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미스터 션샤인 갤러리
"괜찮습니다. 막무가내 매질이 외려 덜 아픕니다.
왜 저를…."
"잡히지 말라고."
"그니까 애기씨가 왜…."
"사람 목숨은 다 귀하다 했다."
"……누가요?"
"공자께서."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
"오랜만에 뵙습니다 애기씨.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아 그때 그 백정놈이구만은!")
부모가 백정이었죠. 소인놈이 아니라.
저도 칼을 잡긴 하나, 전 소 돼지 말고 다른 걸 벱니다 아주머니."
"소식은 들었네. 돌아왔다고.
돌아와서 그리 산다고. 보기도 보았고."
"세상이 변했습니다 애기씨.
조선 바닥에서 제 눈치 안 보는 어르신들이 없습니다.
헌데, 애기씨 눈엔 전 여직… 천한 백정놈인가 봅니다."
"그렇지 않네. 내 눈에 자넨 백정이 아니라, 그저 백성이야.
그러니 바로 알게. 내 눈빛이 어땠는진 모르겠으나,
내가 자넬 그리 본 것은 자네가 백정이라서가 아니라… 변절자여서니."
"비켜드릴까요, 애기씨?"
"그럴 필요 없네. 자네가 선객 아닌가."
"무슨 짓인가!"
"아무것도요. 그저… 있습니다 애기씨.
제가 조선에 왜 돌아왔는지 아십니까.
겨우 한번… 그 한 순간 때문에.
백 번을 돌아서도 이 길 하나 뿐입니다 애기씨."
'오지 마… 오지 마라. …오지 말라니까.'
"이렇게 다시 뵙습니다 애기씨. 이 새벽, 기차역에서."
"절에 다녀오는 길이네."
"……."
"…이 자를 어찌해야 할까. 자네 눈엔 내 상복이 안 보이는가.
비키게, 죽여버리기 전에."
"하, 그건 제가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애기씨."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난 해도… 자넨 못 할 듯 싶은데."
'오지 말랬더니 기어이 와서는… 그것까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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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러는가! 같은 조선인들끼리 서로 돕지는 못할 망정!
어찌 이리 사납게…! 아직 아이인데!"
"애고 어른이고,
조선인들끼리 돕고 사는 걸 보고 배운 적이 없어서요 애기씨.
애기씨가 끼실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이런 순간에만 보는 것인가…
자네가 이런 순간으로만 사는 것인가."
"어떤 순간을 말씀하시는 건지… 이런 순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런 순간도 살길 바라네.
함안댁! 아이를 데려가게.
이유가 무엇이야, 아이에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야!"
"큰 돈을 날렸습니다 애기씨.
저 아이가 제가 찾고 있는 걸 다른 이에게 주는 바람에요."
"날린 돈이 얼만가, 내가 내겠네. 그러면 되겠는가!"
"그러시면 됩니다."
"얼만가."
"되는대로 들고 오시지요. 들고 오시는 것 보고 흥정을 해보겠습니다.
내 달 보름까지 직접 오시지요.
애기씨가 직접 말입니다."
"얼만지나 얘기해."
"얼만지는 와서 들으시는 겁니다.
그래야 내 달 보름까지 저 아이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겠습니까.
허면 그때 뵙겠습니다."
"돈은 마련하셨습니까 애기씨?"
"걱정 말게. 약조는 약조이니."
"곧 보름입니다. 빚쟁이들 말이야, 매양 똑같아서요 애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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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떻게…."
"물었네. 빈관 사장에게. 구동매를 보려면 어디로 가면 되는지.
주위를 물리게."
"저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애기씨."
"관심이 아니라, 조심하는 걸세.
내게 직접 돈을 갚으러 오라 수작 거는 자를.
내게 총을 겨눠 나를 쏜 자를."
"예. 총을 쏜 게 접니다."
"그래서 어찌할 것인가. 나를 일본에 팔아넘길 것인가."
"아니요, 아무것도요. 그저 있을 겁니다."
"그저 있겠다는 자가, 왜 내 뒤를 밟은 건가. 절엔 왜 간 것이야!"
"저는 그 날… 그저 잘못 봤고, 앞으로도 잘못 볼 겁니다.
애기씨를 잘 보는 새끼가 있으면 그 눈깔을 뽑아버릴 거고.
그러려면 전 애기씨에 대해 많은 걸 알아야 하니,
그리한 것 뿐입니다."
"내가 필요 없다 하면… 어쩔텐가."
"애기씨께서도 그 때… 제겐 필요 없었던 제 목숨,
마음대로 살리지 않으셨습니까.
돈은 가져오셨습니까? 돈은 달에 한 번씩 받겠습니다.
이 달 칩니다. 돈을 받았으니…
앞으로 그 아이도, 그 아이가 전달한 걸 받은 그 자도.
더는 캐지 않겠습니다."
"지금 나를 평생 보겠다는 건가."
"예. 그 말입니다.
애기씨께서 저를 계속 살려두신다면요."
"자넨… 그 돈을 다 못 받지 싶어."
"그리 말씀하시니 퍽 아픕니다.
허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아물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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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보름이라."
"저자에 온통 애기씨 얘깁니다.
이런 흠, 저런 흉. 다들 한 마디씩 보태던데."
"그런가. 이번 달 치일세."
"고작… 이 약속을 지키시려 예까지."
"고민은 됐으나, 약조는 약조이고… 전할 말도 있고 해서.
많이 고마웠네. 이유는 알거고.
그럼 다음 보름에 보세."
'…점괘가 틀렸네. 계속 이리 살리시네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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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인가."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마지막 기회라니, 알아듣게 말해."
"애기씨는 왜 자꾸 그런 선택들을 하십니까.
정혼을 깨고 흠이 잡히고, 총을 들어 기어이 표적이 되는,
그런 위험한 선택들 말입니다.
허니…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학당에도 가지 마십시오, 서양 말 같은 거 배우지 마십시오.
날아오르지 마십시오.
세상에 어떤 질문도 하지 마십시오."
"이런 주제 넘은 자를 보았나.
난 내 선택 그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아.
자네를 살린 것까지, 자네의 총에 맞은 것까지.
어쩔텐가. 내 비밀 한자락 쥐고 있다고 뭐라도 된 듯 싶어?"
"아니요, 아직은요.
지금부터 애기씨의 무언가가 되어볼까 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세상 모두가 적이 되어도 상관없겠다 싶어졌거든요.
그게 애기씨여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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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내 손에 죽기로 작정을 했구나.
내 선의를 베고, 내 걸음을 베고,
기어이 이런 수치를 주는구나."
"해서, 아프십니까.
그때 그냥 저를 죽게 두지 그러셨습니까.
그때 저를 살리시는 바람에, 희망 같은 게 생겼지 뭡니까.
그 희망이… 지금 애기씨의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허니 애기씨 잘못입니다."
"네놈은 내가 우습구나.
다시 그 순간이 온다고 해도, 나는 네놈을 살릴 것이다.
허나,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땐 네놈을 죽일 것이다.
감히 내 염려 따위 하지 마라. 네놈은 그저,
나를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으로만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