방송으로 본 기억이 나네..하로덬들 대부분 수상 예측을 했었지)
2007년 2월 메이저 데뷔 싱글 원탑에 큐트 첫 단독 콘서트 공연때 맴버중 유일하게 솔로 공연도 하면서(고토마키의 사요나라 러브송 불렀지)
초6학년으로 그룹의 에이스 원탑으로 부담감이 없을리도 없을텐데 성공적으로 치뤘고(아이리는 2007년 4월에 중1이 됐슴)
2007년 큐트의 성공적인 데뷔에 기여를 많이 했다고 봐
2007년 아이리에겐 또 큐트못지 않게 중요한 유닛 보노 데뷔가 있었지
케릭케릭체인지라는 애니를 TV도쿄에서 새로 만들면서 이 애니의 오프닝,엔딩송을 우파가 받게 됐는데
우파에선 아이리,미야비,모모코의 베리즈코보,큐트의 에이스 맴버들을 모아서 새로운 유닛 보노를 만들어 애니송을 담당하게 했지
베리즈,큐트의 에이스 맴버들만을 모은 유닛이라 보노는 하로팬들 사이에 큰 화제를 모았고
층쿠가 담당하지 않는 록 기반의 음악으로 하로팬들에게 음악성으로 많은 인정을 받았지
실제 팬심이지만 보노 음악 정말 좋았지
2008년 이후의 큐트 행보에 대해선 다음에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