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 "포픈파티" 직후>
-ES 공중정원-
나즈나
♪~♪~♪
쿠로
…오. 왠지 그리운 노랫소리가 들리는군…이라고 생각했더니 니토 너였나. 방해했구만.
정식으로 복귀했다고 했지. 우리도─ "홍월"도 "포픈파티"에 출자했으니 알게 된 거긴 하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바빠서 말이지. 출자자 특전 티켓은 받았는데 무대를 보러 못 갔어.
서로 여생을 느긋하게 보내지 못한다고 할까, 아직 평안한 삶을 살기는 갈 길이 멀군.
나즈나
~……♪
오~랜~만~이~야~, 쿠~로~칭……♪
쿠로
하하, 연습곡 후렴구 "언제나 사랑해"를 "오랜만이야, 쿠로칭"으로 바꿔 부른 건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제법 밝아졌구만.
예전의 너라면 입을 꾹 다물든지, 당황해서 혀를 깨물며 소리쳤을텐데.
나즈나
쿠로칭♪
쿠로
우옷, 갑자기 안기지 마. 너, 이렇게 어리광 부리는 타입이었던가?
나즈나
미안 미안. 왠지 감격해서 말이지♪ 쿠로칭은 대단한걸~, 내가 '좀 외로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엔 늘 곁에 나타나줘!
쿠로
그러냐. 우연이지만 말이지. 내가 그렇게까지 좋기만 한 놈으로 보여?
나즈나
응! 쿠로칭은 늘 세심하고 자상해!
유메노사키에서 불량학생이니 뭐니라고 불릴 때부터도 쭉 그래왔어~♪
쿠로
그런가. 그나저나 여전히 가볍구만. 밥은 제대로 먹고 있냐?
잠깐 아이돌 업계에서 떨어져 있었다고 기합 빠져선 정크푸드 같은 걸로 식사 떼우진 않았겠지?
나즈나
너, 내 엄마라도 되는거야? 아하하, 정말로 오랜만이야! 그래, 쿠로칭은 늘 이랬어!
쿠로
뭐, 나는 언제나 나지만 말이지. 다른 성격을 연기할 정도로 능숙한 것도 아니고. 특히 네 앞에선 난 언제나 보는 그대로 키류 쿠로다.
나즈나
응. 잘됐다~ 안심했어……
복귀하고 나서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유메노사키 시절과는 달라져서, ES라는 이름의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쿠로
흐흥. 그래, 니토, 아직 ES에서 돌아가는 일엔 익숙해지지 않겠구만.
그래서 L$로 연습실을 빌리는 법을 몰라서 이런 공중정원에서 노래연습을 하고 있던 건가.
나즈나
바보취급 하지 마~. "포픈 파티" 지출때문에 잠시 절약하는 것 뿐이야.
L$도 홀핸즈도 전부 유메노사키에 있던 거에서 따온 거니 말이지.
바보라도 쓸 수 있게 만들어 놨으니까, 나라도 잘 활용할 수 있다구~.
유메노사키에서 방송위원이었던 때, 마코칭이 그런 최신기기를 엄청 좋아해서 안 물어봐도 이것저것 말해줬었거든.
이번에도 "분명 설명해주고 싶겠지"라고 생각해서 찾아갔더니 알기 쉽게 알려줬어.
쿠로
하하, 주변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제법 잘 하게 됐잖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것도 멋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츠키 정도로 각오를 굳힌 녀석이 아니면 그런 길은 힘들기만 하지.
나즈나
아하하. 그 녀석도 미카칭과 마드모아젤 덕분에 잘 버티고 있지만 말이지.
나는 역시 인형보단 살아있는 몸이 좋아. 인간의 체온이 좋아. 꼬옥…♪
쿠로
오냐오냐. 귀여운 아기구만. 쿠로마마가 어리광을 받아주마…♪
나즈나
아하하. 그건 또 뭐야? 마다라칭 흉내야?
쿠로
으응? 뭐, 그 녀석이랑은 왠지 자주 엮이니 말이지.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어─
우리들 "홍월"도 아직은 이렇다 할 일이 없어서 똑같이 한가한 그 녀석이랑 같이 움직였거든.
나즈나
흐응. 유메노사키에선 늘 이겨왔던 홍월도 일거리가 부족한 건가.
다들 큰일이구만, 우리들도 한눈 팔면 안되겠어~.
쿠로
오우. 너도 "포픈파티"를 준비할 때 들었겠지만, 리즈링 내의 구조조정에 위기감을 느낀 베테랑들의 역습이 시작됐어.
유메노사키에선 잘나갔지~ 따위의 말은 이제 아무 안심거리도 못 돼. 예능계는 넓고 깊어. 이 세상은 먹느냐 먹히느냐다.
나즈나
우~. 우리들은 토끼인데~, 초식동물인데~
쿠로
음. 그래도 무는 건 할 수 있잖아. 함부로 손대면 아픈 경험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라구. 그저 먹히기만 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혹시라도 그런 피튀기는 일이 싫다면, 안전한 곳으로 피해도 돼. 더러운 일은 우리들이 해줄테니.
그걸 위해서, 아이돌이 아니라도 살아갈 수 있는─ 대학으로 간 거잖아?
넌 모두의 선례야, 니토. 아이돌밖에 생각 못하는 ES 녀석들에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거야.
네 존재에 희망을 얻는 녀석들도 있어. 아이돌을 그만두고 도망가는 꼴사나운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지.
나즈나
으음~. 난 아이돌을 관두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아하하♪
쿠로
니토, 뭘 웃는거야?
나즈나
아니, 대학교 친구도 같은 말을 했거든.
대학 안에 있는 방송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가 처음 만났을 때 엄청 감격하며 말해줬는데,
그 선배는 원래 낯을 많이 가렸대. 다른 사람들과 말 섞는게 무서웠다는 거야.
그래도 그 선배와 똑같이 "Valkyrie"에 있을 땐 말하지 않던 내가 "Ra*bits"로 활동하는 걸 보며, 즐겁게 말하는 걸 보며─
그 선배도 용기를 얻었대. 그리곤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말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선, 내가 학교에선 방송위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어.
그러다 점점 선배의 팬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겨서 지금은 아나운서 같은 일을 목표로 하고 있대.
선배는 "네 덕분이야"라며 엄청 감사했었어.
나는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도 말이지.
"Valkyrie" 때에 내가 아무 말도 안하던 것도 변성기 때문에 이츠키의 예술을 해치지 않으려고 멋대로 말하지 않은 것 뿐이고…
"Ra*bits"에서도, 언제나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입만 열면 혀를 깨물고, 일만 벌이면 실패하고. 그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했어.
그래서, 기뻤어. 내가 해온 것들이 전부 헛된 일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령껏 살지 못해 상처받고, 목소리도 못내고 남에게 얕보이고. 그렇게 괴로워한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준 거야.
그렇다면, 아이돌 니토 나즈나의 꼴사납게 이리저리 뛰어다닌 3년은 가치가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기뻐졌어. 좀 더 이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어.
쿠로
하하. 그래서 돌아온거냐, 니토?
나즈나
응. 그 외에도 이유야 많지만 이것도 이유 중의 하나야.
나 말야, 나를 보고 열변을 토하는 선배를 보고 아마 처음으로 생각했어.
아이돌이 돼서 잘됐다. 아이돌이 좋다, 아이돌이 되고싶다…라고.
쿠로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거냐. 늦어도 너무 늦다구. 뭐어, 그런 계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
모두가 정답이라 생각하는 길만을 걸을 순 없어. 또 그런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야.
나도 아직 갈 길이 먼 신세니 더 이상 떠들진 않겠어. 누가 너한테 시비를 걸면 내가 쫓아내주마.
또, 네가 넘어졌을 땐 내가 손을 뻗어주마.
함께 걸어가자, 앞으로도.
나즈나
응. 같이 아이돌이 되자. 쿠로칭.
…다녀왔어.
쿠로
어서 와, 니토. 썩어빠진 과거의 유메노사키에서 내가 처음으로 팬이 된 진짜 아이돌.
-
오역지적 대환영!!! 읽다가 펑펑울고 나만 읽을 순 없어서 부족한 실력이나마 번역해봤어ㅠ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