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스퀘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비평의 온도] 훔쳐보는 자의 원죄 — 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으로 보는 관음의 계보
116 4
2026.07.01 00:17
116 4




- 맨 끝줄에서 바라본 욕망의 시선
- 희곡에서 스크린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 관음(觀淫), 인류 가장 오래된 충동
- 관음이 서사를 삼킬 때, 서사를 잃은 시대
-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바라본 대가

  • 박철웅 (에디터)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연서대학교 기초작문 강의실. 교탁 앞에 선 허문오(최민식)의 표정은 굳어 있다. 등단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두 번째 소설을 내지 못한 작가다. 학생들의 작문 과제는 그에게 매주 되풀이되는 수모다. 빨간 펜이 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동안 문학은 풀지 못한 숙제이자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첫 소설은 첫사랑이자 끝사랑인 안은주(김윤진)를 향한 순애보였다. 그 사랑을 빼앗아 갔다고 믿는 대학 동기 김수훈(허준호)은 인기작가가 됐다. 가진 적 없는 것을 잃었다고 믿는 마음. 실재하지 않는 소유와 성취를 향한 본전 심리. 허문오는 그 무게를 짊어진 채 20년을 견뎌 왔다.

그 앞에 이강(최현욱)이 나타난다.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전자공학과 학생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첫 문장을 인용한 강의에서 교수의 오류를 정확히 짚어낸 소년이었다. 그의 과제에는 같은 강의를 듣는 세윤(이진우)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친구의 가정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내밀한 균열을 파고드는 서사가 서늘하게 담겨 있다. 중요한 변곡점마다 '(다음에 계속 …)'으로 끝나는 낚시 같은 구성. 허문오는 그 낚시에 걸린다. 다음 이야기를 가져오라고 재촉하는 교수. 그것이 창작 지도인지, 관음을 향한 공모인지 허문오 자신도 알지 못한다.

맨 끝줄이라는 자리에 대해 이강은 말한다.

맨 끝줄은 사람들 눈에 안 띄면서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잖아요.

그곳은 12년 전 이강과 허문오가 처음 마주한 자리이자, 허문오의 끝나지 않은 짝사랑이 머무는 자리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김규태, 2026)은 이 위험한 응시의 역학을 문학이라는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겹치는 액자 구조 속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소년의 문장에 매혹된 스승은 그것이 살아 있는 타인의 삶을 옥죄는 파괴적 스토킹일지 모른다는 경고를 외면한 채, 서사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야기를 욕망하는 자의 운명

이 매혹적이면서도 유해한 플롯의 뿌리는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가 2000년 발표한 동명 희곡에 닿아 있다. 출발은 소박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한 마요르가가 학생을 가르치던 시절, 한 학생이 시험지에 풀이 대신 공부하지 못한 사연을 적어 낸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 작은 일탈에서 그는 창작의 윤리와 예술의 경계를 묻는 현대의 텍스트를 길어 올렸다. 국내에서는 2015년 예술의전당 초연 이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연출가 김동현은 시간과 장소, 의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무대 언어로 희곡이 품은 철학적 긴장을 밀도 있게 살려냈다.

희곡이 처음 스크린으로 옮겨진 작품은 프랑수아 오종(François Ozon) 감독의 〈인 더 하우스〉(Dans la maison, 2012)였다. 오종은 소년의 글이 이어질수록 교사의 서재와 관찰 대상인 집을 교묘하게 겹쳐 놓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끝내 분간할 수 없는 탐미적이면서도 냉소적인 미장센이다.

이야기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지, 집이 이야기 속으로 스며드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은 오종 특유의 연출이었다. 이 영화는 2012년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조개상과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다. 이야기가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감각적으로 입증한 각색의 모범으로도 평가받는다.

▲ 2019년 세 번째 무대에 올린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예술의전당

▲ 2019년 세 번째 무대에 올린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예술의전당

2026년 한국 넷플릭스가 이 오래된 희곡을 다시 불러낸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의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과 관찰 예능의 범람에 있다. 타인의 사생활을 잘라내고 편집해 소비하는 일상. 이 시대를 겨냥하기에 이 작품만큼 적확한 원작은 드물다.

드라마는 여기에 여러 층의 문학적 모티프를 포개 놓는다. 우선 두 사람의 관계는 파우스트적 거래의 현대적 변주다. 허문오는 이강에게서 자신이 끝내 닿지 못한 천재성의 불꽃을 본다. 이강은 매혹적인 문장과 서사라는 금단의 열매를 들고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다. 허문오는 그 서사를 탐닉하는 대가로 도덕적 판단과 지식인의 양심을 저당 잡힌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지?"라며 소년을 재촉하는 그의 맹목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을 잡고 파멸을 향해 달려간 파우스트의 질주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이 관계는 유령작가(Ghostwriter)의 잔혹극이기도 하다. 허문오는 이강의 글을 교정하며 자신이 서사의 제어권을 쥔 창조주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소년이 구축한 허구의 세계에 종속된 유령이다. 창작자가 피조물에게 지배당하고, 비평가가 텍스트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 전도는 문학적 작가성(Authorship)을 정면으로 묻는다. 진정 이야기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펜을 쥔 소년인가. 아니면 그 문장을 욕망하다 삶을 잠식당하는 늙은 독자인가.

 

창문 너머를 향한 시선의 죄

허문오가 이강의 글에 집착한 이유는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도, 제자를 향한 시기나 질투도 아니었다. 타인의 가장 내밀한 삶을 합법적으로 훔쳐보고 싶은 병리적 욕망이었다. 예술 비평과 문학 지도라는 방패 뒤에 숨어 그는 소년의 눈을 빌려 담장 너머의 삶을 유린한다. 이 충동에는 인류가 오래 품어 온 원형이 숨어 있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 영주 레오프릭의 아내 고디바(Godiva) 부인은 남편이 백성에게 부과한 가혹한 세금을 거두어 달라고 거듭 간청한다. 지친 영주는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달리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고디바 부인은 그 약속을 받아들인다. 모든 시민에게 집 안에 머물며 창문을 닫으라는 포고를 내린 뒤, 긴 머리카락만으로 몸을 가리고 말을 몬다. 시민들은 약속을 지킨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재봉사 '피핑 톰(Peeping Tom)'은 덧문에 구멍을 뚫고 부인의 나신을 훔쳐본다. 그는 눈이 멀었다. 혹은 죽었다. 전설마다 형벌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말은 같다. 금기를 넘은 시선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 영국 코번트리 브로드게이트에 위치한 역사적인 레이디 고다이바 시계(Lady Godiva Clock). ⓒ rytymology

▲ 영국 코번트리 브로드게이트에 위치한 역사적인 레이디 고다이바 시계(Lady Godiva Clock). ⓒ rytymology

피핑 톰이라는 인물이 이 전설에 더해진 것은 17세기였다. 중세 연대기에는 그가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학자 대니얼 도노휴(Daniel Donoghue)는 이렇게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톰은 희생양이 되어 이 벌거벗은 여인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의 상징적 죄책감을 떠안게 되었다." 피핑 톰은 공동체가 품은 욕망을 한 개인에게 떠넘긴 서사적 장치였다.

프로이트는 관음증(scopophilia)과 전시증(exhibitionism)을 서로를 전제로 하는 쌍생 충동으로 규정했다. 고디바 부인과 피핑 톰은 그 원형적 배역이다. 금기가 있어야 욕망도 생긴다. 모두가 창문을 닫았기에 단 한 사람의 시선이 범죄가 된다.

허문오가 이강의 문장 뒤에 숨어 들여다본 풍경도 다르지 않다. 그는 예술이라는 틈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본다. 강의실은 그의 창문이었고, 이강의 문장은 덧문에 뚫린 구멍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피핑 톰은 자신의 죄를 알았다. 허문오는 끝내 알지 못했다. 그 무지가 그를 더 깊은 파멸로 이끈다.

 

이야기는 왜 관음의 무기가 되는가

조재현 감독의 영화 〈나 홀로 휴가〉(2016)의 강재(박혁권)는 또 다른 피핑 톰이다. 결혼 20년 차 가장. 직장은 안정됐고 가정도 평온하다. 아내의 배려로 제주 사진 여행을 떠났지만 그의 렌즈는 처음부터 바다와 해녀를 향하지 않았다. 숙소 베란다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던 강재가 셔터를 누른 대상은 10년 전 밀회를 나눴던 연인 시연(윤주)과 그녀의 가족이었다. 이 여행은 사진 여행이 아니라 시연을 추적하는 오래된 습관의 연장이었다. 그는 시연의 신혼여행지까지 따라가 옆방에서 도청했고, 매주 같은 시간 요가 학원 근처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았다. 취미라는 이름으로 관음을 반복했다.


강재의 카메라와 허문오의 작문 과제. 두 사람의 관음은 도구만 다를 뿐 구조는 같다. 이야기와 이미지가 관음의 알리바이가 된다. 예술이든 취미든 그 이름 아래 침범은 정당화된다. 강재는 시연의 삶을 훔쳐보며 자신이 잃어버린 무엇을 확인한다. 타인의 삶을 거울 삼아 자신의 결핍과 상실을 들여다본다. 영화 속 시연 친구의 말처럼, "시연이는 강재 씨에게 잊힐까 봐 두려웠데요." 사랑과 이별은 이런 역설을 품는다. 그러나 그 역설이 타인의 경계를 넘을 권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 영화 '나 홀로 휴가'의 한 장면. ⓒ 리틀빅픽쳐스

▲ 영화 '나 홀로 휴가'의 한 장면. ⓒ 리틀빅픽쳐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1936년 에세이 「이야기꾼(Der Erzähler)」에서 경험을 나누는 이야기의 소멸을 말한다. 그가 말한 이야기꾼은 죽음과 노동, 기다림과 실패 같은 구체적 경험을 타인에게 전하며 삶의 의미를 이어 주는 존재다. 그러나 전쟁과 속도의 시대를 지나며 인간은 경험을 전승하는 능력을 잃었다. 더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경청은 사라지고 내면의 독백만 남는다.

한병철은 오늘을 스토리가 넘쳐나지만 서사는 사라진 시대라고 진단한다. 이야기는 끝없이 생산되고 소비되지만 존재를 조직하고 해석하는 힘은 잃었다. 스토리는 지금 이 순간 팔리고 잊히기 위해 만들어진다. 반면 서사는 느리게 도착한다. 설명되지 않은 채 다가오고, 의미는 그 설명할 수 없음의 잔여에서 생겨난다.

'(다음에 계속 …)'에 중독된 허문오의 욕망도 그 서사 결핍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잃었기에 소년의 이야기에 매달린다. 이야기를 상실한 인간이 타인의 서사에 기생하는 순간, 관음과 창작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강의 문장은 플로베르가 말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처럼 치밀하고 냉정하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치명적인 독이 스며 있다. 대상의 삶을 미적으로 승화하는 대신 살아 있는 인간을 한 조각씩 해체하고 박제하는 폭력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문학이 아름다울수록 현실의 윤리는 더욱 처참하게 무너진다. 미학적 성취는 도덕적 타락과 공존할 수 있는가. 오래된 이 질문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늘의 얼굴로 되살아난다.

 

응시는 관계가 아니다

허문오의 아내(진경)는 심리상담가다. 그녀는 말한다. 윤리의 범주는 관계에서 정해진다고. 관계가 없다면 윤리도 없다고. 이 말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다. 관음이 윤리적으로 파괴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관계 없음의 형식이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바라보지만 상대는 그 시선을 알지 못한다. 알아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관계가 아니라 일방의 투사(投射)다.

허문오는 이강을 안다고 믿었다. 이강의 서사 속 인물들을 오래 알고 지낸 이웃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가 붙잡은 것은 소년이 파놓은 허구의 덫이었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의 도덕성과 가정을 송두리째 잠식당한 가련한 독자가 된다. 소년은 스승의 결핍과 열등감을 정확히 읽어냈다. 그리고 그가 보고 싶어 하는 타인의 붕괴를 맞춤형 서사로 써 내려갔다.

중요한 사실, 김수훈이 세윤의 아버지라는 진실을 허문오는 뒤늦게 알게 된다. 그는 이강의 과제물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서사를 재구성해야 했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작가의 죽음은 화자와 인물을 새롭게 배치한다. 저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텍스트는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허문오는 끝내 소년이 보여주는 것만 보았다. 관음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다.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나 홀로 휴가>에서 강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시연은 이미 이별을 끝냈다. 끝나지 않았다고 믿은 사람은 강재뿐이었다. 이별은 단순히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내면을 정리하고 삶을 다시 배열하는 과정이다. 강재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그 시간에 머물렀다. 스토킹이라는 사회적 범죄의 표면 아래에는 끝난 이야기를 끝내 놓지 못하는 한 인간의 절박함이 있다. 그러나 그 절박함은 타인의 삶을 침범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소유를 뜻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이강 역시 스승을 관찰했다. 차이는 하나다. 이강은 둘 사이의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허문오는 끝내 알지 못했다. 이강의 부친 사고 소식을 듣고도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허문오. 드라마에서 가장 악한 존재는 어쩌면 소년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음에 계속 …)'만을 기다리던 교수였는지 모른다. 무너진 삶의 잔해 앞에서도 다시 타인의 창문을 바라보며 다음 이야기를 웅얼거리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섬뜩하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했기에 끝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피핑 톰이 눈이 먼 것은 형벌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식론적 사실이다.

 

끝줄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질문

드라마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시작한 허문오의 강의를 결국 『파우스트』로 수렴시킨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다듬은 『파우스트』는 끝내 완성을 포기하지 않은 인간의 서사다. 끝내 두 번째 소설을 쓰지 못한 허문오의 삶과 선명하게 맞선다. 김수훈은 말한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해도 되잖아.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아.

무엇보다도 문장공부부터 다시해야겠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면 진실도 사실도 아닌 욕망의 배설만 남는다. 허문오의 첫 소설 『열두 명의 여자』가 실은 단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듯, 그가 탐닉한 이강의 서사 역시 자신의 결핍을 향한 길고도 우회적인 독백이었다.

허문오가 이강의 글에서 발견했다고 믿은 것은 문학이 아니었다. 평생 갈망했지만 끝내 갖지 못한 것들의 환영이었다.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향수, 만난 적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 문장은 결국 허문오 자신의 갈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맨 끝줄은 모두를 볼 수 있지만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 자리다. 동시에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는 자리다. 관계의 출발은 상대를 인식하는 일이며, 상대 역시 나를 인식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관음은 그 상호성을 거부한다. 그래서 애초부터 관계가 아니다.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관음은 관계의 환상이다. 상대를 알지 못한다. 동의도 구하지 않는다. 혼자 바라보고, 혼자 해석하고, 혼자 의미를 부여한다. 그 고독한 응시가 타인의 삶을 침범하는 순간 예술은 폭력으로 변한다. 이 드라마가 화면 밖에서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핑 톰인가.

타인의 삶을 잘라 편집해 소비하는 리얼리티 콘텐츠의 시대, 우리는 덧문에 구멍을 뚫는 행위를 엔터테인먼트라 부른다. 그 시선에도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잊었거나 잊으려 한다. 문학과 카메라가 삶의 경계를 침범할 때, 예술이라는 방패 뒤에 끝내 숨을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작품이 남긴 가장 시린 질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48




 

댓글 4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tvN <오싹한 연애>의 레이나 호텔 체크인🔑 초대권 이벤트 👻🏨 123 06.29 31,222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617,441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048,73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522,33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283,582
공지 잡담 발가락으로 앓든 사소한 뭘로 앓든ㅋㅋ 앓으라고 있는 방인데 좀 놔둬 6 25.09.11 556,751
공지 잡담 카테 달고 눈치 보지말고 달려 그걸로 눈치주거나 마플 생겨도 화제성 챙겨주는구나 하고 달려 8 25.05.17 1,151,678
공지 잡담 카테 달고 나 오늘 뭐 먹었다 뭐했다 이런 글도 난 쓰는뎅... 13 25.05.17 1,224,524
공지 스퀘어 차기작 2개 이상인 배우들 정리 (5/22 ver.) 162 25.02.04 1,822,435
공지 알림/결과 ─────── ⋆⋅ 2026 드라마 라인업 ⋅⋆ ─────── 123 24.02.08 4,653,069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라마 시청 가능 플랫폼 현황 (1971~2014년 / 2023.03.25 update) 16 22.12.07 5,579,530
공지 알림/결과 ︎︎🪄◝✨ (੭ ᐕ)੭*⁾⁾ 뎡 배 카 테 진 입 문 (~˘▾˘)ノ =͟͟͞🎟 175 22.03.12 7,146,272
공지 알림/결과 블루레이&디비디 Q&A 총정리 (21.04.26.) 11 21.04.26 5,732,809
공지 알림/결과 OTT 플랫폼 한드 목록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티빙) -2022.05.09 238 20.10.01 5,822,110
공지 알림/결과 만능 남여주 나이별 정리 310 19.02.22 5,958,365
공지 알림/결과 한국 드영배방(국내 드라마 / 영화/ 배우 및 연예계 토크방 : 드영배) 62 15.04.06 6,129,478
모든 공지 확인하기()
15954515 잡담 군체 부산 무인 없는거 넘 아쉽다 그러니 부국제오셈 01:55 3
15954514 잡담 난 걍 여러가지 의미로 그래서 박지훈 영화 판으로 갔음 좋겠음.... 01:55 22
15954513 잡담 전지현 영화 다작해 01:54 11
15954512 잡담 올 상반기에 빠져 살았던 드영 1 01:53 64
15954511 잡담 천만 영화들 출연배우 보고 왔는데 젊은 배우가 진짜 없긴 없다 1 01:53 54
15954510 잡담 지방러들은 짹에서 사투리 써?? 2 01:53 25
15954509 잡담 박지훈 연기로 보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2 01:52 47
15954508 잡담 아 근데 내가 영화 제작자라도 아는 얼굴 쓸거같긴해 11 01:51 94
15954507 잡담 올해 제일 잘한일 왕사남 덕질 3 01:51 45
15954506 잡담 영화판 고인물에 새 얼굴이라도 추가하면 좋겠음ㅋㅋ 4 01:50 84
15954505 잡담 잠온다 vs 졸려 너네는 무슨 말 많이 써? 20 01:50 68
15954504 잡담 왕사남 진짜 어케 보자마자 단종이다 이 소리가 나오지 6 01:50 66
15954503 잡담 네임드인데도 영화판 못들어간 배우들이 진짜 많음 6 01:50 98
15954502 잡담 ㅇㄷㅂ 게임하는게 시간은 진짜 잘간다 1 01:49 28
15954501 잡담 닥터섬보이 한의사쌤 본체 배우 낯이 묘하게 익어서 필모 찾아보는데 01:49 38
15954500 잡담 박지훈 프듀때부터 덕질중인데 꽃파당 첫방때 진짜 개떨렸음 ㅋㅋㅋ 11 01:49 87
15954499 잡담 박지훈 사진 중에 이홍위 연시은 둘다 관통하는 2 01:49 58
15954498 잡담 홍경은 근데 그 멜로 영화도 잘어울리던데 2 01:49 45
15954497 잡담 박지훈은 울려야지 5 01:48 79
15954496 잡담 굿뉴스 보고나니까 부국제에서 홍경 얼굴 큰 스크린으로 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2 01:47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