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가장 소중한 벗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폐인이 되어버린 율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채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있을 뿐인 율에게
죽기전 휘영이 보낸 유품들과 편지가 배달되고
[어이, 신율. 살아있나?
지금 이 편지 읽고있어?
만주로 떠나기 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내게 가장 소중했던 세가지 물건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어]
[실은 그때 만년필 하나면 족하다고 한건 진심이 아니었어, 허세였어.
너에게 타자기를 선물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너에게 받은게 너무 많은데, 살아서는 못 갚을만큼 너무나 많이 받았는데.
어쩌면 살아서는 다시 못볼 길을 떠나는 지금,
너에게 줄게 이거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그나마 그냥은 못주고 부탁을 얹어 보려고 하는데 감당이 될까, 니가?]
[내 대신 못 다 쓴 이 소설을 완성해주길 바래.
니가 나한테 선물했던 이 타자기로.
나를 대신해서 이번엔 니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줘.
그 시절 우리가 이 땅에 살았었다고.
암흑같은 현실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치열하게 아파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위험속에서도 행복을 찾아가며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투쟁해왔다고.]
휘영이 쓰던 소설의 완성을 자신이 가장 믿고 우애하는
벗인 율에게 맡긴다는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율
[마지막으로 율아.
내가 널 얼마나 믿고 우애했는지 미처 말로 전하지 못한게 후회가 돼.
그러니까 우리 꼭 살아서 만나자. 아니, 죽어서라도 다시 만나자.
만약 신께서 내게 이번생에 행복했었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할거야.
너희들을 만나 행복했었다고.
혹여 신께서 내게 사느라 고생했다, 참 잘 살았다.
어깨를 두드려주시면 부탁해 볼 거야.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너희들과 함께이게 해달라고.]
혈육과도 같았던 벗인 휘영의 유서를 끌어안고 오열함
조국이 해방되기 전까지는 펜을 들지 않으려던 율은
휘영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휘영이 보낸 타자기로 휘영의 소설 뒷이야기를 쓰기 시작함
율은 집안의 고용인에게서 수현이
조직을 붕괴시키고 휘영과 동지들을 죽게만든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조청맹의 수장이었던 휘영이 정한 강령을 따라 임무수행중인
수현이 자신을 찾아올 것을 직감하고 칩거생활을 정리한 율은
카르페디엠에서 휘영의 소설을 집필하며 수현을 기다림
"왔니. 기다리고 있었어.
휘영이가 우리한테 선물을 남겼거든."
"회중시계는 아무래도 니가 가져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왜 그랬어."
"전해줄거 전해줬으니까, 빨리 끝내자."
율은 휘영이 애지중지하던 시계를 수현에게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수현에게 이제 끝을 내자 함
"왜 그랬어, 왜!!!"
"니가...내 눈 앞에서 죽는걸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뭐라고..나 따위가 뭐라고, 대체.
차라리 죽게 내버려뒀어야지!
죽든 말든 절대 말하지 말았어야지!"
고문으로 죽어가는 수현을 살리기 위해
조청맹의 수장이자 벗인 휘영의 이름을 밀고하고만
율을 원망하며 우는 수현
"류수현 동지!!!!"
"어서 임무 수행하십시오.
조직의 강령은 곧 수장의 명령입니다."
율은 수현이 휘영이 만든 조직의 강령을 따라 배신자들을 처단중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휘영의 뜻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조청맹의 조직원으로서 죽기 위해 수현을 기다렸으나
망설이는 수현에게 수장의 명령대로 임무를 수행하라 다그침
"조청맹의...강령에 따라..."
"자세가 흔들렸잖아."
수현의 떨리는 총구를 보며 수현의 손을 잡는 율
"반동을 두려워 하면 안 돼, 그럼 자기도 모르게 몸이 뒤로 빠지거나
팔이 쳐지게 되거든. 그럼 안정성과 제어력이 떨어져."
수현은 저격수가 되려는 수현에게
사격을 가르쳐주었던 율의 다정했던 모습이 떠오르고
"잊지마. 반동이 두려워 몸을 뒤로 빼거나,
절대 표적에서 눈을 떼면 안돼.
표적앞에서 주저하거나 망설이면 저격수의 생명은 끝이야."
"시작해, 이제.
내 손으로 직접 할까?"
수현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율을 처단하기 위해
감정을 애써 추스르고
"좋아. 눈빛 돌아왔네."
율은 수현이 감정을 추스르고 저격준비를 하자
그제서야 총에서 손을 떼고 자세를 고쳐 앉음
"마지막으로 할말은 없습니까?"
"니 손으로 처단해줘.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수현에게서 휘영을 잃게 만든 죄인인 자신이
수현의 손에 죽어야만 그 죄값을 조금이나마 치룰수있을것 같은 율
"조청맹의 강령에 따라 배신자를 처단합니다."
율은 그렇게 휘영의 뒤를 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수현은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 오라버니이자 친구,
그리고 동지였던 율을 죽이는 임무를 완수하고 오열함
[어이, 서휘영. 이 일을 어떡하냐.]
[내가 수현이를 울려버렸네. 이번 생에는 내가 지키겠다고 했던 약속.
못지켜서 미안. 소설도 완성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만일 다음생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꼭 약속 지키러 갈게.
너희가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어떻게든 내가 지켜주러 갈게.]
그리고 율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친구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으로 죽어가면서도 다음생에는 친구들을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휘영이 남기고간 유품인
타자기에 스스로를 봉인함
그리고 휘영에게 용서를 빌기위해,
그리고 휘영의 유작인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83년이란 세월을 홀로 타자기 속에 봉인되어 기다리다
2017년 환생한 친구들의 곁에 찾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