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10년만에 돌아온 나홍진 감독이 외계에서 온 험한 것과 156분의 추격전을 펼쳐보였다. 극장에서 즐겨 마땅한 스펙터클이다. 단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호프'가 6일 오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지난 5월 제 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를 갖고 주목받은 '호프'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자리. 700억원으로 알려진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화제작에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넘친다. 다 먹을 때까지 쫄깃하다. 물론 나홍진의 잔칫집에서 받아들 메뉴가 만만치는 않다.
비무장지대의 항구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은 동네 청년들에게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달려간 마을은 이미 선혈 낭자한 폐허가 되어 있고, 정신 못 차리던 범석은 속수무책 쫓기는 신세가 된다. 뒤늦게 합류한 호포항 순경 성애(정호연)와 추격에 나선 가운데, 사냥꾼 성기(조인성)는 동료들과 산속을 뒤진다. 그들은 이윽고 외계에서 온 험한 것을 마주한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란 틀에서 '호프'를 바라보다간 큰코다친다. '호프'는 블록버스터의 스케일에 강렬한 볼거리, 이야기를 더한 대작이자 장르물이다. 널찍한 화면과 풍성한 사운드로 즐겨 마땅하다. '호프'는 '곡성' 이전 나홍진이 '추격자'를 만들었단 걸 일깨우는 집요한 액션물이기도 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적을 향해 질주한다. 체급부터 다른 압도적 적과 벌이는 추격 액션은 예상을 뒤엎는 전복의 연속이다. 긴 러닝타임이 지루할 새 없이 긴장감과 속도감이 내내 유지된다.
황해'와 '곡성'에서 실감한 감독의 인장 또한 여전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뒤바뀌고, 애도할 틈 없는 죽음과 피칠갑이 이어지며, 안도하는 순간 치명타가 날아온다. 무겁게 깔린 불안과 비릿한 냄새가 느껴지는 듯한 날것의 에너지가 공존한다. 동시에 미지의 험한 것을 쫓으며 외계 SF와 괴수물, 피칠갑 슬래셔 호러와 블랙코미디를 능수능란하게 오간다. 경험한 적 없는 재미다.
홀린 듯 정신을 차려보면, 이곳은 휴대폰따위 없는 1980년대 즈음이고, 쏟아져 나온 총포 액션과 이국적인 숲의 풍경은 한국인지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액션 대작답게 지리한 설명보다 시원하게 보여주는 게 '호프'의 방식이다. 감독은 대놓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멱살잡고 엑셀을 밟아보인다.
다만 영화 3분의 1이 훌쩍 지나 등장하는 인간형 외계 생명체의 비주얼, 시각효과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만하다. 그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에 대한 인상이 나뉠 듯하다.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할리우드 톱스타를 기용해 모션 캡처, 페이스 캡처로 캐릭터를 완성했는데 존재감이 크지 않다.
반면 세 주인공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의 활약은 단연 압권이다. 나홍진 감독과 첫 호흡을 맞췄던 '곡성'에서 피도 눈물도 없던 무속인으로 스산함을 자아냈던 황정민은 경찰 범석으로 분했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주춤거리고 우왕좌왕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조인성은 마을 청년들의 리더인 사냥꾼 성기 역을 맡았다. 비주얼을 포기한 듯한 등장은 후반부 입 떡 벌어지는 활약을 위한 빌드업이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며 벌이는 장총 액션은 백미.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호연은 박력 넘치는 등장부터 제 몫을 다해낸 액션 히로인이다. 총기 액션부터 직접 소화한 카체이싱까지 제대로 볼맛이 난다. '오징어게임'의 그 신데렐라 스토리가 충분히 이유있는 것이었음을 입증해낸다.
임현식, 음문석, 이상희 등 신스틸러도 두루 돋보인다.
'왕과 사는 남자'의 기록적 흥행 이후 되살아난 극장가 불씨를 '호프'가 이어받을 것인가. 엄청난 제작비, 그로 인한 손익분기점은 부담이지만, 개봉을 열흘 앞두고부터 예매율 정상에 오를 만큼 예비 관객의 관심이 높다. 대작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면서 끝끝내 비껴 간 지점도 상당한데, 야심 가득한 결과물임엔 분명하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56분. 160분이었던 칸 버전보다 4분을 줄여 속도감과 긴장감을 더했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77/0000616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