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중국집 주방장, 아파트 주민대표. 얼핏 보면 동네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중년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양복과 앞치마 뒤에 숨겨둔 과거를 꺼내 드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시청자들을 찾는다.
한동안 청춘 로맨스와 젊은 주인공이 드라마 시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회사와 가정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온 아저씨들이 안방극장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평범함 뒤에 봉인해 둔 능력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응징하는 이른바 ‘K중년’의 반전 서사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장 선두에 선 작품은 금토드라마 최강자 SBS ‘김부장’이다. 지난 18일 방송된 8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수도권 23.6%(전국 23.1%), 순간 최고 26.2%를 기록하며 또 한 번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22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이 발표한 글로벌 톱10에 따르면 ‘김부장’은 비영어 TV쇼 부문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과거 중년 서사가 tvN ‘나의 아저씨’(2018),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2025)처럼 팍팍한 현실의 애환에 집중했다면, 최근 경향은 대리 만족을 주는 판타지와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서사에 방점을 찍는다. 전직 특수요원인 김 부장(소지섭)이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아가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정체를 드러내고 통쾌한 싸움을 벌이는 식이다. 여기에 친구의 딸을 위해 망설임 없이 목숨을 거는 ‘아빠 어벤저스’ 성한수(최대훈)와 박진철(윤경호)의 끈끈한 우정까지 더해져 감동을 준다.

앞서 MBC ‘오십프로’에서는 중국집 주방장과 회사원, 편의점 사장으로 살아가는 세 중년 남성(신하균·오정세·허성태)이 사실은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북한 특수공작원, 조직폭력배 출신이었다는 반전 설정으로 웃음과 액션을 동시에 선사했다. 2주 전부터 방영된 JTBC ‘아파트’도 전직 조폭 보스(지성)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선거에 뛰어들어 각종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로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흥행 배경에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가 자리한다. ‘김부장’과 역시 중년 아저씨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참교육’은 웹툰 원작 특유의 속도감을 적극 살렸다. 복잡한 성장 서사를 길게 쌓기보다 ‘힘을 숨긴 진짜 강자’, 이른바 ‘힘숨찐’ 설정을 앞세워 초반부터 강렬한 액션을 펼친다. ‘김부장’을 비롯한 최근 시리즈들은 기존 지상파 드라마의 16부작 관행 대신 8~10부작으로 압축해 회차마다 빠른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TV 시청층의 변화 역시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보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시청층을 겨냥해 중년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중년들의 공조 이유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다. ‘김부장’은 딸을 지키려는 부성애, ‘참교육’은 세상을 떠난 연인의 뜻을 잇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 서사의 원동력이 되면서 초인적인 액션에도 현실적인 공감이 더해진다. 학교폭력과 범죄, 제도의 허점 등을 ‘책임감 있는 어른’이 직접 해결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더욱 통쾌한 판타지로 작동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K중년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오는 31일 처음 방송되는 MBC ‘유부녀 킬러’는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으로, 육아와 집안일에 치이는 평범한 워킹맘 유보나(공효진)가 사실은 전설의 저격수 ‘킹피셔’라는 반전 설정을 내세운다. JTBC에서 방영 예정인 ‘골드디거’는 성공한 중년 여성(김희애)이 가족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사랑과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리며 여성 서사의 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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