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안하영)이 “당연히 자랑스럽다”고 했던 4대 의사 집안의 증조부가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복절을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속사는 증조부에 대해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했으나 이 또한 옹색한 변명에 가까워진 입장이 됐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10일 본지에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는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6년 11월 결성된 친일 경제인·유지 단체”라며 “일제의 무단통치기 조선인 유력자들을 포섭해 ‘내선융화’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1920년 조선일보를 창간한 주체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이 전 관장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제11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역사학자다. 또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상임부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사전 편찬에도 참여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안상호가 몸담은 대정친목회의 성격은 역사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실업친목회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됐던 친일 단체’로 규정한다. 일제가 조선 민중을 무단통치에 순응시키고 ‘일선융화’를 선전하는 데 이 단체가 활용됐다. 이완용, 송병준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단체명만 보면 경제인과 지역 유지들의 친목 모임처럼 보이지만, 대정친목회는 일제가 불법통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선인 유력자들을 한데 모아 활용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안상호는 1916년 11월 29일 대정친목회가 결성될 당시 윤치호·유병필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이 전 관장은 “대정친목회에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면 친일행위를 한 것이 맞다”고 했다. 또한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행적을 다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이 전 관장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고 해서 친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에 실린 논문에 ‘최초의 근대 기업의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도 안상호가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이 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안상호는 일본인 부인과 가정을 꾸린 성공한 의사로 당시 ‘일선동화’의 모델 사례로 꼽혔다.
안상호의 당시 생활을 보여주는 발언도 국가 사료에 남아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이 인용한 1918년 12월 10일 자 매일신보에서 안상호는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지”라고 말했다.
일본인 부인 이소코도 “11년 동안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한다”며 “우리 식구들은 딴 세상에 사는 셈”이라고 했다. 우리역사넷은 안상호 가족을 일본인 공동체와 주로 교류하며 일본식 생활을 유지한 사례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