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 씽>에서 최성곤(오정세)이 부른 세레나데 <니가 좋아>는 쉬운 멜로디와 직관적인 가사, 그 모든 마성의 조악함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한 배우의 열연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못 들어봤을 수는 있어도 한번만 들을 수는 없는 이 노래의 작사, 작곡은 이진희 음악감독이 했다. 그가 영화 속 세계에서 38주간 차트 2위를 지키고, 현실 세계에서는 SNS 알고리즘을 지배해 뮤직비디오 조회수 200만을 넘긴 노래를 만든 것이다. 그걸 해낸 장본인은 요즘 “당황스럽다가 기쁘다가 부끄럽기도 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가 쓴 곡이 밈이 되다니, 10년 넘게 영화음악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니가 좋아>를 향한 의혹들(?) 가운데 이진희 음악감독이 가장 먼저 해명하고 싶은 것은 ‘챗GPT 외주설’이다. “AI에 맡기면 오히려 그럴싸한 기교로 가득한 곡이 나온다. 이런 가사야말로 인간만이 쓸 수 있다. 억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진희 음악감독은 반려견 제니를 보며 가사를 썼다고 한다. 손재곤 감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 같은 곡을 원했는데, 강아지와 눈을 맞추니 계산 없이 달콤한 말이 술술 나왔다. ‘예뻐서 좋아, 착해서 좋아, 웃겨서 좋아’의 3단 콤보는 그렇게 탄생했다. 제니는 지난 3월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주인의 순도 100% 진심이 담긴 곡만큼은 듣고 떠날 수 있었다. 사실 <니가 좋아>의 자리를 대신할 뻔했던 후보곡도 존재했다. 제목은 무려 <이 바보야>. 이진희 음악감독이 소몰이 창법의 유행을 복기하며 쓴 록 발라드였으나, 가수가 클라이맥스에서 고음을 질러야 한다는 난점 탓에 채택되지 못했다고.
<와일드 씽>의 삼인조 트라이앵글의 후속곡 <Shout it out>도 이진희 음악감독 작품이다. 레퍼런스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들이 주로 시도하던 사회비판적 컨셉의 SMP(SM Music Performance) 장르다. H.O.T. 팬이었던 추억이 도움이 되었다. “우리들의 이기심에 병들어가는 place! 무절제적 소비에 산이 돼버린 trash!” 라임도 맞췄다. 트라이앵글의 데뷔곡 <Love is>는 다른 경로를 거쳤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즘 가요”가 제격이라고 판단한 이진희 음악감독은 제작진에 <그 여름을 틀어줘>를 쓴 심은지 작곡가를 추천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로 원더걸스, 트와이스, 있지 등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에 참여해온 심은지 작곡가는 이진희 음악감독이 “가장 성공한 동기”로 꼽는 인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함께 다닌 사이. <그 여름을 틀어줘>를 몰랐던 손재곤 감독은 곡을 듣자마자 반해 심은지 작곡가를 선택했고, 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이진희 음악감독은 <와일드 씽>을 위해 30개가 넘는 오리지널 스코어를 완성했다. <이층의 악당>으로 음악감독 데뷔를 한 만큼 손재곤 감독과의 프로젝트는 더 잘해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댄스곡으로 소리를 채워볼까 싶었지만, 현장 편집본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코미디를 도와줄, 상황적으로 유연한 음악들이 더 필요하겠더라. 인물들이 길 위에서 잇따른 사고를 겪을 때는 장송곡 스타일을, 남미 생활 중인 박용구(신하균)가 등장할 때는 라틴 리듬을 변주하는 식으로.” 이는 김홍집 음악감독과의 협업으로 이룬 결과다. “김홍집 음악감독은 장면을 탁월하게 분석해 아이디어가 많고, 나는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만큼 오케스트레이션에 능한 편이다.”
<26년>을 시작으로 호흡을 맞춰온 이 콤비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2017년 제1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JIMFF OST상을 받았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첫 트로피를 안겨줬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관객의 편지를 받게 해줬다. 열성적인 ‘불한당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봉 이후 소소한 화제를 끌었던 오세안 무역의 CM송도 이진희 감독의 솜씨다. 변성현 감독과는 음악 취향이 잘 맞아 <킹메이커> <길복순> <굿뉴스>까지 같이했다. 그중에서도 이진희 음악감독은 자신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킹메이커> 사운드트랙을 먼저 들어보기를 권한다고 한다. “드라마를 따라가는 음악에 자신 있다. <킹메이커>에서 내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종류의 작업을 했다. 물론 내 안에는 엄청난 장난꾸러기도 있다. 그런 면은 <내 아내의 모든 것> 그리고 <와일드 씽>에서 잘 드러냈다.”
멜로디언으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그대로 따라 쳐 부모님을 놀라게 한 5살짜리 꼬마는 학창 시절 내내 피아노에 빠져 살았다. 다만 한곡을 반복해 연습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고전을 편곡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작곡과 진학을 권유해 여기까지 왔다. 영화음악의 매력을 접한 건 존 윌리엄스를 알게 되면서다. 최애는 <쉰들러 리스트> <나홀로 집에> <A.I.>의 음악. “<디스클로저 데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와일드 씽>의 경쟁작이기 때문에.” 이진희 음악감독은 계속 창작할 것이다. 영화보다 앞서지 않는, 그러면서도 한방이 있는 음악을.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당장은 그 결과물을 극장에서, <와일드 씽>을 보며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ITEM - 악보 노트
“음악감독에게 귀에 꽂히는 곡을 써달라는 주문은 감독에게 천만 영화 시나리오를 써달라는 얘기만큼이나 어려운 미션이다. 내 경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 산책할 때나 지하철 탈 때, 설거지할 때처럼 일상생활을 하다가 악상이 꽂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악보를 그릴 수 있도록 수년째 챙겨 다닌 이 노트는 나만의 ‘모티프 모음집’이다.”

FILMOGRAPHY
영화
2026 <와일드 씽>
2025 <굿뉴스>
2024 <야당>
2023 <길복순>
2022 <모럴센스> <킹메이커> <압꾸정>
2021 <카운트>
2019 <내가 죽던 날>
2018 <해치지않아>
2017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장산범> <너의 결혼식>
2015 <그놈이다> <좋아해줘>
2014 <나의 독재자>
2013 <뜨거운 안녕>
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26년>
2010 <이층의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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