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몽유도원도>의 주인공 '안평'은 누구인가
올해 상반기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또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받는 영화가 오는 11월 개봉될 예정이다. 바로 김남길, 박보검 주연의 <몽유도원도>이다. <왕사남>에서 단종과 한명회가 주인공이었다면, <몽유도원도>에서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주인공이다.
그동안 수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안평이 집중적으로 조명된 적은 거의 없었다. 비교적 생소한 안평이란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그 당시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측면에서, <몽유도원도>는 충분히 대중적인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중들은 통상적으로 수양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인물들로서 단종과 김종서, 사육신 등을 떠올리곤 한다. 안평은 이러한 범주에서 곧잘 제외됐고 잊혔다. 그런데 수양의 쿠데타인 '계유정난' 직후에 최우선적으로 제거됐던 비운의 인물이 바로 안평이었다.
수양은 친동생인 안평이 자신에게 커다란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비정한 조치를 취했다. 도대체 안평은 어떤 인물이었길래, 수양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것일까?
예술을 사랑한 왕자
안평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문학, 서예, 회화, 음악에 두루 뛰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서예에서는 당대 최고의 명필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호인 '비해당'(匪懈堂)을 차용한 문화적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즉 안평은 왕자이면서 뛰어난 예술가였고, 동시에 문화계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안평을 이해하는데 핵심적 요소다. 1447년 4월 20일, 안평은 꿈에서 복숭아꽃이 피어있는 이상향, 즉 '도원'(桃源)을 거닐었다. 그는 꿈에서 본 장면을 화가 안견에게 상세히 설명했고, 안견은 이를 그림으로 옮겼다. 안평이 얼마나 이상세계를 꿈꾸고 현실에서 구현하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안견은 불과 3일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평은 그림에 직접 글을 썼고, 신숙주, 김종서,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에게 시와 글을 받아 덧붙였다. 모두 23편의 찬문이 '몽유도원도'에 어우러졌다. 사실상 '몽유도원도'는 안평이 구축한 거대한 문화적 네트워크의 결정체였던 셈이다.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안평은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문종이 왕위에 오른 뒤, 안평은 조정에서 눈에 띄는 힘을 획득했다. 김종서, 황보인 등 문신들과 밀착했고, 당대의 뛰어난 문인들이 안평의 넓은 식견과 도량을 보고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수양이 정치적 카리스마와 무인적 기질 등을 활용해 정치적 기반을 넓혀갔다면, 안평은 문인, 예술가, 관료들과의 정서적 교류를 통해 세력을 형성해 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 간의 경쟁 관계가 나타나기도 했다.
야욕이 넘쳤던 수양은 안평의 움직임을 위협적으로 인식했다. 자신만큼 뛰어난 재능과 세력을 가진 안평이,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억누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실 안평이 수양을 뛰어넘으려 했다거나, 왕위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확증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수양은 정서적 문화적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안평의 영향력 자체가, 언젠가 자신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1453년 '계유정난' 직후 안평을 비극적인 결말로 이끄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수양은 쿠데타를 통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우선적으로 제거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안평을 노렸다. 그가 역모를 꾀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워 강화도로 유배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사했다.
안평은 정말 역모를 꾀했나
'단종실록'은 안평 역모의 근거로 자주 거론된다. 안평이 지은 일부 시가 왕위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해석됐다. 안평은 한 시에서 '햇빛'과 '밝음' 등을 표현했는데, 이것이 안평이 왕이 되어 세상을 밝히겠다는 의미로 해석된 것이다. 실제로 이런 기록 때문에 안평이 왕위에 대한 야심을 품었다고 보는 견해가 상당기간 존재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역모의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왕족이 시를 쓰면서 태양·빛·용·천하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당시 문학적 표현의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의 기록들은 안평이 제거된 이후의 정치적 상황에서 작성·정리된 기록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안평은 계유정난의 패배자였다. 반면 수양은 계유정난의 승리자였다. 이후의 기록에서 안평이 '반역자'로 묘사되는 것은, 승자의 정치적 정당화라는 측면에서 도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안평이 실제로 왕위 찬탈을 계획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문서·명령서·군사동원 기록 등도 남아 있지 않다. 즉 역모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부재한 셈이다.
20일 만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안평대군은 반역자가 아닌 계유정난의 억울한 희생자였다"며 "수양대군은 가장 강력한 정적인 안평을 제거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안평이 역모를 꾀했다는 것은 당시 세조 정권이 내린 정치적 판결일 뿐, 오늘날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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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안평= 박보검 수양=김남길 빨리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