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곡성’ 이후 10년 가까이 준비한 프로젝트답게, 나홍진 감독은 자신이 펼치고 싶은 세계를 ‘호프’에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괴물 영화와 재난 영화, SF와 크리처 무비, 전쟁 영화와 인간에 대한 철학까지. 나 감독은 자신이 구축해온 장르적 문법을 ‘호프’에 집약한다. 장르적 야심도, 스케일도 압도적이다. 다만 그 거대한 세계가 즉각적인 체험 끝에 무엇을 남기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을 초토화하면서 시작된다. 소를 비롯해 주민들이 처참하게 죽고, 터전은 쑥대밭이 된다.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한다. 경찰과 주민, 사냥꾼들이 하나둘 총을 들고 나서고,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이어진다.
초반부는 단연 압권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정체는 무엇인지,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영화는 조금씩 퍼즐을 맞춰가며 관객의 호기심을 끝까지 붙든다. 긴장감도 좀처럼 느슨해지지 않는다. 나 감독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압도적인 미장센 역시 극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개봉 전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가운데 가장 기대를 모았던 작품인 만큼 해외 평단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외계 생명체 디자인과 CG를 두고는 아쉽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문제는 CG가 아니었다. 기대치를 낮추고 본 덕분인지 시각효과는 생각보다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일부 디자인은 오히려 인상적이었고, 압도적인 스케일은 스크린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적어도 볼거리만큼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아쉬움은 그 거대한 세계가 도달한 철학이다.
단순한 괴물이었던 외계인은 중반부 이후로 저마다의 사연과 목적을 지닌 또 다른 생명체로 그려진다. 눈물도 흘리고 가족도 있다. 인간 역시 살아남기 위해 잔혹한 선택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한다. 그 과정에서 “괴물은 누구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 장면이 여러 등장한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마을을 초토화한 상황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하려는 인간의 행동은 사실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게다가 생사를 건 공포 앞에서 흔들리는 건 비단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공유하는 본능이다. 반면 외계인의 폭력은 훨씬 직접적이고 압도적이어서 단편적 사연으로 상쇄시키기 어렵다.
인간과 외계인을 나란히 세우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질문도, 새로운 통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장르의 믹스를 통해 이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지 의구심이 더 커진다. 영화가 의도한 ‘인간도 괴물’ ‘괴물도 그럴만한 사정이’이라는 등식은 그래서 끝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액션은 거침없다. 총성과 폭발, 추격이 쉼 없이 이어지고 화면은 끝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다만 대사보다 액션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오롯이 닿지 않는다. 액션이 향하는 철학은 역시나 선명하지 않다. 절반의 성공이다.
유머도 마찬가지다. 개봉 전부터 ‘나홍진 영화 중 가장 웃기다’는 평가가 따라붙었지만 국내 관객에게는 익숙한 웃음이다. 황정민 특유의 생활 연기와 걸쭉한 사투리, 주민들과의 티키타카, 극한의 상황에서 훅훅 치고 들어오는 구수한 개그와 숨쉬듯 나오는 욕설까지. 익숙한 문법이다. 대사의 맛은 평범하고 반복적이며 때론 직접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엔딩이다.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미지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초반을 지배했던 ‘알 수 없음’의 공포는 그 베일을 걷어내는 순간 ‘진부하고도 난해한 떡밥’으로 귀결된다.(3부작으로 기획됐다는 설도 있었으나, 베급사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었다.)
사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믿음’ 이런 질문은 이미 장르영화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화두다. 중요한 건 질문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 어떻게 밀고 나가 흥미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느냐다.
‘호프’는 외계인이라는 거대한 장치와 압도적인 스케일을 동원하지만, 그 끝에서 도달한 메시지는 의외로 익숙했다. 즉각적인 도파민은 폭주하지만, 오래 남을 담론은 의외로 미약하다. 수백억 원의 세계를 펼쳐 놓고도 영화가 들려주는 답은 이미 장르영화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윤리적 명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게 끝내 아쉽다.
초반 미스터리와 긴장감, 추격전이 만들어내는 몰입감, 압도적인 미장센이 강점인 흥미로운 장르영화지만, ‘그저 느끼고 체험하는 영화’로 만족하기엔 너무나 좋고 비싸고 많은 것들을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그만큼 나홍진이라는 이름이 짊어진 무게도 컸으니까. 추신. 돈값은 한다. 기대값에는 못 미치지만.
오는 7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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