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기계맛 이런거 못느낌
요즘 워낙 단문 위주인게 많아서 그런가
뭔가 의미있는 척 하면서 말을 끄는 게 약간 기계맛 같은건가 싶기도 하고
예제로 좀 웃겼던 거 가져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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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이 노래가 이런 노래였나
가장 많은 신청을 받은 곡은 따로 있었다.
곡명은 ‘한국 노래’.
팝도 좋은데 한국 노래도 한 번만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그 밑에 답글이 열한 개 달렸다.
ㄹㅇ 목소리 좋은 건 알겠는데 가사도 바로 알아듣고 싶음
↳ 저 영어영문인데 저도요
↳ 전공자의 배신
↳ 퇴근하고까지 영어 하고 싶진 않아요
준혁 선배가 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넌 한국 노래 안 해?”
“하는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 앞에서 한 번도 안 했네.”
우진 선배가 스틱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다 고개를 들었다.
“맞아.
얘 웃긴 게 평소에는 급식 메뉴 얘기하다가 마이크만 잡으면 갑자기 외국 가.”
“학식이요.”
“하여튼.”
계정에 올린 공연 영상은 두 개였다.
〈Nowhere to Be〉와 〈Half a Second〉.
맨 처음 불렀던 커버까지 팝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나는 준혁 선배의 기타 케이스를 가리켰다.
“지금 시간 되세요?”
“왜.”
“한 곡 찍죠.”
선배가 자기 옷부터 내려다봤다.
목이 조금 늘어난 회색 티셔츠였다.
“나 이거 입고?”
“기타만 나오게 해드릴게요.”
“얼굴을 빼겠다는 거야?”
“넣어드릴까요?”
“잠깐만.”
선배는 동아리방에 걸린 검은 셔츠를 집어 들었다.
고른 곡은 이적의 〈다행이다〉였다.
“오.”
준혁 선배가 기타를 꺼내며 말했다.
“이거 잘못하면 엄청 느끼해지는데.”
“선배가 장미만 안 물면 돼요.”
“난 기타 친다니까.”
큰 준비는 하지 않았다.
우진 선배가 휴대전화를 세웠고, 수아 선배가 창문을 닫았다.
창밖에서 들리던 농구공 소리가 뚝 줄었다.
준혁 선배가 전주를 쳤다.
두 마디쯤 듣다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빨리 가도 될 것 같아요.”
“빨리?”
“말하다가 자꾸 다음 말을 기다리는 느낌이라서요.”
선배가 다시 쳤다.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주가 먼저 감정을 다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짧은 전주면 충분했다.
“갑니다.”
우진 선배가 화면을 눌렀다.
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렸다.
마이크도, 이어폰도 없었다.
두 걸음 앞에 휴대전화 하나.
첫 소절을 불렀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았다.
평소 이야기하던 높이에서 조금만 음을 붙였다.
준혁 선배의 오른손이 가벼워졌다.
기타가 작아진 만큼 소리를 더 밀 필요도 없어졌다.
말끝에 붙은 받침을 서둘러 닫지 않았다.
모음을 길게 붙잡지도 않았다.
다음 말을 할 만큼의 숨만 남겨두었다.
수아 선배가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우진 선배는 화면을 보다가 나를 봤다.
후렴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제야 허리를 조금 폈다.
소리를 앞으로 보냈다.
조용하던 방 안에 목소리가 차올랐다.
아까까지 대화를 듣는 거리였다면, 이제는 노래가 몸에 닿는 거리였다.
준혁 선배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선배를 보고 한 번 끄덕였다.
기타도 함께 커졌다.
높은 음을 충분히 내고 내려왔다.
장식할 자리가 있었다.
짧게 꺾거나, 몇 음을 더 굴리거나.
그대로 지나갔다.
대신 마지막 말에서 속도를 조금 늦췄다.
기타가 나를 기다렸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남은 한 줄을 불렀다.
줄을 누른 선배의 손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복도에서 누가 웃는 소리가 났다.
우진 선배가 그제야 휴대전화로 손을 뻗었다.
“잠깐.”
수아 선배가 말했다.
아직 기타 소리가 남아 있었다.
우진 선배가 손을 거뒀다.
잔향이 사라진 뒤에야 녹화가 끝났다.
“어때요?”
내가 묻자 준혁 선배가 기타를 내려다봤다.
“나 박자 안 밀렸지?”
“네.”
“중간에 너 쳐다보다가 손 놓을 뻔했어.”
우진 선배가 영상을 재생했다.
휴대전화 스피커로 전주가 흘렀다.
“와.”
“왜요?”
“너 한국말 잘한다.”
수아 선배가 우진 선배의 팔을 때렸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알아요.”
나도 웃었다.
수아 선배는 재생 중인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난 이거 결혼식에서만 들었거든.”
“많이 부르죠.”
“그래서 되게 확신 있는 노래인 줄 알았는데.”
선배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화면 속 내가 첫 소절을 부르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듣자.”
영상을 올릴 때는 제목만 적었다.
이적 — 다행이다 / 서도현, 기타 이준혁
긴 설명은 지웠다.
한국 노래를 요청해주셔서 불러봤다는 문장도, 어떤 마음으로 불렀는지 적던 문장도.
대신 기타를 연주한 사람의 이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만 확인했다.
“나 태그했냐?”
“했어요.”
“사진도 이걸로 바꿔야겠다.”
준혁 선배는 기타를 치는 자기 옆모습을 확대하고 있었다.
“얼굴 안 나오게 해드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러니까 너도 생각을 좀 하고 말해야 돼.”
영상 아래 가장 먼저 댓글을 단 건 김태훈이었다.
얘 내일 조별과제 발표함
그 밑에 바로 답이 달렸다.
발표도 노래로 해주나요
↳ 그러면 내가 자료조사 다 함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이번 주 안에 지우 누나에게 가져갈 곡이 세 개였다.
커버 영상을 올리는 일과 별개로, 내 곡도 만들어야 했다.
노트북을 켜고 헤드폰을 썼다.
한 곡의 도입부를 지우고 다시 녹음했다.
두 번째 곡은 후렴부터 불렀다.
세 번째 곡의 코드를 잡다가 저녁을 놓쳤다.
태훈에게 메시지가 왔다.
야
잠시 뒤 하나가 더 왔다.
니 댓글창 왜 이래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계정을 열었다.
처음에는 익숙한 반응이었다.
한국어로 하니까 목소리가 더 가깝게 들림
영어 할 때랑 다른 사람 같은데 둘 다 좋다
선배 기타 소리 너무 예쁨
↳ 감사합니다 - 기타
↳ 본인 등판 왜 이렇게 빠름
↳ 기타는 원래 손이 빠릅니다
준혁 선배였다.
한숨처럼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더 내렸다.
이 노래가 이렇게 절박한 노래였나
그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절박하다기보단 이제 좀 안심하는 거 같음
↳ 아 그거다
↳ 저는 결혼하는 날보다 결혼하고 오래 지난 뒤에 부르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반대로 이제 막 사귀는 사람이 불러주는 것 같은데요
↳ 그 사람이 어지간히 좋긴 한가 봄
↳ 저 얼굴로 저렇게 쳐다보면 사귄 지 3일이어도 같이 늙을 생각 함
다음 댓글에는 답글이 길게 붙어 있었다.
엄마가 아빠 간병할 때 병실에서 이 노래 자주 틀었는데
오랜만에 끝까지 들었어요
↳ 아버님 지금은 괜찮으세요?
↳ 네 집에서 맨날 티비랑 싸우세요
↳ 다행이다 진짜
나는 화면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다시 위로 조금 올렸다.
처음 댓글을 읽고, 그 아래 질문을 읽고, 마지막 답을 읽었다.
집에서 맨날 텔레비전과 싸운다는 문장에서 웃음이 났다.
이번에는 영상을 소리 없이 재생했다.
화면 속 나는 별다른 표정도 짓지 않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저 표정을 보고 병실을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조금 아래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다.
전 남친이 이거 불러준 적 있는데 걔는 별로였고 노래는 죄가 없네
↳ 노래 무죄
↳ 기타도 무죄
↳ 기타님 안 주무세요?
나는 준혁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이제 그만 댓글 달아요
곧 답장이 왔다.
마지막 거 나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