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스퀘어 [씨네21] 오진우 평론가의 '호프' 비평
91 1
2026.07.24 22:24
91 1

gnwAam



무작정 달린다고만 해서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제동이 걸렸을 때, 운동성이 체감되기도 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함께 탄 것도 아니고 스크린만 보고 있는데도 앞으로 쏠리는 듯한 관성을 느낄 때가 있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액션 시네마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펼치며 극한으로 치닫는 실험영화 같다. 그러는 와중에 속도를 제어하며 무언가를 강조할 때가 있다. 나홍진은 영화의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무엇을 바라보는 것일까.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호프>를 지지하지만, 눈엣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던 한 장면에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외계인의 눈물이다. 슬로모션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외계인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곳에 경찰관 범석(황정민)이 도착한다. 외계인이 훑고 간 자리를 범석이 따라간다. 뻥 뚫린 공백의 이미지는 외계인이 등장하기 전 우리가 마주하는 외계인의 흔적이자 강렬한 스펙터클이다. 인물들은 그곳으로 들어가고, 응시하고, 추격한다. <호프>는 공백 혹은 공허를 메꾸기보다는 그곳을 향해 매섭게 질주한다. <호프>는 온갖 상징 해석이 난무했던 <곡성>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해 오히려 <추격자>로 돌아온 모습이다. 그의 영화는 이해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면서 시작했다. <추격자>는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살인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황해>는 구남(하정우)이 연변에서 타지인 한국으로 오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곡성>에서는 마을에 악의 존재를 끌어들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갔고, <호프>에서의 외계인은 나홍진이 택할 수 있는 최고의 미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갈수록 영화의 규모는 커졌지만, <호프>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그간 나홍진 필모그래피에서 봤던 것들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외계인의 눈물은 가속화되는 <호프>의 운동성의 기저에 있는 무언가가 함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순경인 성애(정호연)가 마을에 도착하면서 도망에서 추격으로 전세가 역전된다. 성애는 미친 듯이 달리던 외계인을 격추시켜 다리 하나를 잃게 만들며 외계인의 속도를 줄이는 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추격하는 경찰차와 도망가는 외계인의 속도는 무척 빠르다. 엄청난 속도 속에서도 범석은 쩔뚝거리는 외계인의 눈물을 본다. 영화는 범석의 시점숏으로 외계인이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 순간 확연히 드러나는 CGI의 조악함은 차치하자. 이 슬로모션을 보며 궁금했던 것은 연상호 영화처럼 <호프>도 신파적으로 급격히 전환되는지였다. 그것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빠른 속도로 경찰차가 달리는 와중에 범석이 외계인의 눈물을 볼 수 있는 동체시력을 지녔는지였다. 어찌 보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순간이자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호프>에서 인간의 능력은 외계인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때때로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때가 있다. 영화적 허용처럼 보이는 이 눈물 장면은 범석이 외계인에게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다. 이후 외계인을 추적하고 수사하는 데 있어서 주요 동력이 되는 것도 이 장면 때문이다. 비록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지만 이 장면에서 비롯된 휴머니즘이 범석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피칠갑과 살인이 난무하는 나홍진 영화에서도 인물들이 행동에 박차를 가하거나 주저하는 순간은 이러한 휴머니즘이 발동할 때다. 나홍진은 이해할 수 없는 상대 앞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면모를 그렸는지도 모른다. <추격자>에서 중호(김윤석)는 전직 형사로서 몸에 밴 직감으로 살인자를 추격해나가지만,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지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당위성은 없었다. 미진(서영희)이 사라지고 그녀의 집에 남겨진 어린 딸을 본 중호는 연민과 함께 살인자를 추격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낀다. 이와 비슷하게 <호프>에서도 범석은 외계인의 눈물을 본 뒤 어린 외계인을 잡아 냉동창고에 보관했던 청년의 비인간적인 행실에 크게 분노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 정도로 수사를 마무리하려 든다. 곧 숲에 더 많은 외계인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이마저도 잠깐의 감상주의처럼 휘발된다. 앞서 살펴본 슬로모션은 파괴적인 외계인으로부터 인간적인 면모를 끌어내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단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왠지 나홍진 감독이 쳐놓은 덫 같다. 범석과 일행은 두 외계인의 비슷한 신체 구조를 보고 부모-자식의 관계라고 쉽게 결론을 낸다. 하지만 그마저도 틀린 추론이었다. 눈물은 그저 눈물이었을 뿐. 이렇듯 의미화 작업은 <호프>에서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호프>는 직관적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이고, 따라서 직관적으로 체험하고 싶은 영화다.


속도의 비대칭을 슬로모션으로 극복하고자 했다면, 숲에서 시작해 도로를 질주하는 영화 막판의 추격 시퀀스에서는 각각의 존재들이 내는 속도의 비대칭성이 묘하게 더욱 심해진다. 영화는 그 비대칭성을 그대로 둔다. 개연성이 떨어져 의문이 들지만, 나홍진이 추구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속도를 고집한 것이라고 보인다. 외계인 마베이요, 경찰차, 말이 함께 달린다. 단순히 경주라고 치면 누가 봐도 마베이요가 기계와 동물을 추월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질 못한다. 성기(조인성)는 말을 타고 마베이요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말이 등장하면서 속도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마베이요는 말을 따라잡지 못한다. 성기는 이렇게 도망치기 전에 마베이요와 일대일로 대적한 사람이다. 마베이요가 그를 사정없이 내팽개치고 던져도 성기는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난다. 지구인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외계인에게 으름장을 놓았던 성기다. 눈물을 보고 느꼈던 인간애보다는 성기처럼 악착같이 살아남겠다는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을 나홍진은 재난 상황에서 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마지막 추격 시퀀스에서 하나둘 소거되며 마베이요를 격추하는 장면은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성기는 말에서 경찰차로 옮겨 타타고, 총으로 외계인을 공격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승리에 취해 열광하다가 그는 표지판에 맞고 차에서 떨어져나간다. 그의 발을 붙잡고 있던 범석의 손에는 성기의 부츠가 있고, 성애의 얼굴에는 성기의 피가 뿌려진다. 흔적을 남긴 채 그는 사라진다. 동시에 하늘에선 함선이 추락하여 산 하나를 집어삼키며 마을의 상황은 최악으로 향한다.


마지막 추격 시퀀스는 CGI 이미지와 자동차라는 기계 그리고 동물과 인간들이 영화라는 장에서 각축을 벌이며 달리는 모습처럼도 보인다. 막판에는 경찰차까지 멈추고 사람들은 뛰기 시작한다. 서로 속도 경쟁을 벌이다 영화가 최종적으로 남긴 것은 인간의 육체성이다. 뛰어가는 사람들보다 느린 걸음으로 오는 이가 있다. 성기는 죽지 않고 나뭇가지를 목발 삼아 쩔뚝대며 오고 있다. 영화 초반 발 하나를 잃고 쩔뚝대는 외계인과 대구를 이룬다. 하지만 그에겐 눈물 따윈 없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모든 것을 제압할 기세로 나아가는 인간이 있다. 나홍진은 지금 영화에 그런 인물과 배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10392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사포렐X더쿠] 씻고 나서도 촉촉한 촉촉보습 여성청결제 체험 이벤트 102 07.23 33,035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07.13 147,80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404,354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813,28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751,799
공지 잡담 발가락으로 앓든 사소한 뭘로 앓든ㅋㅋ 앓으라고 있는 방인데 좀 놔둬 6 25.09.11 582,763
공지 잡담 카테 달고 눈치 보지말고 달려 그걸로 눈치주거나 마플 생겨도 화제성 챙겨주는구나 하고 달려 8 25.05.17 1,167,784
공지 잡담 카테 달고 나 오늘 뭐 먹었다 뭐했다 이런 글도 난 쓰는뎅... 14 25.05.17 1,241,158
공지 스퀘어 차기작 2개 이상인 배우들 정리 (5/22 ver.) 163 25.02.04 1,836,604
공지 알림/결과 ─────── ⋆⋅ 2026 드라마 라인업 ⋅⋆ ─────── 125 24.02.08 4,670,504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라마 시청 가능 플랫폼 현황 (1971~2014년 / 2023.03.25 update) 16 22.12.07 5,594,604
공지 알림/결과 ︎︎🪄◝✨ (੭ ᐕ)੭*⁾⁾ 뎡 배 카 테 진 입 문 (~˘▾˘)ノ =͟͟͞🎟 175 22.03.12 7,182,532
공지 알림/결과 블루레이&디비디 Q&A 총정리 (21.04.26.) 11 21.04.26 5,749,889
공지 알림/결과 OTT 플랫폼 한드 목록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티빙) -2022.05.09 238 20.10.01 5,844,343
공지 알림/결과 만능 남여주 나이별 정리 310 19.02.22 5,989,956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영배방(국내 드라마 / 영화/ 배우 및 연예계 토크방 : 드영배) 62 15.04.06 6,145,695
모든 공지 확인하기()
16007938 잡담 근데 외계인들 불쌍하지 않냐 01:20 1
16007937 잡담 호프 보면 다들 말 존나 많아지나봄 1 01:19 18
16007936 잡담 스김부장 금이빨 어디선가 감자 삶고 있을 거 같은데 01:17 17
16007935 잡담 김영광 트리거 때 문백이는 참지않지 이거 안 하면 안 되냐고 했던데ㅋㅋ 01:16 14
16007934 잡담 영방 지금 개재밌음 2 01:13 217
16007933 잡담 스김부장 흥하길래 가벼운 맘으로 찍먹했다가 이장면부터 좀 진지하게 정주행하게된것같음ㅋㅋㅋ 1 01:12 94
16007932 잡담 호프 조인성 마지막에 단군이 ㅅㅍ 3 01:12 126
16007931 잡담 아 그러고보니까 제목이 호프인게 1 01:11 74
16007930 잡담 호프 나홍진=낳은정 단군=기른정이라는거 개웃기네 1 01:10 57
16007929 잡담 피지컬은...나이들수록 더 강점이 되는 것 같음 1 01:10 133
16007928 잡담 영화 예매했는데 좀 이상해 3 01:05 326
16007927 잡담 호프 영방 망상 재밋음 ㅅㅍ 2 01:05 209
16007926 잡담 넷트리거 1주년 문백이 짤털 2 01:05 39
16007925 잡담 나 독방에 사람 아무도없어서 걍 내 아카이브로 쓰고있었는데... 01:04 84
16007924 잡담 동궁 📢 우리 온에어 짤드컵 진행중 📢 2 01:04 27
16007923 잡담 킬쇼 태국은 ㄹㅇ 어쩌다간거지 1 01:03 38
16007922 잡담 스김부장 9화까지 본 소감 2 01:03 186
16007921 잡담 박지훈 차기작 얼렁 가져와.. 1 01:02 77
16007920 잡담 검사실의제안 촬영지 찾아봤어 4 01:02 93
16007919 잡담 왕사남 장항준이 이준혁을 캐스팅한 이유 1 01:01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