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네
정말요?
어깨 펴고 허리는 세우고
이게 옷이 불편해서 그런지 자세가 잘 안 나오네 어떻게 하는 거라고요? 다시 한번만 해줘요
잘 들어요 어깨는 펴고 허리는 세우고 오케이?
오케이
자 이제 연습했던 거 생각하면서 편하게 해봐요 숨 쉴 곳 체크한 거 잊지 말고
역시 장소가 바뀌니까 집중이 확 되고 좋네요 집중된 김에 다른 씬도 연습해봐야겠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다른 씬? 뭐 어떤 씬이요?
35씬이요
뉴스 장면이 아닌데
여기도 되게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에요 앵커님이 좀 도와주세요
여기 상대방 대사만 쳐주면 돼요 여기서부터 하면 되겠다 빨리빨리
알았어요 오늘 뭐에 홀린 것처럼 당신의 흔적만 쫓아다녔어요 마치 누가 우릴 못 만나게 일부러 방해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게 뭐예요 나무토막이에요? 감정이 전혀 없잖아요
아니 그냥 대사만 읽어주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감정을 담아서 해줘야 제가 몰입을 하죠 조금 더 애절하게 한 번만 더요
오늘 뭐가, 오늘 뭐에 홀린 것처럼 당신의 흔적만 쫓아다녔어요
쓰읍 긴장 풀고 한 번만 더
오늘 뭐에 홀린 것처럼 당신의 흔적만 쫓아다녔어요
알았어요 내가 미안했어요 오늘 연습 여기까지 해요
전 앵커 안하길 천만다행이고 앵커님은 배우 안하길 너무 잘했다 너무 발연기예요
인정
앵커님 이 드라마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잘 될 것 같아요?
글쎄요 난 드라마를 잘 모르기는 하는데 조금
조금 뭐요?
조금 억지스럽달까?
뭐가 억지스러워요?
많은데 특히 남녀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이요 하루에 세 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고 또 간발의 차이로 못 보고 지나치고 그러다 어이없게 길에서 둘이 접촉사고가 나잖아요 우연히 너무 겹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운명인 거죠 반드시 만나서 사랑하게 될 운명 그리고 현실에선 더 드라마틱한 일이 많이 벌어질걸요? 우리만 봐도 이렇게 될 줄 몰랐잖아요
그러네요 늦었는데 그만 갈까요? 내일 스케쥴 있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이거 좀 허무하다 첫 데이트인데 이렇게 일만 하다 끝날 줄 몰랐어요
음 난 오늘 데이트라고 생각 안 했는데?
그럼요
음 이렇게 잠깐 본 거는 데이트로 인정 못 하겠어요 첫 데이트는 제대로 해야죠 주말에 정식으로 해요 데이트
좋아요 아 맞다 앵커님 제 소원 들어주셔야 해요 아까 리딩하다가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어 기억이 안 나는데?
쓰읍 안 통하는데?
알았어요 소원이 뭔데요
음 곧 알게 될 거예요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너무 예쁘다 가까이서 보면 이런 느낌이었구나 어때요 추천할만하죠
좋네요 매년 벚꽃은 뉴스에서나 봤는데
앞으로 봄마다 보러와요 우리
그래요
무슨 생각 해요
억울하다는 생각
뭐가 억울한데요
생각해보니까 오늘 소원을 한 개가 아니라 몇 개는 들어준 것 같아서 입은 옷만 해도 몇 벌이잖아요
그렇게 억울해요? 그런데 어떡하지 이미 늦었는데 못 무르잖아요
대신 나도 소원 하나 들어줘요
치이 치사하게 알았어요 뭔데요?
어떤 순간이 와도 절대 작별 인사하지 않기 이게 내 소원이에요
그런데 그건 소원 아니어도 그렇게 할 텐데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약속하는 거예요
네 약속할게요
안 잤어요?
예 잠이 안 와서요 하진 씨는 늦었는데 안자고 뭐해요
저도 잠이 안 와서요
왜요 악몽 꿀까 봐 걱정돼서요?
그건 아니고 실은 잊어버리고 있던 친구가 생각이 났거든요 하경이 말로는 어릴 때부터 같이 발레 배웠던 친한 친구라는데 영이라는 이름 말고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유학을 가서 연락이 끊겼어요 그래서 못 만날 거 같아요
아 예
그런데 기분이 이상한 거 있죠 예전에는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게 답답하고 싫었는데 이렇게 새로운 기억들이 떠오르고 나니까 두려워졌어요 혹시 알게 되면 후회되는 기억들이 있을까 봐
나는 하진 씨랑 함께 하는 지금이 너무 소중해요 하진 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지나간 시간들은 지나간 시간들일 뿐이니까
알아요 지금 앵커님이 어떤 마음으로 저한테 그런 얘기 하는지도 알고요 고마워요 그리고 저도 그래요 앵커님이랑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요 겁이날 만큼
너무 예쁘다
예쁘죠 하진 씨랑 여기 꼭 와보고 싶었거든요
저랑 여기를 그렇게 오고 싶었어요?
네
저 요즘 진짜 매일매일이 행복해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충분히 행복해도 되요 그러니까 행복한 순간까지 겁내고 불안해하지 말아요 그럴 필요 없으니까
알아요 그런데 알면서도 자꾸 겁이 나요
한 번 집중해봐요 지금 여기 이 순간에만 뭐가 느껴져요
음 봄바람 예쁜 야경 그리고 내 옆에 앵커님
그거면 됐어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앵커님도 말해봐요 지금 보고 느끼는 거 전부 다
나는 딱 하나만 느껴져요
뭔데요?
예전부터 하진 씨한테 하고 싶었던 말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나 겁이 나서 못했던 말
앵커님도 겁내지 마요 행복한 순간까지 겁내고 불안해할 필요 없으니까
사랑한다는 말이요 내가 아주 많이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경매덬이 대사로 찾는 그기억 글로 짤을 찾아다고 해서 급하게 쓴 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