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던 해에, 그의 우상이었던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돌연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차이콥스키에게 개인적인 격려를 듣긴 했지만 음악적으로 더욱 인정받고 싶었던 라흐마니노프였던지라, 러시아 음악의 최고 거장을 마음의 준비 없이 떠나보낸 데에 대한 깊은 슬픔에 젖게 되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고, 내키지 않는 피아노 레슨으로 수입활동을 이어갔다.
그 후 24살에 어찌어찌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10] 그 충격으로 3~4년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라흐마니노프는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11] 이 때문에 이 곡은 생전에 연주 자체가 이루어지질 않았다. 훗날 자서전에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는 나의 꿈은 무너졌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3, 4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그 후 24살에 어찌어찌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10] 그 충격으로 3~4년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라흐마니노프는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11] 이 때문에 이 곡은 생전에 연주 자체가 이루어지질 않았다. 훗날 자서전에 "화려한 경력을 쌓는다는 나의 꿈은 무너졌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3, 4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이때 정신과 의사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니콜라이 달(Nikolai Dahl)[12] 박사에게 치료를 받으며 신체 사이클을 회복하면서 라흐마니노프는 오랫동안 그를 짓누르던 우울증을 극복해갔고, 이 과정에서 작곡한 것이 바로 회심의 역작 피아노 협주곡 2번였다. 알렉산더 질로티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작곡가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1901년 11월 9일 초연이 이루어졌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처음으로 라흐마니노프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주목받는 일선의 작곡가로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다.
라피협 2번 나오던때가 라흐마니노프 나이 27세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