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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집을 뒤흔드는 폭우가 겨우 안정되어 받아둔 빗물로 세수를 하고 일찍 옷차림을 가지런히 하였다. 오늘은 여타의 날과 다른즉 그 아이가 오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보낸 말에 의하면 이 아이가 어찰을 받들어 전하는 행렬에 동행한다 하니 아마 오시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거울이 있었다면 내 용모를 좀 비춰봤을 터인데. 비록 겨우 이 거칠고 못난 수족을 가릴 수는 있어도 초췌한 얼굴빛까지 가릴 방법이 없구나.
남루한 내 모습을 돌아보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으나 죄로 얼룩진 행적인 마당에 감히 거울로 얼굴을 보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방안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있으면 문득 망념이 생겨 방 밖으로 나왔더니 그런다 해도 손바닥만한 작은 마당에 지나지 않구나. 이 초가삼간이 자못 내 외롭고 쓸쓸한 처지와 닮았구나. 만약 단심이가 나의 이와 같은 몰골을 본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마도 우스꽝스럽다고 하려나, 속이 시원하다(꼴 좋다) 하려나. 불쌍하다는 말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려무나.
상(안종)이 일부러 너같은 대비전의 지밀나인을 어찰을 전하는 행렬에 동행하게 한 것은 분명 그 속뜻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뜻은 다름이 아니라 만약 너를 살리고자 한다면 내가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내용 뿐이리라. 지금 오고 있는 어찰 속에 분명히 이런 말이 적혀 있을 터인데, 아직 편지를 읽기도 전이건만 그 흉흉한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처럼 소름이 끼치는구나상이 너에게 맡긴 임무는 모름지기 내가 궁녀를 희롱하였다고 증언하라는 것일 터이니 그렇다면 착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여 네 몸을 지키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꿈에 그리던 얼굴을 곧 보게 되었으니 이는 또한 고맙다 해야할 일인가. 네 얼굴을 보고픈 마음이 절반이요 이처럼 초라한 몰골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또 절반이니 나란 놈은 네게만큼은 사내대장부로 남길 바라는 것인가. 기세가 다 사라져 버려 문득 너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어지는구나. 나에 대한 기억은 부디 모두 잊어달라는 등 나의 그 말들은 실상은 전부 본심이 아니었느니라
ㅁㅊ ㅜㅜㅜㅜ