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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씨네21] 듀나 작가의 '호프'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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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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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서 자주 한 이야기인데, <씨네21>에서는 한 적이 없으니 한번 더 이야기하겠다. 1978년에 MBC에서는 <엑스 수색대>라는 SF 어린이 드라마를 방영했다. 지금은 환갑을 넘긴 중견배우가 된 손창민이 초능력을 얻게 된 별똥이라는 어린이로 나와 친구들과 함께 알파성에서 온 사악한 외계인들을 무찔렀다.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인터넷을 뒤져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손창민이 와칸다 포에버 자세를 취하면 손목에서 광선이 나오는 건 다들 기억하는 것 같던데. 나는 하나 더 기억이 난다. 거기엔 착한 외계인도 나오고 나쁜 외계인도 나왔는데, 모두 분장한 한국 아저씨들이 연기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그래도 저건 아니다. 외계인은 백인이 연기해야지.”


나름 귀납적인 결론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텔레비전으로 본 외계인들은 대부분 백인 남자들이 연기했으니까. 나는 이미 <스타트렉>의 미스터 스포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전에 린다 카터가 나오는 <원더우먼> 시리즈에서 백발의 팀 오코너가 외계인 사절로 나오는 것도 봤던 것이다. 주인공은 별똥이란 이름의 한국인 남자애일 수 있어. 하지만 외계인이 한국인일 수는 없잖아. 여기까지는 그럴싸한데, 이 논리가 ‘백인이 연기해야지’로 이어진 건 지금 생각해도 수치스럽다.


나는 이 시기를 끊임없이 돌이켜본다. 아무래도 서양 사람들이 만든 허구의 세계들로 구성된 장르 안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나름 자존심이 있는 한국어 작가로서, 내 상상력의 영역에서 이 장르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분장한 백인들을 몰아내는 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난 이런 것에 무심한 작품들을 보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난 이번 <슈퍼걸>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슈퍼걸이 여행하는 우주가 기껏해야 뉴욕 정도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밖에 갖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외계인들이 사는 세계는 최소한 서울보다는 덜 뉴욕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나홍진의 <호프>에서 신경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분장한 백인’의 이미지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의 외계인은 분장한 백인이 아니다. 대부분 CG로 그려지고 목소리와 모션캡처에 참여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모두 백인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장한 백인’의 이미지는 여전히 남는다. 특히 가장 유명한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의 캐릭터가 등장할 때 그렇다. 많은 신체적인 변형을 넣긴 했지만 이들은 그냥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처럼 보인다. 여기에 어떤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했으니 그 사람들의 얼굴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분장한 백인’이다. 칸영화제 상영 때부터 이 영화의 CG 질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문제는 CG 자체가 아니라 인간, 그것도 백인의 얼굴을 그대로 따온 외계인의 디자인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에서는 관객들이 불쾌한 골짜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패스벤더 외계인이 네발 짐승으로 변해 한국인 주인공들을 공격하는 부분을 보라. 같은 수준의 CG지만 어색함은 확 줄어든다.


관객들이 후반부에서 몰입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건 모두가 예상했어야 했다. 특히 이들이 자막을 통한 대화로 자기들의 상황을 설명할 때는. 두 외계인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구식 스페이스오페라 주인공들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모두 심각하지만 관객들 대부분은 장르의 클리셰를 본다. 그리고 그들은 백인이다. 마블이나 디시 영화들에서도 그러지 않냐고. 그렇긴 한데, 그러는 게 그들의 장점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린 기준점을 그들보다 높게 두고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영화의 액션이 다양한 장르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서부극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 외계인들의 백인스러움은 우리 같은 한국인 관객들에겐 점점 이상하게 다가온다. 영화 대부분 한국인 캐릭터들이 내지르는 대사 상당 부분이 내용이 거의 없는 음향효과이고, 그렇게 똑똑한 대화가 들리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영화에서 한국인들은 괴성을 질러대는 야만인처럼 보이고, 그 전까지 인간을 닮은 짐승처럼 보였던 두 ‘백인’ 외계인들이 지적이고 말이 되는 대사를 ‘자막을 통해’ 전달한다면 우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래도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호포 마을은 백인들의 습격을 받은 미국 선주민의 마을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이게 의도인가? 이건 소위 ‘인디언’ 관점에서 본 서부극인가? 그렇다면 이 비유는 미군이 주둔하는 1980년대 냉전시대 분단국가인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어떻게 읽혀야 할까?


이 질문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한다. 암만 생각해도 이 영화에 (영화를 보고 난 몇몇 관객들이 비교하는 (<바쿠라우>처럼) 어떤 깊은 주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호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가 아무 생각을 안 할 때이다. 영화는 무거운 물건들이 야구공처럼 날아다니다 충돌하고 자동차 같은 탈것들이 거대한 외계인과 몸싸움을 하거나 속도전을 벌일 때 가장 재미있다. 나는 <바쿠라우>보다는 끊임없는 액션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보다 옛날 영화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더 먼저 떠올랐다.

조금 더 생각이 들어가는 부분은 이런 할리우드영화 속 설정 속에 들어간 한국인들을 묘사할 때이다. 많은 관객들이 대사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천박하고 단순하지만 그 정도까지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대사의 폭은 지나치게 좁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장르물을 쓰는 작가들 상당수가 자연스러운 대사를 쓰겠다며 대사를 배배 꼬고 장황하게 늘리는데, 그거 다 쓸데없는 짓이다. <호프>는 생각 없이 단순해지는 길을 택했고 그건 대체로 옳았다. 그래도 한국 SF나 판타지 장르 영화 특유의 쑥스러워하고 어색해하는 부분은 남아 있는데, 그것까지 지적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몇십년 동안 보아왔던 동네 총각이 갑자기 서부극 주인공처럼 말을 잘 탄다면 “쟤가 왜 저렇게 말을 잘 타?” 같은 소리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는가. 나올 법한 말까지 굳이 검열해야 할까.


<호프>의 속편이 정말로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온다면 아무래도 이 영화가 ‘생각’을 할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사실 영화의 제목도 지구인보다는 외계인 관점에서 지은 것이니 뭐라도 하긴 해야 한다. 결과물이 나온다면 아마 레이 브래드버리가 원안을 쓰고 잭 아놀드가 감독한 1953년 고전 <아웃 스페이스>(It Came from Outer Space) 같은 길을 따를 것 같다. 그 영화도 지구로 추락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오해와 갈등을 다룬다. 대충 스토리도 상상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망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모든 ‘지적인 생각’이 우리가 이번 영화 후반에 본 그 자막을 통한 대사와 같은 스타일에 의존하고 이번 영화의 장점들이 그 안에 섞여 들어간다면? 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이 모든 걸 예측한 계획과 계산이 있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10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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