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는 진성여왕이 위홍이 죽은 뒤 젊은 미남 두세 명을 남몰래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맡기면서 국정이 문란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거리에 국정을 비판하는 글이 붙을 정도로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유모인 부호부인과 그의 남편인 위홍 등 서너 명의 총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정을 어지럽혀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최치원의 사사위표에는 진성여왕이 사심이 없고 욕심이 적으며, 몸에 병이 많아 한가함을 좋아하고, 말해야 할 때가 된 뒤에야 말을 하고, 한번 뜻한 바는 빼앗지 못하는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최치원이 쓴 양위표나 낭혜화상탑비 등에서도 진성여왕을 성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행이 좋지 못하고 음란하기 그지없었던 진성여왕은 색욕에 빠져 수많은 미소년들을 징집하여 처소로 불러들인 뒤 음사를 즐기는 데에만 주력하여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왕에게 아첨하는 간신들의 무리가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상벌이 함부로 행해지고, 뇌물이 난무하고, 관직을 매수하는 등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왕실과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자연스레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데다가 왕의 심한 낭비로 국고가 텅텅 비어 각 지방의 호족들을 닦달하여 세금 납세를 독촉하였다. 그러자 민심은 점차 흉흉해져 여기저기서 민란과 도적이 숱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찾아보니까 뭔가 성군이다 폭군이다 갈리는거같아서 진성여왕 모티브이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