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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리뷰북 동의] 전지적 스토커 시점 (매우X100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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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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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 스토커로 등장하는 두 인물, 문성호와 지현근은 사실 매우 닮아있다.

지현근이 문성호의 과거 방식을 모방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하더라도 둘의 행동과 생각조차 서로를 거울처럼 닮아있다.

그래서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두 인물 각각의 서사를 최소화하면서도, 두 인물의 서사가 서로를 보완하며 서로를 설명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남을 만큼 말이다.




#'나'의 첫사랑


편의점에서 일하던 과거의 문성호는 손님이 던지고 간 거스름돈을 줍던 중, 서연과 처음 마주 한다.

먼저 자신에게 웃어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며, 자세를 낮추어 돈을 주워 건네준 서연의 뒤로 밝고 따스한 빛이 비친다.

그것은 아마 서연이 그만큼 따뜻한 사람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그 빛이 문성호에게 닿았음을, 그의 사랑이 거기서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연의 뒷모습을 보며 소중한 듯 거스름돈을 만지작 거리는 문성호를 비추는 화면은 차갑게 식었다.

마치 그것이 그에게는 사랑이었을지언정,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그의 감정이 사랑으로 읽혀질 수 없음을 말해주듯이


지감독이 하진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 전반에 걸쳐 문성호와 지현근의 모습이 닮아있음을 감안하면, 그의 시작 역시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어느 날 하진이 베푼 작은 친절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렇게 하진을 사랑하게 된 지감독은 '나의 첫사랑'을 촬영했고, 제작발표회에서 이정훈과의 열애설 질문을 받은 하진을 보호하려는 듯 질문을 막아선다.

살짝 미소 지으며, 하진에게 '대답 안해도 돼.'라는 귓속말을 건네며 말이다. 

굳이 애써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 좋다는 듯,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이. 꼭 사랑하는 연인을 보호하는 남자와 같은 태도로 그렇게 자신만의 사랑에 심취해 있었다.


두 사람 다 오롯이 '나'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며,

하다 못해 결국 '나'의 관점으로 상대의 마음까지 재단하여 그렇게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나'의 첫사랑으로 확대하여 그 감정에 빠져 살았다.

제작발표회의 지감독이 <나의 첫사랑>을 두고, 첫사랑 같은 작품이라, 당분간 여기에 빠져서 지내고 싶다고 말한 것과 꼭 같이 말이다. 




#자신이 만든 프레임 속의 세상에서


피사체를 사진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담는 행위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시선이 반영될 수 밖에 없으며. 그 사진과 영상을 해석하는 것에도 보는 이의 시선이 배제될 수 없다.

분명 사진 속의 사람도, 사물도, 상황도 실재했던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이 사진을 본 이들이 느끼는 것과 실제 사진의 실재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

때로는 사진이 가진 그 차이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폭력 그 자체, 더 나아가서는 폭력을 정당화하게 만든다.

자신이 보고 있는 사진 속 세상이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프레임임을 잊었을 때, 그것은 그들에게 진실은 현실이 아닌 사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성호는 사진작가 지망생, 지감독은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 그리고 더 나아가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감독이라는 점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두 사람이 서연과 하진을 납치하기 전, 보여진 공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성호의 방에는 서연과 문성호가 만났던 순간의 CCTV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는 것, 

지감독의 방에는 그가 하진을 영상으로 담은 '나의 첫사랑'이 재생되고 있었다는 것.

이들은 짧은 순간만을 잘라낸 영상, 그리고 자신의 시선으로 상대를 담아낸 영상. 즉 그들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들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자신이 만들어낸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어그러지는 순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한 프레임이었을 것이다.




#완벽한 사진 속 오점이 나타나다


그러나, 그 프레임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사진이나 영상 속에 서연과 하진의 순간을 가두어 두고, 자신에게 웃어준다 생각할 수는 있었으나, 

결국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제 뜻대로 할 수는 없었으며 -물론 그들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진 속 서연과 하진의 곁에 함께 있을 수도 없었다. 

때문에 그들이 빠져 살았던 완벽한 사진에 오점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순조로운 사랑에 끼어들어, 순진한 내 연인을 자꾸만 꼬여내는 사람.

그들의 완벽한 프레임 속에 자꾸만 생기는 오점. 

그것은 이정훈이였다.


그들의 관점에서 관계에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었다.

자신의 연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지만, 잠시 이정훈에게 속아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오점이 생겼지만, 그 오점만 다시 지워낸다면, 자신은 충분히 관대했고 그러니 당연히 다시 완벽해질 사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서연을 납치한 문성호는 정훈과의 통화에서 '우리 여러 번 마주쳤는데, 서연이랑 같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려 했다.

또한 서연과 정훈이 함께 있는 사진은, 마치 자신의 세계에 적합하지 않다는 듯 그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했다.

지감독 역시도 열애설을 알게 된 이후 하진이 아닌 정훈에게 문성호가 했듯 난도질된 사진을 보내 정훈을 괴롭히려 들었고, 자신과 하진을 방해하는 것에 경고라도 하듯 하진에 대해서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듯 말하고 그들의 관계를 가짜라 의심하기까지 했다.



#피사체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프레임 대로라면, 이정훈은 조금 거슬리지만 그럼에도 사실 자신들의 사랑은 여전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프레임 바깥 현실에 살고 있었다.

때문에 항상 지감독을 보며 웃어주었고 '나의 첫사랑'을 함께 한 하진이 자꾸만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 처음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를 거절하고 이정훈의 매력을 말하는 하진의 모습이었다.

지감독은 순간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하진의 행동에 순간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쩌면 이 순간이, 지감독에게는 문성호를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감독이 술집에 하진과 정훈을 불렀을 때, 두 사람이 서로가 같은 곳에 올 것을 몰랐다는 사실에 역시 자신이 옳았다는 생각에 잠시 즐거워했지만,

하진이 흑장미를 자처하고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표정이 굳으며 술을 퍼마시고, 술이 부족하자 소리를 질러대고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간다.

그리고 결국은 하진에게 나가서 둘이 이야기하자며 손을 잡아끌어 나가려고까지 한다.


항상 사진 안에서 그리고 영상 안에서 움직여왔고, 항상 남에게 친절한 하진이였기에 지감독은 현실과 망상 사이의 약간의 모순쯤은 가벼이 무시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순이 점차 덩치를 키우고, 무시할 수 없는 형태를 드러내자

지감독 역시 하진에게 자꾸만 폭력성을 드러내며 그렇게 본모습이 자꾸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절정에 다다른 것은 하진에게 '굿나잇 달링' 대본을 건넬 때였다.

하진이 그의 집에 걸려있는 사진을 자신에게 팔라고 하자 '여기에 있는 게 가장 잘 어울린다'며 거절한다.

그녀를 사랑하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양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것은 상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범위 안에서만 해당하는 얘기였던 거다.

그리고 결국 하진이 대본을 거절하자, 자신의 생각에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 화를 숨기지 못하고 하진의 손목을 틀어잡으며 대본을 읽을 것을 강요하며,

홀로 남은 지감독은 대본 책자를 구기며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하진의 사진에 대본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상대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고서 상대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그렇게 만들고 말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결국은, 제 앞에서 숨어버린 하진을 찾아내 오토바이로 하진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정훈이 올 것은 예상되지 않은 그 곳에서, 그가 한 행동은 적어도 내 눈에는 '네가 감히'라는 분노와 경고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내 사랑이라 말했지만,

결국은 자신을 우위에 두고서 자신이 정해 둔 프레임 안에서 시나리오대로 움직여 줄, 순종적인 피사체가 필요했을 뿐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들은 자신이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났을 때의 대화에는 서로에 대한 혐오가 엿보인다. 정작 서로 하는 행동은 너무나 꼭 닮아있는데도 말이다.


지감독은 문성호를 '정서연씨 죽이신 분'이라 지칭했으며, 그를 찾아가 '이정훈에게 했던 짓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한 것도 결국은 그 행동이 이정훈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거였을테다. 정작 본인이 저지른 일은 정의로운 일이고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자신이 한 것은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듣는 문성호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지현근의 말에 계속해서 경계하고 화를 참지 못하던 그는 '이정훈에게 복수하고'라는 그 말 한마디에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을 뿐, 결국은 지현근이 하진을 데려간 곳을 사진으로 힌트를 주었을 만큼. 지감독에 대해서는 혐오를 드러냈다.


내내 외면해 왔던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들처럼.

둘 모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그 말에 꼭 들어맞게 굴었다.




#당신을 구원하는 건 나야  


분명 여전히 영상 속의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요즘 들어 네가 이상하다. 

네가 이상해진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역시 이 모든 걸 망친 건 이정훈이였고, 그 자식에게서 내가 너를 구할 거야.


어쩌면 이런 흐름이 아니였을까?

그들은 그렇게 상대를 이정훈이라는 악으로부터 구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곁에만 데려다 놓는다면 분명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납치를 감행했다.


서연을 납치한 문성호는 서연을 붙잡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려 닦달하며, 정훈에게 과시하려는 듯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서연을 악에서 구하려 한 일이라 믿으면서도, 프로포즈를 하려는 듯 반지를 끼우고 방 안은 촛불을 켜두었으면서도, 정작 서연을 침대에 묶어두었단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서연은 그저 잠시 정훈에게 속은 것 뿐이었을텐데도. 자신과 만나면 금새 정신을 차릴 것이라 믿었을 것임에도.

망상 바깥의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그도 현실을 알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상관 없다 믿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악에 물든 이를 구하기 위해서이니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면 그 모든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결국 그에게서 도망치려 하는 서연을 문성호는 옥상에 데려갔다.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서연의 목을 움켜쥐고, 그는 말했다.

'내가 금방 끝낼거야. 걱정하지마.'

'먼저 가 있어.'


그가 서연을 정훈의 눈앞으로 추락하도록 한 것은.

이정훈이라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어쩌면 그는 서연을 정훈과 닿지 않을, 가장 안전한 곳에 보내려는 그 나름의 배려였는지도.


그러나, 서연이 죽은 그 현장에서조차도 정훈은 푸른 어둠에 삼켜진 와중에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빛 속에 있었고 문성호는 까만 어둠 속 옥상에 있었다.

그는 정훈에게 영원한 트라우마를 주는 데에는 성공했고, 건물의 가장 위에서 이정훈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이겼다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스스로 빛 하나 들지 않은 어둠 속에 갇힌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굿나잇 달링


지감독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구는 하진에게, 갖고 싶다던 사진도 선물도 건네 보고, 설득도 해보고, 화도 내봤다.

훨씬 더 먼저였던 내 존재를 자꾸만 잊는 것 같아 밤에 찾아가 그간 찍은 너의 수많은 사진들과 내 사랑을 담은 메시지를 서프라이즈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멀어지기만 하진의 모습에, 결국 그간 널 위해 서프라이즈를 보내고 너의 평안한 잠을 걱정하던 것은 나라고. 내가 너의 운명이라고 밝히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네가 잠시 이상해졌지만, 너도 그 자식이 누구랑 사귀었는지 알면, 그 자식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게 되리라.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그리고 그 날은, 너와 나의 영원한 언약식의 날이 될 것이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마취제를 써서 데려온 하진에게, 언약식 이전 제 나름대로는 로맨틱한 분위기라도 내보려했던 것인지.

방안은 촛불이며, 풍선이며 가득 꾸며져 있었고 하진의 사진이 벽에 있었다. 그리고 방문 밖에는 하진이 갖고 싶어했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프로포즈를 받아주면 그녀에게 선물로 안겨주기라도 할 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문성호가 그랬듯, 하진이 자신을 사랑한다 생각하면서도 방 바깥에 자물쇠를 달았고, 하진이 마실 음료수에 또다시 주사기를 꽂았다.

어쩌면 그도, 문성호가 그랬듯이 죽음으로써라도 그녀를 정훈으로부터 구원하려 했던 것이리라.

(하진을 납치하기 이전, 문성호와 사진을 주고받던 지감독이 입고 있던 옷에 십자가 문양이 있기도 했다.)


'굿나잇 달링'이라는 정훈이 그의 집에서 발견했던 대본 역시 그런 그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인사.

잠시 잠들어 있다 눈을 뜨면, 다시 우리는 전처럼 행복할 것이라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그런 의미의.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심하다 완성했단 것마저도 그녀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맘에 드는 결말을 찾지 못하던 도중, 끝끝내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프레임 속에서 하진을 영원히 구원할 방법을 찾았다는 의미였을지도. 

그리고 어쩌면 그 대본 속에는 정훈이 서연을 사랑했다는 것이 담겨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진을 붙들고 계속해서 일단 한 번 읽어 보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 중얼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혼자만의 정의를 위하여


서연을 정훈과 영원히 떼어놓은 문성호는, 이제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떳떳하게 서연의 곁으로 가기 위해 정훈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8년 전, 서연을 먼저 보낸 문성호는 국화꽃을 다듬으며 정훈의 방문을 기다렸고, 그의 눈 앞에서 자신과 서연이 영원을 말하며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의 암담한 현실을 이야기하듯 파란 문과 파란 그의 옷.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노란 조명은

살인을 말하며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문성호의 모습처럼 모순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훈의 앞에서 죽는 것에 실패하고 서연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마저 기어이 방해한 이정훈에게 분노하며 계획의 완성을 꿈꿨을 그의 앞에 지감독이 나타났다.

그렇기에, 난동을 부릴 때마다 약물을 투여받아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던 와중에도. 자신의 귀띔을 들은 지현근의 행동으로 자신을 찾아온 정훈을 바라보았던 것일 테다.

그를 괴롭히기 위해 전화를 걸어 하진을 잘 지키라 말하면서도, 진짜 자신을 찾아온 정훈에게 분노한 것 또한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서연을 변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서연을 구하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도록 만든 당사자인 주제에, 어떻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나 하는 그런 원망.


때문에, 마지막까지 정서연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은. 가장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이 자신인 것에는 만족했으나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서연의 사랑을 방해한 정훈이 행복한 것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정의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잊지 못할 그의 눈 앞에서 죽는 것.

그것이 그의 복수를 위한 계획의 완성이었다. 

8년 전에도, 8년이 지난 현재에도.


탈옥에 성공한 문성호는 정훈에게 

'너도 잃어 봐. 착각하지마. 너에겐 이제 심판만 있을 뿐이야.'라며 피눈물을 흘리는 그림을 남겼고, 정훈을 8년 전의 옥상으로 불러들였다.

그 곳에서 문성호는 서연의 복수를 대신하기라도 하는 양 서연의 토슈즈 끈을 손에 묶은 채 칼을 손에 쥐고 정훈에게 휘둘렀다.

자신은 서연과 함께 하기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듯

그녀와의 영원한 사랑을, 자신의 승리를 정훈의 눈 앞에서 증명하고자 몸을 아래로 던졌다.

서연과 잠시 이별해야 했던 그 곳에서, 다시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추락의 순간 서연의 토슈즈 끈은 풀리어 비로소 문성호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더는 이정훈에게의 복수를 꿈꿀 수도, 서연의 곁으로 가는 것을 꿈꿀 수도 없는 몸이 되어서.

프레임 안에 홀로 남았다.


혼자만의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 채, 보편적인 정의가 실현된 것이다.




#형태만 다른 또 다른 프레임 속에 사는 남자


문성호와 지현근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한 사람을 자신의 프레임 안에 가두어 해석하고 지나칠 만큼 집착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유교수가 그렇다.


그는 아주 오랜 세월, 정훈이의 병을 곁에서 지켜봐 온 주치의로서 수많은 녹취와 영상기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설을 만들었다.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정훈은 절대 기억을 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언젠가는 기억의 과부하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환자라고.

이런 것까지 녹음을 하나..? 싶을 만큼 자료의 객관성에 집착하는 유교수이지만, 그가 이미 정해 둔 결론을 위해 선택적으로 활용될 뿐이었다.

자신이 이미 만들어 둔 결론에 맞지 않는 증거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며 말이다.


게다가 지감독이 하진의 소속사 대표에게 찾아가 화를 냈던 것처럼, 그는 늘 자신과 정훈을 다르게 생각하는 태은을 아래로 보며 화를 냈다.

문성호의 자해 소식에 병원을 찾았을 때 역시도, 지감독과 문성호가 서로에게 혐오를 드러냈듯 그 역시도 문성호쯤은 컨트롤할 수 있다며 그를 깔보았다.

정훈이 하진을 사랑한다던 말 역시도, 환자들은 가끔 본인이 정상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다며 믿지 않았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듣기 위해 문성호를 찾았다.


결국 유교수 역시 프레임의 형태가 사진이 아니었을 뿐, 이성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가 목표였을 뿐.

객관성을 가장하여 가장 주관적인 결론에 다다르며, 대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두 스토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그러므로 그도,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어그러진 프레임 속에 남겨졌듯이

명예를 잃고 날개가 꺾인 채 내내 자신이 가장 틀렸다고 생각했던 태은이 옳았음을 생생하게 지켜보게 된 것이 아닐까.


태은만 없던 가족사진과 가족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태은을 면박주던 모습과 대조되어 이제는 태은이 주도하는 대화 속에서 홀로 몇마디 구시렁 대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마저도 그의 방식이 틀렸음을, 다른 두 스토커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감독이나 문성호와 달리, 추락한 유교수에게는 그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서 더 빛나게 된 태은과의 대조가 더욱 그의 프레임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

사실 스토커의 감정선을 따라갈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쓸 생각이 없던 글인데ㅋㅋㅋ

(본방 볼 때도 빌런들 나오면 종종 음소거했읍니다...)

며칠 전에 리뷰 비슷한 건 글로 쓰라고ㅋㅋㅋㅋ해서 한 번 훑어볼까 해서 스토커들 위주로 드라마를 다시 봤는데.

생각보다 보이는 게 좀 있어서, 한번쯤은 써볼만하지 않나 해서 쓴 글인데 굉장히 길어졌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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