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ize | 조성경(칼럼니스트)]
배우에게는 타고난 분위기가 있다. 뛰어난 연기력으로도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게 고유의 결이다. tvN '내일도 출근!'(극본 김경민, 연출 조은솔)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현은 그 결이 누구보다 선명한 배우다. 우아한 매력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품격을 느끼게 한다. 박지현이라는 배우의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특별한 장점이 데뷔 초에는 양날의 검이 됐을지도 모른다. 성숙한 분위기 때문에 때로는 캐스팅의 폭을 좁혔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또래 배우들이 천진하고 발랄한 캐릭터를 맡을 때 박지현은 차분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풋풋한 첫사랑의 주인공이기보다는 갈등을 품은 복잡한 감정선의 캐릭터들이 많았다.
그러나 박지현 특유의 고급스러운 우아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경쟁력이었다. 상류층의 절제된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을 도맡더니 어느덧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원본 이미지 보기사진제공=tvN
그 신호탄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에서 연기한 섬세하고 예민한 첼리스트 이정경 역이었고, 쐐기를 박은 건 '재벌집 막내아들'(2022)의 모현민 역이었다. 박지현은 모현민을 통해 재벌가 며느리의 품격과 야망을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값비싼 의상보다 자신이 가진 기품 자체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래서 모현민은 지금도 박지현을 대표하는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최근에는 필모그래피가 더욱 다채로워졌다. 영화 '히든 페이스'(2024)에서는 욕망을 좇는 즉흥적인 캐릭터 미주 역으로 과감하게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덕분에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며 배우로서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은중과 상연'(2025)에서는 김고은과 팽팽한 심리전을 펼치며 팬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어린 시절 절친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듯하다가도 등을 돌리고, 신뢰와 불신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흡인력 있게 표현하며 수없이 긴장하게 했다. 두 배우가 만들어낸 치밀한 감정의 케미스트리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다.
원본 이미지 보기사진제공=tvN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박지현은 우아한 이미지에 더해 장르마다 연기톤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는 배우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축적된 결과로 현재 '내일도 출근!'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되어 연기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박지현이 '내일도 출근!'에서 그리는 차지윤 역은 그 어느 때보다 담백한 캐릭터다. 하지만 여느 때 못지않은 밀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매력 중에서 성숙미는 살포시 덜어내고 깊이만 그대로 담은 덕분이다. 현실감 있는 스타일링과 힘을 뺀 연기로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동시에 내면의 미세한 변화는 편안하게 표현하는 연기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과장하지 않은 연기로 풀어내며 직장인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차지윤은 치열하게 일해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커리어와 대인관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현대의 직장 여성이다. 누구보다 일을 잘하지만 완벽하지는 않고, 성공을 꿈꾸면서도 연애와 사랑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원본 이미지 보기사진제공=tvN
일도, 사랑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차지윤은 자연스럽게 2030 세대가 닮고 싶어 하는 직장 여성의 얼굴이 되고 있다. 극중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퇴근하는 '퇴근 요정'의 면모까지 보여주며 현실적인 판타지도 완성하고 있다. 많은 여성팬들이 차지윤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동시에 동경하는 이유다.
(중략)
방송 전만 해도 웹툰 원작 팬들 사이에서 캐스팅을 둘러싼 우려도 있었다. 원작 이미지와 배우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오히려 "이 캐릭터는 박지현이기에 완성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캐릭터를 현실로 끌어내린 박지현의 설득력 있는 연기가 가장 큰 이유다.
박지현이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우아미를 뛰어넘어 지금 '내일도 출근!' 속 차지윤의 로맨스도, 커리어도 개연성을 얻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박지현은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더 큰 변화와 확장의 가능성을 입증하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박지현을 지켜보면 좋은 배우란 자신의 이미지를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작품에서 원하는 얼굴로 진화시키는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내일도 출근!'은 이제 곧 종영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한층 더 확장된 배우 박지현의 존재감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https://naver.me/Fz856W3i
칼럼 좋아서 가져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